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 여·야, 사법제도개혁특위 난항 예고

"성명서 발표한 대법원, 정치적 행위" VS "법무부, 한명숙 전 총리 표적수사"

등록 2010.03.23 18:48수정 2010.03.23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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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귀남 법무부장관이 23일 국회에서 열린 사법제도개혁특위에서 한명숙 전 총리 재판과 관련한 얘기를 기자들에게 흘린 노환균 서울중앙지검장의 부적절한 처신에 대한 박영선 민주당 의원의 질타를 받고 있다. ⓒ 남소연


"지난 3월 18일 법원행정처장께서 상당히 고강도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저는 상당히 혼란스럽다. 방금 업무보고 때 처장은 '항상 애정어린 충고를 해주신데 대해 감사를 드린다"고 했는데 성명서에는 '사법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심마저 잃은'이라고 돼 있다. 무엇이 맞나? 성명서를 봤을 때 정당 대변인이 작성한 격문이 아닌가 싶었다." (박민식 한나라당 의원)

"한명숙 전 국무총리 수사를 보면서 검찰이 과연 개혁의지가 있는지 아니면 권력을 위한 하수인인 건지 이해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 이런 무원칙한 수사도 없다. 증거에 의해 사실이 확정된 다음에 기소를 하는 게 원칙인데 이번 수사는 그 ABC가 어긋났다." (박주선 민주당 의원)

여·야 의원들이 23일 국회 사법제도개혁특위에 출석한 박일환 법원행정처장과 이귀남 법무부장관에게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그러나 사안은 판이하게 달랐다. 여당 의원들은 지난 18일 성명서를 통해 한나라당의 사법제도 개선 논의를 강력 비판한 박 처장을 향해 질의를 퍼부었고 야당 의원들은 한명숙 전 총리 수사와 관련해 이 장관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사법제도 개혁 대상을 다르게 지목한 여·야 의원들의 질의는 앞으로 6개월 간 열릴 사법제도개혁특위의 난항을 충분히 예상케 했다.

한나라당 "대법원 성명서는 내부단속용... 이중플레이 한 것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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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의 일방적 사법개혁 논의를 강하게 비판했던 박일환 법원행정처장이 23일 국회에서 열린 사법제도개혁특위에 참석해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첫 번째 질의에 나선 박민식 한나라당 의원은 박 처장을 향해 "성명서를 내놓는 과정에서 대법관 회의나 법관회의를 거쳤냐"며 "이 성명서가 법관 전체의 뜻인지 법원행정처에 있는 일부 판사의 뜻인지 알아야겠다"고 언성을 높였다.


앞서 박 처장은 지난 18일 성명서를 통해 "최근의 이른 바 '사법제도 개선' 논의는 개별적으로 제시된 주장의 당부를 굳이 따질 것 없이, 사법부를 배제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려는 진행 방식 자체만으로도 매우 부적절하고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라고 한나라당의 법원 개혁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한나라당은 당시 ▲양형위원회의 대통령 직속기구화 ▲대법관 24명 증원 ▲법관인사위 외부인사 충원 등을 골자로 한 법원 개혁안을 발표한 바 있다.

박 처장은 이에 대해 "사법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감마저 잃은 이러한 처사는 일류국가를 지향하는 우리나라의 품격에도 어울리지 않는다"며 "지금 거론되고 있는 여러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미 사법부 자체에서 공식적으로 활발한 연구와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박 의원은 "신영철 사건, 조두순 사건, 강기갑 무죄 판결 사건 때도 한마디도 않던 대법원이 완성도 안 된 초안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심마저 잃었다'고 하는 것은 납득되지 않는다"며 "진정성을 갖고 토론하자는데 (여당이) 무엇을 잘못했나, 사법부에 대해선 입도 벙긋하면 안 되나"고 박 처장에게 불만을 토해냈다.

그는 특히 "18일 성명서 발표 전 대법원장 측근이 청와대 고위인사에게 '(성명을)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말아 달라, 내부 단속용이다'라고 설명했다는 얘기가 있다"며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박 의원은 이어,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대법원이 정치적 행위를 한 것이다, 이중 플레이를 하고 있다"며 "혹시 그런 일이 있다면 당사자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박 처장을 몰아붙였다. 이에 대해 박 처장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한 번 알아보겠다"고 짧게 답했다.

