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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19.12.17 08:26 수정 2019.12.17 08:26

영화관에서 뒷자리 어린 아이가 아내의 좌석을 발로 찼다고 오해해 아이와 아이 아버지를 때려 다치게 한 30대 남성에게 징역 8개월 실형이 선고됐다. ⓒ Pixabay

최근 웹서핑을 하며 이런저런 글을 읽다 한 기사에 시선이 머물렀다. 영화관에서 한 30대 남성이 10살짜리 아이를 폭행하여 기소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기사 속의 남성은 뒷좌석에 있던 아이가 옆에 앉은 아내의 좌석을 발로 찼다고 오해하여 아이의 아버지와 말다툼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아이 아버지와 아이의 얼굴을 여러 차례 가격한 혐의로 결국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좌석을 걷어찼다는 것도 오해였을 뿐더러, 설령 실제로 일어났다고 한들 고작 그런 이유로 사람을 치다니. 그것도 아이가 보는 앞에서 아버지를 폭행하고, 10살 아이의 머리채를 잡고 얼굴을 주먹으로 여러 번 때리다니.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세상사라는 게 나의 기준만으로는 돌아가지 않는 법. 별별 일들이 다 있기 마련이므로 사실 처음에 기사를 보고선 놀랐다기보다 피해를 입은 부자를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더 컸었다. 나를 정작 놀라게 했던 것은 거기 달린 댓글이었다. 기사를 두고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때린 사람도 정말 잘못했지만 뒤에서 의자를 누군가 발로 찼으니 이렇게 된 겁니다. 아무리 아이라고 할지라도 앞에 사람이 있는데 의자를 발로 찬다거나 기대거나 하면 부모로서 말리고 절대로 하지 말라고 해야죠."

"실제로 찬 것이 아니고 오해였다고 하니까 좀 그렇지만 우리나라 애들 공중도덕 정말 문제 많은 것도 사실이다. 부모가 때려서 따끔하게 혼내켜야 함. 오냐오냐 하니까 애들이 버릇이 없는 것이다."
 

아이를 때렸다는 기사에 이런 댓글이 달린다는 사실이 참담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새삼스러운 반응은 아니다. 불과 며칠 전 한 일간지에서 실시했던 설문조사 결과 역시 비슷한 맥락이었다. 해당 일간지는 최근 개봉한 애니메이션 <겨울왕국2>와 관련하여, 상영관에서 아이들이 내는 소음 때문에 불만을 토로하는 관객들이 있다면서 '노키즈관'을 설치하는 문제에 대해 어찌 생각하느냐고 물었는데, "아이 소음에 방해받지 않고 영화 볼 권리 있다"는 대답 쪽이 70%나 됐던 것이다.
 
<겨울왕국2>는 나 역시 얼마 전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재미있게 보고 온 영화다. 전체관람가 애니메이션인 만큼 당연히 어린이 관람객이 많았고, 아이들은 상영 시간 내내 등장인물들에 깊이 공감하며 영화를 관람했다. 위기 상황에서는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즐거운 장면에서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성인들과 비교하여 훨씬 호응이 컸던 것은 사실이지만 특별히 큰 소란은 없었다. 간혹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칭얼거리는 아이는 부모가 서둘러 데리고 나갔다. 그 밖의 자잘한 불편은 아이들과 함께 보는 영화라면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고 여겼기에 기사를 읽기 전까지는 사실 저런 논란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한국 아이들이 문제가 많다? 그렇다면 어른들은...
   

한 언론사가 페이스북으로 진행한 노키즈존 찬반 설문조사 ⓒ 페이스북

   
그런데 메이저 일간지에서 노키즈관 논란 자체가 생기는 현상을 비판하거나 고민하기는커녕 앞장서서 이런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논란이 잠잠해지기는커녕 오히려 확산되는 듯한 현실이 개탄스러웠는데, 하물며 답변 결과는 그야말로 절망적이었다.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영화관에서 특정한 누군가의 입장을 제한하자니, 하물며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에서조차 입장료를 지불한 나의 '권리'를 위해 아이들을 격리해 달라니.
 
