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26 08:27최종 업데이트 20.06.26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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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표방송 시청하는 김지선 후보와 노회찬 전 의원 2013년 4월 24일, 4.24재보선에 출마한 진보정의당 김지선 후보와 남편인 노회찬 전 의원이 당지도부 및 선거운동원들과 함께 서울 노원구 마을역 부근 선거사무실에서 개표중계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 권우성

 
정치인의 '말'과 '말하기'

정치인에게는, 특히 세상의 변화를 꿈꾸는 정치가라면 쓰는 말부터 달라져야 한다. 말은 마음의 소리이자, 나올 때는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지만 천 사람의 귀로 들어가고 끝내 만 사람의 입으로 옮겨지기 때문이다. 다 아는 것처럼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상대방에게 호감이 생길 수도, 없어질 수도 있다. 정치인들의 화술에 따라 그 정치인의 품격과 품위가 매겨진다. 그래서 무엇보다 책임 있는 자세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 '정치인들의 말'이다.


박상기(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치의 기본은 말이다. 이 때문에 정치인의 말은 명확한 것은 물론이고, 표현도 신중하고 부드러워야 한다"라면서 '정치인의 가장 중요한 자질'로 '말하기 능력'을 꼽는다. 소통의 출발점은 말을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시사IN>, 336호, 2014.2.25.).

"말은 생각, 사상을 나타내는 기본 수단이면서 동시에 한 인간의 사상을 형성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또한 말은 그 자체가 곧 행위이다. 말이 지닌 영향력은 행위보다 오히려 더 지속적이다. 한 인간의 행동은 세월이 흐르면 기억에서 사라지지만, 그가 한 말은 두고두고 매체를 통하거나 사람들 입에 회자될 수 있기 때문이다. ... 말은 인간 그 자체의 전인격적 표현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치의 기본은 국민 설득이다. 현대 민주주의 정치체제는 지배와 복종 관계를 상정하는 대신 국민 동의를 전제로 해서 정치를 한다. 그러므로 국민을 상대하는 정치인의 말은 내용의 명확성은 물론이고 표현방식도 신중하고 부드러워야 한다. ... 정치적 반대자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한 말을 하려면 말꼬리를 잡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정책의 정당성·타당성을 분명하고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표현해야 한다."


박상훈(정치발전소 학교장)은 정치 언어의 위험성에 대해 이렇게 강조한다.

"정치의 언어는 위험하다. 모순적인 요구들 사이에서 말하고 행동해야 할 때가 많기도 하다. 상대의 관점에서도 생각할 줄 알아야 하고, 결정에 따라서 갈리게 될 피해자와 수혜자의 관점도 균형 있게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복잡하고 모순적인 상황에 눈감고 그저 자신들의 파당적 입장만 고집스럽게 내세우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는 것은, 2012년 통합진보당 사태에서 볼 수 있었듯이, 재난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파당적인 입장을 갖더라도 절차적 정의에 기초를 두면서 최대한 보편적이고 공정하고자 노력했으면 한다." (박상훈, <정치의 발견>, 후마니타스, 2015, 178쪽).


'소통과 토론의 달인' 노회찬의 '말의 철학'
: '노회찬의 말에 우리가 감동을 받는 이유'

 

2009년 7월 6일 <경향신문>에 실린 노회찬 관련 기사. 제목은 [한국, 소통합시다] 소통 4위 노회찬 대표 "원하는 것만 듣다간 자기합리화 위험". ⓒ 경향신문

 
[한국, 소통합시다] 소통 4위 노회찬 대표 "원하는 것만 듣다간 자기합리화 위험"

2009년 7월 6일 치 <경향신문> 기사 제목이다. 진보·중도·보수 지식인 100명이 뽑은 '소통 잘하는 인물' 1위는 박원순(희망제작소 상임이사), 2위와 3위는 박효종(서울대 교수)과 최장집(고려대 교수)이, 소통 못하는 인물 1위는 이명박(대통령), 2위는 강기갑(민주노동당 대표)과 조갑제(전 <월간조선> 대표), 4위는 진중권(중앙대 겸임교수)과 전여옥(국회의원)이 차지했다. '소통 잘하는 인물' 4위에 꼽힌 진보신당 대표 노회찬은 <경향신문>과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 소통을 잘하는 인물 4위에 꼽혔다.
"일반적으로 정치인은 주장을 선명하게 하면 불리하다는 판단에서 터부시하는데, 저는 주의주장이 선명한 편이다. 저는 그보다 주장이 어떻게 잘 전달되게 만드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는 정치를 '배달 증명'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하고, 발표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떻게 전달되느냐가 중요하다. 평소 주장할 때도 한편으로는 선명히 얘기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동의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쉽고 일상적이고, 감동적으로 전달되도록 노력하는 편이다."

