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깍지 벗고 다시 보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현실에 반하는 상식과 부조리, 드라마에선 일상

검토 완료

이명주(sindart)등록 2019.01.28 20:39
지난 20일 tvN 토일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끝났다. 아직 '진우앓이'의 여파가 남아 있지만 그래도 콩깍지가 상당 벗겨지고 보니 이제라도 따질 건 따져야겠다는 생각. 그저 재미난 가상의 이야기였다 하기엔 '현실적으로' 불편하고 의아하며 위험하기까지 한 요소가 상당했으므로. 시청자를 호구 취급하는 방송 제작 행태에도 일침이(안 되면 똥침이라도) 되길 바라며.  
 

많은 화제와 논란을 남기고 종방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 이명주

 

돈이면 다 돼? (1) - 희주 가족의 '찜찜한' 성공기 

첫 회에서 진우(현빈)는 희주(박신혜)에게 그녀 가족의 전 재산인 "거지 같은" 보니따 호스텔을 100억에 사겠다고 한다. 실은 희주 동생 세주가 계발한 엄청난 게임 판권과 그와 관련된 모든 권한을 갖기 위한 계약이었지만 해당 사실은 숨긴 채였다. 이 과정에서 진우는 정보원 A(박해수)를 시켜 희주 가족의 뒷조사는 물론 세주의 이메일 등 개인 정보도 무단 열람했다. 

이런 진우나 기업 측의 비상식적이고 부도덕한 행위를 비판하거나 바로 잡는 장면은 없었다. 진우의 고백으로 동생 세주가 1년째 실종 상태고, 그 사실을 진우가 처음부터 숨기고 심지어 조작했음을 알게 된 희주가 마침내 분노를 표출하는가 싶었지만 그것은 진우를 향한 첫 사랑 고백에 가까웠다. 개인적으로 가장 황당한 순간이었다.   

증강현실(AR) 게임이란 참신한 소재로 호평을 받았지만 큰 맥락에서 보면 비련의 여주인공이 재벌남을 만나 그가 가진 돈과 권력으로 넘사벽 난관들을 극복, 결국에 인생 역전을 하는 근래의 신물 나는 유사 작품들과 다를 바 없었다. 나와 같은 대다수 소시민들이 스스로 노력해 성취하는 다채롭고도 값진 행복과 성공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100억에 집을 팔라고 제안하는 진우와 아무것도 모르는 희주가 계약서를 사이에 두고 앉아 있다. ⓒ tvN

 
돈이면 다 돼? (2) - '재벌 우상화' 해도 해도 너무 해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어요. 저는 대표님을 믿었는데. (중략) 그렇게 떠나버려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요. 1년 내내 계속 생각했는데..." 

진우가 1년간 세주의 실종 사실을 숨겼고 처음 희주에게 접근한 이유도 게임으로 막대한 돈을 벌려는 의도였음을 고백할 때 희주가 울면서 쏟아낸 말이다. 앞서 진우를 향한 첫 사랑 고백 같았다고 했던 바로 그 대목이다. 

"근데 아저씨, 우리 오빠 죽었어요? 우리 오빠 진짜 죽은 거예요?"

희주의 막내 동생 민주(이레) 역시 친오빠의 생사를 마치 제 3자의 안부를 묻듯 무덤덤한 표정으로 진우에게 물었다. 세주가 1년 만에 나타나 이제 막 방에 들어와 앉았는 상황에서 "이제 우리 부자"라며 기뻐하기도 했다.   

실종된 동생보다 짧은 시간 함께 한 진우를 더 걱정하고 믿는 듯한 희주와 그 가족. 의심하고 비판해 마땅한 상황에도 그저 진우의 말과 행동에 금세 설득되고 의지하면서 때를 안 가리고 다만 부자가 됐다는 사실에 좋아하는 모습이 '재벌의 우상화'와 함께 소시민의 우매함을 조장하는 것 같아 몹시 불쾌했다.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한 바 있고 마지막까지도 진우가 실종된 상태에서 게임이 상업화돼 큰 인기를 끈다는 드라마 속 설정은 매우 실망스럽고도 우려스러웠다. ⓒ 이명주

 
치명적인 게임, 결국에 상업화 

'버그'를 삭제했다지만 그 버그를 삭제한 진우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고, 계발자인 세주조차 치명적인 오류의 완벽한 해결 방법은 모르는 채로 진우의 회사 제이원은 해당 게임을 상업화했다. 대중들은 현실을 무대로 게임 속 상대와 싸우고 죽이는 행위에 열광하고 이는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다.  

극 중 논리라면 치명적인 버그가 생긴 까닭이 게임 상황에서 세주를 그의 동업자 마르꼬가 진짜 칼로 찔러서인데 흥분한 또다른 유저들이 이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실제로 작가가 모티브로 삼았다는 현실 속 증강현실 게임 '포켓몬고'는 그러한 치명적 오류가 없었어도 그 자체로 숱한 사망사고를 야기했다. 

PPL, 무엇을 누구를 위한? 

드라마 속 무분별한 제품 간접광고(PPL)는 실소를 넘어 지속적으로 불쾌감을 가중시켰다. 이 정도면 요즘 방송 제작자들이 최우선 하는 것이 절대 시청자가 아니란 사실이 분명한 것 같다. 부족한 제작비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이란 변론도 있지만 드라마 흐름을 깨면서, 다시 말해 작품의 질을 떨어뜨리면서까지 충당하는 제작비란 도대체 무엇을, 누구를 위한 것일까.   

'착한 다리'가 되어준 김선우, 배우 이승준에 박수 

끝으로 현빈, 박신혜 두 주인공과 다른 비중 있는 혹은 인지도 높은 조연들에 가려 상대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적게 받은 배우 이승준과 그가 연기한 캐릭터 김선우의 존재의 가치를 말하고 싶다. 

극 중 진우의 절친이자 동료였던 김선우는 삐뚫어진 욕망으로 사익을 쫓지 않고 초지일관 우정과 진실의 편에 서고자 노력했다. 그가 있어 진우도 살고 게임의 치명적 오류로 야기됐을 막대한 인명피해와 사회혼란도 막을 수 있었으며 결국에 회사도 살렸다. 극에서는 물론 현실에서도 꼭 필요한 '착한 다리' 같은 존재다.

김선우로 분한 배우 이승준이 불과 석 달 전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보다 훨씬 더 애정하며 봤던 '미스터 선샤인' 속 고종이었음은 이 글을 쓰면서야 인지했다. 그보다 앞서 '막돼먹은 영애씨' 속의 그 코믹한 작은 사장 승준이었음도. 작품마다 캐릭터를 완벽히 흡수해 보여주는 그의 연기력에 존경과 박수를 전하고 싶다. 
 

극 중에서도 현실에서도 꼭 필요한 '착한 다리' 캐릭터 박선우(이승준)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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