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대학 순위평가
마음도 받지 않겠습니다"

고려대 학생들이 <중앙일보>의 '줄 세우기'를 거부한 까닭은?

등록 2014.09.22 18:28수정 2014.09.22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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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총학생회는 22일 공식 페이스북에 올린 “마음도 받지 않겠습니다, 대학순위평가 거부운동을 시작하며”라는 제목의 포스터에서 “<중앙일보> 대학순위평가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고려대 총학생회 페이스북 포스터) ⓒ 고려대 총학생회


지난 1월 말 고려대 총학생회는 삼성그룹의 채용제도인 '총장추천제'에 대해 "마음만 받겠습니다"라며 반대의 뜻을 표했다. 고려대 총학생회가 이번에는 <중앙일보>의 대학순위평가에 대해 "마음도 받지 않겠습니다"라는 포스터를 만들어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언론사가 매년 실시하는 대학평가에 대해 "본질을 훼손한다"며 학생들이 직접 나서서 거부 목소리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려대 총학생회는 22일 "대학의 질을 정량화하고 서열화하는 <중앙일보>의 대학순위평가는 대학을 함부로 재단하고 있다"며 "거부운동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고려대 총학생회의 '거부 운동'은 <중앙일보>의 대학평가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등에서도 매년 '대학평가'라는 명목으로 줄 세우기를 하고 있다. 특히 고려대 총학생회는 서울대·연세대 총학생회와도 연대해 <중앙일보>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여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일부 언론사의 무분별한 '대학평가'에 대한 학생들의 거부 운동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앙일보>가 가장 서열화에 집중"

고려대 총학생회는 이날 공식 페이스북에 올린 "마음도 받지 않겠습니다, 대학순위평가 거부운동을 시작하며"라는 제목의 포스터에서 "<중앙일보> 대학순위평가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중앙일보>의 대학평가가 학교의 다양성을 가지치고 기업화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학을 서열화할 수 있다는 '마음', 대학을 기업화해도 무방하다는 '마음', 모든 대학에 천편일률적인 기준으로 평가해도 된다는 '마음', 대학을 양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마음'……. 대학의 본질을 헤치는 그 '마음'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며 "<중앙일보> 대학순위평가, 유감이지만 마음도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어 "우리는 사회 지성인으로서 대학을 스스로 고민하겠다. 그리고 때때로 필요하다면 강하게 꾸짖고, 자성하며 스스로 성장하겠다"면서 "그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진정한 대학의 본질이고, 대학의 발전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최종운(22. 기계공학부) 고려대 총학생회장은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중앙일보>는 대학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선진화를 통해 대학교육의 발전을 위해서 대학평가를 도입했다고 포장하고 있지만, 매년 같은 시기에 대학순위를 공개하면서 자극적이고 흥미위주의 기사로 대학의 서열화를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중앙일보>의 대학평가가 가지고 있는 영향력이 너무 크기 때문에 대부분의 대학이 그에 맞춰 대학 교육 내용을 바꾸고 있다"며 "대학교육의 발전이 아니라 대학의 서열화·기업화로 인해 우리가 어떤 교육을 받게 됐는지 알리기 위해서 대학평가 거부 운동에 나섰다"고 전했다. 학교는 대학평가에서 가중치가 높은 지표에 집중 투자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대학 교육 발전이 왜곡되고 재정의 낭비를 초래하는 것은 물론 "학문의 질적 퇴보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대학평가 거부운동'은 최종운 총학생회장의 '제1 공약'이다. 최 회장은 "대학이 취업양성소화 된 현실을 인정하지만,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대학의 본질이나 가치가 무엇인지 학생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고려대 총학생회가 지난 1월 삼성그룹이 도입하려던 채용제도인 '총장추천제'에 대해 "대학 서열화와 취업사관학교화를 가져올 것"이라며 거부 입장을 표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 회장은 "대학평가가 학부모·학생에게 미치는 영향이 점점 커짐에 따라 신문사가 갖는 권력에 대학이 휘둘리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며 "언론사의 대학순위 평가가 대학을 상품화하고 이는 대학의 몰락을 불러온다"고 지적했다.

