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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20.06.09 14:33 수정 2020.06.09 14:33

마포구 토정로에 있는 서울크래프트비어 제조장이다. ⓒ 막걸리학교


서울에 양조장이 몇 개나 있을까? 헤아려본 적이 없었는데, 한강가를 산책하려고 집을 나섰다가 문득 서울에 양조장이 몇 개나 있는지 궁금해졌다. 집에서 300m 떨어진 곳에서 양조장 하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한동안 무슨 단체의 사무실로 쓰던 공간이었다. 어느 날 한쪽 벽이 터지고 유리벽이 생기더니 그 안에 스테인리스 발효통들이 전시되고, 맥주펍이 생겼다. 이름에도 서울이 들어간 맥주 제조장이다.

더러 술을 좋아하는 친구가 찾아오면 일부러 그곳에서 약속을 잡는다. 술맛도 신선하지만, 다양한 술을 빚고 있어서다. 나는 매번 다른 술을 마시며 그 술맛을 기억해보려 하고, 친구의 반응도 살핀다. 이곳에서 술을 마시면, 마치 햇살에 순간순간 달라지는 강 물결을 바라보는 기분이다.
 

역전주를 빚기 시작한 마포 역전회관의 공간이다. ⓒ 막걸리학교

 
내가 사는 마포구만 하더라도 양조장이 제법 여러 개 생겨났다. 마포역 가까이에 창업 100년을 향해 가고 있는, 서울 미래유산으로 선정된 역전회관이 1층에 중요한 좌석을 헐어 양조 공간을 만들었다. 가마솥에 찜기를 넣고 화학 실험실처럼 알코올 도수를 재는 장비를 마련하고 안주인과 딸이 직접 역전주를 빚어서 음식과 궁합을 맞추고 있다.

역전회관에서 조금 걸어나와 길 하나를 건너면 미스터리 브루잉 맥주 제조장이 있다. 15층 건물의 1층 로비에 들어서면 웅장한 스테인리스 발효통이 보인다. 맥주를 좋아하여 맥주 동아리 활동을 하고 맥주 강의를 하고 이태원에서 맥주펍까지 운영하던 미스터리 이인호씨가 운영하는 양조장이다.

연남동과 홍대 앞에 느린마을 양조장이 생겨 술과 음식을 팔고 있고, 이대 앞쪽 대흥동에 동네방네 프랜차이즈 양조장이 생겨 공덕동 막걸리를 빚어 배달하고 있다. 광흥창역 쪽으로 가면 구름아 양조장이 최근에 문을 열고, 인터넷으로 예약 판매를 하여 술을 완판시켰다. 신촌 로터리 근처에 있는 서울 효모방은 의사 셋이 순전히 개인적인 관심사로 양조장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이쯤 되면 서울에서 양조업을 한다는 게 특별한 일이 아닐 정도가 되었다. 직접 양조장을 꾸려서 술을 빚고, 소비자를 찾는 이들이 서울에 많이 생겼다. 그래서 서울에 양조장이 몇 개나 있는지 헤아려보았다.
  
서울에서 운영되고 있는 양조장이 58군데나 되니 제법 많다. 창업했다가 휴폐업을 한 양조장도 20군데가 넘는다.

새천년을 맞이했던 2000년도만 해도 서울에 있던 양조장은 장수막걸리를 빚던 서울탁주합동 1개 회사에 소속된 강동, 구로, 영등포, 서부, 도봉, 태릉 연합제조장 6개가 전부였다.

그러니 서울의 양조 문화랄 게 없었다. 독점적 지위를 부여받긴 했지만, 연줄에 매달린 연이나 다름없었다. 서울탁주합동제조장은 강남이 분화하기 전인 1962년에 51개 양조장이 국세청의 지시로 통합되어 생겨났고, 그때의 위치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서 대부분 강북에 자리잡고 있다.
 

강남터미널 옆에 있는 신세계 데블스도어 맥주 제조 공간이다. ⓒ 막걸리학교

 
서울의 양조 문화를 혁신하고 있는 곳은 포천에서 산사원 갤러리와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는 배상면주가다. 배상면주가는 을지로와 서초대로, 테헤란로의 비싼 상가에 양조장펍을 만들어 술과 음식을 팔고,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느린마을 양조장펍과 동네방네 양조장을 늘려나가고 있다. 서울에 15개의 양조 공간을 마련했으니, 그 변화가 특별하고 놀랍다.

서울에 소규모 주류 제조장이 15개나 생긴 것도 눈에 띈다. 2016년에 주세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생겨난 변화다. 소규모 주류 제조는 창업이 쉬워져 막걸리와 약주와 청주의 경우는 1,000ℓ 이상의 설비만 갖추면 면허를 낼 수 있다. 이제 술 교육 기관들이 등장하고, 양조 면허를 대행하는 행정사들도 등장하면서, 기술을 습득하고 면허를 내고 소자본으로 창업하는 일이 까다로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서울 도심의 맥주 제조장은 19개 정도 된다. 2002년 월드컵 대회가 열릴 때 하우스막걸리 제조장이 생기기 시작했고, 2013년에 수제 맥주 붐이 일면서 서울과 수도권에 수제 맥주 제조장이 늘어나면서 낭만적인 브루펍 문화를 이끌고 있다. 강남, 마포, 용산, 성수동 등의 직장인과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넓은 펍을 가지고 들어오면서, 화려하고 역동적인 도시 문화의 상징 공간이 되었다.

당신은 서울에 살면서 서울의 술 문화를 누리고 있습니까? 그저 습관처럼 술을 마시고, 익숙한 주점 전등 갓 밑에 앉아있는 것은 아닌지요? 서울에 살아서 양조장을 한 번도 찾아가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면, 이제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 되었다. 내 사는 아주 가까운 곳에 양조장이 있으니, 그곳을 찾아가 보시라. 술 향기에 먼저 취할 것이다.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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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평론가, 여행작가. 술을 통해서 문화와 역사와 사람을 만나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술문화연구소 소장이며 막걸리학교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