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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8.26 13:38 수정 2019.08.26 13:38
사법농단이란 초유의 사태 이후 사법개혁 목소리가 높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독일 현지에서 약 1700km를 누비며 그 해법을 고민했습니다. 이 연속보도를 통해 '서초산성'이 되어버린 한국 법원이 나아갈 방향을 함께 찾아보고자 합니다.[편집자말]

독일 뮌스터대학 법대 파비안 비트렉(Fabian Wittreck) 교수. ⓒ 남소연


신호등이 바뀌자 수십 대의 자전거가 제자리에 섰다. 골목을 지날 때마다 곳곳에서 자전거가 튀어나왔다. '자전거의 도시'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풍경을 따라가다보니 뮌스터의 베스트팔렌 빌헬름대학교(Westfälische Wilhelms-Universität Münster, 아래 뮌스터대)가 나타났다.

6월 26일(현지시각) 뮌스터대 공공법 및 정치학연구소에서 만난 파비안 비트렉 교수는 취재진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는 공공법과 법학개론을 강의하며 교수자격 취득과정(Habilitation, 박사 취득 후 교수 임용을 위한 별도의 자격) 논문에서 독일의 사법행정을 다뤘다.

독일은 행정부가 사법행정 전반을 관리·감독하고, 입법부까지 법관 인사에 참여한다. 비트렉 교수는 그 뿌리가 '민주주의'라고 설명했다. 독일 사법은 행정뿐 아니라 재판에서도 참심제로 국민들의 참여와 권한을 보장한다. 법원은 국민을 대표하지 않지만, 국민의 삶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독일 사회는 법원의 결론이 존중과 신뢰를 얻으려면 법원이 적절히 견제받아야 한다는 합의 아래 현재의 시스템을 완성했다.

100점짜리 시스템은 물론 없다. 비트렉 교수는 정부와 의회가 법관 인사에 관여하는 것을 두고 '정치권 입김이 세다'고 반발하는 이들도 있다고 했다. 시민이 판사와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하는 참심제 역시 최종 결론을 내리는 과정에선 직업법관들의 영향력이 크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독일이 현 사법체계를 지켜가는 까닭은 무엇일까.

비트렉 교수는 대법원장에게 법관 전체의 인사권이 주어진 한국 사법부의 현실을 들은 뒤 "그런 상황이라면 법관의 독립성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논문에서도 사법행정을 독점한 법원이 전혀 견제받지 않는다면, 오히려 판사 개개인의 독립성을 더욱 크게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결국 그 지향은 민주주의라고 설명했다.

"단순히 법원을 통제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법관들이 정당하게, 올바르고 공정하게 일하는지 감독해야 한다. 또 (법원에) 문제가 생겼을 때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권한을 (독일에선) 의회와 행정부가 맡는다. 이렇게 전체적으로 민주주의를 완성한다는 의미가 있다."

다음은 비트렉 교수의 연구실에서 2시간 가까이 나눈 대화를 정리한 내용이다. 낯선 동양의 기자들과 수줍게 인사하던 그는 전공 이야기를 시작하자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30도를 넘긴 기온보다 독일 사법의 민주성을 설명하던 비트렉 교수의 눈빛이 더 뜨거웠다.

"사법'부' 독립? 우리는 판사의 독립이다"
 

독일 뮌스터대학 법대 파비안 비트렉(Fabian Wittreck) 교수. ⓒ 남소연

 
- 한국과 독일의 사법행정은 그 주체가 어디냐는 점이 가장 큰 차이다. 독일이 사법행정권을 행정부와 입법부에 준 역사와 배경이 궁금하다.
"일단 전통의 차이다. (약 150년 전) 황제시절부터 법관의 임명과 인사는 행정부가 정했다. 그것을 현재까지 유지하는 이유는 재판권의 관리감독을 결국엔 의회가 책임지기 때문이다. 단순히 법원을 통제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법관들이 정당하게, 올바르고 공정하게 일하는지 감독해야 한다.