고려대 총학생회가 유독 <중앙일보>의 대학평가만을 거론하며 거부 운동에 나선 이유에 대해 최 회장은 "(타 언론사에 비해) <중앙일보>가 가장 서열화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중앙일보>의 대학평가 영향력이 가장 큰 상황에서 서열화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대학의 본질과 가장 동떨어져 있다"며 "부등호로 대학의 서열을 표시하고, 'OO대가 OO대에게 뒤처졌다'는 식으로 자극적인 기사나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한 기사를 생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언론사가 대학 등수 매기기 비즈니스에 뛰어든 나라는 한국이 유일"

'대학평가'라는 명목으로 언론사가 대학 줄 세우기에 나선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4년 <중앙일보>가 대학 등수 매기기에 첫발을 뗀 뒤 20년 동안 영향력을 키워 왔고, 2009년에 <조선일보>, 2010년에 <경향신문>, 2013년에 <동아일보>가 이 대열에 동참했다. 특히 <동아일보>는 취업률을 핵심 평가 항목에 포함시켜 "타 언론의 대학평가와 차별화"를 시도했다.

<중앙일보>를 비롯해 대부분의 언론사는 대학평가의 목적에 대해 "교육의 질을 올리고 연구역량을 강화하려고 노력하는 대학을 발굴, 소개"하려는 데 있다고 천명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은 언론사 대학평가 결과에 집착하면서 순위를 올리기 위해 단기간 내에 교육 내용의 변화를 시도하고, 이는 다양한 부작용을 낳게 됐다.

언론사 대학평가에 대한 논란이 커지면서 지난 2010년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에서는 전국 대학총장 명의로 언론사 대학평가를 반대하며 협조하지 않겠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전문성 및 타당성 부족, 대학의 획일화 및 서열화 조장, 대학 간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교육적 낭비 초래, 결과의 상업적 활용 등이 그 이유였다.

지난해 11월 초 한국영어영문학회에서 '대학순위평가와 대학의 몰락'이라는 주제로 발표에 나선 고부응 중앙대 교수는 "대학 운영진이 순위 상승을 위해 평가지표에 맞춰 교수와 학생, 대학시설을 관리할 때, 대학의 사명인 새로운 지식 추구와 지적 성장은 대학의 수행과제에서 관심거리가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윤태일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관훈저널> 2013년 겨울호 9통권(129호)에 기고한 '언론사 대학평가의 문제점'이라는 글에서 "한 나라의 주요 언론사가 4개씩이나 대학 등수 매기기 비즈니스에 뛰어든 나라는 한국밖에 없으며, 획일적으로 대학의 종합순위를 매기는 신문사는 세계에서 한국의 <중앙일보>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주요 언론사가 대학순위평가 결과를 며칠에 걸쳐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과도하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더구나 그 결과를 자사의 입맛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한다. <중앙일보> 대학평가 보도는 삼성계열인 성균관대 띄우기, 두산그룹 인수 후 급격한 구조조정으로 논란이 많은 중앙대 띄우기로 대학의 기업화를 노골적으로 프로파간다하고 있다. 언론사 대학평가와 대학 광고 및 홍보성 기사와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은 이들이 비판해 왔다."

윤태일 교수는 이어 "언론사가 대학평가를 함으로써 악화되는 또 다른 문제는 이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주류언론이 전혀 보도하지 않아 건전한 공론장 형성을 방해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자사 대학평가를 자화자찬하는 낯간지러운 기사로 도배하지만, 정작 그 문제점을 지적한 비판적 여론은 묵살하고 그저 한두 마디 장식용으로 언급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중앙일보> 대학평가 거부에 나선 고려대 총학생회는 '선언'을 넘어서 '캠페인'으로 확산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들은 오는 29일부터 학내에 선전부스를 설치, 학생들을 대상으로 <중앙일보> 대학평가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10월 초에는 <중앙일보> 앞에서 서울대, 연세대 등 타 대학 총학생회와 연대해 공동 기자회견을 개최할 예정이다.  

'거부 운동'이라고는 하지만, 언론사가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대학평가를 막을 구체적인 방도는 없다. 최종운 총학생회장도 "물론 우리가 성명서 하나 발표한다고 <중앙일보>가 대학평가를 중단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대학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 물음을 던지고, 학생들이 언론사의 대학평가를 바라보면서 놓치지 않아야 할 가치를 한 번 더 상기 시키고 싶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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