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07 15:49최종 업데이트 20.01.06 18:35
  • 본문듣기

'The-K한국교직원공제회'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진행한 '임시정부 100주년 역사탐방' 2차 탐방단은 지난 9월 16일부터 19일까지 3박4일 동안 상하이, 자싱, 항저우, 난징 등을 방문,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와 피난처, 윤봉길 의사 의거현장, 난징대학살기념관, 리지샹위안소 등을 돌아봤다. 사진은 일본군 성노예와 관련한 유적지로는 아시아 최대규모인 난징 '리지샹위안소 유적 진열관'. 평안도 출신 박영심 할머지가 이 곳 두 번째 건물 19번방에서 3년 동안 위안부 생활을 했다고 증언하면서 '역사유적'으로 보존되게 됐다. 탐방단들이 관람을 하기 전 박영심 할머니를 비롯한 이 곳에 있었던 모든 위안부 희생자들을 위한 묵념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이번 중국 탐방의 주제는 ''스승을 찾아라'였습니다. 역사 유적지 방문이 독립운동가분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빛이었다면 홍소연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김구 선생님 일대기는 인생의 스승을 찾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관상을 공부하던 김구 선생님이 독립운동가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듣고 유적지를 방문하니 더한 감동이 있었습니다.

홍소연 선생님께서 ''나에게 아름다운 점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스승 고능선의 가르침 때문이다''라는 <백범일지>의 구절을 소개해주시면서 '너희들도 고능선 같은 스승을 찾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첫째 날(9/16)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홍구공원이었습니다. 윤봉길 의사가 의거를 결심한 이유부터 준비하는 과정까지 담아낸 사적지입니다. 채소 장사를 하다가 독립운동을 하려 김구를 찾아왔고 일왕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장소에서 수통형 폭탄을 던지셨습니다.

이봉창 선생님의 의거, 윤봉길 선생님의 의거는 중국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침체되던 독립운동을 끌어올렸던 중요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젊은 나이에도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심과 독립 의지를 다시한번 마음속에 새기고 그 희생을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중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에 들렀습니다. 많은 사람이 찾아왔고 또 영상으로 소개되는 모습을 보니 독립운동가분들이 자랑스럽고 또 존경스러워지는 순간이였습니다.

송경령 능원은 중국의 대모라고 불릴 정도로 존경받는 송경령의 무덤입니다. 그 안에 만국공묘라는 외국인공동묘지가 있는데, 박은식, 김인전, 연병환 선생님 등 애국선열 5분의 기념 석판이 남아 있었습니다. 묵념을 통해 그분들의 영을 위로하고 감사를 전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임시정부 2청사와 서금로(서금이로), 신규식 선생님 거주지, 영경방을 쭉 걸어보고 이동하면서 쫓기는 삶을 사셔야 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삶이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을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러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힘쓰신 열사분들이 너무 존경스러웠습니다.

마지막 일정은 황포강 유람선이였습니다. 너무 예쁜 야경에 피곤함이 씻겨갔습니다. 바람을 쐬며 하루를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둘째 날(9/17)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원 거주지를 들렀습니다. 윤봉길의사 의거 이후 백범과 임시정부 요원들이 가장 먼저 피신한 곳입니다. 중국에서 항일운동을 진행하던 임시정부는 홍구공원 의거 후 일제의 탄압이 가중되었고  1932년 가흥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의거에 큰 충격을 받은 중국인들, 이 피난처를 마련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뒤 가흥 남호 김구피난처와 재청별장을 들렀습니다. 일제가 김구 선생님께 현상금 60만 원을 걸고 강력하게 수색작업이 시작된 시기입니다.

가흥시 남문 매만가 76호는 진동생 선생님(저보성의 양아들)의 주택인데 김구 선생님께서 저보성의 지원으로 호수 옆 암향집에서 거주하셨습니다. 뒷문으로 배를 탈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있었고 주애보가 젓는 배를 타고 들어올 때가 많았다고 합니다. 일제가 수사망을 좁혀오자 주가예는 1932년 7월 시아버지 저보성의 지시에 따라 위험과 고생을 무릅쓰며 김구 선생님을 재청별장으로 피신시켰습니다.