- 토론의 달인으로도 불린다.
"보통 토론에서 상대방을 논리적으로 꺾으려 하는데 확실한 자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논리에 밀린다고 설복되지 않는다. 그래서 저는 토론할 때 시청자를 의식하면서 말한다. 토론은 국민들을 설득하는 과정이지, 상대방을 말로 이기는 과정이 아니다."

- 소통을 잘하기 위한 조건이 있다면.
"우선 들어야 한다. 또 전달받는 쪽에서 무엇을 요구하는지 어떤 생각과 처지에 있는지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잘 안 듣거나, 원하는 것만 듣다보면 이야기할 때 자기 합리화 속에서만 얘기하는 현상이 생긴다."

- 불통현상에 대한 진보 진영의 책임론도 나온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진보 진영의 소통 역시 대단히 부실하다. 인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진보 진영이 비정규직에 대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그렇다고 비정규직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나? 그럴 때 사회의 낮은 정치의식을 문제삼기보다 이슈를 제기하고 풀어가는 과정에서 스스로 민심보다 공중에 떠 있는 일들을 더 많이 하지는 않았는지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진보 진영은) 자신들의 치부나 병폐, 노선의 문제점을 과감히 드러내고 시인하는 데 매우 인색하다."

2008년 인터넷언론 <대자보>와의 인터뷰(2008.3.24.)에서 '말을 잘하는 소질은 타고난 것인가 아니면 이를 위해 평소에 따로 준비하거나 노력하고 있는 게 있나. 그 비결을 말해 달라'는 질문에 대해 노회찬은 이런 말을 남긴다.

"말을 잘하기 위해서 특별히 준비를 하는 건 없구요. 저는 말을 잘한다기보다는 제가 주로 해왔던 일이 어떤 정책이나 이념을 전달하는 일들을 많이 해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소통을 굉장히 중시합니다. 소통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보거든요. 사랑도 애정도 전달되지 않으면 짝사랑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것이구요. 그래서 저는 소통하기 위한 노력은 평소에 상당히 심혈을 기울여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말을 쉽게 하는 것, 간명하게 하는 것, 들은 뒤에 기억에 남기도록 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 것 등 이런 것은 제가 하고 있는 일과 관련해서 굉장히 중요한 대목이기 때문에 저도 알게 모르게 오랜 기간 그런 부분에 신경을 쓰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말이 쉬워지고, 불필요한 것들이 없이 간명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진보 하면 대중들이 어렵게 생각하기 쉬운데 또 진보진영에서 나오는 언어들도 어렵기 때문에 그런 것을 쉽게 메시지화해서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의도적으로 그런 측면을 고려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2017년 6월 28일 독자와 함께하는 <시사IN> 인터뷰쇼 시즌2에 출연한 노회찬은 소통의 비결에 대해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2017년 6월 28일 독자와 함께하는 <시사IN> 인터뷰쇼 시즌2에 출연한 노회찬. ⓒ 시사IN 유튜브 갈무리

 
"'토론회 발언을 미리 생각해두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런데 텔레비전 토론에서 이 이야기를 꼭 써먹어야겠다고 하면 그날 토론은 망친다. 그 말을 할 기회를 엿보다 딴 거 대응을 잘 못한다. 음식에 재료가 70, 요리사 솜씨가 30이라고 하지 않나. 신선하고 좋은 재료가 결정적이다. 말도 마찬가지다. 화술은 30밖에 안 된다.

더 중요한 건 말의 재료, 즉 생각이다. 생각의 원천은 경험과 독서, 소통이다. 책을 안 읽고 웅변학원만 다니면 아무 소용없다. 무엇보다 상대방 입장이 되어보는 게 중요하다. 또 말이 쉬워야 한다. 쉽게 하려면 (말의 길이가) 짧아야 한다. 이 길이에 신경 안 쓰는 사람은 상대를 무시하는 것이다.

어떤 이는 '내 인생을 이야기하려면 사흘 밤 사흘 낮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3분 안에 말할 수 있어야 한다. CM송이 보통 19초다. 19초 안에 물건을 사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줄이려면 비유를 많이 쓰게 된다. 그럴 때는 서로 아는 비유를 써야 한다. 제가 지금 스피치 학원 원장처럼 말하는데…(방청객 웃음)"


2020년 2월 1일 강상구(정의당 전 교육연수원장)는 노회찬재단의 <제1회 노회찬정치학교> 28회 강사로 나와 '노회찬의 말하기'를 주제로 강의를 했다. 그는 <언제나, 노회찬 어록>(루아크, 2019)와 <노회찬의 말하기>(이음, 2019)의 저자이기도 하다.

"노회찬 화법의 필살기는 경청에서 출발합니다."

'노회찬의 말하기'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강상구는 노회찬의 말에 우리가 감동을 받는 이유는 말 재주가 좋아서가 아니라고 했다. 말이 얼마나 잘 꾸며져 있나보다 말에 담긴 철학을 먼저 본다는 것이다. 이어 철학과 삶이 일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삶과 다른 철학이 담긴 말을 할 때 메시지와 메신저가 충돌하면서 말의 힘이 약화된다는 것이었다.

