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출장교육에 점심제공? 그 불편한 진실

법정의무교육은 뒷전... 보험이나 건강식품 영업에 악용

등록 2017.05.21 10:58수정 2017.05.2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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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내가 다니는 회사의 관리부서 직원은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본인을 OO안전교육원의 교육실장이라 소개한 여성은 대답할 틈도 없이 대뜸 성희롱 예방과 개인정보보호법 교육을 이수했느냐고 물었다. 이같은 교육은 기업의 법정교육이라 아직 이수하지 않았다면 각각 300만 원과 10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고 강조했다.


전화를 받은 직원은 덜컥 겁부터 났다. 그런데 이 여성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자신들이 대행하는 출장교육을 통하면 바로 교육을 진행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게다가 교육에 참여하는 모든 직원에게 도시락과 음료까지 제공해준다는 조건도 제시했다. 법정 교육 무료 출장교육에 이수증까지 발급하고, 점심까지 제공한다는 솔깃한 제안에 직원은 그 자리에서 수락하고 말았다.

어설픈 강의 그리고 열성적인 금융상품 홍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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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문에는 법정교육을 이수하지 않을 시에는 과태료가 부과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 김학용


며칠 후, 부서의 전 직원 20여 명이 점심시간을 앞두고 회의실로 모였다. 이 출장교육에는 말끔하게 차려입은 2명이 강사로 등장했다. 우선 본인을 안전보건 분야의 전문강사라고 소개한 이가 먼저 나섰다. 그런데 막상 법정 의무교육이라고 강조했던 성희롱 예방과 개인정보보호법 교육은 누구나 알만한 어설픈 내용으로 10분 정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동석했던 다른 남성이 나오면서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직장인이 꼭 알아야 할 재테크'라는 명목으로 열심히 금융상품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남자는 바로 보험회사 영업사원. 바쁜 시간을 쪼개 교육을 받기 위해 모인 직원들의 한숨과 탄식이 이어졌다.

교육이 끝난 후 교육을 수락한 직원이 함께 교육에 참석한 임원에게 불려가 엄청난 시련을 겪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알고 보니 인근 회사 여러 곳도 이렇게 무료교육을 빙자하여 보험영업을 판매하는 똑같은 일을 당한 것이었다.


무료로 법정의무교육 해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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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제공과 무료교육을 내세우는 이런 사설업체는 불법적으로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 김학용


최근 무료로 법정 의무교육을 제공하겠다며 회사 등에 접근한 뒤 건강식품이나 보험영업 등에 악용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런 방식으로 접근해 영업하는 방법을 쓰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피해를 막고자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정부의 단속이 강화되면서 쉽게 전화로 영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험이나 방문판매형태의 영업조직이 고객에게 쉽게 다가가기 힘들어지자 고안해낸 방법이 바로 무료교육을 내세워 수강생을 모으고 이를 통해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형태의 영업방식은 엄연한 불법이다. 마을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무료관광을 빙자하여 건강 약품 홍보관에 들러 강매를 일삼는 예전에 한참 써먹던 방식과 다를 바 없다.

요즘에는 무작위로 교육안내문을 회사에 팩스를 발송하는 방법을 주로 이용한다. 회사에 하루에 들어오는 스팸 팩스 중 1~2건은 어김없이 무료법정 교육 실시 안내문이다. 공문형식으로 들어오는 이 안내문은 성희롱방지 교육 뿐만 아니라 산업 안전보건 등의 법정 교육을 받지 않으면 수백만 원의 과태료를 물린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십중팔구는 정부에서 지정한 교육기관이 아닌 사설교육업체로 식사제공과 무료교육을 빌미로 불법적으로 금융상품을 판매하거나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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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스로 들어온 법정의무교육 무료출장교육 안내문. 정작 보험관련 영업을 하겠다는 안내는 없다. ⓒ 김학용


낌새가 이상하다? 공정거래위에 신고하시라

실제로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은 고용노동부 관할로 매년 1회 60분 이상씩 교육을 해야 하며, 실시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가 부과되는 것은 맞다. 또, 개인정보보호법 28조에 따르면 개인정보처리자는 소속직원에게 개인정보보호 교육을 정기적으로 실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을 일부 방문영업 업체와 사설교육업체가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 대상은 제외직종 없이 근로자 1인 이상 기업을 모두 실시해야 하지만, 근로자가 모두 동성이거나 10인 미만이면 교육자료로 대체할 수 있다. 여성가족부에서 제공하는 직장 내 성희롱 주체별 대응 매뉴얼을 통해 교육을 진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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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에서 제공하는 직장 내 성희롱 주체별 대응 매뉴얼 링크.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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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보호 종합지원 포털(http://www.privacy.go.kr). ⓒ 개인정보보호 종합지원 포털


개인정보보호 관련 교육은 개인 정보교육 매뉴얼을 제공하고 있는 개인정보보호 종합지원 포털(http://www.privacy.go.kr)을 이용하면 된다. 모두 사내교육, 외부교육, 위탁 교육 등 여러 형태로 여건을 고려해서 쉽게 교육을 진행할 수 있다.

무료교육을 빌미로 교묘하게 방문판매를 하는 업체로 의심될 경우, 공정거래위원회 특수거래과(044-200-4440)로 문의하면 된다.
#보험 #의무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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