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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3.13 08:10수정 2019.03.13 08:10
국립축산과학원에서 참진흑돈과 촉진두록을 교배한 '우리흑돈'은 품종이 등록된 한국 돼지다.

국립축산과학원에서 참진흑돈과 촉진두록을 교배한 '우리흑돈'은 품종이 등록된 한국 돼지다. ⓒ 국립축산과학원


아이스크림 가운데 '골라먹는 재미'를 강조했던 브랜드가 있다. 개인 입맛에 따라 골라 먹을 수 있어 여전히 성업 중이다.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서는 순간, 메뉴 선택 고민에 빠진다. 주문 순서를 기다리면서 바닐라, 초콜릿, 스트로베리... 

이것인가 저것인가를 두고 내적 갈등 속에 빠지곤 한다. '손님, 어떤 맛으로 드릴까요?' 하는 점원의 목소리에 급하게 고르고는 먹으면서 후회하곤 했다. 돼지고기는 이런 고민이 필요 없었다. 항상 같은 종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먹어왔던 돼지고기의 98%는 삼원교배종. 랜드레이스(Landrace)와 요크셔(Yorkshire)를 교배한 암컷에 수컷 두록(Duroc)의 정자가 합쳐진 돼지다. 조금 특별한 먹이, 사육 방법, 농장의 위치에 따라 브랜드만 달리했을 뿐, 다 똑같은 삼원교배종(이하 백색 돼지)이다. 다양한 아이스크림을 골라 먹는 게 아니라 소프트 아이스크림에 토핑만 달리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나 이제는 돼지고기를 골라 먹는 시대다. 굳건한 시장 점유율을 지키던 삼원교배종 시장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몇 년 전부터 브랜드가 아닌 새로운 품종이 진입하기 시작했다. 

미국 도입종인 버크셔를 국내 품종으로 육성한 버크셔K, 삼원교배종에서 요크셔를 빼고 버크셔를 교배한 얼룩돼지, 그리고 고급 돼지로 자리매김한 이베리코, 단일 품종의 두록 등이 최근 고기 판매대에서 조금씩 자리를 넓히고 있다. 

버크셔K, 얼룩돼지, 이베리코, 두록... 비계 맛이 다르다
 
흑돼지는 비싸다. 우리흑돈 또한 백색 돼지에 비해 비싸다. 대형 할인점 기준, 국내산 냉장 삼겹살이 500g에 1만2000~1만4000원 정도다. 같은 브랜드라도 백화점에서는 더 비싸다. 함양에서 키운 우리흑돈은 500g에 1만7500원 정도다. 비싸기는 하지만 부담이 될 정도는 아니다.

흑돼지는 비싸다. 우리흑돈 또한 백색 돼지에 비해 비싸다. 대형 할인점 기준, 국내산 냉장 삼겹살이 500g에 1만2000~1만4000원 정도다. 같은 브랜드라도 백화점에서는 더 비싸다. 함양에서 키운 우리흑돈은 500g에 1만7500원 정도다. 비싸기는 하지만 부담이 될 정도는 아니다. ⓒ 김진영


새롭게 시장에 진입하는 돼지고기의 특징은 각설하고 '맛'이다. 그 가운데 비계 맛이 그동안 먹어왔던 돼지들과 확실히 다르다. 비계는 물컹하게 씹히는 맛에 아이들이 보통은 싫어한다. 흑돼지 계열은 비계가 쫀득해 아이들도 잘 먹는다. 

비계마저 쫀득한 것이라 살맛은 두 말하면 입만 아프다. 게다가 백색 돼지보다 보수력(保水力)이 좋아 구웠을 때 수분이 고기에 많이 남아있어 겉을 바싹하게 익혀도 속은 촉촉하다. 부드럽지만 근섬유가 가늘고 숫자가 많아 씹는 맛 또한 좋다. 즉, 씹는 맛과 부드러운 식감을 함께 갖고 있다.

랜드레이스, 두록, 요크셔, 버크셔, 이베리코, 아니면 백색이거나 흑색이거나 모두 외국에서 도입한 품종이다. 분명 '한돈(韓豚)'이라고 이야기하지만 한우처럼 오롯이 우리 품종은 아니다. 지난 2015년에 품종을 등록한 우리 돼지가 있다. 국립 축산과학원에서 참진흑돈과 촉진두록을 교배한 '우리흑돈'이 주인공이다. '어라? 두록은 외국 종인데, 왜 우리 품종인가'라는 의구심이 들 것이다. 

