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13 10:24최종 업데이트 18.10.13 10:24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오연호 지음)를 읽은 다양한 독자들이 '행복한 나', '행복한 우리'를 만들어가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차례로 연재합니다. 이 글은 우수상 수상작입니다. 우리 안의 덴마크, 우리 안의 꿈틀거림을 응원합니다.[편집자말]
나는 올해 2018년도에 학교 밖 아이들 중 한 명이 되었다. 내가 학교를 그만뒀다고 말하면 주변 사람들이 듣기에 어떨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나는 중학생 때 꽤 모범적으로 생활했으니까.

중3 겨울방학 때 친구들은 다들 고등학교에 가야 한다며 학원, 과외 등 여러 선행학습을 했다. 이미 그걸 끝내고 다시 복습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흔히들 말하는 그 중요한 중3 겨울방학에 도통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고, 고민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방학은 거의 두 달 정도였는데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공부도 하지 않았고, 책도 읽지 않았다. 그저 방 안에서 혼자 수도 없는 고민을 했다.

'나는 누구일까? 난 뭘 좋아하지? 내가 하고 싶은 건 뭐지? 내가 바라는 건 뭐지? 내 꿈은 뭐지?'

이런 생각들을 하면 눈물이 났다. 지금까지 이런 것들도 모르면서 공부만 하고 삶의 의미를 모른 채 살고 있는 내가 너무 한심하고 불쌍했다. 난 나를 찾고 싶은데, 이미 나를 너무 잃어버린 것 같았다. 어느 날은 펜을 집어 들고 내가 누군지 적기 시작했다. 이름, 생년월일, 혈액형, 가족관계를 쓰고 나서 그다음부터는 아무것도 적지 못했다. 그렇게 비참할 수가 없었다.

개학을 앞두고 엄마에게 용기를 내어 말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싫다고, 못할 것 같다고. 하지만 엄마는 다녀보고 생각하자고 하셨다. 순천에 사는 나는 농어촌전형을 위해 광양여고를 지원했다. 농어촌전형은 대학에 갈 때 도움이 많이 된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아는 사람도 없이 혼자 낯선 곳으로 가게 되었다.

사실 혼자 가는 게 너무 두려웠고, 기숙사에 살게 되는 것도 걱정이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창밖을 봤다. 자꾸 눈물이 나려고 했다. 왠지 끌려가는 기분이었다.

학교에 도착해 기숙사에서 처음 자던 날, 혼자 숨죽여 울었다. 다른 친구들이 깰까 봐, 내가 우는 걸 누가 알까 봐 조용히 울었다. 그렇다고 집에 돌아갈 수도 없었다.

학교에 처음 등교해 담임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이 종이를 나눠주셨는데 '나를 소개합니다' 같은 거였다. 난 이럴 때마다 목표, 희망하는 직업, 대학 항목에 거짓말을 썼다. 그러고 싶지 않지만, 선생님께 잘 보이고 싶어서 거짓 목표, 거짓 꿈을 항상 적었다. 그렇게 적으면 내가 뭔가 인정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날도 거짓말을 했다. 목표를 적는 곳에 '인서울'이라고 적었다. 조금 있다가 선생님이 오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태현아, 목표를 적으라는데 인서울이 뭐니?"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어느 대학, 어느 학과인지 적으라고 하셨다. 비수가 꽂히는 말이었다. 사실 나는 목표가 없는데……… 쓰고 싶은 대학도, 학과도 없는데……. 나는 더욱 학교에 다닐 마음이 없어졌다. 나에게 꿈을 강요하는 학교를 더 이상 다니고 싶지 않았다. 난 일주일도 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선생님이 미워서 학교를 그만둔 게 아니다.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면서 이렇게 버티는 게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학교를 나와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예전 생각이 많이 났다. 초등학교 시절이 너무너무 그리웠다.

나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사랑어린학교'라는 대안학교에 다녔다. 그때 나는 친구들과 자연에서 뛰놀았다. 벼를 심고 농사를 지으면서 밥을 짓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느꼈고, 함께 걸으면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고, 힘들 때는 서로 의지하고 도와주면서 끝까지 목적지에 도착했다.

무엇보다 내가 이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내가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풍경을 사랑했고, 나와 함께해준 친구들을 사랑했고, 나를 자식처럼 아껴주는 선생님들을 사랑했고, 학교에 같이 살았던 동물들을 사랑했다.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주었다.

그때 나는 좋아하는 것이 있었고,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일들이 있었고, 함께할 친구가 있었다. 그땐 그게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와 돌아보니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었다. 돌아가고 싶었다.

지금의 나는 날 미워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학교를 그만두고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지만, 지금의 나를 나는 사랑할 수 없었다.

주변 친구들을 보면서도 내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학교를 나와서도 당당할 수 있고, 부끄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생각보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 편견이 높았다. 내가 다른 사람들 눈에 어떻게 보일지, 자퇴생에 대한 인식이 어떨지를 신경 썼고, 세상이 무서웠다.

점점 밖에 나가는 게 두려워졌다. 그래서 집에서 나가는 걸 싫어하게 되었다. 또 가까운 친척에게조차 내가 아직 학교에 다닌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 나에게 실망할까 봐, 미워할까 봐, 더 이상 사랑받지 못할까 봐 말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난 또 다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에게 무기력함을 느꼈다. 날 자책하기 시작했다.

'난 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지? 이러려고 학교를 그만둔 게 아닌데…….'

나를 찾기보다는 나를 원망하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학교도 잘만 다니고, 공부도 하는데 난 왜 다른 애들과 다르게 학교를 그만둬서 이렇게 힘들지?'

우울해지고, 눈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은 무심하게도 너무나 잘 가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초초해졌다. 만약 이도저도 아니게 된다면 난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지? 내가 할 수 있는 길이 공부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결국 목적도, 찾고 싶었던 나에 대한 고민도 다시 원점이었다.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 책 표지 ⓒ 오마이북


그렇게 지내다 엄마에게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책을 소개받았다. 책을 들고 방에 들어가 아무 페이지나 펼쳤다.

"쉬었다 가도 괜찮아."
"다른 길로 가도 괜찮아."
"지금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이 말을 보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너무너무 듣고 싶은 말이었다. 그냥 괜찮다고, 내 모습 있는 그대로도 충분하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한참을 울었다. 눈물을 흘리고 싶은 만큼 흘렸다. 그리고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첫 장을 펼쳤다. 나를 반성했고, 위로했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난 나를 사랑하지 못했고, 항상 남들과 비교했다. 잘하는 게 하나도 없고, 항상 더 잘해야 하고, 모범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나를 채찍질했다. 나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남들의 시선과 사랑만을 받고 싶어 했던 내 자신을 반성했다. 부족한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하며 나를 위로했다.

그리고 정말 덴마크에 가고 싶어졌다. 나를 찾고 싶어졌다. 사람들을 만나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우리를 사랑하는 방법을 직접 내 눈으로 보면서 경험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내가 나를 사랑하고 우리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도 꿈과 희망 그리고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덴마크에 가지 못하더라도 나는 노력할 거예요. 이제 마음먹었거든요. 더 이상 목표, 직업이 아닌 강태현으로, 한 인격체로서 충분히 사랑받고 사랑할 수 있는 존재라고. 그러니까 용기 내서 두려워 말고, 무서워 말고, 부끄러워 말고 당당히 앞으로 내 삶을 개척할 거예요. 제가 절망 끝에 있다고 생각할 때 저에게 책을 통해서 사랑이 무엇인지, 사는 게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고 꿈틀거리게 해주신 작가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꿈틀거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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