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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07.18 09:07수정 2018.07.18 09:07
얼큰한 향을 내며 자작자작 끓는 국물. 냄비 속 끓는 국물 위로 떠오른 큼직한 감자를 밥 위로 올린 다음 국물을 더해 비빈다. 그리고 숟가락으로 감자를 지그시 누른다. 감자가 부서지지 않고 누르는 힘만큼 밥도 눌린다. 숟가락을 세워 감자를 자른다. 결이 깔끔하게 나온다. 가끔 감자탕이나 닭볶음탕을 먹을 때 심심치 않게 만나는 광경이다. 어떤 때는 감자가 쉽게 뭉그러져 밥과 비비기 편하고, 어떤 때는 조각으로 부서지기만 한다. 왜 그럴까?

정답은 감자가 달라서다. 감자는 크게 점질(粘質) 감자와 분질(粉質) 감자로 나뉜다. 점질과 분질의 차이는 전분의 함량으로 구분한다. 전분이 많으면 분질, 적으면 점질 감자다. 점질 감자는 조리를 하거나 삶았을 때 외형 유지가 잘 돼 요리의 모양새가 좋다. 반면, 분질 감자는 요리했을 때 모양새가 뭉그러진다.

'분질 감자'를 넣고 감자탕을 끓이면 돼지 등뼈의 살을 발라 먹는 것보다 살살 녹는 감자를 국물과 함께 비벼 먹는 맛이 더 좋을 정도다. ⓒ 김진영


대표적인 점질 감자는 대서 품종이다. 점질 감자는 앞서 이야기 했듯이 가공용에 적합하도록 개량된 품종이다. 감자에는 과당, 포도당, 자당이 존재하는데 점질 감자는 당 성분도 분질에 비해 적다. 당분이 적으면 감자를 튀겼을 때 메일라드(당과 아미노산이 결합하면서 향과 색이 변화는 현상) 반응이 적게 일어난다. 메일라드 반응이 심하면 진한 갈색으로 변색되거나, 심한 경우 쓴맛까지 생긴다.

감자칩이나 프렌치프라이를 만들 때 주로 점질 감자인 대서를 사용한다. 당이 적기 때문에 색 변화가 적고 깔끔한 가공품이 나와 식품가공 업자들이 선호한다. 다만, 당분과 전분이 적기 때문에 찌거나 볶거나 하는 용도로는 적합하지 않다. 점질 감자가 조리되면 감자 요리의 식감이 부드럽지 않다. 감자탕 감자가 부드럽지 않다면 점질 감자일 가능성이 높다.

분질 감자의 대표적인 품종은 남작, 두백, 하령 등이 있다. 남작은 1930년대 일본에서 들여왔고, 두백과 하령은 국내에서 개량한 품종이다. 분질 감자의 특성은 감자를 쪄보면 잘 알 수 있다. 분질 감자를 찌면 감자 표면이 가뭄에 논바닥처럼 갈라진다. 감자의 조직을 구성하는 펙틴이 찌는 과정에서 손실되기 때문이다. 다른 요리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감자조림을 하면 형태가 칼질한 그대로가 아니라 뭉개지지만 부드러움과 단맛이 좋다. 닭볶음탕, 감자탕, 카레 요리를 할 때 최고의 감자 맛을 볼 수 있다. 분질 감자를 넣고 감자탕을 끓이면 돼지 등뼈의 살을 발라 먹는 것보다 살살 녹는 감자를 국물과 함께 비벼 먹는 맛이 더 좋을 정도다. 감자를 숟가락으로 밥 위에 올리는 행동만으로도 감자가 쉽게 부서져 밥과 비비기 편하다. 분질 감자를 처음부터 넣고 돼지 등뼈와 함께 끓이면 간혹 형태가 사라질 정도로 뭉그러진다. 그렇기 때문에 요리 중간에 넣어야 한다.

우리가 먹는 감자의 약 80%를 차지하는 수미는 냉온 겸용 에어컨하고 비슷하다. 전분과 당의 함량이 점질과 분질 감자 중간 정도다. 가공용으로도, 요리용으로도 적당하다. 조리했을 때는 분질의 형태를 지니다 이내 점질의 성질을 드러낸다. 다용도로 쓸 수 있는 품종의 특성이 수미 재배 면적을 넓히는데 일조했다. 생산자의 말을 빌리자면, 모든 농사가 어렵지만 그나마 수미 농사는 손이 덜 가는 것도 한몫 했다고 한다. 수미 감자가 맛없는 감자는 아니다. 하지만 한 품종이 일방적으로 득세하면 맛의 다양성을 방해한다. 지역에 따라 생기는 미세한 맛 차이만 있을 뿐 다양한 맛을 경험하지 못하게 된다.

잘 으깨지는 '분질 감자'의 대표적인 품종은 남작, 두백, 하령 등이 있다. ⓒ 김진영


7년 전 이맘 때 가락동 시장을 며칠 뒤진 적이 있었다. 어릴 적 툇마루와 마당이 있던 부평에 살 때 기억이 떠올랐다. 학교를 파하고 장맛비 맞으며 집에 와 툇마루에 앉아 있으면 엄마는 김이 펄펄나는 삶은 감자를 양은 냄비 채 내 앞에 놓았다. 뜨거운 감자를 손에 쥐지 못하고 숟가락으로 잘라 설탕에 찍어 먹다가 나중에는 그것도 귀찮아 국그릇에 감자와 설탕을 넣고 으깨 먹었다.

생각해보니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감자를 쪄 먹어도 그 맛이 아니었다. 가락 시장에 나가는 동료를 통해 이름도 모른 채 그저 찌면 분 나는 감자를 수배했다. 며칠 수소문한 끝에 한 봉지를 구했는데, 그 이름이 '남작'이었다. 소금을 넣고 감자를 쪄보니 분이 추억처럼 하얗게 올라왔다. 기억 속에 숨어있던 맛 그대로였다. 판매해볼 요량이었지만 수량이 태부족이었다. 찾는 이가 없어 자가 소비용으로 조금만 심고 있었던 것이다.

남작 감자를 대량 재배하기 시작한 전남 영암의 농가 덕분에 7년이 지난 지금은 남작 감자를 찾기가 쉬워졌다. 찾기도 쉽거니와 가격도 예전보다 많이 내렸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5kg 한 박스를 만 원 정도에 구입할 수 있다. 게다가 남작을 대신할 수 있는 두백도 있다. 분질 감자는 찌거나 삶는 요리에 어울린다.

볶는 음식에 분질 감자를 쓰면 형태가 물러지고, 서로 달라 붙어 요리하기가 쉽지 않다. 7월 중순, 충북 중산간 지역에서 감자가 나오고 있다. 곧 강원도에서도 감자가 나온다. 분질 감자는 저장성이 떨어져 이듬해까지 보관이 힘들다. 여름 한 철 지나면 분질 감자도 잠시 머물다 사라진다. 감자의 품종이 바뀌면 요리법이나 맛이 달라진다.

'분질 감자'를 처음부터 넣고 돼지 등뼈와 함께 끓이면 간혹 형태가 사라질 정도로 뭉그러진다. 그렇기 때문에 요리 중간에 넣어야 한다. ⓒ 김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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