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가요열창에서 못 부른 노래를 50대에 해도 될까

노래동아리 연습실에 처음 가던 날... 심장아 나대지 마

등록 2019.05.17 08:46수정 2019.05.17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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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잘 그리는 사람들은 참 좋겠다." 전시회에 같이 간 선배에게 지나가는 말을 했다. 선배는 뜬금없는 대꾸를 해왔다. "너는 노래 잘하잖아. 너 옛날에 결혼하면 꼭 주부가요열창 나간다고 그러더니 왜 안 했니?"


내가? 정말? 언제? 선배는 내게는 전혀 기억도 없는 20년도 훨씬 넘은 과거사를 꺼내 들었다. 기억에 없으니 아니라고 할 참인데, 당시 정황을 비교적 생생하게 그려내는 통에 박박 우기질 못했다.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가만가만 그 시간을 더듬어보니, 정말로 그 시절이 내게 있었던 게 아닌가. 네모난 색종이를 두 번 접어 가운데를 싹둑 자르면 생기는 빈 구멍처럼, 과거 어느 한 순간이 잘려 나갔던 것이다. 아득했다.

사는 게 뭐라고 욕구마저 잠재웠을까 
 

결혼 후 바로 임신과 독박육아에 내몰린 내 처지에서 설사 그 프로그램이 있었다 하더라도 언감생심이었을 터다. ⓒ Pixabay

 
결혼했을 당시는 이미 '주부가요열창'이 막을 내렸던지라, 도전하고 싶다고 해도 할 수 없었겠지만, 결혼 후 바로 임신과 독박육아에 내몰린 내 처지에서 설사 그 프로그램이 있었다 하더라도 언감생심이었을 터다.

3년 만에 한국에 다니러 와 생각지도 않은 기억을 돌려준 선배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나는 선배가 길어 올린 그 기억 언저리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엄마로, 아내로 사는 일이 대체 무엇이었길래, 욕구마저 잠재웠을까. 조금 쓸쓸했다.

물론 가수가 되겠다는 허황된 꿈을 꿀 만큼 노래를 잘하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 '주부가요열창'이라는 프로그램에 주부들이 무대에 나와 열창하는 노래가 하도 근사해, 부러운 김에 농담으로 지껄인 얘기를 선배가 잊지 않고 있었던 거다. 어떻게 그걸 기억하고 있었을까. 기억이란 참으로 현묘하다. 생각지도 않은 사람이, 생각지도 않은 순간에, 불러오기를 해준다.


아주 어릴 적 기억인데, 한 대여섯 살 되었을까. 살던 동네에서 잔치 비슷한 걸 했다. 마당 넓은 집 앞 마당에 동네사람들이 죽 둘러앉은 데서, 어른들이 하도 부추기는 바람에 '눈물 젖은 두만강'을 불렀다. 어른들한테 잘했다고 박수 받고 돈까지 받았던 기억이 나는데, 따지고 보면 그게 내 첫 무대였던 셈이다. 에이, 어린애가 '눈물 젖은 두만강'이 뭐람.

후원하고 있는 시민단체에 노래동아리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공식 석상에서 그들이 하는 노래를 듣긴 했지만, 이 일이 있기 전까지는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선배가 잠자던 욕망을 깨우자, 무릎이 '탁' 쳐지게도 그들이 생각나는 것이 아닌가. 무릎을 탁 치긴 했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두어 달 미적대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노래패 리더에게 소심한 문자를 보냈다. 내 소심한 두드림에 '언제든 환영'이라는 고마운 회신이 왔다. 잊고 있던 젊을 시절, 노래 좋아했던 내 욕망이 마침내 닻을 올렸다.

멀어졌던 노래가 다가오고 있다, 두근 거린다
 

영화 <하모니> 그들이 합창으로 눈빛을 교환하며 소리를 모으는 장면은 관람자의 가슴을 얼마나 따뜻하게 데우던가. ⓒ (주)JK필름

 
그들의 연습실로 간 첫날. 함께 하던 멤버들이 개인 사정으로 당분간 소강 상태인지라, 모두 볼 수는 없었다. 노래패 리더 L은 그간의 사정을 소상히 알려주며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세 명이 모이자 연습에 들어갔다. L이 작사 작곡한 두 곡을 불러보기로 했다. 전에 한두 번 들어본 곡이기도 하고 어렵지 않은 멜로디라, 그리 어렵지 않게 따라할 수 있었다.

