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7.23 08:44최종 업데이트 19.06.10 17:20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행복사회는 무엇으로 가능한가? 그 답을 찾아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기자가 행복지수 1위의 나라 덴마크를 심층취재했습니다. 이 연재는 2014년 9월 초 단행본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오마이북)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편집자말]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 한복판에 있는 한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서빙 종업원 클라우스 피터슨(56)씨 ⓒ 오연호


☞ [행복지수 1위, 덴마크의 비결을 찾아서] 연재 보러가기

 

저 식당 종업원은 어느정도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고 있을까? 식당 테이블에 앉아 서빙을 기다릴 때 접시를 들고 분주히 오가는 종업원을 보면서 그런 생각 해본 적 있나요? 지난 4월 중순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 한복판에 있는 한 대형 레스토랑에서 저는 호기심을 가지고 한 종업원을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몸놀림이 유난히 가벼워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수십 명의 서빙 종업원 중에 가장 나이가 들어보였는데도 말입니다. 제 눈이 그를 따라다니고 있는 것을 느꼈는지 그는 우리 테이블로 다가왔습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눈을 마주하고 본 그의 얼굴 표정은 담담했지만 끌림이 있었습니다. 겸손함과 당당함의 결합이랄까요? 단박에 그가 일을 즐기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일행과 저녁식사를 마칠 때까지 그가 서빙해준 음식을 먹으면서 동시에 그의 인생을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식당을 나서면서 여전히 분주한 그에게 다가갔습니다. 궁금한 건 많았는데, 바쁜 그가 가장 간단히 답할 수 있는 나이를 물어봤습니다.

 

"저요? 56세죠. 클라우스 피터슨(Klaus Petersen)입니다. 두 발로 걸어다닐 수 있는 한 웨이터를 계속하고 싶어요."

 

왠지 존경스러워 사진을 함께 찍었습니다. 숙소로 돌아와 그날 찍은 사진을 정리하면서 그의 눈을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아쉬웠습니다. 따로 인터뷰 날을 잡을 걸!

 

그로부터 2달 후인 지난 6월말, 덴마크에 2차 취재를 갔을 때 저는 다시 그 레스토랑을 찾아갔습니다. 다행히도 그가 있었는데, 그는 단박에 두 달 전에 온 손님을 알아봤습니다.

 

"한국에서 온 그 기자죠?"

 

저는 그에게 정식으로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그는 흔쾌히 답했습니다.

 

"여기 종업원이 모두 30명쯤 되거든요. 그 중에 제가 제일 나이가 많아요. 아직 덜 바쁜 시간이니 한 30분쯤 시간 내는 것은 문제 없습니다. 이런 게 고참의 특권이죠. 하하."

 

자, 그럼 지금부터 그에게 들은 행복론 특강을 요약해드리겠습니다.

 
 

덴마크 웨이터가 한국 의사보다 행복한 이유 [행복지수 1위, 덴마크의 비결을 찾아서 ⑨] 레스토랑 종업원 클라우스씨 이야기 ⓒ 오연호


 

 

[코펜하겐 식당종업원의 행복특강①] 내 인생이다, 스스로 즐거운 것을 하라

 

저의 첫 질문은 "참 행복해보인다" 였습니다. 그는 웃으며 "즐기면서 일하니까요"라고 답했습니다.

 

"제가 17세 때부터 지금까지 약 40년간 요리사와 종업원 일을 해왔거든요. 고등학교 졸업할 때 대학에 꼭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요리사와 웨이터 일을 하기 위해 식당에 바로 취직했는데 거기서 공부와 일을 함께 했어요."

 

일과 공부의 병행. 이것은 덴마크의 독특한 시스템인데, 종업원이 회사에 다니는 동안 1년에 10주간을 직업학교에 다닐 수 있게 보장한 제도입니다. 수업비는 회사와 정부에서 대줍니다.

 

"저는 그런 교육을 7년이나 받았는데 그 과정에서 저의 일을 더 좋아하게 되었지요."