물론 영화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방해하는 존재에 대해 불쾌한 감정이 생기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극장 안에서 소란을 피우는 사람들은 그전에도 어디든 존재했다. 큰소리로 결말을 떠들거나, 극 중 인물의 행동 하나하나에 코멘트를 하거나, 다리를 앞좌석에 올리거나, 좌석을 발로 걷어차거나, 냄새가 심한 음식을 먹거나, 핸드폰 불빛으로 다른 사람들의 시야를 방해하거나 하는 등.

그리고 그들은 모두 성인이었다. 그런데도 누구도 '노민폐관' 같은 것을 만들자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결국 '불편함'에 대한 불만은 유독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영화에 이르러 아이들에게만 집중적으로 향하고 있다. 이쯤되면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에 본격적인 아동 혐오가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아이들 자체를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아이들이 문제가 많기 때문에 그렇다는 답변을 한다. 외국 아이들은 안 그렇다면서 말이다. 외국 나가보면 아이들이 질서도 잘 지키고 말썽도 부리지 않고 민폐도 끼치지 않는다고. 외국 부모들은 한국 부모들과 다르게 '개념'이 있어 가정교육을 엄하게 실시하고, 그렇기 때문에 외국 아이들 역시 한국 아이들과 다르게 예의가 바르고 타인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는다고. 정말로 그럴까?
 
많이는 아니지만 몇 차례 외국을 다녀온 입장에서 사실 저 이야기는 약간은 동의할 수 있는 주장이다. 실제로 유럽을 다니는 동안 식당 안에서 뛰어다니거나, 공공장소에서 크게 떠드는 아이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 물론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 투정을 부리는 모습을 몇 번 보기는 했으나 한국보다는 비교적 통제가 잘 되는 분위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아이들과 한국 부모들이 유난히 문제라며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아예 이해를 못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간과하는 지점이 있는데, 유럽에서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 역시 공공질서와 에티켓을 훨씬 잘 지켰다는 것이다. 그들은 줄을 서야 하는 곳에서는 새치기하지 않고 순서를 지켰으며, 공공장소에서는 큰 소리를 내지 않았고, 사람을 앞에 두고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지도 않았고, 식당이나 카페에서는 집기를 마음대로 훔쳐가지 않았고, 타인을 불쾌한 시선으로 바라보거나 도를 넘는 참견을 하지도 않았다. 한국과 대비하여 민폐를 끼치는 어린이가 적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민폐를 끼치는 어른 역시 훨씬 적었다.

결국 한 사회 어린이들의 모습은 그 사회의 성숙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성숙도는 강제적으로 배제하고 격리한다고 저절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택배기사에게 아파트 주민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들, 대형 할인점 푸드코트에 비치된 반찬을 대량으로 가져가는 사람들, 지하철에서 다리를 아주 넓게 벌리고 앉아 큰 소리로 유튜브 방송을 보는 사람들이 있는 사회에서는 아무리 노키즈존을 만들어봤자 민폐를 끼치고 공공질서를 어지럽히는 아이들을 교육할 수도 없을 뿐더러 일상에서 겪는 불편함을 해소할 수도 없다는 이야기다.
 
많은 사람이 이런 상황이니 출산율이 0명으로 수렴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대한민국 전체가 노키즈존이 될 것이라고 우려를 한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더욱 무서운 건 언젠가 지금의 아동 혐오를 경험한 어린이들이 어른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어린 시절부터 차별과 배제를 학습하며, 타인에게 조금의 민폐를 끼치면 바로 격리되는 경험을 한 아이들은 자라서 어떤 어른이 될까? 그걸 생각하면 정말이지 마음이 갑갑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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