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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19.12.20 08:17 수정 2020.03.16 19:08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저자이자 가산탕진형 와인애호가 임승수입니다. 맨땅에 헤딩하며 습득한 와인 즐기는 노하우를 창고대방출하겠습니다.[기자말]
이 세상에는 각양각색의 호구가 있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특대형 호구는 와인을 정가에 구매하는 사람일 것이다. 오히려 와인을 '정가'에 판매하는 곳이 존재하는지 반문하고 싶다. 와인 정가란 놈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는 마트의 와인 할인 장터 때 매장 직원을 통해 받는 할인리스트로 알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와인 중에 콘차 이 토로 떼루뇨 카베르네 소비뇽(Concha y Toro Terrunyo Cabernet Sauvignon)이 있다. 콘차 이 토로Concha y Toro는 와인 회사이고, 떼루뇨Terrunyo는 제품명,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은 포도 품종이다.

와인 애호가들에게도 좋은 평을 받는 칠레 와인인데, 2019년 하반기 이마트 영등포점 와인 장터의 할인리스트를 보면 정상가(정가) 110,000원에 행사가(할인가)가 50,000원으로 나온다. 54%가 넘는 어마어마한 할인율이다.
 

콘차 이 토로 떼루뇨 카베르네 소비뇽 필자가 좋아하는 아주 맛있는 칠레 와인이다. ⓒ 임승수

 
그런데 수년간 와인 홀릭으로 가산 탕진하면서 이 와인이 정가에 판매되는 장면을 단 한 번도 목격하지 못했다. 이 와인을 110,000원에 파는 매장(레스토랑 제외)이 있다면 제발 나에게 알려달라. 심지어는 와인 할인 장터 기간이 끝나도 재고가 남았다며 그대로 50,000원이다.

단언컨대 대한민국에서 와인의 정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는 간혹 운이 좋으면 떼루뇨 카베르네 소비뇽을 45,000원에 구입할 때도 있다. 심지어 모 와인아울렛 장터에서는 35,000원에 구입하기도 했다. 이런 게 진짜 할인가다.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정가에 줄 긋고 할인가격을 써놨다면 사실상 그 할인가격이 정가라고 생각해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별다른 고민 없이 '할인가'라는 말에 혹해 구매하면 나중에 다른 매장에서 훨씬 싼 가격을 발견하고 충격과 공포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게 된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느냐고?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상대는 가능한 비싸게 팔고 싶고 나는 어떻게든 싸게 사야 한다. 이 치열한 두뇌게임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패배하지 않을까?
 
싸고 좋은 와인 사기, 그 치열한 두뇌 싸움

매장을 방문하면 직원이 '찾는 와인 있으신가요?'라며 다가올 것이다. 이때 직원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다.
 
"혹시 어느 수입사에서 나오셨나요?"
 
마트나 백화점의 와인 매장 직원은 금양, 신세계 L&B, 나라셀라, 롯데주류, 레뱅드매일 등의 와인 수입사에서 파견한 직원이다.
 
"네. 저는 ◯◯◯에서 나왔습니다."
 
매장 직원은 이렇게 대답하며 '와인을 좀 아는 사람이구나'라고 나에 대해 판단한다. 초짜가 할 수 없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장터 할인가로 구매 가능한 와인을 추천해주세요."
 
장터 할인가가 아니면 전혀 구매할 의향이 없다고 처음부터 쐐기를 박는다. 이 시점에서 매장 직원의 활동 반경은 대폭 좁혀진다. 장터 할인가가 아닌 와인, 즉 나를 호구 인증할 수 있는 와인이 일차적으로 배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장터 할인가 자체가 너무 높게 책정된 발목지뢰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돈이 많다면야 신경 안 쓰고 팍팍 구매해도 되겠지만, 우리는 극히 제한된 예산으로 와인을 즐겨야 하는 (천 원만 비싸게 사도 수전증이 오는) 소시민 아닌가.
 
발목지뢰는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와인서쳐Wine-Searcher라는 앱을 사용하면 된다. 이 앱에 라벨 사진을 올리거나 이름을 입력하면 해당 와인의 해외 매장 판매가격 및 평균 거래 가격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와인서쳐에서 떼루뇨 카베르네 소비뇽을 검색하면 세금 제외한 해외 평균 거래가가 47,020원(2019년 12월 18일 기준)이다. 국내 마트의 판매가격이 세금 포함 50,000원이면 상당히 괜찮은 가격임을 알 수 있다.
 

와인서쳐 검색 화면 떼루뇨 카베르테 소비뇽을 검색한 결과다. ⓒ 임승수

 
어느 날 와인을 좋아하는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형님! 제가 와인을 하나 샀는데 18만 원이에요. 손이 덜덜 떨리네요. 역대 최저가로 나왔다는데, 잘 산 건가요?"
 
와인 이름을 듣고 와인서쳐에서 검색해 보니 해외 평균 가격이 9만 원대 아닌가. 혹시나 해서 이마트 영등포점 와인 장터 할인리스트에서 찾아보니 진짜로 할인가가 18만원이다. 정상가는 무려 27만원이고. 장터 할인가가 해외 거래가보다 너무 높게 책정된 사례다.
 
"그 와인의 해외 평균 거래가가 9만 원대네요. 할인가 18만 원은 너무 심한 것 같아요. 한 14만 원 정도면 몰라도."
 
와인서쳐에서 각 해외 매장의 판매가를 구체적으로 확인해 보니 (와인 생산국의 매장이긴 하지만) 심지어 세금 포함한 판매가가 7만~8만 원대인 곳도 있었다. 지인은 해외 평균 거래가가 9만 원대라는 얘기를 듣고 충격에 빠졌다.

제발 와인서쳐를 깔고 와인의 해외거래가를 먼저 확인하라고 신신당부했다. 물론 역대 최저가라고 얘기한 매장 직원의 말이 거짓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이전 와인 장터에서는 더 비싸게 팔았겠지. 와인 가격의 민낯이다.
 
물론 우리나라는 술에 붙는 세금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다. 와인 수입사에서도 적정 이윤을 남겨야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국내 와인 가격은 해외 평균 거래가보다 다소 높을 수밖에 없음을 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해외 평균 거래가가 9만 원대인 와인을 역대 최저 할인가랍시고 18만 원에 판매하는 상황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굳이 그 와인을 마시고 싶다면야 18만 원을 지불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심한 바가지 가격을 목도하면 구매 욕구가 싹 가실 수밖에 없다.
 
"와인 추천 감사합니다. 잠깐 와인서쳐로 가격을 알아볼게요."
 
이 말로 와인 가격 밀당 게임은 종료다. 꼼꼼하게 와인서쳐로 검색하는 손님에게 해외 거래가 대비 가격 거품이 심한 와인을 추천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와인애호가들이여! 와인서쳐 검색을 생활화하자. 현명한 소비행위로 우리는 호구가 아님을 증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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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 <세상을 바꾼 예술 작품들>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등 몇 권의 책을 쓴 작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