강원도 고성 산불 40일, 그 현장을 가다

이중으로 고통받는 이재민들, 하루속히 피해보상 이루어져야

등록 2019.05.17 09:45수정 2019.05.17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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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설악화이트빌 펜션단지(고성군 토성면 성천리) ⓒ 최오균


산불이 난 지 40일이 지난 5월 15일, 고성 산불 현장을 찾았다. 산불의 발화지점인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일성콘도 부근에 도착하자 불에 탄 나무들이 시커멓게 그을린 채 맥없이 서 있다. 어떤 나무는 몸뚱이 전체가 타들어가 시커먼 기둥만 남아 있고, 어떤 나무는 밑동은 시커멓게 타 있고, 가지와 잎사귀는 갈색으로 변해 있다.

차에서 내려 불에 탄 나무 밑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아직도 매캐한 탄내가 코를 찌른다. 타들어간 나무들이 띠를 이룬 곳을 따라 서서히 내려갔다. 불 띠의 흔적은 원암리 사거리에서 원암온천 사거리로, 원암온천 사거리에서 용촌천을 따라 한화리조트 방향과 영랑호 주변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불길이 바람의 방향을 따라 번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원암온천 사거리에는 원상복구와 고통을 호소하는 피해주민들의 플래카드들이 줄줄이 붙어있었다. '고성산불 인재 한전은 배상하라!!', '산불피해 주민의 찢어지는 고통을 한전은 아는가?', '산불발화 상습적인 한전은 즉시 원상복구 실시하라', '속초, 고성관광도시 불바다 만든 한전사장 구속하라!' 등등. 플래카드는 주로 이번 산불 발화의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추정되는 한전 측을 질타하는 내용들이다. 삶의 터전을 순식간에 잃어버린 피해주민들의 속은 얼마나 타들어갈까?
 

피해주민들이 고통과 원상복구를 호소하는 플래카드들 ⓒ 최오균

 
사거리 건너편에는 시커멓게 그을려 타버린 펜션이 흉한 모습으로 서 있다. 용원로를 따라 내려가니 피해의 흔적이 점점 처참하게 나타났다. 마치 폭격을 맞은 것처럼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있고,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려버린 현장을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다. 너무 끔찍해서 사진을 찍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원암2교를 지나 원암리 마을회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60대로 보이는 이재민 한 분을 만났다. 기자가 "이번 산불로 얼마나 놀라셨습니까?"하고 인사를 건 내자, 그는 한숨을 길게 내 쉬었다. "아이고, 말도 마십시오. 지금도 가슴이 벌렁벌렁하고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어요." 그는 불이 났을 때의 악몽이 떠오르는지 넋이 나간 듯 눈을 감고 한숨만 푹푹 몰아쉬더니 혼잣말처럼 이어갔다.

"날이 어두워지자 난데없이 수십 개의 불덩어리가 저 산 너머에서 날아왔어요. 그리고 이 집 저 집으로 떨어져 내려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고 말았어요. 그나마 저희 집은 좀 덜 탄 편입니다. 이 아래 용촌리와 장천마을 쪽으로 내려가면 불에 탄 집들이 완전히 초토화가 되어 흔적조차 없어져 버렸어요. 타버린 집들도 문제지만 아름드리나무들이 너무 아까워요. 나무들이 다시 커서 숲을 이루려면 얼마나 수백 년의 세월이 흘러야 할 텐데…. 저 냇물 건너에 있는 소나무들은 수백 년이 된 나무들인데….."   
 

불에 타 뼈대만 덩그러이 남은 건물의 잔해(토성면 원암리) ⓒ 최오균

 

불에 탄 소나무들과 집 ⓒ 최오균

 
끝내 제대로 말을 이어가지 못한 그는 현재 한전 연수원에 대피하여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고 했다. 타다 남은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아침에 일어났더니 눈이 따갑고 목이 아파 도저히 참을 수 없다고 했다. 아직 불에 탄 유독가스의 잔해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의 집 바로 옆에 있는 '설레다 펜션'과 '설악의 정원'은 전소되어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있고 아직도 탄내가 코를 찔렀다.

