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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지 말아야 할 선' 넘은 손현주... "그래서 가슴 아팠다"

[인터뷰] 영화 <보통사람> 속 형사 성진... 시대의 피해자들이 이룬 작은 기적

17.03.25 15:36최종업데이트17.03.25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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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통사람> 속 형사 성진으로 분한 손현주. "촬영 내내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만큼 단순한 생각으론 참여할 수 없는 작품이었다. ⓒ 오퍼스픽쳐스


본격적인 투자가 이뤄질 때까지 손현주는 2년을 기다렸다. 다른 배우였다면 참지 못했을 시간이다. 바쁘게 뛰었다면 두세 작품은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기간. 애초 <공작>이었던 제목은 우여곡절 끝에 <보통사람>으로 바뀌었다. "기다림의 시간은 금방 갔다. 그때만 해도 사실 영화에 투자가 될지도 몰랐고, 상황이 이렇게 될지도 몰랐다"며 대수롭지 않은 듯 그가 말했다.

1975년 김대두 연쇄살인사건과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사건을 뼈대로 한 이 영화는 권력 주도의 범인 조작과 무분별한 억압을 묘사했다. 여전히 거기에 부역한 이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그 관련자들이 사회의 상부를 쥐고 있다는 점에서 손현주를 비롯한 제작사는 쉽지 않은 길임을 알았다. 그런데 큰 변화가 있었다. 손현주가 말한 '상황이 이렇게 될지도 몰랐다'라는 말은 국민 주도로 결국 이뤄낸 국정농단 대통령의 탄핵을 뜻했다.

시대 대변이 아닌 사람에 대한 영화

<보통사람>에서 손현주는 형사 성진 역을 맡았다. 연쇄살인범을 쫓다 안기부의 권유로 엉뚱한 잡범을 잡아넣고 소위 '기획수사'에 협조한다. 그 대가로 장애가 있는 아들은 수술할 수 있었으며 빠듯한 가정 살림도 어느 정도 살아난다.

"지금의 사회적 변화와는 상관없이 사람냄새 나는 영화 하나 만들자고 우리끼리 얘기했었다. 지난 2년 간 우리나라에 엄청난 일이 있긴 했지. 근데 어떤 분은 또 정치 이야기 하냐고 할 것 아닌가. 사실 초고는 보다 정치색이 강했다. 시대적 배경만 봐도 1980년대이지 않나. 나도 그때 대학을 다녔지만 경직된 사회였다. 각색하는 과정에서 가족 중심 내용이 들어갔다. 그런데 1980년대나 지금이나 다를 게 있나? 어떤 면에선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보통사람>이 특정 시대를 대변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냥 시대를 담은 문화 콘텐츠로 봐 달라. 그 콘텐츠가 자신과 안 맞는다면 다른 영화를 택하겠지. 경쟁작인 <프리즌>도 최선을 다했을 거고, 홍상수 감독님도 열심히 영화 찍었을 거다. 또 스칼렛 요한슨(<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셸> 출연)은 한국에 왜 왔겠나. 다들 사명을 갖고 있을 거다(웃음)."

영화 <보통사람>의 한 장면. 그는 이 영화가 특정 시대를 대변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이 보통사람이 겪는 이야기는 지금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 오퍼스픽쳐스


재치 있게 영화에 얽힌 이야기를 전하면서도 손현주는 본질을 잊지 않았다. 성진의 친한 형이자 끝까지 권력에 굴하지 않는 추재진 기자 역을 맡은 동료 배우 김상호에 대해 그는 "고문당하는 장면에서 '내가 쓰러지기 전까지 남이 날 쓰러뜨릴 수 없다'는 대사는 현장에서 그가 만든 것"이라며 "진짜 고문은 몸이 아픈 게 아닌 마음에 대한 폭력"이라고 운을 뗐다.

"성진은 넘지 말았어야할 선을 넘었다. 이번 영화는 그래서 그 전 영화들보다 가슴 아프게 찍었다. 대학 시절 난 연영과였고, 문창과 사람들과 막걸리 마시며 격론을 벌이며 놀곤 했다. 성진도 만약 선을 안 넘었다면 그렇게 격론을 벌이며 살았을 거다. 결국 돈 때문인가. 보통사람을 평범한 사람으로 정의내리기가 고민스럽다. 성진이 늙어서 재판장에 섰을 때 끝까지 자리에 안 앉으려는 장면 있잖나. 그게 소시민이자 보통사람의 저항이라고 생각한다."

향수와 헛헛함 사이

부족한 제작비로 모든 일정을 빠듯하게 진행했던 일화를 언급하며 손현주는 "왜 그렇게 한 장면 한 장면을 찍을 때마다 아쉽고 마음이 안타까웠는지 참 헛헛했다"고 고백했다. 본인이 일단 영화의 배경이 된 시대를 몸소 지나왔기 때문일 수도 있고,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기구하게 느껴져서일 수도 있다. 붉어진 눈시울에서 눈물이 흘렀다. 휴지로 닦아내며 그가 말을 이었다.

"아까 이 영화가 시대를 대변한다고 말하지 않았잖나. 나도 투쟁했었고, 그 핵심은 호헌철폐였다. 몸으로 기억하는데 모를 수가 없지. 물론 그것을 모르는 이들도 많았다. 그 시대의 낭만을 말하라면 무대에서 먹고 잔 것밖에 없다고 한다. 그것도 낭만일까? (웃음) 영화에서 김상호씨는 진실을 좇는 사람이었고, 난 주어진 일만 하면 되는 형사였다. 근데 선술집에서 둘이 만나면 모든 걸 다 내려놓고 터놓잖나. 

그게 그 시절 낭만이지. 나도 동기들과 격론을 벌일 때면 마치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처럼 논쟁했다. 요즘에도 종종 그때 친구들을 만난다. 그 중엔 시인도 있고, 잡지사 기자도 있다. 낙원동 피맛골에 가서 그렇게 밤을 샜다. 내가 막걸리 집에서 많이 성장했다(웃음)."

ⓒ 오퍼스픽쳐스


헛헛함을 말하던 그에게 향수의 기운이 느껴졌다. "진짜 이번 작품을 하면서 내 숙제는 평범한 사람, 보통사람의 정의였다"며 "단순히 그 시대를 살아봐서가 아니라 그 시대상황에 처한 군상들의 모습이 유독 무겁고 짠하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정의, 그리고 보통사람. 이번 인터뷰에서 그는 유독 이 단어를 많이 꺼냈다. "나 같은 사람은 그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연기하고 촬영하는 것뿐인데 이번처럼 여러 면에서 정의내릴 수 없는 경우는 없었다"고 전했다. 그만큼 심경이 복잡다단했다는 뜻일 것이다.

"촬영할 때도 계속 감독님께 물었다. 참 답답한 시대 아니냐고. 그때도 지금도 우린 조각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문화로 놔뒀으면 좋겠다. 엄청 큰 의미를 두지 말고 말이다. 우리는 그저 촬영하고 연기하는 것 빼고 어떤 짓도 안 할 테니까 문화로 봐줬으면 좋겠다. 영화가 누군가를 계몽하는 시대는 아니잖나. 그 영화가 마음에 들고 안 들고는 오로지 관객의 몫이지, 특정 가치에 집중해서 내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는 건 반대라는 거다. 우린 그저 다양하게 모습을 드러내면 된다."

슬하에 1남1녀를 둔 손현주. '자녀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청소년관람불가 영화는 찍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단다. 다행히도 <보통사람>은 15세 이상 관람가다. ⓒ 오퍼스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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