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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09.05 08:04수정 2018.10.19 11:34
명란젓은 한반도의 동해에서 시작돼 일본으로 건너가 꽃 피운 음식이다. 일제 강점기, 부산에서 수산물을 가공하는 근로자에게 노임 대신 생선 부속물을 주곤 했다고 한다. 근로자들은 노임으로 받은 명태 알에 고춧가루와 소금을 뿌려 젓갈을 담가 먹었다. 조선인이 먹는 명란젓을 맛본 일본인이 패전 이후 일본으로 돌아가 부산에서 먹었던 명란을 재현해 조그만 상점에서 매운 명란이란 뜻의 '카라시 멘타이코(辛子 明太子)'란 이름으로 팔기 시작했다.

그 상점의 이름이 '후쿠야' 였다. 후쿠야는 점차 일본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일본 최대의 명란 업체가 되었다. 후쿠야 홈페이지에서는 자사 명란의 유래가 한국의 부산이라고 밝히고 있다. 일본 규슈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명란 상점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찾는 대중적인 음식이지만, 정작 우리에게는 어쩌다 가끔 먹는 낯선 음식이 돼버렸다.

황태·북어·먹태·명태, 그리고 명란

명란젓은 한반도의 동해에서 시작돼 일본으로 건너가 꽃 피운 음식이다. ⓒ 김진영


매년, 4월과 5월 부산 감천항에 러시아 국적의 배가 들어온다. 국내 최대 무역항인 부산항은 수많은 나라의 배가 들락거리는 곳인 만큼 '그게 뭐 대단한 일이냐' 하겠지만 조금은 특별한 물품을 갖고 온다. 그 특별한 물품이 바로 명란젓의 재료가 되는 명태 알이다. 1970년대까지 명태 알은 강원도 일대의 항구에서 가공해 일본으로 수출했다. 명란을 뺀 나머지 몸통은 진부령이나 대관령 아래 동네 인제에서 황태나 북어로 가공했다.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다보면 살은 부풀어올라 부드럽고 구수한 노란빛 도는 황태가 된다. 얼리지 않고 말리면 북어, 말리는 과정에서 검은 빛을 띠면 먹태다. 동해에 차고 넘치던 명태가 사라져 지금은 멀리 베링해까지 가서 잡는다. 잡는 것도 매해 러시아와 계약한 물량만 잡을 수 있고 나머지는 수입한다.

명태를 잡는 한겨울에 선상에서 몸통과 알을 분리해 급랭했다가 5월에 감천항에서 경매를 한다. 국내 명란 생산자뿐만 아니라 일본 생산자도 그때가 되면 부산으로 모인다. 경매는 알의 상태에 따라 몇 단계로 나뉜다. 알 모양이 좋고, 터지지 않은 것이 상품(上品)이다. 알이 모자라게 차거나, 터지거나 하면 가격은 눈에 띄게 뚝뚝 떨어진다.

모양새 좋은 것은 선물용으로 찾기에 가격이 높지만 소비나 가공용으로 쓰는 것은 저렴하다. 가격이 저렴하다고 해서 맛까지 저렴한 것은 아니다. 모양새 좋은 명란은 1++ 소고기보다 비싸다. 1kg에 20만 원 넘게 거래된다. 선물용 혹은 뇌물용 명란일 경우만 그렇다. 터지거나 미숙성 명란은 1kg에 3만원 정도로 모양새 좋은 것과 비교해 가격이 상당히 저렴하다.

갓 지은 밥에 명란 한 점 올리면...

갓 지은 밥, 혹은 갓 전자레인지에 돌려 김이 무럭무럭 나는 밥 위에 명란을 한 점 올린다. 그리고 참기름 한 방울 떨어뜨리면 다른 반찬 생각이 안 난다. ⓒ 김진영


터진 명란은 여러모로 쓰임새가 좋다. 라면을 끓일 때 넣기도 한다. ⓒ 김진영


터진 명란은 여러모로 쓰임새가 좋다. 밥을 하고 나서 밥을 푸기 전에 명란을 올려 밥솥 온도로 살짝 쪄서 먹는 것을 가장 즐긴다. 가장 간편하고 명란의 맛을 오롯이 즐길 수 있다. 라면을 끓일 때 넣기도 한다. 라면을 다 끓이고 나서 불을 끄기 직전에 넣는다. 필자가 집에서 먹는 명란은 가격이 가장 저렴한, 명란 껍데기가 없는 것이나 터진 것이라 끓는 음식에 일찍 넣으면 알이 다 흩어지기도 하거니와 반숙 명란이 완숙된 것보다 맛이 좋기 때문이다.

아주 가끔 명란과 밥, 참기름을 넣고 비벼서 김에 싸 먹기도 한다. 김치찌개에 넣으면 알탕 맛 김치찌개가 된다. 명란을 요리할 때는 꼭 기름과 같이 요리하는 게 좋다. 기름과 함께 요리해야 명란에 많이 들어있는 지용성 비타민이 녹아나와 영양가 높은 음식이 된다.

부산 송도해수욕장 부근에 있는 아미치의 명란 파스타, 서울 광화문국밥의 명란 오이무침에 조금이라도 기름기가 들어가는 까닭이다. 파스타에 쓰인 올리브유, 오이무침에 들어간 참기름 한 방울은 향도 좋게 하지만, 영양도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밥처럼 바게트와도 잘 어울리는 명란

부산 송도해수욕장 부근에 있는 아미치의 명란 파스타. 명란은 기름과 함께 요리하면 영양가가 높아진다. ⓒ 김진영


서울 광화문국밥의 명란 오이무침. 참기름 한 방울을 뿌리면 향도 좋지만, 영양도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 김진영


원래 명란은 짰다. 냉장시설이 부족했을 때는 염도를 높여 저장 기간을 늘렸다. 염도가 15% 이상이었다. 냉장시설이 좋은 지금은 염도를 4%로 낮춘 명란젓이 나온다. 수산 명인 고(故) 장석준 대표의 오랜 연구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저염 명란은 요리해서 먹는 것도 좋지만 그냥 밥하고 먹을 때 가장 맛있다.

갓 지은 밥, 혹은 갓 전자레인지에 돌려 김이 무럭무럭 나는 밥 위에 명란을 한 점 올린다. 그리고 참기름 한 방울 떨어뜨리면 다른 반찬 생각이 안 난다. 거기에 김치까지 있으면 금상첨화다. 명란은 밥처럼 바게트와도 잘 어울린다. 명란을 마요네즈와 섞어 속에 넣고 구운 바게트는 한끼 식사로도, 맥주 안주로도 최고다. 적당히 짠, 그리고 알 특유의 씁쓰레한 맛이 명란의 매력이다.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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