노회찬은 그의 철학에 걸맞는 방향의 삶을 성실하게 살았기 때문에 우리가 노회찬의 말을 들을 때 감동받는다고 했다. 강상구는 노회찬의 말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또 다른 요인으로 노회찬이 누군가를 대변한다는 일의 무거움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는 점을 들었다. 강연 내내 그가 노회찬의 말하기를 통해 전하고자 한 것은 화술이 아니었다. 노회찬이 삶을 살았던 방식, 그리고 그 삶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 철학이었다(최용락, 노회찬은 어떻게 '말 잘하는 사람'이 됐을까?, <프레시안>, 2020.2.4.).

노회찬, '3년 동안 지구 7바퀴 돌다'

노회찬은 대표적인 TV토론 프로그램인 MBC '100분토론'에 2002년 이후 총 32회를 출연, 최다 출연자의 타이틀을 갖고 있다. 100분토론 시청자들이 뽑은 최고의 진보 논객은 노무현으로 14.5%의 선택을 받았고, 노회찬은 12.7%로 2위를 차지했다. 좋은 토론에는 진행자 손석희와 토론자 노회찬이 있었다.

훗날 세상에 알려졌듯, 손석희는 이명박 정부의 MBC장악 시나리오에 의해 8년 넘게 진행한 100분토론에서 쫓겨났다. 노회찬이 이를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칫 무거워질 수 있었던 마지막 방송에서도 특유의 웃음을 놓치지 않았다(정철운, 손석희와 노회찬: [기자수첩] 최고의 진행자, 최고의 토론자를 떠나보내다, <미디어오늘>, 2018.7.25.).

"(제가) 발언이 길지도 않은데 (손석희 진행자가) 자르고 그래서... 개인적인 소원이 제가 사회를 보고 손 교수님을 토론자로 앉혀서, 가차 없이(웃음)... 그게 제 소원이었는데 그런 날이 올지 모르겠습니다."
 

MBC '100분토론' 최다출연자 타이틀을 갖고 있는 사람은 노회찬이다. 2009년 11월 19일 MBC '100분토론' 방송화면 갈무리. ⓒ MBC 갈무리

 
2004년 17대 국회의원 당선 이후 노회찬은 강연회를 총 95차례 가져 토요일과 일요일을 제외, 이틀에 한번 전국 각지에서 대중 정치 강연을 펼쳐왔다. 95회의 강연의 주요 대상에는 전국 각지의 노동자, 학생, 당원, 경제인, 언론인등 대상이었다. 강연회 평균 200여 명 정도가 참여해 1만9000여 명을 만났다.

이중 학생대상의 강연은 전국의 29개 대학교와 전교생 대상의 고등학교 강연 2회 등을 통해 9900여 명의 학생들을 만났다. 노회찬의 강연 일정 중 일주일 동안 5차례 이상의 강연 강행군은 6주였다. 또 전화 인터뷰와 돌발 인터뷰 등을 제외한 공식적인 약속을 통한 언론 인터뷰는 총 189회였다. 또 2004년 1년간 방송3사의 생방송 토론회에 나간 횟수는 총 19회로 KBS 심야토론 7회, MBC 백분토론 4회, SBS 수요토론 이것이 여론이다 3회, KBS 일요진단, 백인토론 등 5회인 것으로 나타났다.

쉼없이 달려온 2004년의 첫 의정활동에 대해 노회찬은 "의회진출만 준비했지, 진출 이후의 정책방향과 활동에 대한 준비는 부족했다. 하지만 소수 정당으로서 의회내에서 어려움은 있었지만 최선을 다한 한 해였다"라고 말했다(<오마이뉴스>, 2014.12.24.).

2007년 노회찬 민주노동당 대선 예비후보 캠프에서 재미있는 자료를 내놓는다. 국회 등원 이후 노 회찬의 활동을 각종 수치로 계량화한 것이다. '숫자로 본 노회찬'인 셈이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강연 횟수다. 지난 3년간 공식 강연만 368회였다. 2004년 127회, 2005년 84회, 2006년 82회, 2007년 6월까지 75회를 기록했다. 노회찬 측은 1회 강연당 평균 300명이 참석한 것으로 계산했다. 이렇게 해서 지난 3년간 총 11만 명 이상의 대중을 강연을 통해 만났다고 했다.

