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18 10:35최종 업데이트 19.03.18 10:48

핀란드 어린이집 현관에 마련된 아이들의 사물함 ⓒ 김아연


"오늘 아이가 낮잠을 잤나요?"
"아니, 오늘은 네 아이가 방문을 똑똑 두드리더라고. '나와서 놀래?' 물어봤는데 너무 좋아하면서 나와서 나랑 퍼즐 놀이를 했어."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낮잠을 자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걱정도 되지만 한편으론 웃음이 나왔다. 낮잠을 자는 것을 싫어하고, 해가 넘어갈 때까지 무한대로 놀다가 밤이 되면 침대로 쓰러지는 아이 특성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핀란드는 억지로 재우지 않는다
 

바깥에서 주워 온 낙엽으로 아이들과 함께 만든 나무 ⓒ 김아연


첫 등원 날, 어린이집에서는 낮잠시간에 쓸 아이가 좋아하는 인형을 하나씩 챙겨오라고 주문했다. 첫날부터 지금까지 아이는 친할아버지가 주신 회색 강아지 인형과 함께 낮잠을 자고 있다. 매일 아침 여덟시 꽤 이른 시간에 등원을 하다 보니 정오부터 시작되는 빠에바레뽀(Päivälepo, 낮 휴식) 시간에는 대개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씩 낮잠을 잔다. 아이가 전날 밤에 잠을 푹 잤거나, 더 놀고 싶은 날에는 예외지만.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는 낮잠시간을 '조용한 시간(Päivän rauhallinen hetki)'으로 부른다. 아이들은 각자의 정해진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한다. 하지만 여기도 잠을 자기 싫어하는 어린이들은 있기 마련이다. 그런 아이들은 따로 모아 밖으로 불러내어 동화책을 읽어주거나 조용한 노래를 듣는다. 어느 날, 우연히 낮잠 시간에 어린이집을 방문했다가 불 꺼진 교실에서 아이들이 옹기종기 바닥에 배를 깔고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는 평화로운 풍경을 본 일이 있다.


사실 한국에서 들려오는 어린이집과 관련된 참담한 뉴스를 볼 때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일이 많다. 한국에서는 아이들의 낮잠 시간을 이용해 보육교사의 휴식시간을 보장한다. 어느 교사의 소중한 휴식 시간을 보장받기 위해 단 한 아이라도 규칙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걸까. 낮잠을 자지 않는다고 보육교사가 생후 10개월도 안 된 아이를 이불 위에서 눌러 저 세상으로 보냈다는 뉴스는 지난해 내게 가장 슬픈 뉴스로 남았다.

식사의 경우는 또 어떤가. 핀란드 어린이집에서는 가족만의 특수한 신념이 있거나 아이 건강에 맞는 특수한 음식이 필요하다면 특별식(Erityisruoka)을 제공한다. 알레르기가 있는 경우 의사 진단서를 제출해야 한다. 우유를 잘 소화시키지 못하는 아이를 위한 락토프리 우유(Laktoositon maito)는 늘 구비되어 있다.

한국 유치원에서 우유를 잘 소화시키지 못하는 아이에게 억지로 우유를 마시게 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올 때면, 아이 저마다의 체질이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보육 방식이 여전히 아쉬울 때가 많다. 

"아이의 모국어는 뭔가요?" 이민자는 더욱 배려
 

낮잠을 자고 일어나 오후 2시에 갖는 간식(Valipalaa) 시간 ⓒ 김아연


핀란드 어린이집은 지원 과정부터 아이 개인의 특수성을 일일이 고려한다. 이 과정은 내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처음 시청 홈페이지에서 어린이집을 지원할 때 필수 기입란에는 사소한 알레르기는 물론 아이의 '모국어'까지 묻고 있었다. 어린이집이 확정된 후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식사, 노래, 놀이 등 아이의 기초 정보를 요구했고, 담임 선생님과 한 시간이 훌쩍 넘게 면담을 했다.

외국인 자녀이기 때문에 조금 더 구체적인 질문을 받았던 기억도 난다. 아이가 평소에 먹는 음식이 한국 음식인지, 핀란드 음식을 줘도 아이가 익숙하게 먹을 수 있는지, 또 구체적으로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적어서 제출했다. 더불어, 집에서 한국어를 주로 쓰는 우리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언어적 도움이 필요한지도 물었다.

다행히도 외국인 자녀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도 아직까지 아이는 어린이집에 잘 적응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난민을 포함해 이민자들이 꽤 늘어난 상황이라 핀란드 교사들에게 새로운 문화를 가진 아이들도 돌보아야 하는 과제가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 모든 아이에게 평등하지만 모든 아이에게 다른, 핀란드의 보육 테두리 안에서 아이들을 보육하고 있었다. 우리 아이 역시 차별 없이, 하지만 특별하게 조금씩 자라나고 있다.   
 

핀란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물 그네(verkkokeinu) ⓒ 김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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