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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8.01 13:34 수정 2019.08.01 13:34

프랑스 파리에 유례없는 폭염이 덮치면서 시민들이 에펠탑 인근 분수대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 ⓒ 연합뉴스/AP


지난 7월 25일 파리의 수은주는 42.5°C를 찍었다. 1855년 프랑스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후 최고 기온이다. 프랑스 기상청은 일주일 전부터 이 믿기 힘든 수치를 예고했고, 주초부터 기온이 34, 37, 38로 치닫더니 마침내 믿을 수 없던 예언이 실현되었다.

마치, 지구 온난화를 음모론이라 믿는 이들에게 본때를 보여주려 했던 것처럼, 수은주는 최선을 다해 높을 곳을 향한 후 목적을 달성한 다음 날 미끄럼 타듯 20도 가량을 쑤욱 내려가 평년 기온을 되찾았다.

16-26°C. 이것이 파리의 7월 평균 기온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면 카디건을 찾아 걸치게 되고, 에어컨은 물론이고 선풍기도 사치품으로 보이게 하는 날씨다. 폭염이 물러간 후 사람들은 마치 지옥에서 생환한 듯했다.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살아있음을 감사해 했고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

"지구 온난화는 중국인들이 꾸며낸 거짓말"이라며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한 트럼프가 아니더라도, 세상에는 하루가 다르게 뜨거워지는 지구의 속사정을 남의 일인 듯 치부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그러나 제대로 뜨거운 맛을 본 프랑스에선 이제 그 누구도 함부로 입을 놀릴 수 없게 됐다. 이 화끈한 여름이 프랑스에 준 가장 큰 교훈이랄까.

1.5도, 인류가 합의한 목표
 

프랑스 의회에 온 청소년 환경운동가 툰베리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16)가 7월 23일(현지시간) 연설하기 위해 프랑스 파리 국회의사당에 도착했다. 프랑스 하원의원 162명이 속한 초당파적 모임 '생태·연대적 전환의 가속화'의 초청으로 프랑스를 방문한 툰베리는 이날 지구온난화 문제에 각국 정부와 지식인들이 더 큰 노력을 기울일 것을 촉구했다. ⓒ 연합뉴스/EPA


파리의 수은주가 42.5를 찍던 바로 그 주에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어린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16)가 프랑스에 방문했다. 하원의원 162명의 초청으로 의회에 와 연설을 했다. 지구와 태양은 그녀의 의회 연설의 효과를 극대화 하려고 작정한 듯 사상 유례없는 무더위를 파리의 대기 위에 뿌려놓았고, 실제로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다.

그들 말대로 어린 소녀에 불과한 그레타 툰베리를 향해 일부 우파 인사들은 중세 때나 보았음직한 마녀사냥을 거침없이 감행했다.

"반바지를 입은 예언자(어린 나이를 조롱하는 표현)"
"스웨덴에서 온 사이보그"
"녹색자본주의의 꼭두각시"


그들은 그레타 툰베리의 외침에 가세하여 각 정부에 기후 협약을 지키는 행동에 나서줄 것을 촉구하며 파업에 나선 청소년들을 "양떼들"이라 불렀다. 일부 우파 의원들은 그녀의 의회 발언 보이코트를 트위터에서 제안하기도 했다. 녹색의 잔다르크 출현 앞에 우파들이 일시에 발톱을 드러내자 언론은 "정신 줄을 놓은 발언들"이라며 상세히 보도했다.

이성을 가진 프랑스 시민들은 인터넷 상에서 이들을 맹비난하며 격론을 벌였다. 마침, 지독히도 반환경적이라고 평가받은 프랑수아 드 뤼지 환경부 장관이 글로벌 기업들의 로비스트들을 맞이하기 위해 초호화 파티를 열어 장관직을 물러난 직후였다.

이 모든 소란을 목격하며 마침내 프랑스 의회에 선 소녀는 전혀 주눅들지 않고 연단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은 지구를 위협하는 진짜 문제들보다, 나와 시위에 가세하는 청소년들을 더 무서워 하는군요."

또한 이렇게 일갈했다.

"내가 하는 말을 당신들이 꼭 들어야 할 필요는 없죠. 그저 아이가 하는 말에 불과하니까요. 그러나 과학자들이 제시한 내용, 바로 이곳, 파리에서 이뤄진 협약에 대해서는 알아야 합니다. 당신들이 일부 아이들의 의견일 뿐이라 폄하하는 내용이 바로 거기에 적혀있고, 나는 그것을 환기할 뿐입니다."

벌거벗은 임금님들

1.5℃. 2015년 12월 파리 유엔기후협약 총회(COP21)가 만장일치로 채택한 '파리협정'이 규정한 온도 수치이다. "금세기 말까지 지구평균온도의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 아래로, 1.5℃를 넘지 않도록 모든 국가가 노력 한다"는 내용이다. 인류가 치명적인 지구온난화를 피하고, 해수면 상승과 극심한 가뭄, 홍수 등 기후변화를 극복할 수 있도록 최소한으로 합의한 결과다.

그 소중한 합의가 이뤄졌던 장소인 파리에서조차 명백한 진실을 환기시키는 소녀를 '마녀'로 몰며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인 일군의 무리가 존재했다. 그들의 행위는 맹렬한 토론과 분석의 장을 열었다. 후세들이 지구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해 속도를 조금씩만 늦추자는 지구적 합의는 어른들의 지구적 기만이었던 것일까.

정신분석가 롤랑 고리는 그레타 툰베리의 방불이 불러일으킨 사회적 히스테리를 안데스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에 등장하는 소년과 위선에 가득 찬 어른들의 모습에 비유했다. 위선과 타협에 길들여진 어른들은 눈앞에 명백히 드러나는 진실을 볼 줄 모르며, 그것을 보고 말할 수 있는 용기와 존엄을 지닌 존재는 이제 어린이들뿐이라는 주장이다.

그레타 툰베리는 소비자본주의가 무자비하게 파괴한 자연을 살아가야 할 땅으로 물려받은 불행한 세대의 대변인이다. 그와 청소년들은 과학자들이 이미 도출해 놓은 데이터에 근거해 전 세계에 약속을 이행하라 촉구할 뿐이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이윤의 극대화가 진리로 여겨지는 세상에서 이를 거스르는 위험천만한 목소리이기도 하다.
 

영국 환경단체 글로벌 위트니스(Global Witness)가 밝힌 피살된 환경운동가들의 숫자. ⓒ 글로벌위트니스


그레타는 프랑스 '보수 꼴통 아재들'의 독설에 대차게 응수하며 자신의 싸움을 이어가고 있지만, 지구 한편에서는 이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국제적 시민단체 글로벌 위트니스(Global Witness)에 따르면 지난해 최소 164명의 환경운동가들이 목숨을 잃었고, 셀 수 조차 없는 활동가들이 폭력과 협박, 시위 금지 법률 등에 의해 침묵을 강요당했다고 밝혔다. 특히 브라질에서는 2002년 이래 653명의 환경운동가들이 피살됐다.

파리에서의 소란을 뒤로 하고, 그레타 툰베리는 8월 제25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뉴욕에 간다고 밝혔다. 태양광으로 움직이는 친환경 요트를 타고. 향후 기온이 3도만 높아져도 미국 대도시에서만 2만 명이 사망할거라는 보고서가 나와 있고, 냉대기후 지대인 알래스카가 올 여름 31도를 기록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지구온난화를 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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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글을 쓰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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