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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20.05.26 18:22 수정 2020.07.03 12:44

미국과 브라질 코로나19 일일 신규확진자 수(3월 16일 ~ 5월 25일) ⓒ CoronaBoard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유럽에서 주춤하는 사이 브라질의 피해가 날로 커지고 있다. 특히 이 지역이 점차 겨울철로 향하면서 바이러스 확산이 용이해질 가능성이 높은 것도 우려를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이러한 계절 영향과 더불어 상대적으로 열악한 의료보건체계, 그리고 불안정한 정치 상황이 전망을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다.
 
유럽질병예방통제센터(ECDC) 등에 따르면 25일 현재 브라질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36만5213명으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게다가 앞으로의 추이를 전망할 수 있는 일일 신규 확진자 수 변화를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브라질의 코로나19 일일 신규 확진자 수는 4월 중순까지만 해도 미국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4월 말부터 눈에 띄게 증가하더니, 보름 만에 미국의 절반 수준으로 올라섰다가, 다시 보름 후에는 미국과 비슷한 수준까지 올랐다.

계절변화, 열악한 의료보건환경, 정치적 불안 - 브라질의 코로나19 위기를 설명해주는 이 세 가지 요인 가운데 불행히도 어느 하나 호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계절변화야 당연하고, 의료보건체계의 개선 역시 안타깝지만 빠른 시간에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에 반해 현재 브라질이 안고 있는 정치적 혼란은 대통령의 의지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고 코로나19 대응도 달라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계절변화는 앞으로 올 변화이지 지금까지의 사태를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의료보건체계의 열악함도 유사한 수준의 다른 많은 나라들을 봤을 때 브라질만의 숙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브라질의 코로나19 위기는 정치적 문제에서 가장 크게 기인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브라질의 비극은 스스로 자초한 일이며, 정치가 생각 이상으로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그리고 그런 대통령의 주변에는 극우 정치와 그 추종자들이 보여주는 전형적 패턴이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패턴들이다.
 
극우의 패턴들
 

지난 3일 브라질리아의 플라날토궁 앞에서 열린 대통령 지지 시위에 딸과 함께 참석한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옆으로 브라질 국기와 함께 이스라엘 국기와 미국 국기가 보인다. ⓒ 연합뉴스

 
지난 24일 일요일, 한 주 전과 마찬가지로 수도 브라질리아의 삼권광장은 시위자들로 가득 찼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적극 옹호하는 친위 시위대다. 브라질 국기를 앞세운 이들 다수는 브라질 상징색인 초록과 노랑 티셔츠를 입고 있다. 브라질 국기 옆에는 간혹 미국 국기인 성조기도 보인다. 심지어 이스라엘 국기까지 등장하는 모습을 보면 이들의 전지구적, 보편적 패턴에 전율마저 돋는다.
 
그들 중 일부는 붉은 얼룩이 있는 티셔츠를 입고 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과거 선거 유세 중 칼을 든 괴한으로부터 테러당했던 사건을 상징한다. 이들 가운데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육사 혹은 장교 시절 함께 했던 전역 군인들도 상당수 있다. 차량 경적을 울리며 모여든 이들 사이로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은 아랑곳하지 않는 듯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도 꽤 보인다.
 
이들에게 코로나바이러스보다 더 경멸스러운 대상은 바로 '코무나바이러스(comunavirus)', 즉 코뮤니스트(공산주의) 바이러스다. 물론 이들에게도 코로나19의 존재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브라질을 위험으로 내모는 브라질 사회의 악은 국민을 집 안에 봉쇄하고 밖으로 나오지 못 하게 하는, 그래서 일을 할 수 없게 만드는, 모든 가게의 문을 닫게 함으로써 아무것도 살 수 없게 하는 지방정부의 주지사들이고 그 뒤에는 바로 '공산주의 바이러스'가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 '코무나바이러스'로부터 국가를 치유해 줄 유일한 사람은 바로 보우소나루 대통령이라고 굳게 믿는다.
 
구호와 함성이 절정에 이를 때,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이들 앞에 나타난다. 물론 마스크는 착용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전능한 힘을 가졌다는 어느 교주도 착용하는 마스크를. 하긴 브라질이 아니더라도 몇몇 국가에서 지도자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것은 이제 권능의 상징이 된 듯하다.
 
열광하는 군중 앞에 선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지지자들과 포옹하고 어린아이를 무릎에 앉히기도 한다. 방역 당국의 지침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위지만 대통령도 시위대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어차피 이들에게 대통령을 제외한 모든 국가 시스템은 공산 세력이다.
 
이들과 보우소나루 대통령에게는 입법부, 사법부, 지방정부 모두 국가를 위기로 내모는 세력들이다. 이들이 국민들을 봉쇄함으로써 브라질 경제를 망치고 국가를 파탄에 이르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앞서 코로나19를 단순히 감기일 뿐이라고 일축한 바 있다.

브라질의 확진자가 늘고 상황이 악화된다는 한 기자의 질문에 "날 보고 어쩌란 말이오, 내가 아무리 메시아지만 기적이라도 행하길 바라는 거요?"라며 쏘아붙이기도 했다. 그의 중간 이름은 메시아(Messias)다.

탄핵 조사 앞둔 대통령
 

지난 25일 평소 직장인들로 붐비던 브라질 상파울루 시내 거리 음식점들이 '코로나19 한파'로 인해 텅 비어있다. ⓒ 연합뉴스

 
언론에 대한 불신도 이들의 패턴에서 빠지지 않는다. 시위대를 취재하는 카메라 기자들이 "빨갱이 기자!" 소리를 듣는 것은 흔한 일이다. 이들 언론은 대통령을 탄핵으로 내모는 데 앞장서는 세력이고 이들이 전파와 종이를 통해 전하는 것은 모두 가짜 뉴스뿐이라고 생각한다.
 
브라질의 진영 갈등에 종교계 역시 빠지지 않는다. 전통적 가톨릭 국가인 브라질은 가톨릭 교세가 점차 약화되면서 현재는 전 인구의 절반을 겨우 넘긴 52%만이 가톨릭 신자다. 반면 개신교는 최근 수십년 사이 교세가 급성장해 현재 32%의 브라질 국민을 신자로 두고 있다. 그리고 개신교 세력은 압도적으로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지지한다. 물론 최근 개신교계 내부에서 탄핵 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는 하다.
 
이들 추종 세력에게 국민의 보우소나루 대통령 지지율은 중요하지 않다.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지지율은 39%로 조사됐다. 하지만 이들의 또 하나의 특징 중 하나는 지도자에 대한 여론이 악화될수록 행동은 더욱 극단화한다는 점이다. 비록 소수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침묵하는 다수를 압도했고, 위법적 집회와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아들들의 비리 의혹과 관련된 월권행위, 코로나19에 대한 안일한 대응에 대한 책임 등으로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현재 브라질 국민 다수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아들 수사에 개입하지 못 하게 하는 법무부 장관을 해임했고, 코로나19 대응책으로 격리를 주장하는 보건부 장관도 해임한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최근 대법원 승인으로 탄핵절차 착수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될 경찰 조사를 앞두고 있다
 
1990년 이래 30년 동안 두 대통령을 탄핵한 브라질 정치권이 이번에는 어떤 결과를 도출할지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앞선 두 사례에 비하면 보우소나루 대통령에 대한 탄핵 사유는 더 분명해 보이지만, 그의 뒤에는 법과 체계를 초월하는 지지 세력이 있다.

하지만 브라질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미국을 추월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월권과 무능을 지켜보는 다수의 브라질 국민은 보우소나루 친위세력을 과연 잠재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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