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대결 고조, 김정은 통치구상에 안 맞았을 것"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271]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등록 2015.09.12 19:44수정 2015.09.13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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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주년, 남북관계의 새로운 전기를 맞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하지만 지난 8월 초 북한의 목함지뢰 사건으로 남북관계는 급속하게 냉각됐다. 한반도에는 전운이 감돌았고 국민은 극도로 불안했다.

그러나 8월 22일 남북이 평화의 집에서 '2+2회담'을 시작하며 상황은 또다시 반전됐다. 결국 25일 새벽 남북은 6개항에 달하는 합의 사항을 발표했다. 이 '8.25 합의'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에게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 8일 판교에 있는 세종연구소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이 전 장관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

"북한 '유감 표명'은 사과 아니다,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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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사진은 지난 2011년 12월 20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당시 모습. ⓒ 유성호


- 북한의 목함지뢰 사건으로 전쟁 위기가 감돌았으나 남북이 합의했습니다. 8.25 합의를 어떻게 평가하세요?
"당시 한반도에서 위기가 고조돼 남북의 평화가 극단적으로 위협받는 상황이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남북의 지도자가 물리적인 대결 대신 협상을 택해 전쟁을 막는 결단을 내렸다는 점에서 8.25 합의를 높이 평가해요.

내용상으로는 남과 북 모두 상대방이 있는 협상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합의였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우리 정부가 맨 처음에 북한의 사과를 받아내고 재발 방지 약속받는 것을 목표로 했다면 그건 근본적으로 달성하기 어려운 것이었을 겁니다. 북한 역시 남한에 대해 자기들 입장을 관철하려고 했다면 그 역시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거예요. 그러나 남북관계에서 서로 일정한, 사실상의 양보로 적당하게 합의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 합의문을 보면 북한이 목함지뢰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어요. 이에 대해 남북의 해석이 다른데.
"북한이 유감을 표명한 것을 남쪽에서는 사과로 보지만 사과는 아니죠. 유감 표명이 사과의 의미를 가지려면 과거 잠수함 침투 사건이나 2002년 서해 연평해전 때처럼 최소 '재발방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야 해요.

물론 재발 방지를 이야기할 때 자기들이 이런 일을 안 하겠다고 말하지 않고 '남북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안 된다'고 쓰기도 하죠. 이렇게 말을 할지언정 반드시 재발 방지를 말하는데, 이번엔 그것이 없었어요. 게다가 포탄에 대한 언급은 아예 없었어요. 그래서 굳이 말하자면 북한이 남쪽 협상단에 사과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러나 유감이라는 표현을 씀으로써 남한 정부가 그걸 가져가서 북한이 사과했다고 해석할 여지를 준 거죠.


그런데 남한 정부는 북한이 사과한 정도로만 말한 게 아니라 재발 방지까지 약속했다고 하니까 북한도 거기에 반발해서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한 거죠. 그런 점에서 북한의 유감 표명은 엄밀한 의미의 사과와 재발 방지를 약속한 건 아니에요. 그러나 북한이 분명히 남한 정부에 국내 정치적으로 체면치레할 수 있는 여지는 줬습니다. 그런데 남한이 그걸 너무 과도하게 '북한이 무릎 꿇었다'는 식으로 말하자 사달이 난 거예요."

"김정은도 남북 갈등 원치 않았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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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말에 열린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 당시 모습.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최근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합의한 내용의 이행을 강조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지난 8월 28일 보도했다. ⓒ 연합뉴스


-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우리는 운명적인 시각에 화를 복으로 전환한 이번 합의를 소중히 여기고 풍성한 결실로 가꾸어가야 한다"라고 공개 발언한 것을 비롯해 북한 최고지도부는 8.25 합의 이행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많은데.
"북한 김 위원장의 최대 관심은 경제 회복일 거예요. 왜냐면 북한이 지난 몇 년 사이 20개의 경제개발구를 만들었어요. 김 위원장이 대외 개방을 통해서 북한 경제를 살리려는 의지가 강하다는 거죠. 자신의 경제발전 전략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세가 일정하게 안정적이야 해요.

그러나 핵 문제 때문에 정세 불안 요인이 있잖아요. 게다가 남북대결로 긴장이 극도로 높아지면 그것이 북한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죠. 특히 북한 경제는 지금 대외관계 속에서 먹고 살고 있는 모양새라 김정은은 경제발전 전략 성공을 위해서라도 대외정세의 전반적인 안정이 필요했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 남북관계가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가는, 긴장 고조로 가는 건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또 하나는 김 위원장이 현영철 숙청 등을 통해 비대해진 군부를 정상화하고 당이 군을 끌어가는 식의 작업을 하고 있어요. 이걸로 김 위원장이 노리는 건 군이 국정 전반에 나서서 경제발전과 자신의 통치기반에도 부정적인 걸 지금까지 견제해온 거죠.

