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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07.11 08:18수정 2018.07.11 09:14
느끼한 놈, 비싼 놈, 고소한 놈. 장마가 시작됐고 조금 지나면 초복이다. 초복이라고 하면 복달임 음식이 먼저 떠오른다. 닭, 전복, 민어, 장어, 소고기, 수박 등으로 복달임하며 삼복더위를 잠시 잊는다. 앞서 이야기한 '놈'은 복달임 음식 가운데 하나인 '장어'다.

뱀장어라고 알려진 느끼한 민물장어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인 기수역은 다른 말로는 '풍천'이라고 한다. 장어가 많이 잡히던 곳이 풍천이라서 민물장어 식당 이름에 '풍천'이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 ⓒ 김진영


'느끼한 놈'은 민물장어, 즉 뱀장어다. 나는 민물장어를 잘 못 먹는다. 장어가 비싸기도 하거니와 비싼 건 둘째치고 어쩌다 먹어도 몇 점 못 먹는다. 민물장어로 유명한 고창이나 강화도에서 먹어도 매한가지다. 기름진 민물장어를 먹으면 속이 불편해진다. 밥이랑 같이 먹으면 조금 불편한 정도이지만, 소주를 한 잔이라도 곁들이면 얼마 있다가 화장실에서 게운다.

마블링이 좋은 소고기를 먹어도 그렇다. 비싸고 기름진 음식을 몸이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뱀장어는 민물에서 성장하고 산란은 바다에서 한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 산란하는 연어와는 정반대다. 오랫동안 장어 산란지를 몰랐다. 엘도라도를 찾아 헤맸던 탐험가들처럼 연구자들도 수십 년 동안 장어 산란지를 찾아 헤맸다.

최근에는 사이판 근처 마리아나 해구 근처로 추정하고 있다. 부화한 치어들은 어른 손가락만한 크기가 되면 구로시오 난류를 타고 북쪽으로 이동한다. 구로시오 난류가 온난화 영향 때문에 제대로 북쪽으로 흐르지 않으면 유영 능력이 부족한 치어들은 동남아나 일본 동쪽으로 흘러간다. 치어들이 4대강을 비롯해 바다와 만나는 기수역(汽水域)에 도착하지 못하면 장어는 '금'어가 된다.

치어 한 마리에 7000원, 1kg에 3000만원이나 되니 진짜 금과 같은 가격으로 거래되는 셈이다. 비싼 치어를 7~9개월 양식해서 시장에 낸다. 치어가 부족해 호주산이나 북미산 장어 치어도 들여오지만 뱀장어는 여전히 비싼 음식이다. 근래 들어 국내에서 일본 다음으로 뱀장어 완전 양식에 성공했다고 한다. 치어를 성어로 키우고, 산란한 치어를 다시 성어로 키우는데 성공해야 완전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장어처럼 치어를 잡아 키우는 것은 불완전 양식이다.

몇 년 후에는 실용화가 가능하다고 하니 뱀장어 가격 안정에 큰 도움이 될 듯 싶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인 기수역은 다른 말로는 '풍천'이라고 한다. 흔히 '풍천 장어'라고 할 때 풍천은 특정한 지역 이름이 아니라 기수역을 뜻하는 말이다. 장어가 많이 잡히던 곳이 풍천이라서 민물장어 식당 이름에 '풍천'이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 이 풍천 장어도 사실은 전라남도 일대에서 양식한 것이다.

전량이 일본에 수출되던 비싼 갯장어

갯장어는 담백함 속에 지방 맛이 숨어 있다. 살짝 데쳐 양파와 함께 먹거나 양념한 된장에 찍어 먹으면 담백함 속에 숨어 있던 지방 맛까지 더해져 맛있다. ⓒ 김진영


'비싼 놈'은 갯장어다. 장어 가운데 가장 맛있어서 비싼 건 아니다. 수산물은 어획량에 따라 가격 편차가 크다. 민어만 하더라도 1960년대 장바구니 물가를 조사할 때, 지금의 고등어처럼 빠지지 않고 나오던 생선이었다. 이후에 잘 잡히지 않다 보니 희소 가치로 비싼 생선이 되었다.

