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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4.09 18:03 수정 2019.04.09 18:06
'버선발'은 고통받는 노동자 민중의 곁을 지키고, 한평생 평화와 통일의 길을 걸어온 통일문제연구소 백기완 소장이 자신의 삶과 철학, 민중예술과 사상의 실체를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낸 책 <버선발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버선발'은 '맨발, 벗은 발'이라는 의미인데요, 백 선생님 책 출간에 부쳐 사회 각계에서 '버선발'을 자처하는 이들의 글을 '우리가 버선발이다'라는 이름으로 묶어 차례로 싣습니다. 이번 글은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최준식 위원장이 보내왔습니다.[편집자말]
'거리의 투사' 백기완 선생님을 최근 광장에서 뵌 날은 2019년 2월 9일. 지난해 9시간이 넘는 심장수술로 거동이 어려웠던 선생님을 다시 뵙는다는 건 분명 기쁜 일이지만, 그날은 참으로 슬픈 날이었습니다.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노동자 민주사회장 영결식 추도사에서 선생님은 쩌렁쩌렁 분노에 찬 말씀을 쏟아내셨습니다.

"돈이 죽였고 돈밖에 모르는 이 사회가 용균이를 학살했다. 땅에 묻혀야 할 것은 용균이가 아니라 이 썩어 문드러진 독점 자본주의다. 노동자 시민이 나서서 용균이의 뜻을 다시 살리자."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고 김용균씨 민주사회장 영결식에서 어머니 김미숙씨와 아버지 김해기씨,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등 시민들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심장수술을 받고 투병하시면서도 혼신의 힘을 다해 완성한 선생님의 책 <버선발 이야기>에는 고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이 이 세상에 던진 고민이 투영되어 있고, 영결식장에서 선생님이 하신 말씀의 의미가 세세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사람이 죽을 수 있으니 설비를 안전하게 개선해 달라는 노동자의 요구를 묵살했던 화력발전소는 결국 사람을 죽였습니다. 사람의 몸이 갈기갈기 찢겨져 죽었는데도 그 죽음의 컨베이어 벨트는 다시 돌아갔고 쏟아지는 탄가루는 주검 위에 쌓였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중요하기에 사람의 생명을 밟고 군림하는 세상이 되었단 말입니까? <버선발 이야기> 속 민중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떻게 제 목숨만 목숨입니까. 다른 모든 목숨도 목숨이지. 그러니까 그런 몹쓸 된깔일랑은 그대로 찢어 팡개치고는 참목숨, 다시 말하면 목숨 아닌 댄목숨(반생명)과 싸워 틔운 참목숨인 살티를 살려내야 합니다. 그게 무엇이겠어요. 그게 무엇이겠느냐구요. 그게 바로 노나메기입니다." (본문 269쪽)

문재인 정부 3년차로 접어들면서 버선발과 민중들이 만들고자 했던 '노나메기'는 오히려 더 멀어져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3.1 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에 제1야당의 대표는 '반민특위가 국민을 분열시켰다'는 반역사적인 발언을 감히 서슴지 않고 뱉어 내고 있습니다. 또한 같은 당 국회의원은 5.18 민주화 운동을 폭동이라고 날조하면서 학살자 전두환을 영웅으로 칭송하는데 거리낌이 없습니다.

항일투쟁과 5.18 민주화운동은 희망과 생명의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하는 기존의 틀거리를 바꾸려했던 민중들의 참목숨을 향한 피 끓는 투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민중적이고 반역사적인 과거의 틀거리를 다시 소환하려는 수구반동 적폐세력들의 준동은 과연 의미 있는 움직임일까요, 아니면 피해갈 수 없는 몰락을 눈앞에 두고 펼치는 마지막 좀비적 몸부림일까요?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늘 한걸음씩 나아가는 버선발의 시각에서도, 유구한 세월 전진해왔던 역사적인 흐름에 있어서도 그 답은 자명할 것입니다.
 
