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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8.15 17:42 수정 2019.08.18 14:27
환경분야에서 프랑스는 매우 느린 행보를 보여 온 게 사실이다. 이웃나라 독일의 녹색당이 차분히 지지를 넓혀가며 환경분야의 모범국가로 착실히 나아가는 동안 프랑스에선 이렇다 할 확고한 정치세력도, 상징적인 인물도 없었다. 프랑스녹색당(EELV)이 어중간한 스탠스를 취하며 간신히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다.

후쿠시마 원전사태가 체르노빌의 악몽을 소환하며 공포로 덮쳐왔을 때 독일은 2022년까지 원전을 폐쇄하겠다고 단호하게 선언했다. 이에 반해 프랑스는 70%에 이르는 원전의존율을 2025년까지 50%로 낮추기로 했을 뿐이다.

만장일치로 통과한 법안
 

"적게 버리고, 더 잘 먹어요"프랑스 농림부가 제작한 포스터. "까마귀는 더 이상 치즈를 떨어뜨리지 않는대요", "밤 12시가 되면 신데렐라의 호박 마차로는 맛있는 호박죽을 만들어요." "빨간 모자는 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잘 알아요" 등 음식물 낭비를 예방하는 문구가 적혀있다. ⓒ 프랑스농림부


 
그런데 최근 2, 3년 전부터 달라졌다. 프랑스에도 확실한 녹색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13.5%의 표를 얻으며 녹색당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숱한 징조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 첫 번째 또렷한 징후는 2016년 통과·시행된 '음식물 낭비와의 전쟁 관련 법'이다. 과거엔 집권당이었으나 현재는 소수 정당으로 전락한 사회당의 기욤 갸로(Guilaume Garot) 의원이 제안한 이 법안은 놀랍게도 하원과 상원에서 각각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법안의 요지는 400㎡(121평) 이상의 면적을 가진 슈퍼마켓은 팔리지 않는 재고 식품을 폐기하는 대신 유통기한 최소 48시간 이전에 이를 수거해 필요한 사람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관련 구호 단체들과 파트너십을 맺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위반할 시에는 위반 건수마다 3750유로(약50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지금까지 '푸드 뱅크'라는 이름으로 시민운동 차원에서 되던 일을, 국가가 유통기업의 사회적 책무로 부여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음을 전하는 프랑스 언론은 "세계 최초"라는 사실을 힘주어 강조했다.

프랑스 음식문화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될 만큼 프랑스는 자타가 공인하는 식도락의 나라다. 먹는 즐거움에 많은 투자를 하는 이 나라에서 환경에 대한 각성이 음식물에서부터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닌 듯하다. 프랑스에서 낭비되는 음식물은 연간 100억 톤에 달한다.

법안 시행 2년 후 결과는 '대성공'이다. 시행 1년 만에 푸드 뱅크에 수거된 음식물은 지역에 따라 15~50%까지 늘어났고 평균적으로 28%가 늘어났다. 400㎡ 이상의 슈퍼마켓 중 95%가 시민단체와 파트너십을 맺고, 재고 음식물을 기증했다. 더불어 음식물 재분배를 담당하는 시민단체나 스타트업, 기구도 급속하게 늘어나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게 됐고, 시민들의 의식 변화도 빠르게 이뤄졌다.

더 강한 채찍질  

프랑스 파리 풍경.(자료사진) ⓒ pixabay


 
이에 고무된 프랑스 정부는 지난해보다 더 종합적이고 한층 강화된 법안을 내놨다. 지난 2018년 10월 의회를 통과한 법안은 '농산물업체간 관계 균형과 건강하고 지속적인 음식물에 관한 법안'이란 긴 이름을 달고 있는데, 식품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지속적으로 건강한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야심한 포부를 품고 있다.

이 법안은 크게 4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 ▲ 정당한 가격을 농산물 생산자에게 지불하여 그들이 자신들의 일을 통해 존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고 ▲ 보건위생, 환경, 영양 측면의 질적 향상 ▲ 동물복지 강화 ▲ 건강하고 안전하며, 지속가능한 음식물 생산과 보급 장려가 그것이다.

