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물들지 않고 티끌 없이 살고파"

방랑시인 김삿갓과 시인묵객들이 노래한 화순 물염정

등록 2011.04.08 16:12수정 2011.04.08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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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염정. ⓒ 박미경

물염정. ⓒ 박미경

사화와 당쟁의 시대를 살다간 선비가 당시의 정치현실을 개탄하면서 조용히 속됨 없이 은거하려고, 세상 어느 것에도 물들지 않고 티끌 하나 없이 살고 싶어 세운 정자가 있다. 전남 화순군 이서면 창랑리에 있는 '물염정(勿染亭)'이 바로 그곳이다.

 

화순적벽의 한 축을 이루는 '창랑적벽'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있는 물염정은 방랑시인 '김삿갓' 난고 김병연이 그 아름다움에 반해 자주 찾아 시를 읆었다고 하여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물염정이 있기에 창랑적벽은 물염적벽이라고도 불린다.

 

사실 '적벽'은 어느 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동복호를 둘러싼 곳곳이 적벽이다. 적벽이 약 7km 정도에 걸쳐 펼쳐져 있다. 동복호를 따라 굽이굽이 이어진 길을 달리다보면 곳곳에서 붉은 빛을 띤 절벽을 만날 수 있다. 잘 모르는 이들은 '저 곳이 화순적벽인가 보다' 하며 반가운 마음에 차를 세우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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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염정에서 바라본 적벽의 모습. ⓒ 박미경

물염정에서 바라본 적벽의 모습. ⓒ 박미경

그렇게 굽이굽이 길을 달리다보면 동복호 상류에 물염정이 나온다. 물염정은 조선 중종과 명종 때 구례와 풍기군수를 역임한 홍주송씨 물염(勿染) 송정순(宋庭筍)이 16세기 중엽에 자신의 호를 따서 세운 정자다.

 

물염정에 오르면 지붕을 받치고 있는 기둥들 중 유독 한 기둥에 눈이 간다. 전혀 다듬어지지 않고 울퉁불퉁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는 게으른 목수가 대충 기둥을 세운 거라고 생각하기도 하겠지만, 사실은 1966년 물염정을 중수하면서 마을 사람들이 물염정의 풍류를 살리기 위해 마을에서 자라던 베롱나무 중 가장 크고 멋진 나무를 내어준 것이라고 한다.

 

여느 기둥과 같이 둥글게 혹은 네모나게 다듬어 세울 수도 있었지만 마을 사람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그대로 세웠단다. 그래서일까. 울통불퉁한 기둥에서는 따뜻한 숨결이 느껴지고 자꾸만 어루만지고 싶어진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왠지 애틋한 마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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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염정에 걸려 있는 시인묵객들의 시문. ⓒ 박미경

물염정에 걸려 있는 시인묵객들의 시문. ⓒ 박미경

물염정에는 방랑시인 김삿갓으로 알려진 난고 김병연이 이곳의 경관에 반해 자주 올라 시를 읊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그가 머물다가 생을 마감한 전남 화순군 동복면 구암마을에서 가기에는 물염정이 위치한 창랑적벽보다는 화순적벽이 더 가깝지만, 그는 물염정을 더 자주 찾았다고 전해진다. 아니 화순적벽을 더 자주 찾았지만 흔적이 남아있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물염정이 위치한 창랑적벽보다는 흔히 화순적벽으로 불리는 '장항적벽'이나 '노루목적벽', '이서적벽'이 규모도 크고 웅장하며 풍광도 뛰어나다. 이서면의 민속놀이인 '적벽 낙화놀이'가 이뤄진 곳도 이곳이고, 화순의 적벽을 주제로 한 그림이나 사진도 대부분 이곳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

 

허나 그의 눈에는 규모가 크고 화려한 화순적벽보다는 동복천 상류에 있어 아담하고 잔잔한 창랑적벽이 더 아름다웠기에 자주 찾은 것이리라.

 

조선시대 실학자 다산 정약용도 화순 현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와 화순에 머물면서 물염정을 자주 찾아 시를 읊었다고 한다. 김인후나 권필, 이택당, 민단암, 김농암, 김창흡, 이식 등 당대의 풍류 시인묵객들도 그 아름다움에 반해 이곳에 자주 올라 시를 읊었다고 한다. 물염정에는 이들이 직접 지은 시문 28수가 지금도 걸려 있다.

 

정자 주변을 둘러싼 100년은 족히 넘은 고목들은 정자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특히 봄이면 고목에 아름드리 꽃이 피어 한층 아름다움을 더한다. 당대 시인묵객들이 수시로 올라 시를 읊고 노래한 것이 당연하다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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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염정 옆에 세워진 김삿갓 동상과 시비. ⓒ 박미경

물염정 옆에 세워진 김삿갓 동상과 시비. ⓒ 박미경

물염정 아래에는 김삿갓의 동상과 시비가 세워져 있다. 맞은편에는 광주시민들의 식수원인 동복호가 푸르름을 자랑하며 햇빛에 반짝거리면서 감탄사를 자아낸다.

 

물염정은 화순군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기도 하지만 광주광역시관광협회와 <무등일보>가 공동으로 지정한 '광주전남 8대 정자' 중의 하나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물염정과 함께 담양 식영정, 완도 세연정, 광주 호가정, 곡성 함허정, 나주 영모정, 영암 회사정, 장흥 부춘정 등 8곳이 지정됐지만 물염정은 그중 으뜸으로 선정됐다.

 

물염정으로 가는 길은 여럿 있지만 화순읍을 지나 이서면과 동복면을 빙 둘러 동복호를 따라 달리는 길이 좋다. 차량의 통행이 빈번하지 않아 한적한 농촌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다. 붉은 빛을 띠며 동복호에 몸을 반쯤 감추고 쭈욱 펼쳐져 있는 적벽을 볼 수 있어서 더 좋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1.04.08 16:12 ⓒ 2011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다음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화순 #물염정 #창랑적벽 #김삿갓 #동복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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