갯장어는 2000년대까지는 지역에서 철따라 먹었고, 그 훨씬 이전에는 전량을 일본으로 수출했던 생선 가운데 하나였다. 허영만 선생의 만화 <식객>에 소개되면서 전국적 명성을 얻었다. 지난 2004년 해양수산부에서 전복, 해삼, 갯장어 등을 보양식품으로 선정했다.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갯장어는 여름철 대표 보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갯장어는 어획량이 적은데 찾는 이가 많아져 민물장어와 자웅을 겨룰 정도의 가격이 됐다. 물론 자연산 민물장어 가격이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이긴 해도 갯장어 역시 쉽게 지갑을 열 수 있는 가격은 아니다. 갯장어는 담백함 속에 지방 맛이 숨어 있다. 살짝 데쳐 양파와 함께 먹거나 양념한 된장에 찍어 먹으면 담백함 속에 숨어 있던 지방 맛까지 더해져 맛있다. 갯장어는 맛있지만 비싸서 먹기 힘들다.

뱀장어는 양념구이, 붕장어는 소금구이

'아나고'라고 알려져 있는 붕장어는 오돌오돌한 식감과 고소한 맛 때문에 생선회 입문용으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 김진영


'고소한 놈'은 붕장어다. '아나고'라고 알려져 있다. 오돌오돌한 식감과 고소한 맛 때문에 생선회 입문용으로 붕장어를 많이 찾았다. 붕장어회는 껍질을 벗기고 잘게 썰어 물기를 꼭 짜낸 다음, 초장에 쓱쓱 비벼 먹어야 제맛이다. 다른 생선회처럼 넓적하게 썰어 낸 것도 별미다. 회나 된장 넣고 끓인 시원한 탕도 좋지만, 붕장어의 고소한 매력에 빠지기에는 뭔가 1% 부족하다.

붕장어를 불 위에 올릴 때 비로소 부족한 1%가 채워진다. 숯불이면 좋겠지만, 가스불이든 번개탄이든 상관없다. 뱀장어는 양념구이도 많이 즐기지만, 붕장어는 소금구이가 대세다. 갓 잡은 붕장어에 소금만 척척 뿌리고 구워야 한다. 다 구운 붕장어는 양념장을 찍고 제철 맞아 향기 좋은 깻잎에 싸먹거나, 소금에 살짝 찍어 부족한 짠맛만 더해 먹어도 좋다.

붕장어는 나에게 최고의 장어다. 누군가 다른 장어가 맛있다고 해도 내 입맛에 안 맞은 건 '넘의 맛'일 뿐이다. 미식이라는 게 맛있는 곳을 찾아 가는 것도 있지만, 내 맛을 찾는 것도 미식이다. 맛의 기준은 인구 수만큼이나 다양하다. 할머니 손맛, 엄마 손맛이 집마다 다른 것처럼.

잠시 장마가 물러가고 초복·중복을 보내고 나면 휴가철이 다가온다. 다들 산과 바다를 찾아 떠난다. 바닷가로 간다면 붕장어구이를 저녁 메뉴에 한번 넣어보자. 파도 소리에 한 잔, 붕장어구이에 한 잔, 상상만해도 즐겁다. 충남 태안의 만리포, 천리포, 안흥항, 제주의 보문포구, 서귀포 시내, 한림항, 그리고 경상남도 고성, 통영도 붕장어구이를 전문으로 하는 집들이 꽤 있다.

만일 제주도나 전라남도 장흥, 여수, 고흥으로 여행을 간다면, 다음날 해장으로 얼큰하게 끓인 붕장어탕 한 그릇도 좋다. 부산과 경남에서 꼼장어라 부르는 먹장어는 뱀장어, 갯장어 등과 다른 집안이어서 뺐다. 맛 없어서 뺀 건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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