이두아 한나라당 의원도 "법원조직법에 따르면 관련 법 개정에 의견 제출이 필요하다면 대법원장이 국회에 서면으로 (의견을) 제출할 수 있도록 돼 있다"며 "대법원이 의견이 있다면 성명서가 아니라 서면을 제출하라"고 대법원을 비판했다.

하지만 박 처장은 "서면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나 기본적으로 의견을 교환할 때 나오지 않았던 이야기가 갑자기 나왔다는 데 생각을 달리 하고 있다"며 입법부 내 사법부 개혁 논의에 대한 불신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또 "지금 사법부가 비판받고 있는 모든 것들이 과거의 잘못된 법관 인사 제도에서 비롯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데 그런 제도로 회귀하자는 데 너무나 놀랐다"며 "과거의 민주화를 위해서 대한민국 국민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렀는데 그것을 원점으로 돌릴 수 없다"고 여당의 법원 개혁안을 다시 한 번 비판했다.

민주당 "곽영욱 전 사장 '인생 상담' 대신 새벽 2시까지 조사받은 적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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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국회에서 열린 사법제도개혁특위에서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 한명숙 전 총리 재판과 관련한 얘기를 기자들에게 흘린 노환균 서울중앙지검장의 부적절한 처신에 대해 이귀남 법무부장관에게 따져묻고 있다. ⓒ 남소연

민주당 의원들은 한나라당의 법원 개혁안에 반대하며 대법원에 힘을 싣는 한편, 이귀남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한명숙 전 총리 사건 수사에 대해 집중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박주선 민주당 의원은 "재판정에서 증언을 한 참고인을 바로 다음날 소환해 법원에서의 증언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무엇에 근거한 수사냐"며 "한 전 총리 사건 수사는 표적수사, 편파수사, 강압수사"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 장관은 "검찰이 위증한 것이 명백하다 판단돼 조사 중인 것으로 보고 받았다"며 "검찰에서는 논란을 의식해 신중하게 소환하고 있고, 위증일 경우 판결의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 조사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은 지난 14일 노환균 서울중앙지검장이 기자들을 불러 한 전 총리 사건 수사 내용에 대해 설명을 한 것을 '피의사실 공표'로 규정하고 이 장관을 몰아붙였다.

박 의원은 "피의사실 공표문제는 재판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법무부장관이 이를 용인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며 "한 전 총리 사건을 보니 공소제기 전 21건의 기사가 나왔는데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문제에서는 지금까지 말 뿐이었고 개선된 게 없다"고 이 장관을 날카롭게 추궁했다.

박 의원은 특히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의 구치소 출정기록을 열람해 보니 11월 19일 새벽 2시까지 조사한 기록이 있다"며 "노 지검장이 기자간담회를 통해 해명한 심야 면담 시간도 거짓 아니냐"고 몰아붙였다.

노 지검장은 당시 기자들에게 심야 조사 논란에 대해 곽 전 사장을 새벽 12시 30분까지 곽 전 사장을 '면담'한 적 있고 조사가 아니라 인생 상담을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박 의원은 "밤 12시 이후엔 조사를 하지 못하도록 돼 있는데 수사 책임자가 담당검사, 부장검사에게 조치를 취하도록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한 전 총리의 공소장도 '돈을 건넸다'라고만 돼 있는 등 두루뭉수리하게 돼 있다, 검찰의 신뢰를 위해서라도 구체적으로 방법 등을 명시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이 장관은 "원칙적으로 밤 12시 이후엔 조사하지 말라고 지시가 돼 있는데 조사가 필요한 경우 상급자의 허가를 받도록 돼 있다, 이 경우 상급자의 허가를 받았다고 알고 있다"며 "지적한 공소장도 결재자가 함께 보면서 공소장을 작성했다"고 해명했다.
#사법제도개혁특위 #한명숙 #박일환 #사법권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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