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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06.13 14:05수정 2018.06.13 14:27
'붕어찜 전문'이라고 쓴 간판을 보면 가슴이 뛴다. 먹고 싶다는 생각보다 가슴이 먼저 반응한다. 누구나 한 가지 이상 소울푸드를 갖고 있다. 아니 박혀 있다. 오늘은 뭐 먹지, 혹은 오늘은 무엇을 먹고 싶다는 것과 같은 매일 매일의 음식과는 차원이 다르다. 각각의 속사정을 포장지 삼아 묻어두고 있기에 차원이 다르다.

충북 옥천에서 유기농 복숭아 농장을 둘러보고 대청호 구경에 나섰다. 산보다는 물을 좋아하는 것은 선친의 영향 때문인 듯.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따라 낚시하러 다녔다. 아버지가 사주는 아이스크림이나 과자 한 봉지의 유혹이 더 컸지만, 어린 나이에도 낚시가 지루하지 않았다. 사실 조금은 지루했다. 지금이야 몇 시간이고 느긋이 물가에 앉아있을 수 있지만, 그때는 잠시만 입질이 없어도 "아빠, 언제 물어?", "아빠, 떡밥 갈까?" 종알거렸다. 그러다가 낚싯대 하나 들고 나름대로 물고기가 있어 보이는 곳에 던지기도 했지만 엄한 자리였다.

한국산·일본산·중국산 붕어들의 각축전

민물고기 특유의 단맛이 배어있는 큼직한 살을 매콤한 양념에 푹 찍어 먹는다. 이게 붕어찜을 먹는 바른 자세다. ⓒ 김진영


아버지 따라 낚시를 다녀온 후, 때로는 아버지 혼자 다녀오신 날, 저녁 밥상에는 된장과 고추장 양념을 넣고 끓인 붕어찜이 올라왔다. 자글자글 끓고 있는 빨간 양념 사이에 어른 손바닥만한 붕어가 보였다. 살을 떼어내 양념을 푹 무쳐 먹다보면 밥그릇이 금세 바닥을 보이곤 했다. 평소 밥 한 공기면 충분했는데, 그런 날은 두 공기 이상을 비운 뒤에야 숟가락을 내려놨다.

아버지와 함께 다녔던 많은 낚시터 가운데 유독 기억나는 곳이 몇 군데 있다. 부평소방서 앞에서 새벽에 출발하는 시외버스를 타고 강화, 한창 개발중이던 검단수로, 여름이면 해수욕과 붕어 낚시를 함께 할 수 있었던 송도 유원지 등.

여름철에는 피서 삼아 송도에 갔다. 물장구 치고 돌아와도 한참 동안 입질이 없어 낚싯대 하나 들고 엄한 자리에서 퐁당거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눈먼 대물이 내 미끼를 탐했다. 순간 휘어지는 낚싯대에 당황한 나머지 대를 세우고 제압을 해야 했지만, 그저 낚싯대만 붙들고 아빠만 외쳐댔다. 멀리 있던 아빠가 뜰채를 들고 달려오는 사이 줄은 끊어지고 물고기는 낚시바늘을 피어싱 한 채 사라졌다. 그때의 강렬했던 손맛이 지금의 나를 낚시꾼으로 만들었다.

붕어 이야기가 나온 김에 '붕어 삼국지' 이야기를 해보자. 게임 삼국지는 많이 들어봤겠지만, 붕어 삼국지는 대부분 처음 들어봤을 것이다. 위·촉·오 세 나라가 벌이는 흥미진진한 게임이 붕어 낚시 세계에도 펼쳐진다. 이른바 토종붕어, 짜장붕어, 떡붕어 등 세 종이 붕어 생태계에서 각축을 벌인다.

