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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1.02 08:25수정 2019.01.02 08:49
장 보러 대형마트에 갔다가 고구마 판매대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풍원미 고구마'라 쓰인 포장지가 내 발길을 잡았다. 풍원미는 호박고구마 품종 가운데 하나다. 대단한 호박고구마라서, 아주 맛있는 고구마라서 발길을 멈춘 게 아니다. 물론 풍원미는 여느 호박고구마처럼 달고 부드럽다.
 
고구마 판매대를 상상해 보자. 가격과 원산지를 알리는, 거기에 밤고구마인지 아니면 호박고구마인지 구분하는 것만 있다. 예를 들어, 해남 호박고구마 1봉지 3000원, 아니면 여주 밤고구마 100g 1500원이라는 정보만 있다.

밤고구마와 호박고구마는 고구마 성분 가운데 전분의 성질에 따라 구분짓는 큰 분류일 뿐이다. 밤고구마처럼 찌거나 구우면 덩어리가 살살 부서지는 고구마를 '분질 고구마'라고 한다. 밤고구마와는 달리 수분이 많고 부드러운 식감이면 '점질 고구마'라고 한다. 호박고구마가 대표적인 점질 고구마다.

밤고구마와 호박고구마는 전분의 성질 차이
 
밤고구마와 호박고구마는 고구마 성분 가운데 전분의 성질에 따라 구분짓는 큰 분류일 뿐이다.

밤고구마와 호박고구마는 고구마 성분 가운데 전분의 성질에 따라 구분짓는 큰 분류일 뿐이다. ⓒ 김진영


국내산 고구마로 소주를 만들 때는 대표적인 점질 고구마는 물고구마였다. 고구마가 수입 타피오카 전분으로 바뀌면서 물고구마는 점차 사라졌고, 2000년대 들어서면서 식용 고구마가 각광을 받으면서 호박고구마가 대표적인 점질 고구마가 됐다. 수확할 때는 분질이었다가 보관하는 사이 점질로 바뀌는 것도 있다. 베니하루카가 대표적인 품종이다. 

점질 혹은 분질, 밤고구마 또는 호박고구마로 판매하는 게 관행이었다. 수많은 품종이 흥망성쇠 하는 사이 우리는 그저 취향에 따라 호박고구마를 사거나 밤고구마를 샀다. 사는 곳은 같아도 살 때마다 고구마의 맛이 달라졌다. 저번에 샀던 고구마는 맛있었는데 이번에 산 것은 별로였던 이유가 생산 지역과 품종이 달랐기 때문이다.

'풍원미'라고 인쇄된 포장지가 나를 붙잡은 이유는 품종명이 정확히 표기돼 있었기 때문이다. 날로 인기를 더해가는 호박고구마에도 수많은 품종이 있다. 대부분 일본에서 들여온 품종으로 안노이모, 안노베니 등이 있지만, 호박고구마로 팔리는 대부분은 안노베니다. 

국내 육성 품종으로는 '신황미'를 시작으로 '풍원미'가 시장에 널리 알려졌다. 3년 전부터는 새로 육성된 '호감미'의 재배 면적이 늘고 있다. 그나마 풍원미가 나오면서 호박고구마 대신 풍원미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밤고구마는 여전히 이름조차 없다.

1990년 '율미', 다음 해에 '신율미', 그리고 2016년에 퍽퍽하지 않고 부드러운 식감을 가지는 '진율미'도 재배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밤고구마 대부분은 신율미라고 한다. 지금은 호박고구마에 밀리는 형국이지만 잘 익은 김장김치나 동치미와 가장 잘 어울리는 고구마는 역시 밤고구마다. 

김장 김치를 올려 같이 먹으면 김치의 신맛이 침샘을 자극한다. 김치가 혀에 닿는 순간 혀 밑에 고이는 침이 밤고구마의 퍽퍽함을 풀어준다. 동치미 국물 한 모금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밤고구마의 매력은 김치를 만났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베니하루카는 가을에 갓 수확했을 때 굽거나 찌면 밤고구마와 식감이 비슷하지만 한 달 정도 보관한 것을 구입하면 호박고구마처럼 부드럽다. 꿀고구마, 황금고구마, 첫사랑고구마라 판매하는 고구마는 베니하루카다. 

고구마를 받으면 박스를 열어 말려야 한다 
 
택배 과정에서 추위에 노출된 고구마를 받아 따듯한 실내에 보관하면 고구마 표면이 축축해진다. 온도 차이에 의한 수분 응결이다. 수분이 많아진 고구마가 박스 안에서 하루를 갇혀있으면 쉽게 물러진다.

택배 과정에서 추위에 노출된 고구마를 받아 따듯한 실내에 보관하면 고구마 표면이 축축해진다. 온도 차이에 의한 수분 응결이다. 수분이 많아진 고구마가 박스 안에서 하루를 갇혀있으면 쉽게 물러진다. ⓒ 김진영


추운 겨울, 고구마를 택배 주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겨울철 간식으로 수요가 많아진다. 판매량이 늘어나는만큼 품질 불만도 많아지는데 대부분 상했다는 클레임이다. 어제 받아 놓은 고구마가 물러져 있으니 주문한 사람은 먼저 생산자를 의심한다. 

택배 과정에서 추위에 노출된 고구마를 받아 따듯한 실내에 보관하면 고구마 표면이 축축해진다. 온도 차이에 의한 수분 응결이다. 수분이 많아진 고구마가 박스 안에서 하루를 갇혀있으면 쉽게 물러진다.

간혹 한파주의보가 내렸을 때 택배를 배달했다면 냉해를 입어 물러지는 경우도 있다. 몹시 추울 때는 생산자가 택배를 하루이틀 미루는 게 좋다. 소비자도 고구마를 받는 즉시 박스를 열고 꺼내 말린 뒤 다시 보관하면 오래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고구마의 보관 적정 온도는 13도다. 실내에서 적정 온도를 가진 곳이 드물다. 따듯한 곳이 대부분이다. 따듯한 곳에 고구마를 놔두면 싹이 난다. 감자 싹처럼 독소가 있지는 않다. 싹 난 부분을 도려내고 먹으면 된다. 다만 싹 나기 전보다는 맛이 떨어진다. 그러니 보관도 어렵거니와 싹이 나 맛이 떨어지니 조금씩 자주 사 먹는 것이 좋다.

< MD의 식탁 >을 연재하면서 자주 이야기하는 게 '품종'이다. 고구마도 역시 품종을 알면 맛이 다양해진다. 풍원미를 맛보니 호감미 맛이 궁금해진다. 고구마는 1700년대 일본에서 도입한 작물이다. 

2019년을 맞이한 이 순간에도 여전히 일본에서 도입한 품종을 선호한다. 베니하루카, 안노베니 못지 않은 국내 육성 품종인 풍원미, 호감미가 있다. 이제 고구마 살 때 밤고구마와 호박고구마로 분류해 사지 말고 '풍원미 있어요, 진율미 있어요?' 이렇게 이름을 부르며 고구마를 사자.
 
고구마도 역시 품종을 알면 맛이 다양해진다. 풍원미를 맛보니 호감미 맛이 궁금해진다.

고구마도 역시 품종을 알면 맛이 다양해진다. 풍원미를 맛보니 호감미 맛이 궁금해진다. ⓒ 김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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