노동자·농민·학생·민주노동당원은 기본이고 강연 대상도 다양하다. 3000명 이상의 전교생이 참석한 고등학교 강연회에 초대받기도 했고, 경찰서 강연도 했다. 경찰대학에서 총경 이상 간부들을 대상으로 인권교육도 했다. 이처럼 강연 요청이 쇄도하는 이유에 대해 노회찬 측은 "민주노동당의 정책을 가장 쉽게 설명하고, 일반 대중을 많이 모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기록도 재미있다. 노회찬의 차량 주행거리는 지난 3년간 11만 km에 달했다. 휴일을 제외하면 하루 평균 147km를 달린 셈이다. 교통안전공단에서 발표한 2005년 영업용 포함 자동차 1일 평균 주행거리 58.6km의 2배를 웃돈다. 관용차량의 하루평균 주행 거리 37.7km의 세 배다. 비행 기록의 경우 국내 탑승 기록은 448회였다. 1회 탑승 거리를 평균 400km로 계산하면 18만 km를 비행한 셈이 된다. 국제선 탑승 기록은 27회였다. 노회찬이 지난 3년간 차량과 비행기로 이동한 거리는 29만km를 넘는다. 지구를 7바퀴 이상 돈 거리다(<레디앙>, 2007.7.3.).

'좌사우포', 쌍권총을 찬 노회찬

 

노회찬 대표의 쌍권총, 왼쪽이 블랙베리폰, 오른쪽이 아이폰. ⓒ 블랙베리/애플

  

"대중과 가장 가깝게 소통하고 있는 정치인, 소통의 중요성을 아는 정치인."

<레이디경향>(2010.5.31.)의 기사다. 노회찬은 대중과 가깝게 소통하기 위해 문명의 이기를 최대한 활용한다. 정치인들의 트위터 열풍을 촉발시켰던 인물 노회찬의 '쌍권총'은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다.

진보신당 대표 시절 노회찬은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자신의 쌍권총을 '좌사우포'라고 일컫는다. 왼쪽엔 사과(애플의 아이폰), 오른쪽엔 포도(블랙베리)라는 뜻이다. 블랙베리폰을 쓰다 아이폰이 나오자 곧바로 아이폰도 구입했다. 그는 2개의 스마트폰을 쓰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오랫동안 이동통신사들의 독과점 이윤을 보장해주는 데 급급했던 정부당국이 이 폭발을 예방하고자 정치적 판단을 내린 것이 바로 아이폰 연내 출시 허용이다. 위치정보가 어떠니 하면서 내세웠던 아이폰 출시 불가 사유들은 한순간에 없었던 일이 되었다. 즉각 아이폰 예약을 하였다. 당분간 블랙베리와 아이폰을 둘 다 쓰기로 했다.

이찬진 대표는 시간이 지나 블랙베리 중고가격이 더 떨어지기 전에 처분하라고 충고를 보내왔다. 실제 요금부담이 작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좌사우포 즉 왼쪽엔 사과(애플사의 아이폰) 오른쪽엔 포도(블랙베리)라는 쌍권총을 차기로 했다. 왜곡된 한국IT 정책의 폐해를 체험하고 무선통신 세계의 변화와 발전을 체감하기 위해서다." (노회찬, [폴리칼럼] 노회찬 "나의 쌍권총", <폴리뉴스>, 2009.12.21.)


진중권과의 인터뷰를 통해 노회찬은 "이른바 운동권에서 최초로 핸드폰을 사용하는 사람"이었다고 하면서 "트위터를 사용하면서 나 스스로 진화하였다"고 고백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진중권, 노회찬에게 묻다, 노회찬.김어준.진중권 외, <진보의 재탄생: 노회찬과의 대화>, 꾸리에, 2010, 202; 203~204쪽).

"1990년대 초반 핸드폰이 처음 한국에 등장했을 때 저는 당시에 이른바 운동권에서 최초로 핸드폰을 사용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 즉각 블랙베리를 구입했는데 너무 놀랐습니다. 버튼만 누르면 바로 이메일을 읽고 답장을 보낼 수 있고, 단추를 한 번 누르면 트위터에 접속할 수 있었으니까요. 오바마가 대통령선거에서 백만 명이 넘는 팔로워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는 사실이 어떻게 가능한지 실감하게 되었던 것이죠."

"얼마 전 트위터 사용자들의 이웃돕기 기부모임에 가서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습니다. 트위터를 사용하면서 나 스스로 진화하였다고요. 트위터 번개를 통해 평소 도저히 만날 수 없었던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블랙베리와 아이폰을 통해 피상적으로 이해했던 한국 IT 정책과 산업의 문제점도 알게 된 것이지죠.

... 인터넷 접속권이 이젠 국민의 기본권이 되어야 하며 서울 어디서나 무선인터넷을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하자 격려가 쏟아졌어요. 진보운동이란 것이 무엇인가요? 그것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사람들과 더불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노력이지요. 진보가 끊임없이 진화해야 하는 이유도 다름 아닌 여기에 있는 것이지요. 저 자신을 통해 진화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동시대인들에게 희망을 잃지 말 것을 당부하려는 몸짓으로 이해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쌍권총을 타고 진화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노회찬, 이런 칼럼을 남긴다([폴리칼럼] "나의 쌍권총", <폴리뉴스>, 2009.12.21.).

"오늘도 나는 쌍권총을 차고 집을 나선다. 사무실에 도착하기 전에 간밤에 들어온 메일을 모두 확인하고 답장을 보낸다. 인터넷으로 뉴스를 검색하고 필요한 것은 저장하고 함께 공유해야 할 블로거의 글은 동료들에게 바로 전송한다.

