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28 07:36최종 업데이트 19.03.28 07:36
중국 중학교 2학년 교과서에는 "열심히 책을 읽어야 하고, 책 속 글자 하나하나 모두 중요하다(讀書需用意,一字值千金)"라는 글귀가 있다. 글귀를 해석하는 주석에는 '열심히 책을 읽어 지식과 지혜를 쌓으면 후에 반드시 사용할 일이 있고, 책에 나오는 글자 하나하나가 황금 천 냥의 가치를 가지니 반드시 공부하라'는 뜻이라고 나와 있다.

그런데 사실 이 사자성어의 유래는 현재 중국 교과서에서 해석하는 내용과 다르다. '일자천금'이라는 말은 기원전 3세기 중국 전국시대 '여불위'라는 사람으로부터 시작한다. 여불위는 삼천 명의 학자를 모아 <여씨춘추>라는 책을 만들었다. <여씨춘추>는 그 시대까지의 중국 사상을 종합한 후, 국가를 어떻게 운영하고 국가의 이익을 어떻게 도모할 것인가를 다룬, 일종의 국가 경영 지침서다.
 

중국 전국시대 여불위가 쓴 책 <여씨춘추> ⓒ 바이두

 
<여씨춘추>는 26권으로 구성되고 책에 사용된 글자가 총 20만 자를 넘어갈 만큼 방대하다. 여불위는 이 책 내용이 완벽하다고 자신했다. 그래서 여불위는 <여씨춘추>를 완성한 후 이 책에 한 글자라도 덧붙이거나 틀린 것을 찾아내는 사람에게 황금 천 냥을 주겠다'고 말한다.

책 이름 <여씨춘추>에서 '여씨'는 책을 만든 '여불위'의 성 '여'를 의미한다. 책 이름에서 이 책을 만든 사람이 '여'씨 즉 여불위라고 확실하게 밝히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국가 기구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여불위라는 사람이 개인적으로 만든 것이다. 여불위는 이 책을 만드는 데 필요한 비용을 모두 자신의 돈으로 사용했다. 여불위는 현대로 말하면 세계에서 제일 돈이 많은 부자였다. 여불위는 그 많은 돈을 어떻게 벌었을까?

국제 기업가 여불위

여불위는 기원전 3세기 사람이다. 이 시기 중국은 전국시대 말기였다. 전국시대는 중국 대륙에서 일곱 개 나라가 경쟁하는 시대였다. 일곱 개 나라가 서로 자신의 국가 발전을 위해 이웃 나라와 전쟁과 무역을 하는 불안정한 시대였다. 여불위는 일곱 개 나라 중 하나인 조나라에서 무역 기업가로 활동하며 부를 축적했다. 여불위는 '조나라'라는 국가에서 생활하기는 했지만, 그는 이미 일곱 개 나라를 오가며 무역을 하는 국제 기업가였다. 오늘날로 치면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큰 다국적 기업의 회장이었던 셈이다.


그는 많은 부를 가졌지만, 기업가 누구나 그렇듯이 더 많은 돈을 위해 항상 새로운 사업 아이템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또 자신이 이미 축적한 부를 안전하게 보호해 줄 정치 세력도 필요했을 것이다. 그때 마침 여불위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업 아이템이 나타났다. 그러니까 그는 이번 사업 아이템은 성공만 하면 자신의 부를 수백 배 이상 불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불어난 부를 정치 권력을 사용하여 대대손손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사업 아이템이란 바로 그 당시 일곱 개 나라를 통일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판단되는 '진나라'의 왕을 자신의 손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현대어로 바꾸면 킹메이커가 되어 자신의 경제력을 사용하여 국가의 최고 통치자를 만들고, 자신이 만든 국가 통치자는 경제적 이권 사업을 보장해주고 또 그렇게 축적한 부를 국가 통치자가 안전하게 지켜주는 것이다. 성공만 하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여불위와 진시황제

그 당시 여불위가 살고 있던 조나라에는, 진나라에서 조나라로 인질로 보낸 진나라 왕자가 살고 있었다. 그 왕자 이름이 '자초'다. 사실 '자초'는 이웃 나라에 인질로 보내질 만큼 진나라에서는 별 볼 일 없는 왕자였다. 그래서 여불위에게는 접근하기 쉬운 사업 아이템 대상이었다. 본인이 왕자이기는 하지만, 왕이 될 확률이 거의 없는 자초 입장에서는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여불위가 더할 나위 없이 고마웠을 것이다.

이후 여불위는 자신의 경제력을 발휘하여, 자초를 결국 진나라의 다음 왕 자리가 보장되는 세자로 만든다. 당연히 이런 여불위가 고마운 자초는 자신이 왕이 되면 여불위가 원하는 모든 이익(권세와 돈)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여불위는 자신의 사업 대상인 자초를 진나라 세자로 만든 후, 자초 다음 시대를 생각하게 된다. 자초가 진나라 왕이 되면 여불위는 당연히 권세와 돈을 보장받는다. 그런데 자초가 죽고 나면 누가 자신의 부를 지켜 준단 말인가? 그래서 여불위는 다시 한번 자초 이후의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게 된다. 오늘날로 치면 지금 잘 나가고 있지만, 앞날을 위해 미래의 먹거리도 준비하겠다는 것이다.
 