미안해서 차마 그와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었다. 그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원암1교를 건너갔다. 용촌천 변에 수백 년 된 아름드리소나무들이 검게 타올라 유령처럼 서 있다. 주변의 집은 물론 레미콘 공장도 타버린 잔해만 흉측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번 강원도 산불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숲속의 나무들이다. 산불로 타버린 수 백년 된 아름드리 소나무들(강원도 고성 원암리) ⓒ 최오균

    

불에 탄 소나나무들 ⓒ 최오균

 
'설악 화이트빌' 펜션단지는 그야말로 초토화가 된 채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미처 피하지 못한 자동차도 불에 탄 채 그대로 서 있다. 그 모습은 마치 베수비오 화산폭발로 묻혀버린 폼페이 유적을 방불케 했다. 앙상한 기둥과 나무 사이로 멀리 울산바위가 보였다.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이 참혹한 광경을 촬영하는 것조차 망설여 진다. 한 참 손님을 받고 영업을 해야 할 시기에 정성을 쏟아 아름답게 꾸며놓은 삶의 터전이 잿더미로 변해버린 모습을 보고 집주인들은 얼마나 마음속이 타들어갈까?  
 

타버린 잔해만 남은 설악화이트빌 펜션단지 ⓒ 최오균

 
불 띠의 흔적은 성천리를 지나 북동쪽으로 확산되며 용촌리 저수지와 영랑호주변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속초 극동방송 사옥도 전소된 채 험한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군데군데 굴착기들이 복구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지만 아직 피해현황이 정확히 조사되지 않아서인지 대부분의 집들이 불에 탄 모습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이번 산불로 가장 심한 피해를 입은 것은 숲속의 나무들이다. 겉으론 멀쩡해 보이지만 속과 뿌리는 까맣게 타들어 가 있다. 산불 피해를 입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나무들도 길게는 2년 정도까지 지켜보아야 생사를 가늠할 수 있다고 한다.
 

불에 탄 나무들 ⓒ 최오균


과학자들에 의하면 담뱃불의 온도는 900도, 촛불 1400도, 산불의 온도는 1100도 정도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번 강원도 산불은 지상의 나무들이 타는 동안 거의 1000도에 가까운 뜨거운 열기가 계속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열기는 땅속 깊숙이 타고 들어가 뿌리와 생태계의 생명을 죽이고 있다.

나무의 생명도 동물들과 다름이 없다. 얼마나 뜨거웠을까? 그래도 동물들은 뜨거운 열기를 피해서 도망이라도 갈 수가 있다. 그런데 한 곳에 뿌리를 박고 있는 나무와 식물들은 온 몸이 타들어 가도 피할 수가 없다.
  
산림청에 의하면 본격적인 산림 조성은 여름이 지난 가을이 되어야 시작된다고 한다. 많은 나무들이 불에 타 버티는 힘이 없어 비가 많이 내리는 홍수철에는 흙이 무너져 내려 산사태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강원도 일대 산불 충격은 너무나 크다. 사람도, 나무도, 동식물도 너무나 큰 상처를 입었다. 이 엄청난 상처를 치유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물질적인 피해는 물론, 수십 년간 살아온 보금자리와 자연환경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공허함과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불에 탄 집과 주변의 나무들. 피해주민들은 터전을 잃은 상처도 크지만 시커멓게 타버린 주변 자연경관을 잃은 상실감이 더 크다. ⓒ 최오균

 
문득 조병화의 '나무'라는 시가 떠올랐다. '나무는 스스로 울질 않는다/ 바람이 대신 울어준다/ 나무는 스스로 신음하질 않는다/ 세월이 대신 신음해준다'

지금 이재민과 나무는 인간이 저지른 화마에 신음하며 울고 있다.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고 몸과 마음이 찢어지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이재민들에게 하루속히 물질적 정신적 보상이 이루어져 정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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