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23 19:51최종 업데이트 19.08.23 19:51
서른일곱 살 박수진, 그녀의 일터는 신당 '혜명화'다. 부산 해운대 바닷가에서 조금 물러서 있는 기장군 대라리에 있다. 집에서 30분 남짓 거리. 아침이면 스포티지를 몰고 출근한다. 남편 출근시키고, 딸 유치원까지 보내놓고 무당으로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녀는 엄마 양현주를 '신어머니'로 모시고 2년 전에 내림굿을 받았다. 그 후 1년 안팎, 새내기 무당으로서 이런저런 수련을 했다. 사실 무당으로서 홀로 서는 것은 쉽지 않다. 신어머니는 엄격할 뿐 찬찬히 일러주는 게 없다. 모두 혼자서 깨치고 터득해야만 한다. 열두거리 굿을 익히고 의례를 또한 익혀야 한다. 또 타령을 늘어놓고 춤사위를 펼치며 악사와 호흡을 맞추는 일은 오랜 세월을 필요로 한다.


그래도 엄마를 신어머니로 둔 덕에 맘 편히 하나씩 배워나갔다. 내림굿을 받던 날 엄마 양현주의 기도는 간절했다.

"칠성님을 모십니다. 인간 세계에선 저의 귀한 딸이지만 신의 길에서는 부족하고 어린애 같은 신딸 수진이옵니다. 맑고 맑은 정기를 내리시어 모쪼록 바르게 인도하여주십시오."

그렇게 해서 2018년 1월 신당을 열었다. 오방신장과 장군대감, 할아버지, 할머니 신령을 모셨다. 예지력을 도와주는 놋쇠방울과 삼지창을 장만하고 '소원성취' 축원문을 달았다.

새내기 무당의 고민
 

박수진이 신당 혜명화에서 기도하는 모습 놋쇠방울은 예지력을 도와주는 무구다. ⓒ 민병래

 
신기하게도 첫 달에 이틀 빼고 일이 들어왔다. 일을 하려면 먼저 '표적'이 왔다. 다리 아픈 사람이 올 예정이면 다리가 아팠다. 그렇게 한 달 동안 박수진은 몸과 마음이 고되고 가정도 돌보기 어려웠다.

박수진이 "엄마야, 나 힘들어 몬하겠다"고 하니 엄마는 "신명이 노하신다"고 야단을 쳤다. "신들이 주셨으니 머리도 함부로 자르지 마라"고 했다. "징소리를 많이 들어야 귀가 열린다"고도 했다. 엄마가 옆에서 신어머니로서 어깨도 부축해주고 엄격한 가르침도 줘서 박수진은 첫 고비를 그런 대로 넘겼다. 

박수진의 엄마 양현주는 타고난 무당이다. 58년 개띠인 그녀는 열다섯 살에 신병이 와 무당이 되었고 지금 동해안 별신굿을 잇고 있다.

양현주는 어려서 소꿉놀이 할 때도 풀잎을 뜯어 노래를 부르며 "나는 무당할 게 느그는 당가(손님) 해라"라고 하며 놀았다. 사람을 부를 때도 "울 엄마야~~"하며 곡을 하듯이 불렀다. 북을 들으면 장구를 쳤고 장구를 들으면 북을 쳤다. 소리학원도 안 다녔는데 목청이 트였다. 굿을 보면 밤을 새워서 외우고 해독을 했다.

그리고 스스로 굿거리를 짰다. 그것이 수망굿, "뱃사람들의 안녕과 원혼을 빌어주는 굿"이 되었다.

이런 신어머니를 모신 덕에 새내기 무당 박수진은 마음이 늘 든든하지만 이래저래 고민은 많다. 아직도 굿거리를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 무가(巫歌)도 외지를 못해 끊기기가 일쑤다. 장구의 북채도 어설프다. 고민은 또 있다. 신통이 부족해 점사가 풀리지 않는 날들이 있다. 그녀는 육각통을 이용해 '혼점'을 주로 보는데 공수를 제대로 못 받는 것이다. 그럼 오신 당가들과 어울려 그저 수다를 떤다.

"남편이 매일 밤 늦는 게 수상해? 내가 우울증이 왔다니까?"
"고3 아들놈이 잠만 잔다니까? 대학은 갈래나?"
"친정 엄마가 누우신 지 1년인데, 빨리 돌아가셨으면 하는 마음이야, 벌 받겠지?"

정신과에서 상담할 때의 거리감도, 고해성사의 은밀함도 없이 다 풀어헤쳐놓고 근심사를 털어놓는다. 함께 점사를 보고 토론도 마다하지 않는다. 때론 신령님에게 "제대로 도와달라"고 강짜도 놓는다.