노래를 파트를 나누어 따로 또 같이 불러보는 형식으로 연습했다. 각 파트를 따로 부르다 셋이 같이 부르는 순간이었다. 혼자 부를 때 잔잔하던 소리가 셋이 일제히 부르자 큰 소리로 터져 나왔다. 말할 수 없는 희열이 솟구쳤다. 그 느낌에 대해 왜냐고 묻는다면 설명 불가다. 온 몸을 휘감는 전율을 안긴 그 느낌은 시큰하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한 것이었다.

노래를 부르며 무기력하거나 우울한 상태를 극복했다는 이야기를 매체에서 간간히 접하곤 했다. 영화 <하모니>를 보면, 교도소 여성 수감인들이 노래를 부르면서 상처를 회복하고 서로에게 공명하는 여정을 보여준다. 그들이 합창으로 눈빛을 교환하며 소리를 모으는 장면은 관람자의 가슴을 얼마나 따뜻하게 데우던가.

영화 <델타보이즈>에서 지질한 남성 4명이 보인 노래에 대한 갈망도 기억난다. 뭘 해도 인생이 안 풀리는 남성 4명이 노래자랑에 나가기로 작정하며 벌이는 지지부진한 노래 도전기. 도대체 저들 오합지졸 4명이 무슨 노래를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결국 해낸다.

물론 노래자랑은 주최 측의 무책임한 태도로 무산되지만, 이들은 계획한 노래 한 곡을 완성한다. 4명이 소리를 맞춘 '제리코~'는 뜻밖에 무척 아름다웠다. 한 사람의 목소리는 보잘 것 없었지만, 4명이 함께 울려 낸 소리는 감동을 자아냈다.

영화가 뭉클함을 안긴 그 지점과 비슷한 울림이었다. 셋이 합한 목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우자, 작은 소름들이 돋아났다. 작은 소리들의 합(合)이 방을 크게 울렸다. 방음 시설이 되어있는 연습 방은 셋의 목소리가 퍼지지 않고 머물게 해 주었다.

머문 소리는 서로를 공명시켰다. 잠깐이었지만 함께 부른 셋의 소리가 준 감동이 세 명 모두에게 전달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합일감. 때론 묻지 않고도 대답하지 않고도 알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은가. 이심전심이다.

노래방의 보급은 '전 국민의 가수화'를 가속시켰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나의 경우, 전보다 노래를 더 많이 부르게 되지는 않았다. 노래방이 없고 노래를 다운로드 받지 않던 시절에는 좋아하던 노래엔 그만큼 정성을 들여야 했다. 그 노래를 익히고 싶으면 가사를 적어 외어야 부를 수 있었다.

하지만 노래방이 생긴 이후에는 번호만 누르면 가사가 좔좔좔 흘로 나오니, 이런 노력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내게는 노래가 노래방 도입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노래방 이후에 나온 곡은 가사를 제대로 아는 곡이 하나도 없다. 혼자 흥얼거리는 노래는 전부 노래방 이전의 노래뿐이다. 이러다보니 노래가 멀어져갔다. 듣기만 했고 이조차도 뜸해졌다.

고등학교 이후로는 소리를 모아 노래 불러본 적이 없다. 노래패 P와 목소리를 섞어 노래를 부르니, 합일의 환희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리더 L은 자신이 작사 작곡한 노래 한 곡을 같이 녹음해 음원을 내보자고 제안했다.

나 같은 무지렁이가 음원을? 이루어진다면, '가문의 영광'이 아닐 수 없다. 노래는 연습도 부족하고 잘하지도 못하면서, 내 목소리가 음원으로 탄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흥분된다. 50이 넘은 지금 다시, 멀어졌던 노래가 다가오고 있다. 두근거린다. 얼마만인지 모른다.
#노래 #하모니 #델타보이즈 #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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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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