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원고료주기
등록 2018.08.29 11:27수정 2018.08.29 11:39

추자항 ⓒ 김진영


2001년부터 일 년에 많이 다니면 예닐곱 번, 적으면 서너 차례 정도 일 보러 제주에 갔다. 9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감귤 품종이 다달이 바뀌는 까닭에 자주 간다. 갔던 곳을 또 가지만 지난해 감귤과 올해 감귤이 다른 탓에 가고 또 간다.

직장인의 출장이라는 것이 여유라고 해봐야 저녁에 소주 한 잔, 그마저도 안 될 때는 풍경 좋은 곳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는 서둘러 공항 가는 것이 전부. 올해도 6번 정도 제주를 찾았지만 대부분 당일치기인지라 먼발치에서 비양도나 우도를 바라볼 뿐, 섬에 들어갈 생각을 못 했다. 수십 번의 제주 출장길에 처음으로 섬에 들어갔다. 

제주도 북서쪽 뱃길 따라 200리는 아니고 115리, 45km 떨어진 곳에 추자도가 있다. 제주항에서 고속 페리를 타고 1시간 남짓 가면 추자항에 다다른다. 완도나 진도에서 더 가까운 곳이지만 행정구역상으로는 제주도에 속한다. 배 안에는 제주 시내에서 일을 본 섬사람들과 여행과 낚시를 즐기려는 사람으로 가득 차 있다.

두런두런 이야기가 눈 감고 잠을 청하는 내 귀로 들어온다. 어라? 말소리가 전라도 사투리 비슷하다. 나중에 까닭을 들으니, 1914년까지는 전라남도에 속해 있다가 그 이후 제주도에 귀속되었다고 한다. 섬사람들 대부분이 전라도에서 이주한 까닭에 풍습이나 말씨가 제주라기보다는 전라도에 더 가깝다고 한다.

삼치, 맛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생선

추자도의 삼치회. ⓒ 김진영


추자도의 삼치조림. ⓒ 김진영


추자도의 삼치간국. ⓒ 김진영


낚시꾼들에게 추자도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시사철 대물들이 꿈틀대는 엘도라도 같은 곳이다. 낚싯대를 좀 만져본 꾼이라면 한 번쯤 꼭 가보고 싶은 섬이다. 추자도 근방의 물살이 강해, 다른 곳보다 운동량이 많아 육질이 단단해 같은 횟감이라도 추자도에서 난 것을 더 쳐준다. 꽃이 한창인 봄부터 가을까지는 농어, 부시리, 참돔이, 겨울에는 돌돔, 삼치, 무늬오징어(흰꼴뚜기)가 잡힌다.

추자도 근해를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소흑산도, 남쪽으로 마라도 아래까지 참조기 어장이 열리기도 한다. 조기 어장이 가까운 까닭에 맛 좋은 굴비를 많이 생산하고 있다. 추자도 근방에 멸치가 많이 든다. 멸치는 먹이 피라미드에서 플랑크톤 바로 위. 멸치 잡아먹으러 치어기를 벗어난 고등어와 삼치가 모여들고, 이것들을 잡아먹기 위해 대형 삼치와 부시리가 뒤를 쫓는다. 멸치가 많이 잡히는 추자도 골목길을 걸으면 골목마다 멸치 액젓을 담가 놓은 통이 쉽게 눈에 띈다.

생선 가운데 맛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생선이 삼치다. 게다가 멸치를 많이 잡아먹은 추자도 삼치가 맛이 없을 수가 없다. 40cm 미만의 작은 삼치를 전라도 사투리로 '고시'라 한다. 작은 삼치도 나름 맛이 있다 해도 '석 자', 즉 90cm 이상의 것이어야 제대로 삼치 맛을 볼 수 있다. 전라도, 특히 여수, 순천 등지에서는 한겨울에 잘 익은 갓김치와 대물 삼치회를 최고의 별미로 친다. 갓김치와 고소한 삼치회도 좋지만, 뭐니뭐니 해도 해풍에 며칠 꾸덕꾸덕 말린 반건 삼치가 별미 중의 별미다.

추자도 들어가기 전 미리 주문해둔 삼치 조림과 삼치 젓국으로 점심을 먹었다. 선어의 맛이 가볍고 부드러운 맛이라면 말린 삼치의 맛은 묵직한 끝에 느끼는 감칠맛이다. 수분이 빠진 살은 씹는 맛이 배가 되어 있고, 살 속에 남아 있는 감칠맛은 몇 배 농축되어 신선한 삼치에서 느끼기 힘든 감칠맛이다. 삼치 지방 성분은 건조 과정에서 여러 향기와 맛으로 분해되어 풍미가 깊다.

화학조미료(MSG)로 감칠맛은 흉내낼 수 있어도 풍미 흉내는 못 낸다. 간장과 설탕으로 '단짠' 양념이 배인 삼치 조림은 밥을 부르는 전령사가 된다. 큰 삼치를 말리면 살집이 좋은 등과 살이 적은 꼬리 부분이 제각기 말리는 정도가 달라진다. 살이 적어 며칠 만에 바싹 말려진 꼬리 살은 간국으로 낸다. 쌀뜨물에 불리고 난 후 무와 함께 한소끔 끓여 내는 단순 요리지만 깊고 시원한 맛에 한 수저 먹은 것만으로도 매력에 빠진다.

충청도에서는 생선 말린 것으로 국을 끓일 때 새우젓으로 간을 하는 젓국이 있다. 전라도 지역은 새우젓 대신 소금으로 간을 해 젓국이라 하지 않고 간국이라 달리 부른다. 말린 생선의 맛을 오롯이 느낄 수 있거니와, 바싹 말려진 삼치 살은 불리고 요리하는 사이 부드러워져 시원한 국물과 잘 어울린다.

비단 삼치뿐만 아니라 다른 말린 생선도 간국의 재료로 좋다고 한다. 특히 바다장어 말린 것이 더 맛있다고 한다. 여기에 딱딱한 추자도 땅에 적응해 향 진한 파김치를 더하면 밥 한 공기 추가는 시간 문제일 뿐이다.

추자도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제주올레길

주차도의 제주올레길. ⓒ 김진영


소화도 시킬 겸 잠시 길을 걸었다. 추자도 골목을 걷는 것도 좋지만 제주올레의 18-1코스 중 기정·예초리길을 걸었다. 해안가를 오른쪽으로 두고 걷는 코스로 추자도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 왔다. 왼쪽은 작은 산이라 중간중간 나무숲 터널 너머로 보이는 바다가 푸른빛 희망으로 종종 다가온다. 길을 걷는 사이 '제주라도'라는 말이 생각났다. 제주지만 손맛은 전라도의 유전자가 그대로 있는 추자도를 표현하기에 딱 좋은 단어인 듯 싶었다.

잠시 걷는 사이 출장이 아닌 다음에는 여행으로 오고 싶어졌다. 낚싯대 하나 챙기고, 돼지고기 넉넉히 사서 들고 다시 올 생각이다. 섬은 물고기는 많아도 육고기는 부족하다. 아무리 매일 배가 들어 온다 하더라도 사정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여행에서 먹을 거 준비하면서 민박집 몫을 조금 더 사서 드리면 다음날 아침 메뉴에 육지에서 맛보기 힘든 맛있는 생선이나 색다른 찬이 올라온다. 섬에서 민박할 때 알아두면 좋은 팁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클럽아이콘11,4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