그렇게 손님들과 어우러지다 보면 커피 대신 부침개가 올라가고, 더러는 자리를 옮겨 해운대 바닷가에서 소주잔도 기울인다. 이게 그녀의 하루하루 무당살이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대 시절에는 객지에서 미용실을 전전했다. 1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남편도 만났고 예쁜 딸도 뒀다. 지금은 돈도 벌고 '만신' 소리도 들으니 무당 창업(?)이 현재로서는 괜찮은 편이다. 
 

기장문화예술원에서 박수진 평상복으로 입은 무당 박수진은 여느 가정주부와 다를 바 없다. ⓒ 민병래

 
내림굿 받던 그날

박수진에게 신병이 오기 시작한 것은 서른세 살 무렵이었다. 그전에도 간간히 찾아오던 신병은 드나들기를 반복하다가 그 날은 사지가 마비될 정도로 심했다. 남편을 깨우고 싶었지만 새벽에 출근하는 그가 힘들 것 같았다.

전화를 끊었나 싶었는데 "골메기 당산 선황으로 가자"며 엄마가 달려왔다. 대변리 바닷가에 붙어선 그 곳은 거북등 같은 산길을 올라야 했다. 눈에는 저만치 보이는데 억새가 많아 길 찾기가 쉽지 않았다. 박수진은 몸까지 굳어져 발을 내딛기가 어려웠다. 새벽녘 한기에도 송알송알 알땀이 이마에 맺혔다.

겨우 당산에 이르러 양현주는 박수진에게 오방기를 쥐어주고 치성을 드렸다.

"뭐하러 오셨는교? 와 내 딸까지 데려가려 하시는교?"

엄마가 신령님께 타박하듯, 애원하듯 기도를 드리자 몸이 열리고 마비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오방기를 든 손이 위 아래로 조금씩 흔들렸다.

먼 바다에는 돋을볕이 올라오면서 햇살이 펼쳐져 눈이 부셨다. 손갓을 하고 둘러보니 햇무리를 뒤로 하고 의젓한 걸음걸이가 다가오고 있었다. 양현주가 '누구신교?' 물어보니, "내다. 할아버지다.", 다시 '누구신교?' 여쭈니 "내다, 할머니다"하는 진중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하늘 먼 곳에서 제금이 나지막하게 챙챙되더니 문득 커지기 시작했다. 볕은 어느 새 아침 해로 바뀌었다. 오방기를 든 손은 제멋대로 놀았다. 마비가 풀린 발에 힘이 들어가더니 겅중겅중 저절로 놀았다. 팔이 오방기를 휘두르는지 오방기가 팔을 잡아 이끄는지 세찬 몸짓으로 머리는 풀어 헤쳐졌다.

박수진의 눈에 어슴프레 9대조 할아버지가 선화줄을 타고 내려오는 게 보였다. 발밑 낭떠러지에서는 할머니가 고운 자태로 계단을 타고 올라왔다. 동이를 등에 지고 오시며 "만신제자, 내 제자 이 물동이 모시고 만중생 받들 '업' 주러 내가 왔다"고 하셨다. 박수진의 겅중대는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두 팔을 들고 고개를 젖히면 하늘 저 멀리로 빨려 올라갈 듯했고 땀은 바닷물을 보탤 정도로 흘렀다.

그때 박수진의 입에서 "걱정마라 도와줄게, 같이 닦자, 너무너무 돌아왔다"란 말이 튀어나왔다. 그게 첫 공수였다. 그의 옆에는 어느 결에 할아버지, 할머니, 장군대감, 오방신장, 별상동자가 옆에 서 있었고 따스한 기운이 그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그 날이 박수진의 내림굿 날이 되었다. 2017년 음력 3월 8일이다.
  

신당 혜명화에서 박수진 하늘을 향해 청배할 때 그녀는 절절한 모습이다. ⓒ 민병래

 
사실 양현주는 박수진이 무당 되는 게 싫었다. 양현주가 신내림을 받았던 1970년대는 수난 시대였다.

새마을운동이 벌어지자 동네마다 '미신 타파'를 한다며 모든 신령을 내쫓았다. 장구와 놋쇠방울, 삼지창을 짓밟고 태웠다. 어렵게 굿판을 벌리면 경찰들이 '무조건' 잡아갔다. 사람들이 미신이라고 수근거렸고 애들은 반말이었으며 사탄이라는 손가락질도 받았다.

그렇게 걸어온 무당의 길, 양현주에겐 운명이면서 가시밭길이었다. 그래서 딸이 이 길을 걷지 않았으면 했다.

그런데 외면하고 싶어도 딸은 신병을 앓기 시작했다. 박수진이 서른세 살 무렵 간간히 사지에 마비가 왔다. 그저 "병원 가보라"하면서도 "이렇게 풀릴 일이 아니기에" 근심이 깊어갔다. 더구나 그때는 박수진의 딸이 두 살이었기에 걱정이 더 컸다.

