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폭풍에 참외값 '뚝'... 성주 농민들 속 탄다

[현장] 전년 대비 12% 하락, 판매량도 24% 감소... "진짜 걱정은 내년"

등록 2016.07.26 08:10수정 2016.07.26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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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난 13일 경북 성주를 사드 배치 예정지로 발표하면서 성주군 곳곳에는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 이희훈


"성주군민 다 지길라고(죽이려) 카는 거 아이가..."

올해로 40년째 성주 땅에서 참외농사를 지어왔다는 강윤식(62)씨에게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이야기를 꺼내자 대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25일 오전 11시부터 시작한 참외 공판이 한창인 때였다. 성주에서 제일 큰 참외 공판장인 '성주농산물산지유통센터' 벽에 걸린 커다란 전광판에서는 실시간으로 참외 가격이 매겨지고 있었다.

중매상인들이 쌓여있는 참외 상자를 살펴보고 손짓 몇 번을 나누면 재빠르게 그날의 참외 가격이 정해진다. 이날 거래된 상급 참외 한 상자 가격은 8천 원에서 1만 원 선. "보통 이맘때면 1만5천 원은 받아야 하는데 이기 머꼬"라던 강씨가 전광판을 넋놓고 바라보다 한숨을 쉬었다.

"참외 농사로 자식들 공부시키고 결혼까지 다 시켰는데 이제 사드 들어온다카믄 우짤까 싶습니데이. 당장 사드 들어온다는 소리 들리고 참외 값이 뚝뚝 떨어지는데 한해 뼈 빠지게 농사지어봤자 남는 것도 없네예. 정부는 자꾸 괜찮다 카는데 사람들이 아무리 그래도 사물라 카켔는교?"

강씨의 아랫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와 기자가 사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자 농민들이 몰려들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원성이 쏟아졌다. "참외도 참외지만 땅값도 또 우짤끼고"란 장진술(56)씨 말에 농민들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장씨는 "국무총리가 여기 와서 집 짓고 살아보라 해라"고 쏘아붙였다.

"국민이 마루타냐" 눈물짓는 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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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성주농산물산지유통센터에서 농민들이 전광판에 표시되는 참외 가격을 바라보고 있다. ⓒ 정민규


사드가 참외 고을 성주를 근심에 빠트리고 있다. 성주 참외는 전국 참외 생산량의 70~80%가량을 차지한다. 지난해 판매액만 4000억 원이 넘는데 이는 성주군 한 해 예산과 비슷하다. 성주에선 지역 경제와 참외를 떼어놓고 말할 수 없어, 군청에 참외전담부서가 따로 있다.

"참 이상하지예, 왜 이칼까예?"

윤기환 성주군 농정과 참외담당 계장은 지금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했다. 윤 계장은 "끝물이면 사실 참외 가격이 내려가기는 하는데 그럼 지난해 수준이어야지, 이건 전년보다 더 떨어지니 아무래도 이상하단 말입니다"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군청이 파악한 바로는 주말을 앞두고 열린 지난 21일 공판에서 참외 한 상자 가격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2% 떨어졌고 판매량은 24% 급감했다. 대형마트에서도 매대가 30%가량 줄었다는 게 윤 계장의 설명이다. 군 내 참외농사를 짓는 집만 4142호다. 주민들은 4만 5천 명 남짓인 성주군민 중 70%가 직·간접적으로 참외 관련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말한다.

매일 참외를 거래하는 성주조합공동사업법인 공판팀의 권영관 과장은 "가격 하락이 사드 때문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데, 그렇다고 아니라고 볼 수도 없지 않겠습니까"라고 되물었다. 예년만 못한 참외 경기에 중도매상인도 울상 짓기는 마찬가지다. 성주군농산물유통센터 중매인협회는 "국민이 마루타냐"는 항의 플래카드를 걸었다. 

평화롭던 농촌마을에 떨어진 '사드' 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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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성주군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DD) 배치 예정지로 정해지며 전국 참외 유통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성주 참외 생산 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25일 오후 농민 배정무(42)씨가 참외를 수확하고 있다. ⓒ 정민규


"진짜 큰 일은 내년부터지예..."

참외를 따던 배정무(42)씨가 걱정을 보탰다. 잠시 지나던 소나기에 들끓던 지표면은 식었지만 참외 비닐하우스 안은 습도가 올라 오히려 더 찜통이었다. 2월부터 출하하는 참외는 제철인 봄을 거쳐 8월이면 한 해 농사 성적표가 매겨진다. 올해는 실적이 지난해보다 소폭 감소할 것이란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그나마 올해는 사드가 '끝물'에 터져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배씨였다. 하지만 내년은 상황이 다르다. 농촌에서는 젊은층에 속하는 배씨는 참외만 보고 귀농해 7년을 보냈다. 체험농장까지 꾸리며 이제 자리 잡기 시작한 참외 농사가 끝나게 될까봐 그는 걱정이다. 답답한 마음에 얼마 전부터는 참외 상자에 사드 반대 스티커를 붙여 출하하기 시작했다.

배씨는 여기저기서 들리는 달콤한 말들도 걱정스럽다. 사람들 사이에는 대구에서 지하철 연장선이 들어올 거라느니, 예산이 늘어날 것이라느니 하는 소리가 퍼지고 있다. '당근'을 받고 사드를 배치해야 한다는 말도 있다. 그는 이미 보이기 시작한 고향의 미래가 슬프다고 했다.

"지금이야 말 안 하지만 분명 성주군민들 중에도 사드를 찬성하는 사람이 있겠죠. 나중에는 그것 때문에 싸움도 날 것이고요. 평생을 봐 온 친구하고도 원수가 되는 경우도 생길 겁니다. 시골은 유대 관계가 도시하고는 또 다르잖아요. 평생을 얼굴 맞대고 봐온 사람들끼리 싸우게 될 것 같아 그게 안타까워요."
#성주 #참외 #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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