그러면 주체는 누구여야 할까. 다들 의회라고 봤다. 의회는 국민을 대신해 의무와 책임을 진다. 다만 의회가 직접 감독하기 힘드니까 의회에서 법무부 장관을 뽑고, 그 장관이 법원을 감독하는 식이다. 이 감독은 통제라기보다는 문제가 생겼을 때 법원 밖에서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 권한을 의회와 행정부가 맡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전체적으로 민주주의를 완성한다는 의미가 있다."

- 한국 상황에 비춰보면 행정부의 사법행정 개입이 또 다른 사법부 독립 침해일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그것은 '사법부 독립'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탈리아처럼 한국과 비슷하게 사법행정을 하는 나라들은 사법'부'의 독립을 말하는데, 독일에서 사법의 독립은 개별 판사의 독립을 의미한다(한국 헌법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한 반면, 독일기본법은 '사법권은 법관에 속한다'고 하되 '사법권은 법원에 의해 행사된다'고 정했다. - 기자 주).

첫째, 한 판사의 재판과 판결에 관해 누구도, 그 어떤 지시를 할 수 없다. 또 판사는 판결을 이유로 부당한 처우를 받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강제 전보나 해임이 안 된다. 이 때문에 독일은 개별 판사의 징계를 (입법부나 행정부가 개입할 수 없는) '재판'으로 처리함으로써 법관의 독립성을 보호한다. 같은 유럽이지만 이탈리아의 경우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과 법관 인사·징계 책임을 가진 것과 다르다."

'1명이 3천명 인사를...' 깜짝 놀란 독일 교수

- 한국은 이탈리아와 비슷하다. 대법원장 한 명이 전국 법관 약 3000명의 인사권을 쥐고 2년에 한 번씩 자리를 옮기도록 한다.
"다른 나라의 사법시스템을 평가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지만, 독일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경우를 전제하고 의견을 내겠다. 개별 판사들이 대법원장의 인사가 부당하다고 생각할 경우 저항하거나 법적 다툼을 할 수 있는가?"

- 거부권보다는 사전에 희망을 받아서 전보를 하고, 이의절차는 없다. 징계는 단심제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정도다.
"으흠(약간 놀라며)! 만약 독일 제도가 그렇다면 법관의 독립성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서 법관선출위원회를 좀더 설명하겠다. 바이마르 공화국(1919~1933년, 독일 최초의 의회민주제 국가) 시절 판사계는 매우 보수적이었다. 한국처럼 '판사들 스스로 법원 일을 정해야 한다'는 의식이 있었다.

나치 시절 등을 겪으면서 독일 사회 전반에서 이렇게 가면 안 된다, 민주적 법원을 세우려면 입법부와 행정부가 참여해야 한다는 인식이 법조계에서 생겼고, 전쟁 후 법관선출위원회가 만들어졌다. 현재 16개 주 가운데 상당수가 이 제도를 갖고 있고, 보통 주 의회 의원 8명과 판사 6명, 변호사 1명으로 위원회가 꾸려진다. 이렇게 해야 법원이 민주주의를 담아낸다고 봤기 때문이다. 물론 이 개혁안이 나왔을 때 보수적인 판사들은 '법관의 독립성을 침해한다'며 강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개혁적 판사들, 시스템을 깊이 고민한 판사들은 이 길이 맞다고 했다.

그러나 정당이 법원에 영향력을 준다는 지적이 있긴 하다. 예를 들어 한 주정부에서 판사 10명의 승진을 결정한다면, 기민당(CDU)이 5명, 사민당(SPD)이 5명을 추천하는 식으로 다수당 중심의, 정당별 선호하는 인사를 하게 된다. 다만 정당이 법관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는 일은 거의 없고, 그런 사실이 알려진다면 판사는 물론 정당 역시 강한 비판을 받게 된다. 그래도 한국에 비해선 정치권의 영향이 약하다고 할 수 있다."
 