 

그러니까 그런 직업학교 교육을 통해 그냥 노동이 아니라 의미있는 노동을 하는 방법을 배웠고, 그래서 자신의 일을 더욱 즐기고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코펜하겐 식당종업원의 행복특강②] 기죽지 마라, 직업엔 귀천이 없다

 

클라우스씨는 아들이 한 명 있습니다.

 

"올해 22살인데 열쇠수리공으로 일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아들자랑을 늘어놓습니다. 저는 솔직히 좀 의아했습니다. 아버지가 식당 종업원이면 아들은 '출세'하길 바라는 것이 한국식이니까요. 그러나 클라우스씨는 "단 한 번도 우리 아들이 판검사나 의사가 교수가 되길 바라지 않았다"며 제게 되려 묻더군요.

 

"열쇠수리공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필요하고 의미있는 직업입니까?"

 

너무 대조적이었습니다. 덴마크에 가기 전에 만난 한 대기업 간부는 이름없는 중소기업에 다니는 아들 이야기를 꺼낼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비로서 참 부끄럽지만…." 또 다른 제 지인은 의사인데 아들 이야기만 나오면 기가 죽습니다. 그는 아들이 자신처럼 명문대를 졸업하지 못했고, 번듯한 직장에 다니지 못한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합니다. 그래서 그 아들이 무엇을 하는지도 친구들에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클라우스씨는 "5년만에 한 번씩 고등학교 동창생 모임을 하는데 그 자리에서도 내가 식당 종업원이고 아들이 열쇠수리공이라는 걸 떳떳히 이야기 한다"고 합니다. 아들을 존중하는 덴마크 웨이터와 아들에 쪽팔려하는 한국 의사, 누가 더 행복한 걸까요? 이것은 부자관계의 차이에 대한 것이 아닌 한 인간의 노동을 바라보는 가치관의 차이이지요.

 

[코펜하겐 식당종업원의 행복특강③] 더불어 함께 하라, 연대하면 걱정이 없다

 
 

13명의 식당 종업원 중 가장 나이가 많다는 클라우스씨가 자신만의 행복론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 오연호


클라우스씨는 직장 일을 하면서 부당대우에 대한 걱정이 없다고 합니다. 그는 혼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덴마크에는 전국의 식당 종업원들만의 노조인 '3F'가 있어요. 저는 고등학교 졸업 후 처음 이 직업을 선택했을 때부터 그곳의 노조원이죠. 지금까지 약 40년간 노조비로 매달 200달러 정도씩을 꼬박 내왔어요."

 

이 3F의 노조원은 약 30만명인데 이 레스토랑의 종업원 30여명도 모두 가입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직장 내 차별도 없습니다. 만약 차별을 받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노조에 이야기하고, 중앙의 노조가 사장과 대화를 나누게 되지요."

 

그런데 그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부당대우를 받아본 적이 없다고 하네요. 그래도 매달 노조비를 200달러(약 22만 원)씩이나 매월 꼬박꼬박 내는 이유는? 행여나 실직하게 되면 노조와 정부가 연대하여 1년 6개월동안 매월 3000달러(약 330만 원)를 준다고 합니다.

 

"물론 노조원이 아니어도 정부의 실업보조금은 2년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일종의 보험금으로 노조비를 내는 거지요. 그래서 실직에 대한 걱정이 없습니다."

 

덴마크의 노조가입률이 최고일 때는 약 80%대였고 지금은 70%전후라고 하네요. 우리는 10%대(세계평균은 약 23%). 

 

[코펜하겐 식당종업원의 행복특강④] 관계는 투명하게, 신뢰하면 기쁘다

 

클라우스씨는 식당에서 종업원들과는 물론 사장과도 합심하여 일합니다. 신뢰가 있기 때문입니다. 신뢰의 핵심은 관계의 투명성입니다.

 

"하루 매출 총액의 15%는 종업원들의 월급으로 정해져 있어요. 그 15%를 가지고 전 종업원이 동등하게 나누는 거죠. 그래서 종업원들은 전체 매출을 늘리기 위해 서로 도와가며 열심히 일합니다."