서울시청 앞에서 동절기 강제철거를 반대하는 주민 기자회견에 참석하여 이분들 사진과 사연을 바로 트위터에 올리니 수백 명의 트위터 친구들이 이를 다시 확산시킨다. 용산참사 연내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국무총리를 만난다고 글을 올리니 바로 격려와 유의해야 할 사안을 보내온다. 인터넷접속권이 이젠 국민의 기본권이 되어야 하며 서울 어디서나 무선인터넷이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하자 격려가 쏟아진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이브엔 백혈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을 방문할 예정이다. 이 아이들 앞에서 아이폰으로 오카리나 연주를 할 계획이다. 진화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희망을 잃지 말 것을 당부하려 한다. 그렇다. 나는 진화한다. 쌍권총을 차고서!"


2010년 2월 6일 서울 홍대앞 KT&G 상상마당에서는 "기술은 문화를 어떻게 변화시키나"라는 제목의 열린 포럼이 열린다. 4층 아카데미의 좁은 강당을 가득 메운 청중들은 스마트폰 열풍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캐내고야 말겠다는 듯이 지적 호기심으로 잔뜩 무장한 모습이었다.

뜨거운 감자는 '스마트폰'이었다. 인터넷 도입 초기 팽창했던 쌍방향 미디어에 대한 민주적 희망이 미학적으로 세련되게 투영되고 있는 이 미디어를 모티프로 한국사회의 기술적 이슈들이 논의됐다.

아이폰과 블랙베리라는 '쌍권총'으로 무장한 자타공인 얼리 어답터 정치인 노회찬(진보신당 대표)은, 아이폰과 트위터로 대표되는 첨단 디지털 미디어 환경이 민주주의를 확장시키는 데 기여할 것(<주간한국>, 2010.2.24.)으로 전망했다. '선거에서의 트위터의 영향력 발휘', '정치문화 변화의 촉매제 구실' 등 그의 기대와 전망은 얼마 가지 않아 현실이 됐다.

"저는 블랙베리와 아이폰 두 개를 갖고 다닙니다. 주변에선 '쌍권총'을 찼느냐며 웃기도 합니다. 스마트폰을 갖게 된 건 불과 얼마 전입니다. 지난해 7월 트위터(twitter: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입문하면서 스마트폰을 처음 구입했지요. 그 전만 해도 '얼리어답터'가 전혀 아니었어요. 그런데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면서 완전히 새로운 사회적 관계가 형성됐습니다. 도저히 만날 수 있을 것 같지 않던 사람들을 온라인에서 만나지요. 오늘은 고2 학생이 식사를 같이 하고 싶다고 글을 올려 만나기로 약속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스마트폰과 트위터를 통해 삶이 진화했다고 느끼고 있어요."

"한 방송사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전 진보신당 당원들에게 트위터로 '어떤 이야기를 할까?' 물어 봤어요. 30분 만에 400명이 응답하더라고요. 만약 진보신당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에 같은 질문을 했다면 하루 지나도 댓글 2~3개 달리는 게 고작이었을 겁니다. 그만큼 이 미디어들이 의사 표현을 활발히 하게 만드는 거죠. 4대강 사업 찬반 여부도 트위터로 국민들에게 물어보면 금방 답이 나올 겁니다.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해지는 거죠. 아마 올해 지방선거에서부터 트위터의 영향력이 발휘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제가 토론회에 많이 다니잖습니까? 참석 30분 전에 트위터에 의견을 구하면 300명가량이 다양한 답변을 보내줍니다. 얼마나 유용합니까? 아마 당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 하루를 기다려봐야 답변이 서너 통 올라올까 말까일 겁니다. 어떤 기업의 이사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직원들에게 회사 이메일로 어떤 질의를 하면 답변하는 사람이 하루에 1명 있을까 말까 한다. 그런데 트위터에 올리니까 100명이 넘는 '트윗 친구'들이 응답하더라. 얼마나 좋으냐?' 저는 스마트폰 시대가 활짝 열리면 국민적 이슈를 실시간으로 찬반투표에 부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즉 스마트폰이 정치문화 변화의 촉매제 구실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토론 말미에 노회찬은 스마트폰이 가져올 변화와 관련한 몇 가지 전망과 조언을 내놓는다. 우선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가 향후 폭발적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특히 각종 선거에서 트위터가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또 한국 IT 산업이 하드웨어 위주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하루빨리 전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애플과 삼성전자의 영업이익률 차이를 거론했다. 애플이 촉발시킨 IT 판도 변화에 적극 대응해야만 한국 IT 산업도 앞날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스마트폰은 단지 PC 기능에 음성통화 기능을 추가한 것만은 아닙니다. 책상으로부터 업무를 탈출시켰을 뿐 아니라 새로운 수요와 욕구도 창출하고 있어요. 한국인은 적응력과 응용력이 매우 뛰어나지 않습니까? 우리 삶의 소통과 질을 더욱 높이는 데 스마트폰을 적극 활용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트위터를 통한 노회찬의 소통과 만남은 '점심번개'로도 나타났다.