독일 뮌스터대학 법대 파비안 비트렉(Fabian Wittreck) 교수. ⓒ 남소연

 
- 한국도 헌법재판관 후보자 추천 때 의회 몫이 있고, 그에 따라 진보 혹은 보수 성향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독일도 비슷한가.
"연방헌법재판소의 경우 두 개의 합의부(Senate)가 있는데, 각 부마다 8명씩 모두 16명을 임명한다. 지금까진 기민당과 사민당이 각 부마다 4명씩 추천해 보수/진보성향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소수정당인 녹색당(Die Grüne)과 자민당(FDP)도 법관 추천권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임명 이후 판사들은 정치권의 영향력을 의식하지 않는다. 추천 정당에서 기대한 것과 다른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관이 그 정당으로부터 비판 받은 사례도 있었다. 법관들은 임명 전에는 정당의 추천권을 신경 쓰는 듯하지만 임명 후부터는 개의치 않는다(웃음)."

- 의회의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권이 있지 않은가?
"이론적으로는 가능한데, 의회가 법관선출위원회와 함께 결정한다. 전쟁 후에 만들어진 제도로 '법관기소(Richteranklage)'라고도 한다. 법관이 반민주적 행위를 했을 때 탄핵하기 위해서 도입됐다. 의회가 법관고발장을 발의하는데, 주 단위에서 생긴 일이라면 주 헌법재판소가, 연방 차원이라면 연방헌법재판소가 판단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법관 탄핵은 한 번도 없었다."

'법정 밖 은밀한 거래' 상상 어려운 이유

- 미리 이메일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소송 지연 의혹 등 한국의 사법농단 사례를 소개했다.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다.
"비슷한 일이 독일에서 발생했다고 가정하면, 형법 339조 법왜곡죄(Rechtsbeugung)를 적용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 수 있다. 그런데 법왜곡죄는 독일에서도 매우 사례가 적다. 평균적으로 1년에 1건 수준이다.

법왜곡죄 적용이 어려운 이유는 결국 판사가 다른 판사를 재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까마귀는 다른 까마귀 눈을 찌르지 않는다(Einen Krähe hackt der anderen kein Auge aus)'는 독일 속담이 있다. 판사도 다른 판사에게 연대의식을 갖는다. 매우 심각한 경우에만 비판적으로 본다. 또 사건을 배정받으면 매우 어렵고 무거운 사안으로 인식한다(법왜곡죄는 자유형 1~5년에 처해진다. 최소 형량인 1년만 나와도 독일법관법에 따라 강제해임된다. - 기자 주).

다만 이 사례의 경우 피해자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판사를 법왜곡죄로 고소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 유죄판결을 확신할 수는 없지만, 법리 다툼은 가능하다. 또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재판 지연에 따른 손해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국가(법원)가 한쪽 이익을 위해 위법하게 재판을 지연시켰기 때문이다."

- 이 일로 재판 받는 전·현직 판사들은 법원을 위해서, 선제적 사법행정을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어려운 문제다. 독일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기도 하고, 개별 사건이 정확히 어떻게 발생했는지 세심히 따져야 한다. 다만 법원 안에서 재판 정보가 상급자에게 보고되고, 그것을 법원과 행정부가 주고받는 일은 독일에서 불가능하다.

독일 사법행정은 수직적 체계가 아니다. 오직 재판만, 항소로 1심 법원부터 대법원까지 올라가는 구조다. 그러나 주 대법원은 주 지방법원에 그 어떤 권한도 없고, 연방법원은 주 단위 법원과 아예 연관이 없다. 행정부인 법무부와 법원 사이에 수직 관계가 있을 수 있는데 이것도 판사의 비리 등이 이뤄졌을 때다. 이 관계는 개별 법원과 행정부 사이에서만 존재한다."