지금까지 북한은 군이 약화하고 당 기능이 정상화하는 과정을 겪었잖아요. 그러나 이런 식으로 남북의 군사대결이 고조되면 군의 위상이 강화되고 군의 중요성이 부각됩니다. 그건 김 위원장의 통치구상에도 안 맞았을 거예요. 그래서 김 위원장은 군이 다시 비대해질 수 있는 계기 같은 것을 주지 않으려고 했을 겁니다. 그런 맥락에서도 남북관계 개선을 강조하는 거죠. 그런 차원에서 이 말이 나온 것이라고 생각해요."

- 경제적인 이유를 말씀하셨어요. 그러나 북한은 경제 부분에서는 중국이 있기 때문에 크게 어려움이 없지 않나요?
"북한이 중국과의 관계에서 일반 교역은 많이 늘어났지요. 하지만 교역을 통한 경제발전 부분은 한계에 와있다고 봐야 해요. 북·중의 교역규모가 60억 달러를 넘겼는데, 북한 경제가 발전할 수 있는 새로운 동력은 중국 기업가들의 투자를 받거나 중국과의 경제 관계에서 노동력을 이용하는 등 새로운 방식에 있다고 보여집니다.

일반적으로 국가가 관리하는 경제특구 말고도 외국 자본을 받겠다고 새로운 경제개발구를 북한 곳곳에 만들었어요. 이것들이 성공하려면 중국 자본이 들어와야 하고, 그러려면 정세가 일정하게 안정성을 보여야 합니다. 그런데, 휴전선에서 남북이 물리적 충돌을 한다면 누가 쉽게 북한에 투자하려고 하겠어요?

북한의 중요한 경계는 휴전선과 북·중 국경입니다. 휴전선에서 전쟁이나 무력적 충돌이 발생하면 그것이 북·중 국경선이 영향을 받아 긴장을 유발합니다. 물론 북·중 간에 긴장이 고조되는 것은 아니지만, 휴전선에서의 충돌이 북한 정세 전반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북·중 국경도 긴장하는 거지요. 그럼 중국 투자가들이 움찔하겠죠.

북한이 핵 실험으로 고강도 유엔제재를 받는 가운데서도 북·중간 경제교류는 확장돼왔어요. 그렇지만 남과 북이 서로 총을 쏘면 북·중 경제관계는 정상적이기 어려울 거예요. 이건 중국이 북한을 제재하는 등의 문제가 아닙니다. 중국 기업인들도 시장 마인드를 가지고 북한에 들어가는 거잖아요.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데 투자하고 싶겠어요?"

"남북 관계 개선 골든타임, 아직 놓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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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진 국가안보실장(오른쪽)과 북측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사진은 지난 8월 25일 협상을 마치고 악수하고 있는 모습. ⓒ 통일부 제공


- 현재 남북관계의 걸림돌은 5.24 조치잖아요. 8.25 합의로 5.24 조치가 해제될 것이라 전망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보면 5.24 조치는 북한에 대한 남한의 개성공단을 제외한 모든 경제협력과 민간의 인적 교류를 금지한 거잖아요. 그러나 이번 합의문 6항은 '남과 북은 여러 방면에서 민간교류를 적극적으로 활성화하기로 했다'고 했습니다. 논리적 모순이 발생합니다. 법에서 구법과 신법이 있으면 신법이 우선됩니다.

이렇게 보면 5.24 조치는 운명적으로 해제될 수밖에 없겠지만, 정부가 얼마나 남과 북의 합의문을 충실히 준수해 민간 교류를 활성화하려고 할 것이냐에 달려 있습니다. 교류라는 표현에는 경제 교류와 인적 교류가 포함됐죠. 그러나 그게 아니라 5.24 조치는 그대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면 합의문 자체는 그야말로 종잇조각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도 있죠. 그래서 이 합의문에 따라 5.24 조치가 자동으로 해제될 것으로 보진 않아요. 그것은 정부가 8.25 합의를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봐요."

- 문정인 연세대 교수를 비롯해 꽤 많은 분이 "8월 전반부까지가 남북 관계 골든타임"이라며 이 시기를 놓치면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8.25 합의 도출은 남북관계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은 걸까요?
"골든타임이 있을 수 있겠죠. 그러나 남북관계는 이 정부가 끝날 때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는 대상이죠. 그나마 이번 합의가 박근혜 정부 반환점을 도는 상황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합의를 이행할 수 있다면 새로운 남북화해 협력과 관계 개선이라는 길을 여는 거잖아요. 그런 점에서 이번 합의를 준수한다면 아직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죠.

그러나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의 의지가 있을 때 골든타임은 지금이라고 말할 수 있죠. 만약 이 정부에 그런 의지가 없다면 우리가 말하는 골든타임도 또 다른 의미의 유체이탈식 화법이 되겠죠. 왜냐면 정부는 생각조차 안 하는데 우리만 이야기하는 거잖아요. 중요한 건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 의지가 있는지 정확하게 확인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촉구하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 장관님은 지난 7월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두고 '한 게 없다'고 평가하셨는데요. 지금은 어떤가요?
"글쎄요. 지금도 한 건 없죠. 다만, 남북관계에서 뭔가 할 가능성을 조금 열어놨다는 점에서 지금은 뭔가 지켜볼 만한 여지가 있어요. 또 우리도 나름대로 이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할 수 있도록 촉구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죠. 지켜보죠."