"이제 노회찬 대표가 여러분이 있는 곳으로 찾아갑니다. 노회찬 대표(@hcroh)와 함께 점심을 드시고 싶으신 분은 트위터로 멘션 날리세요! 트윗밋을 통해 그날그날의 번개를 알려드립니다."

'새벽첫차' 6411번 버스 승차 8일 뒤인 2010년 4월 21일. 노회찬은 연세대 청소용역 노동자들과 만난다. 삶의 애환과 소소한 행복이 담긴 보통사람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점심번개 첫 번째 자리다.

노회찬의 점심번개는 트위터를 통해 4월 22일(IT 업종에 종사하는 구로디지털단지 노동자들), 4월 23일(명동 하동관 곰탕과 공원에서의 커피 한잔), 5월 3일(대림역 채식 뷔페), 5월 4일(광화문 이순신장군 동상 앞), 5월 6일(역삼역 대우식당), 5월 7일(여의도 공원 잔디밭 도시락 번개), 5월 11일(선릉공원 도시락 번개)로 이어진다.

2016년 7월 12일 노회찬은 트위터와 페리스코프 생방송을 통해 네티즌간 실시간 Q&A 자리를 마련한다. 2016년 6월 트위터가 생방송 앱인 페리스코프로 바로 넘어갈 수 있는 기능을 추가, 트위터로 들어온 질문에 직접 영상으로 답변하는 새로운 세계를 체험하기도 한다.
 

2016년 7월 11일 노회찬의 트윗. ⓒ 노회찬 트위터 갈무리

  

2016년 7월 12일, 노회찬이 트위터와 페리스코프 생방송을 통해 네티즌간 실시간 Q&A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 노회찬재단

  
"최초로 영상다큐 의정보고서 제작"... "최초로 인터넷 의정간담회 개최"

2005년 2월 21일 노회찬은 최초의 '2004 영상다큐 의정보고서'(<꽃이 되어 바람이 되어>) CD를 제작한다. 이 CD에는 노회찬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순간부터 2004년 정기국회를 마칠 때까지의 의정활동 모두를 다큐멘터리로 영상화했다.

영상의정보고서는 총 5부로 구성돼 있다. ▲2004 국정감사, 피감기관 의정활동 평가 1위 ▲굴욕적 용산미군기지 협상 문제제기 ▲국가보안법 완전 폐지를 위하여 ▲민생과 인권을 위한 입법 활동 ▲당과 함께, 대중과 함께 등의 내용으로 내레이션을 곁들인 35분짜리 동영상으로 편집됐다. 또 부록에는 '촌철살인'으로 유명한 그의 발언을 모은 '노회찬 어록 모음'을 45분짜리 영상으로 편집했으며 의회 진출 후 쓴 '난중일기'도 따로 모았다.
 

최초의 2004 영상다큐 의정보고서 '꽃이 되어 바람이 되어' CD. ⓒ 노회찬재단

 
영상으로 만든 '신세대 맞춤형 의정보고서'는 사이버 영상매체에 익숙해져가는 젊은 세대의 기호와 종이 유인물 제작비(8페이지, 3만 부)보다 비용이 적게 들어 저비용으로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제작기간은 한 달 정도 소요됐고 영상제작에 투입된 자료 테이프는 60분짜리 VHS 90여 개와 6mm 테이프 30여 개로 총 120여 개의 자료 테이프가 활용됐다.

의정보고서 제작에 앞서 노회찬은 "제대로 된 서민정치를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해왔지만 부족하고 미숙한 것이 더 많았던 나날이었다. 2005년도 더욱 치열하고 더욱 성숙한 활동을 약속드리는 마음으로 보고 드린다"라고 말한다.

2005년 3월 3일 노회찬은 <오마이뉴스> TV를 통해 생방송으로 '네티즌과 함께하는 인터넷 의정간담회'('노회찬 네티즌을 만나다')를 최초로 개최하기도 한다. 

인터넷 의정간담회는 기존 국회의원들의 지역별 의정간담회 형식을 타파하면서 저비용으로 수많은 네티즌을 만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정치 전면에 떠오른 네티즌들을 만나기 위해 직접 찾아가는 의정보고로 인터넷 시대에 걸맞는 최초의 의정활동 간담회라고 할 수 있다. 생중계 진행 중에 네티즌들과 방청석의 참가자들은 실시간 질문과 전화 연결로 그동안 의정활동에 대한 평가와 노회찬에 대한 네티즌들의 관심사를 질문한다.

인터넷 의정간담회의 주요 내용은 노회찬의 어록인 말말말 동영상 7분과 네티즌들의 질의와 방청객들의 질문이 30분간 이어진다. 또 의원실에서 제작한 영상다큐 의정보고서가 7분간 방송되고 주요 패널들과 함께 50분간 의정활동에 대한 평가와 정치현안과 향후 과제 등에 대한 토론이 이어진다.
 