진나라 진시황제 병마용 (중국 시안 병마용박물관) ⓒ 김기동

 
진시황제는 중국 전국시대 여섯 나라와 전쟁하여 중국 대륙을 최초로 통일했다. 그래서 그는 중국을 통일한 후 자신의 호칭을 '왕'에서 '황제'로 바꾸고, 자신의 이름을 통일 '진나라'를 처음으로 연 황제라는 의미로 '진시황제'라고 부르게 했다. 중국 공식 역사 기록에는 진시황제의 아버지가 자초라고 돼있다. 여불위가 진나라 왕으로 만든 사람이 바로 자초다. 그러니까 진시황제 입장에서 여불위는 자신의 아버지를 왕으로 만들어 준 사람이다.

사마천이 쓴 중국 역사책 <사기>에는 진시황제의 출생을 기록하면서 "'조희'가 아들을 낳았으니 이가 진시황제다"라면서 "여불위가 조희를 이미 임신시키고서 자초에게 주었다"라고 했다.

여불위는 자신이 왕으로 만든 진나라 자초가 죽은 후에도 자초의 아들이 자신을 지켜줄지, 즉 계속해서 이권 사업을 보장해주고 축적한 부를 보호해줄지 염려됐다. 그래서 여불위는 자신이 데리고 있던 여자 무용수 조희를 자초에게 준다. 그런데 이때 자초에게 보낸 무용수 조희는 이미 여불위의 자식을 임신한 상태였다. 그래서 사마천은 <사기>에서 조희가 낳은 아들이 진시황제가 되었는데, 진시황제는 자초의 아들이 아니고 여불위의 아들이라고 기록했다.

그러니까 여불위는 자신의 현재 사업 아이템인 킹메이커 역할로 자초를 왕으로 만든 다음, 미래의 아이템(미래의 먹거리)으로 자초 이후에 왕을 할 자초 아들을 자기 아들로 바꿔치기한 것이다. 영원히 자신의 부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진시황제와 그 후 중국 통치자들

자신의 아버지가 경제력을 가진 여불위라는 킹메이커에 의해 왕이 되었고, 여불위가 자신의 진짜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 진시황제는 돈, 즉 경제력이 가지는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절감했을 것이다.

자신의 아버지가 경제력, 즉 자본의 힘에 의해 왕으로 만들어지고 그 덕분에 자신도 왕(황제)이 되었지만, 진시황제 입장에서는 경제력을 가진, 즉 자본을 가진 세력은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경제력을 가진 세력이 자본이라는 무기를 사용하여 자신을 황제에서 밀어내고 다른 사람을 황제로 만들 수도 있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시황제는 자신의 재임 기간 철저히 상업을 억제하는 '중농억상' 정책을 실시한다. 나중에는 상업을 억제하는 수준을 넘어 상업을 금지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진시황제는 사물의 가치를 나타내며, 교환을 매개하고, 재산 축적의 대상으로서 기능하는 돈이 기업 영리를 위한 자본으로 변하는 순간, 자본 자체가 엄청난 힘을 가진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중국 통치자들은 누구나 경제력을 가진 상업가를 억제하는 정책을 펼친다. 한나라 시대 한무제는 '염철전매'라는 국영기업 전매사업을 실시하여 상업 종사자가 운영하던 철광산과 염전 사업을 국가 전매사업으로 바꾸기도 한다. 또 상업 종사자의 경제력을 견제하기 위해 상인의 경우 매년 재산의 6%를 세금으로 내게 하기도 했다.

최근 중국에서 유명한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는 일을 보고, 중국이라는 국가가 공산주의 체제이기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중국은 이미 3천 년 전부터 경제력, 즉 자본의 힘이 국가의 힘을 넘어서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돈의 힘
 

한나라 농민 모습과 상인 모습 화상석 (중국 사천성박물관) ⓒ 김기동

 
옛날부터 중국에서 국가는 돈이 가지는 힘을 억제하려고 이렇게 저렇게 힘썼지만, 먹고 살아가야 하는 보통 사람에게는 돈이 중요하다. 그래서 일반 사람에게는 돈이 국가의 권력이나 이성의 도덕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다.
      
"내가 가난할 때는 시내 한복판에 살아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는데, 부자가 되니 산골짜기에 살아도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貧居鬧市無人問,富在深山有遠親)."

중국 어린이 필독서 <증광현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즉 세상 사람은 상대방이 돈과 세력이 있으면 빌붙고, 그렇지 않으면 냉담해진다는 의미다.

사실 이런 생활 태도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위의 글귀 내용처럼 행동한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증광현문> 해설문에서는 이런 생활 모습이 옳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살아가는 주위 사람을 탓하지 말라고 한다. 왜냐면 보통사람이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행동하는 경지에 오르는 건 가능하지 않기에, 세상이 이렇다는 사실을 항상 마음에 새기며 살라고 한다.

또 <증광현문>에는 이런 글귀도 있다.
 
"돈 있는 사람이 하는 말은 모두 옳고, 돈 없는 사람이 하는 말은 모두 그르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연회 자리에 가봐라. 모든 사람이 돈 있는 사람에게만 술을 권한다(有錢道真語,無錢語不真。不信但看筵中酒,杯杯先勸有錢人)."

아마도 돈은 그 자체에 사람을 모으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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