떡붕어는 민물 수자원 활성화를 위해 박정희 대통령이 국내로 들여온 일본산 붕어다. 잉어와 피라미를 교잡해 만든 붕어로 성장이 매우 빠르다. 머리는 작고 체형이 떡판처럼 넓어 떡붕어라고 부른다. 미끼를 깨작깨작 먹는 습성이 있어 찌낚시하는 붕어꾼을 애먹인다.

중국산 붕어는 전국에 양어장 낚시가 유행하면서 들어왔다. 비하하는 의미에서 '짜장붕어'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 비늘에서 검은 빛이 나 그렇게 부른다. 유료 낚시터에서 잡히는 대부분의 붕어가 이제는 중국산 양식 붕어다. 마지막으로는 붕어. 지금은 떡붕어·짜장붕어와 구별하기 위해 토종붕어라고 부른다.

낚시꾼들은 대개 세 가지 붕어 가운데 토종붕어를 가장 선호한다. 익숙한 것도 있지만 붕어 낚시꾼이라면 토종붕어의 찌올림이 가장 멋지기 때문이다. 토종붕어가 미끼를 발견하면 입이 앞으로 튀어나오고, 진공청소기처럼 미끼를 빨아들인다. 반면에 떡붕어는 미끼를 쪼는 습성이 있고, 짜장붕어는 배터리 나가기 일보 직전의 청소기처럼 힘이 약하다. 그런 반응이 찌를 통해 낚시꾼의 손으로 전달된다.

바닷고기와는 다른 민물고기의 단맛

붕어찜을 먹고 나니 서산 너머로 해가 진다. 물가에 앉았다. 아버지와 같이 갔던 낚시터가 산들바람에 실려 왔다 사라졌다. ⓒ 김진영


대청호 구경에 빠져들어 옥천에서 출발해 보은군 언저리까지 갔다. 물가따라 호젓하게 난 길이 멋지다. 왼쪽은 산, 오른쪽은 대청호의 푸른 물이 시원하다. 보은군 어부동에서 붕어찜 간판을 보고 빨려들어갔다. 2만원짜리 소자를 주문하니 큼지막한 붕어 두 마리가 나온다. 집에서 엄마가 해줬던 찜과는 달리 시래기가 들어가 있다.

30cm가 넘는 붕어를 월척이라고 하는데, 냄비에 누워있는 붕어는 떡붕어다. 크기가 커도 떡붕어는 월척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낚시꾼들만의 룰이다. 떡붕어는 잔 가시가 많아 조심스럽게 먹어야 한다. 잘 못하면 목에 가시가 걸린다. 큰 가시는 골라내기 쉽지만, 머리카락보다 얇은 잔 가시가 생선 살 사이에 숨어 있다. 보이는 것은 골라내고 우물우물 씹다가 뼈가 걸리면 뱉는다.

토종붕어는 상대적으로 잔 가시가 적어 먹기 편하다. 붕어찜을 먹는 게 쉽지는 않지만, 그 수고를 붕어 살의 단맛이 보상해준다. 민물고기 특유의 단맛이 배어있는 큼직한 살을 매콤한 양념에 푹 찍어 먹는다. 이게 붕어찜을 먹는 바른 자세다. 가끔씩 국물 흠뻑 머금은 시래기도 반찬처럼 즐기면서 말이다.

민물고기는 흙내 난다고 하는데 물이 좋지 않은 곳에서 잡힌 것들이 그렇다. 깨끗한 물에서 잡힌 것들은 흙내가 나지 않는다. 민물고기에는 바닷고기와 다른 단맛이 있다. 충북 진천의 초평저수지에서는 매년 가을에 붕어찜 축제를 한다. 나름 매력있는 요리다. 그런데도 먹어 본 사람보다는 안 먹어 본 사람이 훨씬 많다. 한번 용기를 내서 먹어 보시라. 붕어찜 맛의 매력에 빠질 것이다.

붕어찜을 먹고 나니 서산 너머로 해가 진다. 물가에 앉았다. 아버지와 같이 갔던 낚시터가 산들바람에 실려 왔다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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