 

그런데 클라우드씨는 자기 같은 고참이나 갖 들어온 신참이나 모두 똑같은 월급을 받는데도 "불만이 없다"고 하네요.

 

"고참의 특권이요? 이렇게 사장이나 다른 종업원 허락 받지 않고도 근무 시간에 인터뷰 하고 싶으면 하는 건가요? 하하." 

 

[코펜하겐 식당종업원의 행복특강⑤] 욕심 안 부리고 오늘을 즐긴다

 

클라우스씨는 본인을 당당히 "중산층"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코펜하겐 시내에 자기 아파트가 있지만 코펜하겐 근교에 여름용 별장이 따로 있다고 합니다.

 

"주말이나 휴가 때 그곳에서 즐깁니다. 채소와 과일나무도 가꾸고 참 좋아요."

 

그는 본인이 더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해, 혹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욕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아들이 더 좋은 직업을 갖기를 원하지도 않습니다. 그 여름용 별장은 식당 종업원이지만 중산층으로서 오늘을 즐기는 한 덴마크인의 행복을 대변합니다.

 

"행복하냐고요? 물론이지요. 특별한 걱정이 없고 오늘에 만족하니까요."

 

[코펜하겐 식당종업원의 행복특강⑥] 행복하고 싶은가? 좋은 사회를 만들어라

 

클라우스씨는 말합니다. 

 

"우리 아버지 세대만 하더라도 직업의 귀천이 있었어요. 빈부격차도 있었고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런 것이 사라지고 덴마크 전체가 평등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1930년대부터 디딤돌을 놓기 시작했지만 196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덴마크 정치권과 노사가 합심하여 복지시스템을 만들고, 그것을 기반으로 평등문화가 정착되면서 세계관이 변화되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대학까지 학비 무료, 병원비 전액 무료, 충분한 실업수당과 같은 기본 안전장치가 있기 때문에 누구나 인간의 품격을 유지할 수 있고, 그래서 직업의 귀천을 따지지 않는 평등문화가 자리잡았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거겠죠? 덴마크의 사회혁신은 더 많이 가진 자들이 50%대가 넘는 높은 세금을 내는 것에 동의하고, 클라우스씨 같은 식당 종업원도 자기 월급의 36%를 세금으로 내는 것을 동의하고, 사장들이 노동자들의 경영참여를 보장하고, 대신 노동자들은 파업보다는 대화로 사장과 협력하고, 경영상 어려움을 겪는 사장이 직원을 해고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이른바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가능했습니다. 클라우스씨의 눈은 제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당신도 행복하고 싶은가요? 그러면 당신의 나라를, 당신이 속한 공동체를 기본이 되어 있는 사회로 만드세요.' 

   

우리는 어디서부터 손을 봐야 할까요? 대한민국을 행복사회로 만들기 위해, 식당 종업원도 동창회에 나가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나는 웨이터다", "우리 아들은 열쇠수리공이다"를 말하면서 중산층으로서 걱정없이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무엇부터 시작해야할까요?

 

<오마이뉴스>는 올 한 해 동안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나서고 있습니다. 오늘(7월23일) '오마이포럼:행복사회만들기'를 마련한 것도 그래서입니다. '덴마크, 스웨덴, 독일 모델에서 배운다: 행복사회,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는 오늘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상암동 본사에서 저의 사회로 진행되며 전 과정이 오마이TV로 생중계됩니다. 함께 해요~.

 

 

(*기사 연재는 1주일 간격으로 계속됩니다. 계속 읽고 싶은 분들은 '오연호 기자'를 찜하세요.)

 
 

오연호 대표 기자가 연재했던 <'행복사회의 리더십'-'행복지수 1위 덴마크 비결을 찾아서'>가 2014년 9월1일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오마이북)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 오마이북

덧붙이는 글 이 기사에 대한 동영상과 영문기사는 수일내로 보완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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