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유업, 06년 밀어내기에 적합하게 발주시스템 변경

공정위의 시정 명령 직후... "반성은커녕 증거인멸 시도"... 회사 "그럴 의도 아니다"

등록 2013.05.15 19:35수정 2013.05.15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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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유업대리점협의회, "남양유업 제대로 반성없어" 정승훈 남양유업대리점협의회 총무(오른쪽)가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남양유업 사태 추가 피해자 기자회견'에 남양유업의 횡포에 최초로 공정위에 신고했던 곽민욱 전 대리점주(왼쪽), 이창섭 남양유업대리점협의회 회장과 함께 참석해 피해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이날 이들은 지난 9일 남양유업 측이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뒤로는 제대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사건을 축소, 은폐하며 남양유업대리점협의회의 확대, 발족 및 교섭을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 유성호


남양유업이 소위 밀어내기(제품을 강제로 떠넘기는 행위) 횡포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 시정명령 이후에 오히려 밀어내기 행위 은폐가 수월하도록 내부 전자발주시스템을 변경한 것으로 드러났다.

남양유업은 2006년 대리점에서 입력한 최초 주문서에 본사 지점의 수정 발주 기록을 덮어씌워 저장하는 방식으로 내부 전자발주시스템 '팜스21'을 수정했다. 이전에는 대리점 최초 주문서와 본사 소속 지점에서 이를 수정한 내용을 모두 저장하는 방식이었다. 시스템 수정은 그해 공정위의 밀어내기 행위에 대한 시정명령이 내려진 이후였다.

남양유업 전 대리점주 곽민욱(47)씨는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본사는 공정위의 시정명령 후 문제를 개선하기는 커녕 전자발주시스템을 밀어내기 은폐에 유리하게 변경해 대리점주들의 처지가 더 개악됐다"고 주장했다.

남양유업은 전자발주시스템 변경은 인정하면서도 밀어내기 행위 은폐를 위해서가 아닌 시스템 업그레이드였다고 해명했다.

대리점 주문서-본사 수정 주문서 동시 저장 → 본사 수정 주문서가 덮어씌워

곽씨는 본사의 밀어내기 행태에 항의하며 2006년 남양유업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공정위는 같은해 12월 곽씨의 피해사실을 인정하며 남양유업에 시정명령을 내렸고, 이에 곽씨는 2008년 남양유업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곽씨가 대리점을 운영할 당시 발주시스템은 대리점 최초 주문서와 본사 소속 지점에서 이를 수정한 내용 두 가지를 동시에 저장했다. 공정위가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었던 이유도 발주시스템에 저장된 최초 주문서와 수정한 최종 주문 내용을 비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정위 시정명령이 내려진 2006년 대리점 최초 주문서에 본사 지점이 수정한 발주기록을 덮어씌우는 형식으로 전자발주시스템이 변경됐다.


곽씨는 "저같은 경우 대리점에서 전산 발주한 내용과 이후 본사에서 밀어내기를 위해 조작한 내용을 같이 확인하고 출력도 할 수 있었지만, 공정위 명령 이후 대리점 발주 내용을 없애고 본사가 시스템을 변경해 대리점에서 발주한 내용도 아예 출력할 수 없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최초 주문서와 수정된 주문 내용을 비교해 본사의 밀어내기 행태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사라진 것이다.

남양유업 "시스템 업그레이드일 뿐... 밀어내기 은폐 위한 의도 아니다"

남양유업은 공정위 시정명령 이후 발주시스템이 덮어쓰기 방식으로 변경된 자체를 시인하면서도, 밀어내기 증거를 찾을 수 없도록 조치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전자발주시스템은 전산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면서 변경한 것으로 (밀어내기)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그런 것은 아니다"라며 "변경된 시스템은 우리 회사뿐 아니라 다른 유제품 판매 기업에서도 사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양승훈 남양유업 대리점협의회(아래 협의회) 총무는 "시스템 변경으로 대리점주들의 밀어내기 피해를 증명할 수 있는 증거를 얻을 수 없게 됐다"며 "밀어내기를 증명할 방법이 사라지니 곽씨 이후 민사소송을 제기한 대리점주가 그동안 없었다, 피해자 스스로 증명할 힘이 없게 되니 본사의 횡포와 멸시가 계속됐다"고 주장했다.

협의회의 소송 대리를 맡은 성춘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발주시스템은 본사가 직접 프로그램 제작 회사에 바꿔달라고 의뢰해야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전 대리점주 "남양유업의 밀어내기·폭언, 7년 전과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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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유업 횡포에 울먹이는 대리점주 남양유업의 횡포에 최초로 공정위에 신고했던 곽민욱 전 대리점주가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남양유업 사태 추가 피해자 기자회견'에 참석해 피해사례를 발표하며 울먹이고 있다. 이날 곽민욱 전 대리점주는 남양유업이 공정위 시정명령을 받고도 반성은 없고 과거와 똑같은 수법으로 밀어내기 불법행위를 벌이고 있다며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의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 수립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 유성호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곽씨는 남양유업이 공정위의 시정명령과 민사소송 패소 이후에도 이를 무시하며 밀어내기·뒷돈 수수 등 불공정거래 행위를 계속해왔다고 비판했다.

2003∼2005년 남양유업 가양대리점을 운영한 곽씨는 "개점 후 밀어내기가 너무 심해 복지관과 고아원에 물건을 갖다줘도 계속 제품이 창고에 쌓였다"며 "영업사원이 학교 급식을 뚫어준다며 200만 원을 받아가는 등 지금 다른 대리점주들이 호소하는 것과 같은 횡포를 7년 전에 당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횡포에 항의하자 지점장은 직원들 앞에서 나를 지목하며 '쪽박 차게 만들어 버려'라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며 "힘들어 죽어버리겠고 말하자 한 직원은 '마음대로 하라'고 고함치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곽씨는 남양유업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해 2009년 9월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지만 배상금이 터무니없이 적었다고 하소연했다. 그가 청구한 피해액 1억1350여만 원 중 본인과실과 일부 이익 부분이 공제돼 최종 배상 판결을 받은 금액은 3600만 원 정도였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본사가 얻은 이익에 비해 손해배상액이 형편없이 적기 때문에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행위가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이라며 "징벌적 손해배상을 포함하는 대리점보호법 제정에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양유업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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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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