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조사에 못 가봤는데 어떻게 입증하나요?"

반올림, 산재 역학조사에 신청인측 참여 배제 규탄 기자회견 열어

등록 2015.07.20 20:07수정 2015.07.20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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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은 20일 서울 영등포구 근로복지공단 서울남부지사 앞에서 산재 역학조사에 신청인측 참여 배제 규탄 및 시정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산재인정을 받기 위해선 "투쟁"이 필요한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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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올림, 기자회견 열어 산재 역학조사에 신청인측 참여 배제를 규탄하고 시정촉구를 요구하는 기자회견 ⓒ 반올림


7년 만에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망노동자 고 황유미씨는 2014년 서울고등법원을 통해 최종 산업재해 인정 판결을 받았지만 여전히 수많은 반도체 전자산업노동자들이 산재인정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반올림에 들어온 300명이 넘는 제보자 중 산재를 신청한 이는 67명, 그 중 근로복지공단의 승인을 받는 이는 겨우 3명에 불과하다. 노동자가 자신의 재해를 입증해야 하는 현실,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심지어 은폐하는 기업, 기나긴 역학조사 기간과 공정하지 않은 심의,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산재를 인정 받기는 쉽지 않다.

8년 전, 반올림이 발족한 이후 노무사, 변호사, 의사 등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지만,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를 인정 받기는 "투쟁"이 될 만큼 어렵다. 삼성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던 고 황유미씨도 근로복지공단이 제시한 산재신청 방법에 따라서는 높은 산재인정의 벽을 넘지 못했다. 사회적인 관심이 모으고, 행정소송을 진행해 7년 만에 산재인정 판결을 받을 수 있었다.

전문가의 도움도 없이 현장 조사에 가서, 어떻게 입증을 하나요?

삼성반도체 혈액암 투병노동자는 최근 현장방문을 다녀와 얼마 전, 근로복지공단 직원과 함께 현장 삼성에 다녀온 소감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내가 일했던 공간인 만큼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없고, 내가 산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직접 들어가서 무엇이라도 밝혀내야만 하는 이 현실을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작업했던 그 현장을 들어가는 것도 두렵고 무서웠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반도체 분야의 직업병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 위해 선임한 대리인 공인노무사 없이 저 혼자만 들여보내 줄 수 있다는 삼성의 입장표명과 삼성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는 근로복지공단의 태도에 저는 더 없이 불안한 마음에 잠을 못 이루었습니다."

전문가의 도움 없이 오로지 혼자서 끔찍한 병을 얻은 작업현장에 들어가 예전 작업했던 기억을 끄집어내어 지금과 비교해서 하나하나 설명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 회사관계자와 작업자들이 저를 바라보는 시선, 설비의 구조와 문제점 등을 파악하고 밝혀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 그 모든 것들이 너무 어렵고 힘들고 저를 더 지치게 하는 것 같았다고 털어놓았다.

법에 위촉되는 신청인 측의 참여 배제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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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올림, 기자회견 피켓 “현장조사에 가보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입증을 하나요?” “산재신청자도 못 들어가는 사업장 현장조사 기만이다. 당장 시정하라” ⓒ 반올림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업무상질병 입증책임이 노동자 측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측(재해노동자나 유족 및 그 법적대리인)이 역학조사의 사업장(현장) 조사에 입회조차 거부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김민호(노무법인 참터 충청지사/반올림지원노무사모임)노무사는 "지난 10년 동안 직업병 사건을 대리하면서 역학조사 시 현장방문을 해 보지 못한 곳은 '삼성' 뿐이다"라며 "2008년부터 지금까지 '반올림'에 제보된 삼성백혈병 등 직업병 사건을 대리하면서 삼성에 가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거기에 더하여 최근 대리인 뿐 아니라 재해당사자 마저도 '사업주의 거부의사표시'라는 것 하나로 입회 혹은 참여가 배제되는 어이없는 현실도 거듭 발생하고 있다.

지난달(6월초)에는 삼성디스플레이 천안사업장 백혈병 피해자 김아무개(대리인 공인노무사 김민호, 이종란)씨의 요양급여신청에 따른 역학조사(근로복지공단 천안지사의 의뢰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 진행)에서 사업주의 거부의사로 인해 대리인은 물론이고 김씨 마저도 현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번 달(7/3)에도 또 매그나칩 구미사업장 갑상선암 피해자 장아무개씨(대리인 이경호, 이종란)의 요양급여신청에 따른 역학조사(근로복지공단 구미지사의 의뢰로 산업안전보건연구원 및 위탁기관인 한양대 직업환경의학과에서 진행)에서도 마찬가지로 재해당사자와 대리인 둘 다 참여를 거부당했다.

신청인들의 정당한 권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과거 환경과 얼마나 달라졌는지, 사업주가 변경해놓은 것은 없는지 재해당사자가 확인하지 못한다면 역학조사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할 객관성과 공정성은 심하게 훼손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아픈 재해노동자 및 유족과 함께 법적 대리인이 참여하여 신청인들의 정당한 권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산재 현장조사에 재해노동자측 참여 보장을 촉구하는 의견서>를 내 "노동자의 재해조사 참여를 적극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공단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또 "노동자의 권리와 복지확대를 위하는 본래 소임을 다 해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편, 반올림은 침해되고 있는 역학조사 참여권 문제와 관련해 '고용노동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의 구체적인 해명과 즉각적인 시정 및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하며 면담을 요청했다. 노동부와의 면담은 7월 22일(수) 오전 11시, 고용노동부 회의실에서 열릴 예정이며 이상규, 김민호, 이종란 노무사를 비롯한 반올림 지원노무사가 참여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반올림 활동가 권영은 활동가가 썼습니다.
#반올림 #근로복지공단 #산재 역학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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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황상기 씨의 제보로 반도체 직업병 문제가 세상에 알려진 이후, 전자산업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시민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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