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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11.07 08:01수정 2018.11.07 08:01
밤의 세계가 궁금했다. 지난 주말 몇 가지 밤을 사러 갔다. 연천에서 무농약으로 다양한 밤 농사를 짓고 있는 금바위농원의 보관 창고가 일산에 있다. '날 것으로는 병고, 찌는 거로는 이평, 굽는 것은 단택이 최고!'. 20년 가까이 밤 농사를 짓고 있는 김양원 사장의 말이다. 

병고, 이평, 단택은 밤의 품종 이름이다. 굽고, 찌고, 생으로 먹는 밤도 종류에 따라 용도가 다르고, 맛도 다르다. 단택, 병고, 만적, 이평 4가지 품종의 밤을 사와 딸에게 깎아줬다. 군밤보다는 생밤을 좋아하는 아이인지라 평가자로서 딱 맞다. 

하나하나 먹을 때마다 그저 '맛있네' 하다가, '만적은 수분이 많아 보드랍고 달다' 하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생산자의 말을 들어서인지 내 입에는 병고가 가장 달았다. 생밤 특유의 아삭함도 괜찮았다. 

전국의 밤, 절반 이상을 충남에서 생산
  

굽고, 찌고, 생으로 먹는 밤도 종류에 따라 용도가 다르고, 맛도 다르다. 이 밤은 '단택'이라는 품종이다. ⓒ 김진영

 
2016년 기준, 밤 생산량은 5만3000톤이다. 그 가운데 절반 이상을 충청남도에서 생산했다. 충남은 밤의 고장, 특히 공주 정안은 밤으로 유명하다. 정안에서는 밤나무를 1960년대부터 심기 시작했다. 1950년대에 밤나무 흑벌병이 번지면서 토종 밤나무가 거의 사라져 토종 밤 자리를 일본 품종이 대신했다. 

일본 밤 품종인 이평, 축파, 단택 등 40여 품종이 전국에 심어졌다. 일본 품종 도입과 별도로 살아남은 토종 밤 개체를 채집해 옥광 등 13개 품종을 보급했다. 대표적인 품종이 옥광과 대보 품종으로 공주 정안에서 생산하는 밤 품종이다. 

옥광은 중간 크기로 단맛과 밤 향이 짙다. 정안면에서 나는 옥광은 당도가 21%로 이웃인 청양에서 나는 옥광보다 단맛이 많다. 대신 청양에서는 정안의 옥광 못지 않게 축파 품종이 달다. 같은 품종이라도 지역에 따라 단맛이 다르다. 대보는 한·중·일 세 나라 밤의 특징을 살려 육종(育種)한 품종으로 당도가 높거니와 구웠을 때 안쪽 껍질이 잘 벗겨져 군밤용으로 좋다. 

국립산림품종센터에서 육종하는 밤이 대부분이지만, 농부가 육종한 품종도 있다. 경상남도 합천의 변영근씨가 개발한 대명왕밤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 2011년 등록이 완료된 품종으로 왕밤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무게가 40~60g으로 계란 크기와 비슷할 정도다. 

크기만 큰 게 아니라 숙성한 것은 당도가 18%까지 나가 일본 도입종과 비슷한 단맛을 낸다. 당도가 높고 아삭한 식감이 있어 깎아서 먹는 것도 좋지만, 찐밤이 먹기에도 좋거니와 서너 개만 먹도 한 끼 식사가 될 정도다.

군밤용으로 좋다는 단택으로 군밤을 만들었다. 집에서 군밤을 구우면 이상하리만큼 껍질이 잘 벗겨지지 않는다. 어떤 것은 잘 벗겨지지만 어떤 것은 밤 속살과 딱 붙어있어 군밤을 먹기 전에 애부터 먹는다. 군밤 파는 곳에서 산 군밤은 잘 까지는데 내가 하면 잘 안 된다. 

그래서 밤에 십자로 칼집 내고 물에 두 시간 이상 불렸다. 제사상 차리기 전 밤을 칠 때 껍질이 잘 까지라고 미리 불려 놓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물에 불린 밤을 프라이팬에 넣어 뚜껑을 닫고 살살 흔들어 가며 구웠다. 물기를 품고 있던 밤이라 이내 뚜껑 유리에 김이 서렸다. 

15분 정도 약한 불에 굽고 나니 노란 속살을 드러냈다. 군밤 장수가 구운 것처럼 알이 쏙 빠지겠지 예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쏙 빠지는 것은 한두 개고 나머지는 부서졌다. 아마도 십자로 칼집 내는 요령과 불리는 시간이 부족했던 탓인 듯 싶다. 나중에 다른 군밤용인 대보로 해보니 숙련된 장사꾼이 구운 것처럼 잘 벗겨지게 구워졌다.

휴게소에서 파는 군밤은 대부분 중국산 단밤이다. 화북지역에서 생산하는 밤으로 껍질이 잘 벗겨지고 일본 밤이나 국내 밤보다 단맛이 도드라진다. 추운 지역이라 알이 작은 대신 단맛이 좋다. 함경도와 평안도 북부 지역에서도 이와 비슷한 단밤이 난다고 한다. 

산림청 발표 자료를 보면 국내 밤이 일본 밤보다 외형이나 광택은 떨어져도 단맛이나 크기가 좋다고 한다. 가끔 시장에 나오는 작은 밤을 토종 밤이라고 판매하지만 실상은 아니다. 토종 밤이라고 무조건 작지만은 않다.

밤이 길어질수록 밤의 당도가 올라간다
 

국립산림품종센터에서 육종하는 밤이 대부분이지만, 농부가 육종한 품종도 있다. 경상남도 합천의 변영근 씨가 개발한 대명왕밤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 2011년 등록이 완료된 품종으로 왕밤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무게가 40~60g으로 계란 크기와 비슷할 정도다. ⓒ 김진영


밤은 수확 직후가 가장 단맛이 적다. 저온 저장고에서 적어도 한 달 정도 보관해야 비로소 제대로 단맛을 낸다. 밤과 비슷한 것이 요즈음 한창 제철 맞은 고구마다. 고구마는 어두운 곳에서 며칠 수분을 증발시켜야 단맛이 난다. 갓 캔 것은 수분이 많아 단맛이 상대적으로 적다. 

밤은 한창 수확하는 9월이나 10월보다는 11월이나 12월에 더 맛있다. 같은 군밤이라도 한겨울에 먹은 것이 더 달게 느껴지는 까닭이다.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8주 정도 보관한 밤은 30~40% 정도 당도가 올라간다.

밤을 사서 집에서 보관할 때는 일반 냉장고보다는 김치 냉장고가 좋다. 껍질 표면에 살짝 얼음이 맺힐 정도의 온도가 돼야 오래 보관할 수가 있다. 산 밤을 물에 씻은 후 비닐에 구멍을 뚫어 보관하는 게 좋다.

생밤에는 비타민도 많지만 자당, 과당, 포도당이 골고루 섞여있어 시원한 단맛이 난다. 게다가 감칠맛의 대명사인 글루탐산도 많이 함유하고 있어 하나를 먹고 나면 또 하나를 자동으로 집게 만든다. 군밤을 좋아하면 대보, 생밤은 병고, 찌거나 생밤은 옥광, 한 끼 식사 대용식을 찾는다면 대명왕밤이 좋다. 밤이라고 같은 밤이 아니다. 이름을 구분해 찾으면 다양한 맛을 볼 수 있다. 

가을이 깊어지고 겨울이 오면 밤이 길어진다. 밤이 길어질수록 냉장고에 들어 있는 밤의 당도가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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