"버선발이 비록 네 몸에서 나왔다고는 하더라도 갸도 그렇고, 갸의 애비도 그렇고, 몽땅 머슴이라는 것을 그새 잊었단 말이더냐. 그러니까 갸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우리 알범(주인) 어르신네의 머슴, 이를테면 한낱 쓸 거(물건)이거늘." (본문 69쪽)

산재사망율 1위, 과로사 1위의 나라에서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팍팍한 삶도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국회에서는 정부여당과 제1야당이 주축이 되어 과로사를 촉진시키는 탄력근로제 확대를 포함한 노동법 개악안을 민생법안이라고 눈가림하며 통과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또 어떻습니까? 경사노위 참가대표들은 탄력근로제가 확대될 경우 직접적으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비정규, 청년, 여성 대표자들의 의견을 묻지 않은 채 재벌과 사용자단체가 청부한 탄력근로제 확대안을 저들끼리 야합하여 국회로 넘겨 버렸습니다.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ILO 기본협약 비준과 관련한 것입니다. ILO 기본협약은 모두 8개로 우리나라는 그중 4개만 비준했고 결사의 자유 87호, 단체교섭권 98호 그리고 강제노역금지 협약인 29호와 105호등 4개 협약은 여태까지 비준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노동자들은 유엔이 정한 최저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상태의 노동법 체계에서 기본권리를 침해당했던 것인데 재벌과 사용자 단체는 이마저도 거부하고 있고 경사노위라는 틀거리를 통해 그나마 있는 노동자들의 파업권과 단체교섭권을 제한하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힘 있는 자와 돈 가진 자들에겐 노동자 민중들의 생명과 권리가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것이고 한낱 들러리에 불과한 것인가요?
 
"남의 피눈물을 뺏고 되싸게(심지어)는 남의 목숨까지 뺏어갖고 그것을 내 거라고 하는 것은 사람의 입으로만 그러는 게 아니라네. 그것을 틀거리(체제)로 만들었다는 걸 알아야 한다네." (본문 189쪽)

<버선발 이야기>에는 나쁜 틀거리를 왕창 부셔야 한다고 다들 말하지만 그 과정이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내 늘매(손자)만 살릴 수만 있다면 사람이 사람을 부려먹는 이 사람 못 살 고얀 틀거리는 그냥 내버려두어도 괜찮다는 것이었으니…" (본문 185쪽)

틀거리를 깨기보다는 그 틀거리 속에서 내 것을 챙기는 것이 먼저였던 자신을 반성하는 어느 할머니의 모습에서 비정규직을 없애는 데 힘쓰기보다는 그 비정규직 속에 내가, 그리고 내 자식이, 내 식구가 포함되지 않도록 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지금의 민중들이 보였습니다.

공공운수노동자들은 민중의 편리하고 안전한 발이 되기도 하고 손이 되기도 합니다. 어둠을 밝히는 빛과 추위를 데워주는 따뜻한 온기가 되는 노동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 노동은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그리고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민중에게 전해집니다.

특수고용노동자, 비정규노동자, 정규직노동자 등 다양한 고용형태와 업종을 가진 노동자로 구성된 공공운수노조와 민주노총은 이 시대의 '버선발'이 되어 사회공공성을 강화하고 차별과 경쟁을 넘어 연대와 평등 세상으로 나아가도록 해야겠습니다.

마침 10년 만에 펴낸 백기완 선생님의 순 우리말 소설인 <버선발 이야기>를 우리 노동자들의 벗으로 삼아보는 게 어떨까요? 여기 이 <버선발 이야기> 속 변혁의 불씨를 이 땅의 노동자, 수많은 니나(민중)의 의지로 발전시켜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버선발 이야기> 백기완 지음. ⓒ 오마이북

 


버선발 이야기 - 땀, 눈물, 희망을 빼앗긴 민중들의 한바탕

백기완 지음, 오마이북(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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