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도 거침없이 탄핵한 조선 검찰, 지금은 왜 못하나

[김성호의 독서만세 101] <칼날 위의 역사>

등록 2016.12.27 10:35수정 2020.12.25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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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 위의 역사 책표지 ⓒ 인문서원


정통적인 역사서술에서 탈피, 야사를 포함한 다양한 사료를 활용해 자유로운 역사서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아온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이덕일의 신작이다. <시사저널>에 칼럼으로 연재하던 내용을 책으로 묶었는데 조선건국부터 구한말에 이르는 역사에 비추어 한국의 오늘을 바라봤다. 이덕일은 그간 대중역사서와 소설, 칼럼 등을 주로 써온 작가인 동시에 상고사와 조선시대 역사에 나름 해박한 재야 역사학자이기도 하다.

저서만 수십 권에 이르고 학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가운데 한명인 이덕일을 설명하며 '나름'이란 단어를 사용한 건 그의 학설과 행적에 많은 의문이 따르기 때문이다. 특히 고조선의 영토를 요하 서쪽일대로 상정하고 한사군이 중국 땅에 설치됐다고 주장하는 등 기존 실증사학자들과 대립해온 부분이 눈길을 끈다. 역사소설도 다수 저술해 정조 독살설 등 적지 않은 파급력의 이야기도 생산했는데 그 스스로 언급했듯 정통 역사학자라기보다는 역사평론가라는 직함이 어울릴 듯하다.


실증주의 강단학자들과 책과 신문지면 등을 통해 날선 대결을 벌여온 것도 이덕일을 유명하게 만든 요소다. 오항녕, 조종업, 오수창, 안대회 등 그와 펜끝으로 논쟁을 벌인 학자만 십수명에 이른다.

조선조 500년 역사에서 오늘의 한국을 보다

<칼날 위의 역사>는 조선조 500여년 역사를 통해 오늘의 한국을 엿보는 책이다. 역사 속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낸 뒤에 한국의 정치·사회적 현실을 엮은 몇몇 사례의 경우엔 역사가 놀랄만큼 비슷하게 되풀이된다는 감상을 가질 수밖에 없다. <칼날 위의 역사>라는 제목에선 역사 속 사건들을 자신의 날 선 잣대로 재단하고 자르겠다는 작가 이덕일 특유의 공격성이 읽히는 듯도 하다.

저자는 시대적으로는 태종 이방원부터 광복군까지를, 편제상으로는 44년 재위기간 동안 권력을 독점하려다 무너진 고종부터 잊을 수 없는 과거를 딛고 미래를 향한 정조의 이야기까지를 그야말로 종횡무진 자유롭게 오간다. 원하는 이야기에 원하는 해석을 가져다 붙이며 거침없이 비판하고 해석하는 게 기존 역사책의 온건한 분위기와는 방향을 달리 한다. 아마도 이 같은 특성이 이덕일에게 대중적인 인기를 가져다 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모두 42개 장으로 나뉜 책은 각 장마다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고 작가 자신의 해석을 덧붙인 뒤 현실 사회의 현실을 엮어놓았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에 붙었던 수많은 노비들을 떠올리며 이 땅의 비정규직을 걱정하고, 총 한 자루 총탄 한 개에 목숨을 건 독립군의 이야기에 현재의 방산비리를 덧붙이는 식이다. 시대적 사명을 짊어지고 개혁을 시도한 걸출한 재상 김육과 류성룡으로부터 제 살 불리기에만 급급하는 기득권 세력의 추태와 현 정권의 인사실패를 되짚기도 한다.


개중에선 어쩌면 이렇게 똑같을까 싶은 이야기가 적지 않다. 과거의 잘못이 돌고 돌아 반복되는 모습과 때로는 수십년도 더 퇴행하는 듯한 시국 앞에서 과연 역사란 진보하는가 하는 물음을 주워삼키게도 된다. 이덕일은 반복되는 잘못과 퇴행하는 역사적 순간부터 그럼에도 나아가야 하는 방향성을 제시하고 그릇된 현실을 가차없이 비판한다.

김기춘, 우병우 못잡은 한국검찰... 자기 기관 수장도 거침없이 탄핵한 사헌부 대간들

눈에 띄는 대목 가운데 하나로 조선의 검찰격에 해당하는 수사기관 사헌부를 언급한 부분을 들 수 있겠다. 사헌부는 백관을 규찰하고 억울한 사정을 풀어주며 협잡행위를 단속하는 기관으로 대신에 대한 탄핵권과 함께 수사권을 가진 독립기관이었다.