법안은 구체적 실행안도 담고 있다. 농산물 가격 책정은 생산자와 유통업체 대표 그룹의 협상을 통해 결정하되, 생산자 측에서 제시한 생산원가를 핵심적 근거로 하여 조정해야 한다. 생산자 보호에 초점을 맞춘 농산물 시장 균형 방안이다.

또 2022년까지 급식소에서 제공되는 식품의 절반은 지역 유기농산물 등 건강하게 생산한 식품으로 사용하도록 하며, 생태다양성을 파괴하는 화학약품으로 생산된 농수산물의 유통을 금지하고, 사육·이동·도축 과정에서 발생하는 동물 학대행위에 대한 처벌도 강화한다. 플라스틱 식기도 급식소와 식당에서 단계적으로 퇴출해야 한다.

법안의 적용범위도 대폭 확대했다. 슈퍼마켓뿐 아니라, 각종 급식소(학교, 직장, 병원, 요양소 등)와 식품제조 업체까지 이 법안을 따라야 한다. 특히 급식소들은 관련 시민단체와 파트너십을 맺고 사용하지 못한 음식이 필요한 사람에게 제공되거나 싼값에 판매되도록 해야 할 의무가 생겼다.

직접 음식물을 수거해 재분배하는 현장의 목소리도 대체로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 법안의 확고한 성공을 위해선 정부가 대형 유통매장들이 몰래 음식을 버리는지 지속적으로 감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높다. 일부 매장들이 여전히 이 법안을 이행하지 않고 있음에도 벌금이 부과된 적 없다며 정부의 보다 결연한 실행의지를 촉구하기도 했다. 대형 유통매장 입장에서도 음식물 폐기 비용을 줄일 수 있고, 매출의 최대 5% 감세혜택도 있어 나쁠 것 없는 조건이다.

'환경 우등생'으로 거듭날까
 

에두아르 필리프 프랑스 총리. ⓒ 연합뉴스


 
지난 주 에두아르 필리프 프랑스 총리는 "음식물 낭비는 사회적 스캔들이며 생태적 난센스"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모든 종류의 음식물 낭비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방안을 동원해 2025년까지 음식물 쓰레기를 50% 줄이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파리협정의 주최국이면서도 이행에선 더딘 행보를 보여 시민사회로부터 강한 질타를 받아온 프랑스 정부가 '음식물 낭비와의 전쟁'에선 선두주자가 되겠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나아가 5개 관계부서와 55개 관계기관들이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협약에 서명하고, 새로운 출정식에 나선 상태다. 또 시민들의 의식 변화를 위해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음식물 낭비 방지 앱을 소개하고, 이를 언론매체들이 활발하게 전하고 있다.
 
[CheckFood] 장을 보고난 후 각각의 음식물에 찍힌 바코드를 이 앱에 스캔해두면 유통기한이 임박했을 때 알람이 울린다.

[Frigo Magic] 냉장고에 음식물들이 제법 있는데, 어떤 식사를 준비해야 할지 아무 생각이 없을 때 남아있는 식재료로 완성할 수 있는 음식을 제안해준다.

[Zéro-Gâchis] 집주변 슈퍼마켓에서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아 싼가격에 팔고 있는지 알려준다.

최조의 법안을 발의한 기욤 갸로 의원은 법안이 기업과 유통업체들 사이에서만 적용된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으며 시민 의식을 바꿀 교육과 캠페인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학교에서부터 음식물이 낭비되지 않는 방향의 식습관 교육을 이행하고, 그 구체적 실천방안까지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최초의 시도는 확고한 승리였으나 이제 1라운드에서 이겼을 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들은 프랑스가 채택한 음식물 낭비 방지 법안을 유럽 전역으로 확산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서명운동이 시작되자마자 서명자가 100만 명을 돌파했다.

포장을 뜯기도 전에 버려지는 음식이 전세계 음식물의 1/3에 해당한다고 한다. 버려지는 음식물을 구하겠다는, '프랑스 일병'의 의지가 유럽을 넘어 전세계로 확산된다면 프랑스는 '환경분야 열등생' 이미지를 마침내 벗고 지구를 구하는 발걸음에 동참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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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글을 쓰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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