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금니 아빠' 얼굴 공개, 그래서 무엇을 얻었나?

[게릴라칼럼] 재판 전 피의자 신상공개를 둘러싼 주장의 허와 실

등록 2017.10.30 21:18수정 2017.10.30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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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금니 아빠' 현장 검증 중학생 딸 친구 살해·시신 유기 사건의 피의자 '어금니 아빠' 이모씨가 지난 11일 오전 현장 검증을 하기 위해 이씨가 거주했던 서울 중랑구 망우동의 자택으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사회의 관심사는 매우 빠르게 변한다. 지난달 전국을 들끓게 한 '240번 버스 사건'은 뇌리에서 사라진 지 오래고, 불과 한두 주 전까지 한국사회를 달구었던 '어금니 아빠 사건'의 기억도 희미해져 가고 있다.

번개처럼 빠른 '이슈 회전율'은 한국사회가 매우 역동적이라는 말이지만, 동시에 한 가지 문제를 차분히 들여다볼 기회를 갖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시민들이 같은 문제를 무한히 되풀이하게 만드는 악순환의 함정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완전히 잊기 전에 '어금니 아빠' 논란을 다시 한 번 살펴보는 것도 해롭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특히 논란에서 한 걸음 벗어나 차분해진 상태이기에, 논점을 냉정히 되돌아보기에 더없이 좋은 시점이라는 판단이다.

이제 우리는 '어금니 아빠 사건' 용의자로 체포된 피의자 얼굴을 알게 되었다. 사진을 본 사람들은 아마도 아래의 두 가지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얼굴은 멀쩡히 생겨서..."
"면상을 보니 그럴 만하네..."

자, 다수가 원하던 대로 혐의자 얼굴을 봤으니, 한 번 생각해 보자. 우리가 그의 얼굴을 본 뒤 무엇이 나아졌는가? 호기심이 충족됐다는 사실 빼고 말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피해자 인권은 생각 안 하고, 가해자 인권만 생각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물어보자. 혐의자 사진 공개가 피해자의 인권에 어떤 기여를 했는가? 

당신이 '얼굴 공개'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

오해가 없었으면 한다. 나는 피의자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강력사건 혐의자의 얼굴 공개에 대한 우리의 요구가 매우 모순적이며, 언론사들의 '공개 경쟁'이 매우 불순한 동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바로 당신이다. '얼굴 공개'에 앞서 찬성한 당신이 도리어 이 무모한 움직임의 희생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혐의자 공개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모순적'이라고 말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나는 결코 고고한 사람이 아니다. 호기심으로 말하면 그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다. 나 역시 '어금니 아빠' 얼굴을 보고 싶었던 것은 물론이고, 가능하면 얼굴만이 아니라 언론사들이 신나게 보도하던 문신을 포함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은 죄다 보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얼굴 공개에 반대했다. 궁금증을 해소하는 데 따르는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설사 대중의 호기심 충족을 '공익' 또는 '알 권리'의 한 귀퉁이에 갖다붙일 수 있다고 해도, 이로 인해 대중이 무릅써야 하는 위험은 공익을 아주 구체적이고 명백하게 위협한다.

현재 경찰은 뚜렷한 원칙 없이 여론의 '뜨거움'에 의해 공개 여부를 결정하고 있으며, 언론사들은 경찰의 판단과 무관하게 상업적 고려에 의해 '선제적 공개'를 주저하지 않고 있다. 언론사 입장에서는, 운이 없으면 욕은 먹겠지만, 잘 되든 못 되든 돈은 확실히 주머니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앞으로 인터넷의 '신상 까기'를 비판하고 제어할 최소한의 근거도 사라지고 만다.

얼굴 공개로 '사회 안전'과 '공익'을 지킨다고? 

공개 찬성자들이 밝히는 주된 이유는 '예방'과 '징벌'이다. '예방론'은 사람들이 피의자 얼굴을 알고 나면 미리 조심할 수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하지만 얼굴을 공개해야 할 만큼 중한 범죄 혐의자의 경우 예외없이 구속 상태에서 수사와 재판을 받기 때문에, 이들이 대중을 위협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물론 이런 피의자도 수사나 재판 도중에 사회로 되돌아오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경우 '위험 인물'이 아니라 혐의를 벗은 경우다. 만일 이런 사람이 얼굴이 미리 공개되었다면, 더없이 억울한 상황이 될 터이다.

'징벌론'은 피의자에게 망신을 주어 마땅하다는 논리로, 얼굴을 공개해 수치심을 느끼게 하면 다른 사람들도 움찔해서 비슷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이처럼 '시범 케이스'로 망신을 주는 것은 처벌행위에 해당하는데, 이것은 명백히 헌법에 반하는 행위다.

대한민국 헌법 제27조 제4항은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피의자에게 망신을 주면 범죄가 줄어들 거라는 가설이 믿을 만한가는 둘째 치더라도, 재판은커녕 기소조차 되지 않은 혐의자에게 징벌적 행위를 하는 것은 헌법을 고친 뒤에야 가능하다. 

얼굴 공개를 통한 '예방'과 '처벌'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다 해도, 공개는 피의자의 죄의 범위와 정도가 구체적으로 밝혀진 시점, 즉 재판이 끝난 다음에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공개 요구'가 뜨거운 당사자들은 유죄판결을 받은 범죄자들이 아니라, 막 체포된 용의자나 재판이 시작되지도 않은 혐의자들이다.

