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테러 두고 조현병 이야기만... 문제는 경찰이었다"

[스팟 인터뷰] 진주 방화 살인사건 아파트 피해자들 상담한 의사의 울분

등록 2019.04.23 07:56수정 2019.04.23 07:56
29
20,000
 
a

진주 아파트 방화·살해 혐의를 받는 안아무개(42)씨가 17일 오후 경남 진주경찰서 진술녹화실에서 나오고 있다. 2019.4.17 ⓒ 연합뉴스

 
"제대로 작동해야 하는 안전망이 작동하지 않았고 사회적 테러에 경찰이 대처하지 못한 것이다. 테러의 징후가 여러 번 있었다. 조현병이 문제가 아니다. 이렇게 하면 비슷한 사건이 또 생긴다." 

일부 언론은 '진주 방화 살인사건'을 두고 "피의자 안아무개(42)씨가 조현병 치료를 약 3년간 중단했다"라거나 "치료를 제때 받았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아파트 주민들을 직접 상담한 트라우마 전문가이자 의사 이아무개씨는 익명을 전제로 응한 인터뷰에서 조현병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고 말한다.

진주 방화 살인사건은 진주의 한 아파트에 살던 안씨가 지난 17일 자신이 살던 집에 불을 지른 뒤 화재를 피해 아파트를 빠져나오던 사람들을 상대로 흉기를 휘둘러 여성 청소년 2명과 여성 노인 2명, 남성 노인 1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의사 이씨는 이번 사건의 핵심은 안씨의 '조현병'이 아니라 경찰의 관리·대응 부재라고 지적했다. 아파트 주민들이 총 8차례에 걸쳐 신고했는데도 경찰이 별다른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씨는 정작 아파트 주민들은 아무도 조현병을 문제 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22일 오전 의사 이씨와 전화 인터뷰한 내용이다. 

"약 60세대 면담... 아무도 조현병이 사건 원인이라 생각 안해"

- 사건의 피해자들을 상담했다고 들었다.
"내가 재난 전문가라고 하지만 (유가족들이 있는) 자리에 가서 위로를 한다는 게 힘들다. 사실 뭐라고 하겠나. '자살 생각하시면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셔야 한다'라며 같은 말을 하는데, 문득 화가 나는 순간이 있다. 차라리 하늘이 일으킨 천재지변이라면 운명이라고 할 수도 있다. 운명이 아닌, 막을 수 있었는데 막지 못한 사건일 때는... 나도 할 말이 없다."

- 상담을 얼마나 진행했나?
"약 60세대 각 30분 정도 진행했다. 정신과 전문의라는 걸 밝히고 면담을 했다. 기자가 추측해봐라. 주민들 중에 가해자의 조현병에 대해서 물어본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 것 같나?"

- 글쎄... 몇 명인가?
"한 사람도 없었다. 한 분이 자기가 이번 일에 충격을 받아서 보이는 증상이 조현병 아니냐고 물으신 걸 제외하고는 말이다. 피해자들은 사회안전망이 사회적 약자에게 가동되지 않은 게 이번 사건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도 조현병이 핵심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그렇다면 피해자들이 생각하는 사건의 해결 방안은 무엇인가?
"이 분들이 정말 두려워하는 건 며칠 전에 일어난 그 끔찍한 일이 아니다. 이 분들은 이런 일이 또 일어났을 때 대안이 없다는 걸 가장 두려워한다. 이 분들의 기본 감정은 분노다. (안씨가 윗집에 오물을 뿌리자) 위층에 사는 사람이 자기들 돈으로 CCTV를 설치했다. 녹화를 해서 경찰에 갖다주면 이 문제가 해결될 거라 생각했는데, 한 달 만에 살해당한 것이다. 내가 할 말이 없더라."

- 주민들과 피해자들은 경찰 대응이 미흡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경찰)가 잘못했는데 앞으로 우리가 너희들을 지켜줄게'가 아니다. 경찰은 현행법 체계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한다. 지금은 의경들이 2인 1조로 아파트 순찰을 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순찰할 것 같나. 이 분들의 말에 진정으로 귀를 기울여서 무엇을 잘못했고 이런 잘못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뭘 해야 하는지가 나와야 하는데, 일주일이 다 되도록 언론에서는 조현병만 말하고 있다. 오늘도 기사 뜬 거 봐라. 안씨가 '뭐라더라', '뭐 했다더라'라는 말만 한다. 왜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응답하지 않나."

"주민들, 공무원에게 밉보일까봐 제대로 목소리 못내" 
 
a

민갑룡 경찰청장이 18일 진주시 가좌동 한 아파트 방화·살인 사건 희생자들의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한일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한 뒤 유족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 경남도민일보

 
- 이번 사건을 어떻게 보고 있나?
"어떻게 보면 이 사건은 일종의 테러인데 정신병 문제로 몰아가면서 묘하게 물타기가 돼버렸다. 유가족 대표들은 국가기관이 진정 어린 사과를 하고 피해 환자 치료비를 전액 지원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것을 두고 피해자들이 보상이나 이주 대책을 요구하며 떼쓰는 것처럼 몰아가는 것 같다. 결국 유가족 한 분이 경찰의 사과를 요구하면서 버티다가 21일에 발인을 했다. 이 분들은 투쟁할 동력도 없는 약자들이다. 이대로 놔두면 차례대로 발인해 버리고 끝날 것이다."

- 투쟁할 동력이 없다?
"이 점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울컥하다. 휴... 다른 아파트였으면 '경찰은 사과하라'고 플래카드가 걸렸을 텐데 그 아파트에는 걸리지도 않았다. 한 유가족은 처음에는 경찰청장이 사과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다가 사과하기 힘들면 (진주)경찰서장이라도 사과해달라고 했다. 이 분들이 공무원에게 밉보여서 기초생활수급비를 못 받게 될까봐 자기 목소리를 잘 내지 못한다. 이 사람들이 만만한가?"

-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아파트에 사는 주민 대다수가 다른 대안이 별로 없어 계속 여기 살아야 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라는 사회적 응답이 이 분들에게 가장 큰 메시지가 될 것이다. 이 아파트에 사는 기초생활수급자가 갈 데가 어디 있나. 이 분들은 삶을 안전하게 이어가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일체 바깥에 나가지 못한다고 한다. 당연히 못 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아니라 외상이 진행되는 상태다.

당장 우리 동네에 조현병 환자만 살지 않으면 괜찮다? 그게 아니다. 조현병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테러에 경찰이 대처를 못한 것이다. 테러의 징후가 여러 번 있었는데 사회 안전망이 작동하지 못했다. 이렇게 하다 보면 비슷한 사건이 또 생긴다."
댓글29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주기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AD

AD

인기기사

  1. 1 나는 2만5천원 받고 '모르는 남자' 결혼식에 갔다
  2. 2 "월 300만 벌었으면" 카페 주인들이 범하는 오류
  3. 3 녹음파일 속 '최순실 대통령'의 실체, 참담하다
  4. 4 "장관 오시는 줄..." 문 대통령과 모내기 한 부부, 그 뒷이야기
  5. 5 남편 김근태 고문하던 현장, 이리될 줄 누가 알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