2005년 3월 3일,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이 <오마이뉴스> 스튜디오에서 네티즌들을 만나 '인터넷 의정보고'를 하고 있는 모습. ⓒ 오마이뉴스 남소연

  

2005년 3월 3일,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이 <오마이뉴스> 스튜디오에서 네티즌들을 만나 '인터넷 의정보고'를 하고 있는 모습. ⓒ 오마이뉴스 남소연

 
간담회는 유창선 박사의 사회로 진행됐고, 패널로는 <오마이뉴스> 구영식 기자,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김민영 국장, 민주노동당 부설 진보정치연구소의 김윤철 연구기획실장, 한림대 이명주 학생이 참여했다.

유창선 : "첼로연주와 과거 용접한 일 중 무엇이 더 행복하고 즐거운가."
노회찬 : "둘 다 권하고 싶다. 용접은 쇠와 쇠를 녹여서 붙이는 거고, 첼로는 예술적 감성과 인간을 붙이는 것이라 둘 다 할 만 하다. 최근 용접을 한 번 해봤는데 운전기술과 같아서 몸에 배면 없어지지 않는다. 또 라디오에서 첼로연주를 들으면 남다른 감정을 갖고 듣는다. 길거리 공사판에서 용접 불빛이나 쇠가 타는 냄새를 맡으면 시골 굴뚝에서 고향 냄새를 맡듯이 좋은 과거가 떠오른다."

1억2000만 뷰의 <노유진의 정치카페>
: "정치는 대중에게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까"

 

'노유진의 정치카페' 진행자, 노회찬(사진 맨 오른쪽), 유시민(사진 맨 왼쪽), 진중권(가운데). ⓒ 노유진의 정치카페

 
2014년 5월 27일 정의당 팟캐스트 <진중권 노회찬 유시민 정치다방>(얼마 후 '노유진의 정치카페'로 명칭 변경) 1회가 처음 방송된다. '노유진'은 노회찬과 유시민과 진중권 성을 따 만든 이름으로, 이들 세 사람의 공통점은 '대한민국에서 정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매주 다양한 정치 현안을 분석하는 방송으로 청취자들의 높은 관심을 받는다. 제작진에 따르면, 2년여 동안 내려받기 횟수만 1억2000만 건을 기록했다고 한다. 당시 '무관의 백수' 노회찬은 "2014년 5월27일 첫 방송을 할 때만 해도 이 팟캐스트가 2년씩 갈 줄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페이스북에 장문의 소회를 남기며 자평했다.

"올드 미디어에 지친 사람들에게 뉴미디어가 새로운 방식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면서 우리의 민주주의도 새롭게 발전할 계기를 갖게 된다. 뉴미디어가 이미 뉴데모크라시(새로운 민주주의)를 열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노유진>이 충분히 보여주지 않았는가!"

<정치카페>를 연출한 진짜 '배후세력' 백정현 PD(정의당 뉴미디어 실장)는 '<정치카페>가 한국 정치를 위해 어떤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가' '마지막 방송을 해서 아쉬운 점이나 다 못한 이야기가 있나'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유시민 돗자리 깔고, 노회찬 촌철살인…'노유진' 물러갑니다, <한겨레>, 2016.4.20.).

"가장 결정적인 역할은 '정치가 대중에게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하느냐'라는 물음에 답했다는 것이다. 정치라고 하면, 보통 다 외면하고 혐오하기까지 하지 않나. 사실 정치에 대한 혐오와 무관심을 거둬내고, 시민들 스스로가 정치의 주인임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지금까지 정치와 정당이 국민에게 말 거는 방법은 늘 언론이라는 매개를 통해서였다. 신문과 방송이라는 미디어를 통해서 말을 걸어야 했고, 그 사이에 어쩔 수 없는 문제들이 있었다. 왜곡이나 편향, 의도적인 조작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났다. <정치카페>는 '수다'를 통해서 우리 정치가 갖고 있는 함의를 정확하게 대중에게 전달했다."

"사실 '노유진' 세 사람은 정치뿐만 아니라, 정치를 망라해서 인문학의 보고 같은 분들이다. 시간이 충분했다면, 100분 토크에서 맹자, 플라톤 등등 동·서양의 정치 고전들을 다뤄보고 싶었다. 유 작가님이나 노 대표님은 사실 '요리 덕후'들이다. 한 달에 한 번씩 요리 특집을 해보자고 출연자들 무지 졸랐었다. 아쉽게도 성사되지 못했다. 매주 정치 현안들이 너무 치열했다."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언어"

"주변의 소수자와 약자, 노동자에 대한 연민도 남달랐던, 생전에 재치있고 논리적인 입담으로 수많은 '어록'을 남기며 진보의 가치를 널리 전파한 대중 정치인."

