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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2.20 10:08수정 2019.02.20 10:09
  
검은 흙이 묻어있는 제주 구좌의 당근. 다디단 맛이 일품이다.

검은 흙이 묻어있는 제주 구좌의 당근. 다디단 맛이 일품이다. ⓒ 김진영


음식에서 당근의 역할은 항상 조연이었다. 당근 케이크나 당근 주스 정도를 빼고는 주연이었던 적이 별로 없다. 어느 백과사전에서는 16세기, 또 어느 곳에서는 19세기 때 한반도에 들어왔다고 하는 당근. 한때는 '홍당무'로도 불렸지만, 무와는 관련이 없는 미나릿과 집안이다. 잡채에, 김밥에, 샐러드에 들어가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재료로써 우리 식탁에 올라왔다.
 
다른 작물들처럼 당근도 사시사철 난다. 그 가운데 겨울 제주도에서 1년 생산량의 70%가 나고, 제주도의 당근은 40% 가량이 동쪽, 검은 땅 구좌에서 난다. 겨울에 당근을 사면 자주 검은 흙이 묻어 있는 이유다.
 
겨울에 생산량이 많아 가장 저렴하다. 기온이 높아지면 생산지도 바다 건너 백두대간따라 올라간다. 덩달아 가격도 따라 올라간다. 다만, 가격은 올라가지만 비싸다고 맛까지 더 좋아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생산량이 적기에 가격이 올라간다. 부족한 생산량은 중국이나 베트남산 당근이 메운다. 근래에는 중국산보다 베트남산을 더 많이 수입한다고 한다.
 
1년 생산량의 70% 겨울 제주도에서 생산
 
당근이 한참 자라는 11월부터 제주 기온은 15도 이하로 떨어진다. 육지 땅이 꽁꽁 어는 한겨울에도 제주는 영하의 날씨가 드물다. 10도 이하의 냉장고 온도라 농작물이 얼지 않기 위해 단맛을 품는다. 한겨울 제주에서 나는 양배추, 배추, 무가 다디단 까닭이다. 구좌에서 나는 당근은 그 가운데서도 단맛이 월등하다. 감귤 농사 대신 1969년부터 오랫동안 당근 농사 지은 짬밥이 켜켜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2월 중순, 제주 남동쪽 표선으로, 성산으로 해서 구좌에 이르는 길, 당근 수확은 끝났고 무 수확이 한창이다. 오름과 오름 사이에 너른 들판을 구석구석 품고 있는 구좌의 송당리를 찾았다. 송당나무, 풍림다방, 1300k 등 이름난 곳이 많은 송당리지만, 핫한 식당이나 카페가 목적은 아니었다. 다디단 당근을 재배하는 '제주로의 농부여행' 농장을 운영하는 유도균 대표를 만나기 위해서다.
 
23년 동안 광고대행사에서 근무한 유 대표는 제주에 며칠 쉬러 왔다가 그대로 정착했다. 초창기에는 이웃의 농사를 도우며 농사일을 배웠다. 별 기술 없는 초보 농사꾼이 지을 수 있는 콩이 첫 작물이었다. '겨울에 당근 농사 안 지으면 심심해'라는 이웃 권유로 당근 농사를 시작했다.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제대로' 유기농 당근을 생산하고 있다.
 
여기서 '제대로'란 맛있는 당근을 뜻한다. 모양이 예쁘거나, 혹은 수확량이 많다는 의미는 아니다. 유기농 농사이니 굵기도 가늘고, 예쁜 모양은 아니다. 구좌에서 생산한 농산물답게 검은 흙이 잔뜩 묻은 당근을 손으로 쓱쓱 닦아 베어물면 세포 구석구석 가득 차 있던 단맛이 터져 나온다. 오래 씹어야 비로소 단맛을 느껴지는 한여름 당근과는 차원이 달랐다.
 
수분이 많아 따로 물을 넣지 않고 만든 제주 구좌 당근 주스.

수분이 많아 따로 물을 넣지 않고 만든 제주 구좌 당근 주스. ⓒ 김진영

 
구좌에서 나는 당근은 수분이 많아 주스를 만들 때 따로 물을 넣지 않는다. 밝은 주황색 주스를 한 모금 마시면 청량한 단맛이 바로 느껴진다. 단맛이 슬쩍 났다가 이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여운이 길다. 시원한 당근 주스가 뱃속에 안착하면 절로 맛있는 감탄사가 나오고 긴 단맛 여운처럼 감탄하는 시간도 길어진다. 달기만 해서 맛있는 것은 아니다. 은은한 당근 향이 청량한 단맛과 어우러져 예술의 경지다.
 
당근도 일본에서 수입한 품종이 득세
 
주스용 당근도 있다. 주스용 당근은 심을 때부터 주스용으로 심은 것은 아니다. 모양이 삐뚤빼뚤하거나 작은 당근을 모아 놓은 것일 뿐이다. 일본은 주스용 품종을 별도로 재배하기도 하는데 국내에서는 극히 일부에서만 생산한다. 요리 재료나 주스용이나 같은 밭에서 나온 모양만 다르지 같은 품종이다.
 
겨울 제주에서는 일년 생산량의 70%에 달하는 당근이 나온다.

겨울 제주에서는 일년 생산량의 70%에 달하는 당근이 나온다. ⓒ 김진영


여느 농작물과 마찬가지로 당근도 일본에서 도입한 품종이 득세다. 일본에서 들여왔지만 품종의 특성은 맛보다는 잘 자라고 많이 생산되는 품종 위주다. 주스용으로 육종한 품종은 잘 키워도 크기가 작아 시장에서 제값을 못 받아 재배하는 이가 드물다.
 
농산물은 크기에 따라 가격 결정이 된다. 용도에 따라 모양이나 크기가 다를 수 있지만 가격이 정해지는 것은 크기와 모양이다. 가격을 정할 때, 크기와 모양 뿐만이 아니라 이제는 용도도 평가 항목에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야 용도에 맞게 다양한 품종을 심는 이가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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