- 사법행정이 인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독일에선 법원이 사무분담만 하고, 그 외에 다른 일반행정이나 제도연구, 국제교류 등은 행정부 쪽에서 한다고 이해하면 맞는 것인가.
"인사 외 다른 일들, 예를 들어 공간관리나 예산업무 등은 법무부 감독 아래 법원에서 처리한다. 법원마다 행정부서(Gerichtsverwaltung)가 있다. 완전히 독립한 부서는 아니다. 때론 법무부 장관이 법원장에게 예산집행 등에 관해 지시를 내릴 수 있다. 이 경우 법원장은 다시 법원 판사들에게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고."

엘리트여도 엘리트 아닌 그들, 문을 열다
  

독일 뮌스터대학 법대 파비안 비트렉(Fabian Wittreck) 교수. ⓒ 남소연

     
- 지금까지 대화를 종합해보면, 독일에선 행정부와 입법부가 법원에 영향을 미치는 의의를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찾는다고 보인다. 그렇다면 참심제(Schöffengericht)도 비슷한 취지인가.
"행정부와 의회가 법원에 개입함으로써 법원은 민주적 정당성을 얻는다. 참심제 역시 그렇게 볼 수 있다. 참심제에는 민주적 적당성과 국민의 판사 감독, 재판의 공개성에서 나온 제도다. 여기서 공개성은 참심제의 기원인 프랑스 혁명기의 배심제(Geschowrenengericht)에서 연유한다(독일에선 배심제와 참심제를 동일하게 본다 - 기자 주).

주 행정법원과 사회법원, 노동법원, 일반법원(민·형사), 그리고 연방행정법원과 연방사회법원, 연방노동법원은 참심제를 한다. 다만 연방일반법원엔 없다. 또 일반법원은 1심(주 지방법원, 주 고등법원. 독일은 범죄의 경중에 따라 1심 법원이 다르다. - 기자 주)만 참심제를 운영한다. 당사자 희망에 따라 참심제 진행 여부를 정할 수는 없고, 보통 직업법관 3명과 '명예판사(Ehrenamtlicher Richter)'라고 불리는 참심판사(Schöffenrichter) 2명이 모여 재판부를 구성한다(주 지방법원은 직업법관 1명과 참심판사 2명)."

- 참심판사는 어떻게 정하는가.
"조금 복잡하다(웃음). 기본적으로 의회가 정하는데, 주 지방법원이면 시의회(Stadtrat)에서 심사숙고해서 참심판사를 정한다. 자격은 25세 이상에, 전과가 없다는 조건이다. 그리고 종교인이나 공무원 등 특정 그룹은 참심판사가 될 수 없다. 참심판사의 임기는 4년이다. 연임도 가능하지만 보통 4년만 한다. 참심판사는 공식적으로는 직업판사와 동등한 지위로 결정권을 갖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직업판사들의 견해가 재판에 좀더 큰 영향을 준다."

- 한국에서 사법농단이 일어난 원인 중 하나로 사법행정이 꼽히지만 또 다른 원인을 법원의 폐쇄성에서 찾기도 한다. 실제로 한국 판사들은 5000만 인구 중 3000명뿐이라 소수의 엘리트로 받아들여진다. 판사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독일 판사들은 어떤가.
"독일 판사는 인구 8000만 명 중 약 2만 명이다.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서도 (인구 대비 판사 수가) 많은 편이다. 판사들의 엘리트 의식도 두드러지진 않다. 물론 판사라는 직업이 갖는 명망은 있다. 법대 학생들을 봐도 판사가 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특별한 엘리트 의식은 없다."

사법농단 이후 한국 판사들은 법원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어달라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에게 오류란 있을 수 없다고 한다. 한국 법원이 말하는 '사법 독립'이다. 하지만 독일 판사들은 자신의 양심을 지켜 정의로운 판결을 하는 것이 사법 독립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곧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회의 합의도 존재한다. 비트렉 교수가 법관선출위원회 등 모든 제도의 목적이 법원의 민주주의, 그리고 전체 민주주의의 완성이라고 설명한 배경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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