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에서 일하는 게 불법이라고 경찰이 잡아가더라고요. 공장에 침투한 빨갱이라고 하면서요."

언니가 처음 우리 공장에 일하러 온 건 작년 봄이었어요. 공장 앞마당 봄꽃이 거의 다 질 때쯤이었으니 4월 중순쯤이었던 것 같아요. 키도 크고 피부도 하얘서 눈에 잘 띄는 편이었어요. 우리 공장에 오기 전엔 어떤 일을 했는지 손이 참 고와 보였던 기억이 나네요. 그런 언니가 경찰한테 끌려간 건 지난달 일이었어요.

▲ 1987년 2월 2일 "기자회견문", 김대중, 김영삼 ▲ 1987년 2월 7일 명동성당에서 개최된 '2. 7 고 박종철 군 국민추도회'에 참석한 시민들

엄벌로 다스려야 할 부천서 문귀동 경장의 성고문 사건의 경우, 문 경장의 기소유예에 대한 재정신청에 대해서 재판부는 성고문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기각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문 경장이 여론의 규탄에 의해서 이미 응분의 처벌을 받았고, 둘은 이러한 비등한 여론 때문에 앞으로는 고문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처구니 없는 판결이었다.
1987년 2월 2일 "기자회견문", 김대중, 김영삼

처음엔 실감이 잘 안나더라고요. 언니한테 뭔가 속았다는 섭섭한 마음도 조금 들었고요. 하긴 돌이켜 생각해 보니 엄청난 선동꾼이긴 했어요. 맨날 떡볶이 먹으러 가자고, 만화 보러 가자고 선동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거든요. 수다 떠는 거 좋아하고 빨간 떡볶이 잘 먹을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그랬던 언니를 빨리 다시 보고 싶어요.

작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피해자가 언니 친구래요. 그분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 처음 들었을 땐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이제 경찰이 갈 때까지 가는구나라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여자는 끌고 가서 성고문하고, 남자는 끌고 가서 물고문해서 죽이고... 이게 대한민국 경찰이라니... 이번 달은 무척 바쁠 것 같아요. 언니 재판에도 가야 하고, 언니 친구 재판에도 가야 해서요. 추운 날이 조금씩 풀려가니 할 일도 점점 많아지는 것 같네요.

▲ 1987년 2월 25일 경찰의 저지로 '고문살인 용공조작 등 인권유린 폭로 규탄대회'가 무산된 후 이에 항의하는 시민들

노동자들을 영장도 없이 마구잡이로 비밀리에 잡아다가 두들겨 패는 것이 전두환 살인정권이 예찬해마지 않는 자유민주주의인가? 노동자의 단결을 최루탄과 몽둥이로 진압하는 것이 법과 질서인가?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면 유언비어로 감옥에 처넣는 것이 자유요 평화인가?
1987년 2월 "서울노동운동연합사건 1심 법정투쟁 기록", 서울노동운동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