품종 개량은 같은 종에서도 하지만 다른 종과 교배를 통해 육종하기도 한다. 일본 가고시마 흑돈 품종은 영국에서 도입한 버크셔다. 버크셔 또한 고급 돼지고기로 자리잡는 과정에서 중국의 샴 돼지와 교배하기도 했다.

한국의 재래 흑돼지가 맛은 좋지만 사육 개월 수가 백색 돼지에 비해 두 배 이상 길고, 새끼는 한 번에 반 정도밖에 못 난다. 즉 경제성이 떨어지는 재래 흑돼지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두록과 교배를 해 새로운 품종을 만든 것이다.

육종이 짧은 시간 안에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흑돈 육종은 지난 2008년에 시작해 2015년에 품종을 확정, 등록했다. 참진흑돈이나 촉진두록까지 고려하면 199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정도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15년에 품종 등록을 했지만, 2013년부터 경상남도 함양에 있는 복있는 농장에서 시범 사육을 시작했다. 올해 3월 현재, 이 농장에는 약 2600두 가량의 우리흑돈을 사육하고 있다. 

우리흑돈은 190일 정도 키우면 105kg 안팎으로, 같은 기간에 120kg 정도 크는 백색 돼지보다는 덜 자란다. 두록으로 성장성을 보완했다고 해도 재래 흑돼지의 특성이 남아있는 탓이다. 성장이 더딘 대신 백색 돼지보다 맛이 훨씬 낫기에 충분히 보상이 된다.

우리흑돈을 불판에 구우면 백색 돼지와 다르다는 걸 바로 알 수 있다. 일단 흘러나오는 기름이 적어 김치 굽기가 힘들 정도다. 집 안에서 삼겹살 구우면 대개 신문지를 사방팔방에 깔아 놓고 시작한다. 구울 때 나오는 기름과 수분이 많아 작은 기름방울이 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흑돈을 구울 때는 그럴 필요가 없다. 살짝 기름이 튀어도 판을 벗어 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먹고 난 뒤 상 위에 떨어진 기름도 별로 없다. 고기 겉이 갈색 빛이 살짝 돌 때 소금을 찍어 먹으면 확실히 백색 돼지와 '다르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두록의 유전자에서 농후한 지방의 맛이, 재래돼지 유전자에서 물려받은 쫄깃함을 느껴진다. 늘 먹었던 돼지고기와는 확연히 다른, 한 차원 높은 맛에 반한다. 

우리흑돈, 고소함과 감칠맛이 뛰어나다
 
우리흑돈을 불판에 구우면 백색 돼지와 다르다는 걸 바로 알 수 있다. 일단 흘러나오는 기름이 적어 김치 굽기가 힘들 정도다.

우리흑돈을 불판에 구우면 백색 돼지와 다르다는 걸 바로 알 수 있다. 일단 흘러나오는 기름이 적어 김치 굽기가 힘들 정도다. ⓒ 김진영


흑돼지는 비싸다. 우리흑돈 또한 백색 돼지에 비해 비싸다. 대형 할인점 기준, 국내산 냉장 삼겹살이 500g에 1만2000~1만4000원 정도다. 같은 브랜드라도 백화점에서는 더 비싸다. 함양에서 키운 우리흑돈은 500g에 1만7500원 정도다. 비싸기는 하지만 부담이 될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따로 콩가루나 갈치속젓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고기 자체가 맛있기 때문에 별도의 소스를 준비할 필요 없이 소금만 있으면 된다. 비계와 고기에서 나오는 고소함과 감칠맛이 있기에 별도의 소스를 더하면 오히려 돼지고기 본연의 맛을 느끼는데 방해가 된다.

우리 돼지 한돈은 어찌보면 지금부터 시작이다. 수퇘지를 수입해 국내에서 키웠다고 한돈이라는 이름을 붙인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일 수 있다. 돼지뿐만 아니라 쌀, 채소, 과일도 외래 품종이 많다. 연구소에서 국내 육종한 품종이 많지만, 찾는 이가 적어 도태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육종은 어렵고, 기간도 길다. 애써 육종한 것이 맛이 없다면 사라지는 것이 맞다. 그러나 맛이 있음에도 찾는 이가 적어 사라지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돼지고기도 골라 먹는 시대다. 스마트폰도 상위 기종과 보급종의 성능이 다르듯, 돼지고기도 품종에 따라 맛이 다르다. 스마트폰 상위 기종을 써보면 손맛이 다르듯 돼지고기도 입맛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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