<한겨레>(2018.7.24.)가 노회찬에 대해 평한 표현이다. <경향신문>(2018.7.24.)은 '촌철살인의 교과서, 번뜩이는 비유와 촌철살인의 달변가'라고 말한다. 십수 년 전 <오마이뉴스>는 노회찬과의 인터뷰를 <촌철살인 '노회찬 어록'의 기원을 찾아서>2007.8.3.)라는 제목으로 싣기도 했다.

"'운동 인생 30년'의 노회찬 후보가 세상을 삐딱하게 보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1972년 박정희 정권의 유신 선포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교과서와 다른 현실을 목도하고 '자생적 운동권'의 길로 들어섰다.

노회찬 후보에겐 '괴물'이라는 별명이 있다. 없는 살림이지만 '악기 하나는 연주할 줄 알아야 한다'는 부모의 권유로 중학교 때 첼로를 배웠고, 100m를 12초3에 주파하는 육상선수이기도 했다. 또 생물 채집에 빠져 들로 산으로 돌아다니면서도 일요일에도 학교에 나와 공부하는 '이상한 중학생'이었던 것이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다리>와 <사상계>를 교과서 삼고, <레닌 전기>와 <마르크스 경제학 비판>을 읽었다. 문학잡지도 4개나 정기구독 했다고 한다. 정치판을 갈아엎는 노회찬의 촌철살인 어록은 그런 오랜 시간을 거쳐 만들어진 게 아닐까."


다들 인정하듯 노회찬은 말 잘하는 정치인이다. '언어의 연금술사', '어록 제조기', '언어 유희왕', '토론과 소통의 달인' 등 생전 그에게 붙은 말과 관련한 별명들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틀 안에 노회찬의 말을 가둬버리는 것은 적절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장석준(정의정책연구소 부소장)은 강상구의 <언제나, 노회찬 어록>(루아크, 2019) 서평 칼럼(지금, 노회찬의 말이 그립다)에 이런 글을 남긴다(<프레시안>, 2019.10.22.).

"책을 읽으며 우선 놀라는 것은 여기에 실린 노회찬의 말들과 통상적인 한국 정치 언어 사이의 너무도 먼 거리다. ... 그의 말들은 무슨 테크닉의 산물이 아니었다. 숱한 체험과 만남을 거듭하며 다져진 성찰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물줄기였다."
 

2008년 12월 3일,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의 작가 조세희 선생이 제4회 마들명사초청특강 '2008, 우리 시대의 난장이'에 나섰을 당시 모습. ⓒ 오마이뉴스 구영식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의 작가 조세희 선생은 제4회 마들명사초청특강에서 노회찬의 언어에 대해 다른 눈으로 바라본다(조세희, <2008, 우리 시대의 난장이>, 2008.12.3.).

"노회찬 전 의원을 두고 '스타가 나왔다'고 하는데 그건 바보의 언어예요. 노회찬 전 의원이 다른 언어를 사용했어요. 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노 전 의원에게) 신세를 진 거지요." "노회찬 전 의원은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언어를 쓰고 있었어요.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하는 특별한 말들을 쓰고 있었어요. 뛰어난 언어였어요."

박상훈(정치발전소 학교장)은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자 생각을 공유하고 행동을 이끄는 좌표와 같다. 강제보다 설득에 의존하는 민주정치에서 말의 힘은 특히나 중요하다"(<경향신문>, 2015.4.13)고 하면서, "정치적이되 아름다워야"하는 형용모순을 강조한다.

정치의 본질로서 이 형용모순을 체득한 정치인을 꼽으라면 누가 있을까? 내 생각엔 그 앞자리에 노회찬이 있지 않을까 싶다.

"여야 사이뿐 아니라 같은 당 계파 사이에 오가는 말을 듣다 보면, 이들이 정치를 하고 있는 건지 싸움을 하고 있는 건지가 구분이 안 된다. 정치에서 웃음이 사라진 지도, 정치가 시민들을 웃게 만든 지도 오래다.

더 큰 문제는 그다음이다. 뭐든 상대방 탓으로 만들고자 하고 마치 '거울 이미지 효과'처럼 모진 말을 반사하듯 주고받는 동안, 정작 중요한 사안을 실체적으로 다루고 해결하려는 노력은 안 해도 되는 일처럼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분명히 해두고 싶다. 우선 싸움이 있는 곳에 정치가 있다고 할 수는 있지만, 싸우기 위해 정치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인간 사회에서 갈등과 다툼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정치의 역할과 기능이 있는 것이지, 거꾸로 정치가 갈등을 더 심화시키고 싸움을 인위적으로 조장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반(反)사회적인 일이다. 정치적이되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데, 사실 이 형용모순이야말로 정치의 본질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경향신문>, 2015.10.12.)


기록연재 | 조현연 노회찬재단 특임이사

[기록으로 만나는 노회찬의 꿈과 길 ⑦] 노회찬 정신(6월 30일)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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