경찰은 10월 12일 신상정보공개 심의위원회를 열어 '어금니 아빠' 피의자를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혐의자가 구속된 지 나흘 만에 공개가 결정됐지만, 경찰의 이런 비장한 결정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중앙일보>가 이미 11일에 "'어금니 아빠' 이름과 얼굴 공개해 보도합니다"라며 대문짝만한 사진을 내보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그의 사진이 돌아다닌 것은 그보다 훨씬 전이었다. 

재판 전 피의자 공개에만 열심인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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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금니 아빠'의 실명을 공개하기로 결정한 <중앙일보>의 기사 내용. (<중앙일보>가 공개한 실명과 얼굴을 <오마이뉴스> 보도 방침에 따라 모자이크 처리했다.) ⓒ <중앙일보> 홈페이지 캡처


<중앙일보>는 사진을 공개하며 "흉악 범죄 피의자의 인권보다 국민의 알 권리와 사회 안전의 가치가 중요하다"고 서두를 열었다. 그리고는 앞으로도 "범죄의 증거가 명백한 흉악 범죄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이 공익에 부합한다고 판단되면 실명과 얼굴을 공개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다시 말해, 경찰이 공개를 결정하기 전이라도, 자신들 생각에 '증거가 명백'하고 '공익'에 맞으면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원도, 수사기관도 아닌 언론사가 재판도 받지 않은 범죄의 '증거가 명백'한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최근 10대 의붓손녀를 6년간 성폭행해 두 차례 출산까지 하게 만든 50대 남성이 20년 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언론은 얼굴 공개에 열정을 보이지 않았다. 경찰 역시 사진 공개는커녕, 신상정보 공개청구에 대해서조차 "피해자가 피고인과 친족관계에 있어 공개명령으로 2차 피해가 생길 우려가 있다"며 거부했다. 

강남에서 낯선 여성을 무참하게 살해해 30년 형을 선고받은 30대 남성의 얼굴 또한 공개되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은 선고공판에서 "사회 공동체 전체에 대한 범행으로 불안감을 안겼"고, 그럼에도 "피해자의 명복을 빌거나 유족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고 있다"고 중형 선고 이유를 밝혔지만, 우리는 그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유죄판결을 받은 범죄자 신상 공개에 미온적인 경찰과 언론을 보면, 이들의 '공익' 주장에 합리성이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믿기 어려운 경찰과 언론사의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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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8조 2항 내용 ⓒ 국가법령정보센터 갈무리


신문, 잡지, 텔레비전이 대중매체의 전부이던 시대가 있었다. 이 시대에 '신상 공개'의 효과는 일시적이고 제한적이었다. 피의자 사진을 오려서 지갑에 넣어가지고 다니던 사람들은 많지 않았고, 수백 부씩 사진을 복사해서 전국의 지인들에게 배달하는 경우는 더더욱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디지털 시대고, 모든 사람이 단말기를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이들은 24시간 연결돼 있고, 한 사람이 뿌린 사진은 전국 수만 명에게 전송되고, 이 수만 장의 사진은 다시 전세계의 수만 명에게 전송된다. 이는 한 사람에게 돌이킬 수 없는 '디지털 낙인'을 찍는 충분한 조건이 된다. 

경찰의 피의자 공개 규정은 매우 모호하고 자의적이다. 공개를 판단하는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8조 2항은 ▲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 강력 범죄사건일 것 ▲ 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 ▲ 국민 알 권리 보장, 재범 방지 및 범죄 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할 것 ▲ 피의자가 청소년에 해당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규정한다.

하지만 조항의 기준을 하나씩 뜯어보면 충분히 반론이 가능하다. 우선 경찰은 강력사건인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의 경우 '2차 피해'라는 규정에 없는 이유를 들어 공개를 거부하는 등 매우 자의적으로 판단해 왔다. 재판 이전에 '충분한 증거'를 판단하는 것 역시 '유죄 추정'이라는 위헌적 행위가 된다. 또한 '재범 방지'와 '범죄 예방'이란 목적도 근거가 희박하며, '알 권리'와 '공공의 이익'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처럼 모호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피의자 신상공개는 수사기관이 책임을 회피하는 '시선 유도' 용도로 쓰일 위험이 크다. 실제로 경찰은 '어금니 아빠' 사건에 대해 부실하게 대응했다는 의혹을 받았고, 감찰조사 결과 경찰이 피해자를 구할 수 있던 시간을 근무태만으로 허비한 사실이 드러났다.

여중생 실종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관은 112 상황실의 현장출동 지령을 받고도 '출동하겠다'고 거짓보고한 뒤 계속 상황실에 머물렀다. 결국 실종된 여중생은 사건 신고 뒤 12시간 40분 뒤 살해당했다. 허술한 대응으로 충분히 예방할 수 있던 살인사건을 막지 못한 뒤, 피의자 얼굴 공개로 범죄를 예방하겠다는 말인가? 

'알 권리'와 '공익'을 내세운 보수언론의 주장도 말 그대로 믿기 어려운 것은 매한가지다. 그렇게 공동체를 배려하는 언론이 자신들과 연결되거나 광고를 많이 주는 기업 총수가 저지른 '강력범죄'에는 침묵하고, 가리고, 감싸는 이유는 무엇인가. 

재판 전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게 옳은지 여부는 경찰과 언론사가 아니라 시민사회가 결정해야 한다. 공개가 타당하다는 결론이 나더라도, 공개 조건을 엄밀화하고 구체화해야 한다. 더불어 무고한 사람의 신상이 공개되었을 때 어떻게 피해를 최소화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인지도 판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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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와 <미디어기호학>을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살고자 합니다.

네트워크부 에디터. "쓰는 일에, 그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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