그래서 남몰래 눌림굿을 했다. 신령님께 "딸의 곁에서 떠나가 달라"고, 기도가 통했는지 잠시 머물렀던 할아버지 할머니는 오간다는 말도 없이 떠나갔다.

하지만 눌림굿 효험은 그저 잠시, 딸의 얼굴에는 신이 눌러앉은 기색이 완연해졌다. 언제가 올 날, 마음의 준비를 해갔다. 그랬던 터에 "사지가 마비되었다"고 딸이 연락하자 그날은 결심했다. 이왕 오신 거면 제대로 받자고. 그래서 허겁지겁 내림굿을 했던 것이다. 제물을 제대로 못 갖춘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지만...
 

묘은당에서 양현주 양현주가 북채를 잡으면 기운이 느껴진다. ⓒ 민병래

  

엄마와 딸 두 만신이 함께 신어머니와 신딸인 두 사람은 이렇게 나란히 앉으면 수다가 끝없이 이어지는 엄마와 딸이다. ⓒ 민병래

 
마음을 달래는 게 무당의 일

신당 혜명화에서 박수진의 하루하루는 즐겁다. 그렇지만 짜증날 때도 많다. 간 보러 오는 당가들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대감 할아버지가 "커피 한 잔 주고 좋은 말해서 보내라"고 일러주신다. 건달들도 더러 오는 편이다. 한 해 '관재수'를 물어보는 것에서 시작하지만 지분대며 농이 걸어진다.

딱한 처지의 당가들도 많다. 굿은 말할 것도 없고 점사 볼 돈도 없어 과일 한 꾸러미 사들고 와서 쭈뼛거린다. 그러면 북어포 하나 들고 바닷가에 가서 용왕님께 같이 청배한다.

그녀는 무당의 길이 "마음을 달래주는 일"이라고 말한다. 세상사 근심은 모두 "마음의 병"이기에 "굿도 점사도 마음 둘 곳을 정해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신당 혜명화의 일과가 끝나면 그녀는 바닷길을 따라 집으로 간다. 그녀는 내림굿을 받을 때 남편이 제일 걸렸다. 고맙게도 그는 "당신 옆에 신령님이 있으면 자기에게도 힘이 된다"고 받아들여줬다. 그런 남편의 이해 덕에 박수진은 힘이 난다. 내 가정이 평안해야 남의 가정도 편하고 그래야 신명도 잘 들어오시는 까닭에서다.

여섯 살 딸은, 할머니 양현주의 내림을 받아서인지, 노래며 춤이 남다르다. 박수진은 딸에게도 "신병이 오면 어쩌지" 문득 문득 겁이 난다. 진도씻김굿 송순단 선생의 딸 '송가인'처럼 예인(藝人)으로 성장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바닷가로 이어지는 귀가길, 그녀의 입에서 이젠 제법 무가가 흘러나온다.

활등처럼 굽은 길을 화살처럼 달려갈 때
저승길이 멀다하니 문턱 밖이로구나

꿈결같은 세상살이 헌신같이 저버리고
사람은 죽어 범이 되고 범은 죽어 꽃이 되네

다 겪고 겪다보면 지친다. 지치면 넘어진다
넘어지면 일어나거라 일어나면 또 넘어진다

또다시 일어나야 하느니라 수없이 넘어지고 수없이 일어나거라
넘어지고 넘어지다 보면 마침내 네가 설 곳이 있는니라,
 

<못다 한 이야기>

1. 이 글을 쓰는 데 양현주, 박수진 만신과의 인터뷰가 기초가 되었습니다. <만신 김금화>라는 김금화의 자서전, <무당, 여성, 신령들>이라는 '로렐 켄달'(젊은 인류학자)의 저서도 참고가 되었습니다.

2. '일'은 굿이나 점사요청을 받을 때를 말하는데 굿을 지칭할 때가 많습니다. '공수'는 신령님이 무당을 통해서 당가(손님)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말입니다.

3. 글 마지막에 나오는 무가는 <김금화의 무가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박수진의 B컷>
 

청배하는 박수진 청배하는 모습은 절절하다 ⓒ 민병래

   

장군복을 입은 만신 박수진 장군신령 복장을 하면 서릿발같은 기운이 있다. ⓒ 민병래

  

청배하기 전 묵상하는 박수진 묵상을 위해 모은 양손의 손톱 화장이 눈에 띈다. ⓒ 민병래

 
<박수진을 만든 시간들>
 

엄마 양현주와 함께. 오른쪽이 박수진. ⓒ 박수진

 
 

27살 무렵 어느날의 박수진. ⓒ 박수진

  

2019년 7월 돈화문 국악당 굿힐링 페스티발에서 갈라쇼 공연 모습. ⓒ 이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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