저자는 사헌부가 수장인 대사헌을 비리와 부적절한 처신 등을 이유로 여러 차례에 걸쳐 탄핵한 사례를 언급하며 조직의 권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이야기한다. 국정농단 파문에 전국민적 분노가 들끓고 온갖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에서도 검찰이 검찰 출신의 살아 있는 권력이라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엄정하게 수사하지 못한 것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저자는 검찰의 이와 같은 문제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해 권력에 대한 견제를 받지 않고 행정부에 소속돼 정부 입맛에 맞는 수사를 하기 쉬운 구조적인 한계 탓으로 이해하는 듯하다. '가이드라인'이니 '전관예우'나 '봐주기 수사' 같은 비난이 익숙한 오늘의 검찰이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자기 기관의 수장도 거침없이 탄핵하는 사헌부가 다른 기관장의 비리에 대하여 어떻게 대했을 것인가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 지금 검찰은 고소가 없어도 수사를 할 수 있는 무제한 수사권이 법으로 보장되어 있음에도 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수사하지 못한다. 하지만 수사권은 사헌부의 독점물이 아니었다. 당시 수사권을 여러 기관으로 나눈 것은 현재 검찰이 보여주고 있는 것과 같은 봐주기 수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만약 사헌부에서 봐주기 수사를 하면 곧바로 사간원에서 탄핵했다. 그러면 의금부나 형조에서 재수사를 했다. 그러니 구조적으로 봐주기 수사를 할 수 없는 구조였다. -220p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은 견제를 싫어한다. 대신들의 자리에서 보면 사헌부, 사간원, 즉 대간의 인사권을 장악하려고 할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대간을 살아 있는 권력으로부터 독립시키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다른 문관에 대한 인사권은 이조에 있었다. 그러나 이조의 장관인 이조판서가 대간의 인사권을 장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대간의 인사권만은 이조판서나 이조참판이 아니라 국장 격인 이조전랑에게 주었다. 이 경우 정승이나 이조판서는 이조전랑 자리를 장악하려고 할 것이었다. 이를 막기 위해 이조전랑만큼은 자천제를 실시했다. 이조전랑이 다른 자리로 옮길 때 후임을 천거하는 제도였다. -220, 221p

책을 읽다 보면 역사란 단지 책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가운데 살아 날뛰는 기록이며, 그 안에 바로 오늘의 문제를 풀 단초가 있다는 저자의 확신이 느껴진다. 과거에 비추어 오늘을 바라보는 역사 본연의 가치를 갖고 대중과 가장 활발하게 소통하는 학자 이덕일의 글에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일부 편향되고 편협한 주장엔 아쉬움 남아

다만 아쉬운 부분도 적지 않았다. 특히 여러 사료를 교차해 치열하게 살피는 실증주의적 태도는 찾아보기 어렵고 특정한 사료에 자신의 주관을 엮어 해설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엿보였다. 을사오적을 모두 노론으로 싸잡아 비판하고 노론의 마지막 영수가 이완용이라 주장하는 부분이 대표적이다. 조선 말기에 이르러 특정 가문이 전횡을 일삼는 세도정치가 활성화되고 사색당파의 붕당정치가 사실상 사멸했다는 게 정설임에도 불구하고 정설에 배치되는 이론을 주장하며 그 근거를 언급하지 않는 모습은 역사서를 집필하는 학자답지 못한 부분이라 판단한다.

고종 31년(1894)에는 전봉준이 주도하는 동학농민봉기가 일어나자 노론은 이를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청나라 군사의 파병을 요청했는데, 이는 갑신정변 이듬해인 고종 22년(1885) 청일 양국이 체결한 톈진조약에 의거해 일본군의 파병으로 이어졌다. 1905년 외교권을 넘긴 을사오적(이완용,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권중현)이 모두 노론이고, 이완용이 마지막 노론 당수인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노론은 당론으로 나라까지 팔아 먹었다. 정치공작으로 다른 당을 절멸시킨 노론 일당 독재가 결국은 나라까지 팔아먹는 극단으로 치달은 것이다. -104. 105p

​노론이 조선 후기 발생한 많은 문제들에 책임있는 집단이라는 데 동의할지라도 조선 후기 발생한 모든 문제가 노론 때문이라는 식의 주장에는 도무지 공감하기 어려웠다. 이처럼 학계 다수설과 배치되는 주장을 할 땐 근거가 되는 사료를 충분히 제시하는 것이 필수적임에도 그런 노력을 보이지 않아 아쉬움이 컸다는 사실을 부연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칼날 위의 역사 / 인문서원 / 이덕일 지음 / 2016. 01. / 17000원>

칼날 위의 역사 - 역사학자, 조선을 읽고 대한민국을 말하다

이덕일 지음,
인문서원, 2015


#칼날 위의 역사 #인문서원 #이덕일 #김성호의 독서만세 #사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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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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