김구 선생님의 피난처를 보면서 일제에 항거하기 위해 합심했던 한중의 연대를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중국분들이 독립운동에 큰 도움을 주셨다는 걸 이제 알게 된 제 자신을 반성하면서 저보성, 진동생, 저봉장, 주가예, 주애보 등 중국인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뒤 항저우 임시정부, 한국독립당 사무소 터인 사흠방, 임시정부 요원 가족 거주지인 오복리, 항주 군영반점을 돌며 독립운동가분들의 삶을 엿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마지막 일정은 홍소연 선생님의 역사강의 청강이였습니다. 주제는 '독립운동가들이 꿈꾼 나라', 즉 정치, 경제, 교육이 균등한 '민국'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강의의 중심내용은 '의'로운 사람이 되자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알고 정확히 판단하며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스승을 찾아야한다'는 메시지. 역사탐방을 시작했던 계기를 되뇌일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방문했던 장소들의 역사적 의의와  버스 안에서 해주신 얘기들을 한 번에 정리해서 강의해주셨습니다. 어렵거나 헷갈렸던 부분도 정리해주셨고 역사 흐름을 짚어주셔서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셋째 날(9/18)

천녕사에 방문했습니다. 입구에 벽돌이 쌓여있는 모습을 보면서 잘 보존되지 못한 모습에 안타까웠고 더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으면 이렇게 벽돌을 쌓아놓지 않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녕사에 가는 길은 가파르고 좁은 길이였습니다. 중간에 살짝 넘어졌는데 문득 제가 걸어온 길이 독립운동가들이 걸어온 길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녕사는 조석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로 3기 학생들이 훈련을 받던 곳입니다. 조국을 지키기 위해 훈련받던 열사분들을 생각하며 기도를 올렸습니다. 1기생이신 이육사 시인의 '광야', '절정', '청포도' 3편의 시를 읽었습니다. 이 천녕사도 중국에 들어온 일본의 압박에 의해 더는 훈련을 진행하지 못하였는데 절정이라는 시를 읽으니 극한의 상황에 있는 독립운동가들의 고뇌에 대한 제 감정을 극대화하는듯 했습니다.

남경대학살기념관에 방문했습니다. 기념관 입구에 있는 동상이 너무 사실적이어서 더 가슴에 더 콕콕 박혀왔던 것 같습니다.

처음 실내기념관에 들어가면 불이꺼진 공간에 천장엔 반짝이는 파란불빛이 있고 벽에 수많은 사진이 붙어있습니다. 하늘에 전투기가 날아다니고 가족이 죽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쟁터 같은 곳. 파란 불빛처럼 하늘의 별이 되셨길 하늘에서는 평안하시길 바라면서 희생자분들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전시사진들을 쭉 돌아보면서 과연 인간이라 할 수 있는가 생각이 들 정도로 잔인한 일본의 행태에 눈살이 찌푸려졌습니다. 많은 분들의 영혼을 가볍게 맞이할 수 없어 기념관 방문 내내 무거운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회청교를 잠시 들렀는데 김구 선생님께서 고물상 장사꾼으로 위장하여 주애보와 함께 5년 정도 거주하셨던 곳입니다.

부자묘에서 자유시간이 주어졌습니다. 화려하게 장식된 번화가였는데 밤이되고 불이 켜지니 애니메이션에 나올법한 그림같은 장면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중국 사람들이 즐겨 먹는 길거리음식들도 먹어보고 여러 중국문화를 경험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저희가 묵었던 숙소가 '중앙반점'이었는데 윤봉길 의사 의거 후 김구 선생님이 장개석을 만나기 위해 묵으셨던 숙소라고 합니다.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약속받은 중요한 회담을 하기 위해 묵으신 호텔에 숙박하게 되어서 정말 신기하고 진귀한 경험이였습니다. 

넷째 날(9/19)

마지막 장소인 남경위안소에 갔습니다. '눈물'이라는 테마로 만들었고 벽에 눈물모양을 전시하고 제주도에서 볼 수 있는 구멍뚫린 현무암, 바닥 곳곳에 패인 구멍들로 위안부분들의 아픔을 표현해놓았습니다

가장 마음 아팠던 사실은 직접 위안부 할머니께서 와서 증언하셨기에 이곳이 보존될 수 있었다는 것이였습니다. 가장 큰 아픔을 스스로의 말로 증언해야하는 할머니의 마음은 어떠셨을까요.

해설사 선생님을 통해 문패, 방문 등 위안부에 대해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자국민도 예외가 아니었다는걸 말해주는 아키코의 사연을 듣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소녀상에 침을 뱉었던 그리고 비하하는 사람들이 이곳에 와본다면 과연 같은 행동을 다시 할 수 있을까?'
'평소 역사를 너무 가볍게만 생각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역사를 단지 시험을 보기위한 용도로만 보고 있는가?'

역사를 배우고 있는 학생으로서 반성과 고민이 이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역사탐방을 하면서 크게 느낀 것은 제가 얼마나 역사에 대해 무지했나 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도 기본적인 역사지식은 갖추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장소들을 방문하면서 몰랐던 것들을 많이 배웠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억하고 본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소 살면서 삶에 치여 독립운동가분들의 희생을 잊어버리곤 하는데 역사탐방에서는 매 시간 매 장소에서 기억하고 감사할 수 있었기에
더 소중한 경험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