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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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와 유익. 두 가지가 겸비된 강연이었습니다. 사실 처음엔 ‘밥맛’에 뭐 별게 있겠는가 싶었지요. 구수하다, 고슬고슬하다, 윤기 있다, 찰지다 정도 외에 더 무엇이 있겠는가 하고 말입니다.

“우리는 밥맛을 모릅니다. 쌀에 대해서도 모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밥을 먹는) 하루하루가 행복해지는 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박상현 특강>은 그렇게 호기롭게 시작됐지요. 일인당 연간 쌀소비량 72kg. 거의 한 가마에 해당하는 쌀을 먹으면서도 그것의 품종에 대해, 유통에 대해, 보관에 대해, 짓는 법에 대해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우유는 유효기간이 하루만 지나도 먹지 않으면서, 쌀은 도정일이 얼마나 지났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밥에 대해, 쌀에 대해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박상현씨는 말합니다.

‘맛의 인문학자’라는 수식이 따라붙는 박상현씨(맛칼럼니스트)는 미각에 의존한 맛 평가에는 별반 흥미가 없는 분입니다. 대신 음식의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맥락을 탐구하고 추적하는 일에 관심이 많지요. 그는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의 저자입니다. 10년 동안 일본을 80여 차례 드나들면서 쓴 책인데, 시작은 우리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 음식을 쫒다보니 일본을 알아야 했다고 말합니다. 그런 그에게 사람들은 자주 묻습니다. 일본에서 가장 맛 있는 음식이 뭐냐고. 그의 답은? “밥.”

처음엔 자존심이 상했다고 합니다. 쌀 재배법도 한반도에서 넘어갔고 밥을 담는 그룻(자기)도 백제의 기술이지요. 품종, 토양, 물, 재배기술, 짓는 도구 등에서 우리가 빠질 게 없는데 왜 일본의 밥맛이 우리 보다 나은 것일까요?

“일본은 밥을 대하는 태도가 다릅니다.”

일본은 밥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밥을 맛있게 먹기 위해 찬을 연구하고, 외래의 음식도 그런 맥락에서 받아들였습니다. 반면 우리는 ‘밥’을 놓고 이러쿵저러쿵 논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했지요. 밥은 하늘이고 밥은 생명이지, 불평불만의 대상이어선 안 됐던 거지요. 밥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한 나머지, ‘맛’을 연구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농업, 과학, 경제, FTA, 주권, 민족, 생명, 운명, 수탈… 등 쌀과 관련한 무거운 연관어들을 내려놓고 오로지 맛으로 따져 봅시다.”

박상현씨의 이런 접근은 언뜻보기엔 비정치적인 것 같아도 사실, 매우 정치적인 것입니다. “먹는 것은 가장 첨예한 정치적인 의사결정”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쌀을 맛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매년 줄어드는 쌀 소비, 매년 42만 톤의 수입쌀, 중국쌀과 국산을 교묘하게 섞은 혼합쌀의 상술을 어떻게 분별하고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쌀의 경쟁력은 오로지 밥맛에 있습니다.”

그가 2년 동안 쌀 취재를 위해 전국을 돌며 숱한 사람들을 만난 뒤 내린 결론입니다.

강연 말미, 쌀에 관한 실용적인 정보도 제공되었습니다. 맛있는 밥을 먹기 위한 ‘박상현의 레시피’ 공개. 마트에서 쌀을 고르는 법, 보관법, 짓는법, 먹는법 등. 외식할 때 주의해야 할 밥에 대해서도 일러주었지요. 청중들은 열심히 메모하며 당장 집으로 돌아가서 실천할 기세였습니다. 수확기인 추석을 앞두고 열린 특강. 명절을 잘 맞이하기에 맞춤이었던 강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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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맛칼럼니스트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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