-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남북 정상회담은 해야 하는 거죠. 남북 정상의 최측근이 만나서 8.25 합의를 했기 때문에 정상회담의 가능성은 언제라도 열려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지금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정상회담의 여건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안 돼요. 그래서 걱정스러워요.

그러나 정상회담이 어렵다는 건 아니지만, 중요한 건 역시 두 정상의 의지죠. 제가 볼 때 김 위원장은 (정상회담을) 할 용의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그 점에서 정상회담 실현 여부는 박 대통령의 의지에 더 크게 작용받을 수 있겠죠."

북한 '급변사태' 발생, 두 가지 경우의 수

- 지난주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한 뒤 돌아오는 길에 "가능한 조속한 시일 내에 한반도 평화통일을 어떻게 이뤄나갈 것인가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과 중국이 한반도 통일 문제에 대해 곧 논의를 시작한다는 건데,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건 아주 적절하지 않아요. 박 대통령이 중국에 어떤 기대를 하고 그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었는지 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입장은 일단, 남북이 자주적으로 평화적으로 대화와 협상을 통해 통일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것은 오래된 공개입장이에요. 아마 이 이상 깊은 이야기는 하기 어려울 거예요.

중국은 지금 북한과 정치적으로 안 좋아도 전략적 동맹관계예요. 중국이 한국 정부와 한반도 통일 문제를 둘러싸고 통일을 어떻게 할 것이냐에 북한을 배제하고 원론을 넘어서서 구체적으로 논의한다는 건 가능하지 않아요. 북한 급변사태에 대해 우리와 협의한다는 건 더욱 상상하기 어려워요. 그건 중국의 국가 이익에도 맞지 않습니다.

중국은 남한 주도 통일을 남한 정부 공개 여부와 관계없이 협의할 수 없는 전략적 구조를 갖고 있어요. 역으로 중국은 지금 김정은 정권하고도 남한을 배제하고 구체적인 통일협의를 하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그것이 중국의 이익을 지키는 일이라고 보겠죠.

중국이 남북에 등거리 외교를 하는 상황에서 남이든 북이든 중국에 가서 남북 협력 혹은 남북-중국 협력과 같은 적극적인 형태의 협력을 하자고 제안하는 건 좋겠죠. 하지만, 상대방을 견제하고 배제하고자 시도하는 건 소용 없을 뿐만 아니라 매우 어리석은 짓이에요. 그건 중국이 한반도에 놓은 지렛대만 강화시켜주는 셈이에요.

"김정은 이웃에 비공산당 정권 두려워하는 중국 있다"

중국이 박 대통령과 한반도 평화 통일에 대해 뭘 논의할 수 있겠어요. 중국이 박 대통령에게만 한반도 평화 통일을 지지한다고 한 게 아니었습니다. 역대 어느 정부든 다 그랬어요. 남북이 자주적으로, 평화적으로 잘해야 한다는 이상 중국은 남과 북 어느 쪽에도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도 그런 이야기를 중국에 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되죠. 중국과 한반도 평화 통일을 논의할 게 아니라 남과 북이 어떻게 하면 대결하지 않고 화해하고 협력해서 평화 통일을 이룩할 것이냐, 남북이 만나서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게 가장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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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7월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통일준비위원회 민간위원 집중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 "통일, 내년도 가능" 발언은 이날 나왔다. ⓒ 청와대


- 지난 7월 박 대통령은 "통일은 내년이라도 될 수 있다"라고 말했죠.
"(이 발언을) 흡수통일과 연결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러나 북한 정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허약하지 않아요. 또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했을 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굉장히 복잡합니다. 설령 북한이 망했다고 전제하더라도 그 안에는 2400만 명의 주민들이 있고, 군대가 있어요. 북한의 미래를 결정하는 건 북한 사람들이에요. 우리가 통일할 수 있는 게 아니죠,

거기에 김정은 정권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자기 이웃국가에 공산당이 아닌 다른 정권이 들어서는 걸 끔찍하게 두려워하는 강대국 중국이 있어요. 박 대통령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흡수통일을 놓고 이야기했다면, 그것은 가능성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남북이 화해 협력을 통해 경제공동체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하면, 북한 주민이 남한을 선택할 가능성이 커지지만, 대결 상태에서 북한에 급변사태가 났다면? 북한 사람들은 남쪽에 오면 2등 국민이 될 거라고 생각할 텐데 왜 남한을 선택하겠어요.

통일을 말하기보다는 현 단계에서 어떻게 대결을 완화해 나갈 건지, 어떻게 협력하고 하나의 공동체로 나갈 건지, 그리고 그것을 통해 남북이 미래를 어떻게 개척할 건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종석 #8.25합의 #남북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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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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