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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05.09 09:22수정 2018.05.14 18:03
오랜만에 가는 강원도 출장, 한참 수확 중인 곤드레나물을 보러 갔다.

새벽 일찍 떠나 일출 사진을 찍을 생각이었다. 기상청 사이트에 들어가 날씨를 확인하니 비가 일출을 허락하지 않았다. 꼭두새벽은 아니지만 통틀 무렵, 출근 차가 나오기 전에 새로 난 양양고속도로를 탔다. 곧게 뻗은 신작로 같은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니 지난 20년 간 강원도에 가던 길들이 생각났다.

왕복 2차선 도로에 군용차가 앞서면 20, 30분 세월아 네월아 시속 40km로 "풍경 구경 하니 좋네" 하며 가던 길. 어느 집에서 황태해장국을 먹을까 고민하다 한 그릇 먹고 건어물과 표고버섯 찾아 넘던 한계령과 미시령. 양양에서 인제 인진쑥공장 가던 진동계곡 등 꾸불꾸불 오르내리던 길들이 고속도로 아래에 있었다. 20년 사이 꾸불꾸불하던 길은 쭉 펴지고 눈가 주름은 늘었다.

새벽에 출발하느라 대충 세수만 하고 길을 나섰다. 속초 척산온천이 첫 번째 목적지다. 안 오는 사이에 동네 목욕탕보다 작았던 온천이 몇 배는 커졌다. 물은 어느 동네 온천보다 더 좋지도 더 나쁘지도 않은 곳이다. 새벽 출발, 온천이 있는 곳을 갈 때면 머리에 까치집을 이고 있어도 세수만하고 나선다. 온천에서 운전 피로도 풀고 깔끔하게 협력사도 방문할 수 있어 양수겸장이다.

홍합 육수에 고추장을 푼 얼큰하고 시원한 '섭국'

섭국은 홍합에서 나온 육수와 고추장을 푼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이 일품이다. ⓒ 김진영


온천까지 하고 나와도 오전 9시가 채 안 됐다. 양양에서 아침은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다 섭국을 먹기로 했다. 가던 집, 새로운 집 고민하다 가던 집으로 갔다. 사실 섭을 국으로 끓여 낼 정도로 강원도에서 많이 잡히지 않는다. 서해 무인도에서 양식하는 홍합이 강원도로 많이 건너온다고 들었다. 중국산이나 뉴질랜드산을 사용하기도 한다.

원산지를 따지기보다는 섭국 국물이 먹고 싶었다. 홍합에서 나온 육수와 고추장을 푼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 말이다. 고속도로를 달려 양양으로 향하니 비구름의 방향도 동쪽이고 가는 방향도 동쪽이었다. 비구름보다 더 빨리 동쪽으로 내달리니 당연히 앞선 비구름과 뒤쫓는 비구름 사이에 끼어 있었다. 밥을 먹고 커피를 한 잔 하는 사이 내가 앞질렀던 비구름이 나를 다시 앞질렀다. 그러다가 빗줄기가 사그러들었다.

비 오는 바다를 봤다. 회색빛 바다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푸른빛 바다는 세상에 없었다. 하늘빛 담은 바다와 하늘빛을 닮으려 하는 바다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잡생각을 접고 곤드레 밭으로 갔다. 지난해에 씨를 뿌린 밭이다. 곤드레는 씨를 뿌린 뒤 2년 동안 수확을 한다. 곰취, 명이나물, 고사리 등을 흔히 산나물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야생에서 밭으로 옮겨온만큼 '산'자를 빼고 그냥 나물이라고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

곤드레는 씨를 뿌린 뒤 2년 동안 수확을 한다. 초봄부터 곤드레 나물을 뜯으면 새로운 잎이 돋아나 계속 수확할 수 있다. ⓒ 김진영


초봄부터 곤드레 나물을 뜯으면 새로운 잎이 돋아나 계속 수확할 수 있다. 7월부터는 꽃이 피기 시작하고 억세져 더 이상 수확하지 않는다. 곤드레 잎을 뜯어 맛을 봤다. 씁쓸하다. 이어 달큼한 맛이 난다. 쌈채소로 더할 나위 없겠다 싶었다. 왜 곤드레를 된장국이나 밥에만 넣는다고 생각했을까. 생 곤드레를 맛보고 나니 출장이고 뭐고 간에 숯불에 삼겹살 구워 곤드레 잎에 쌈 싸먹고 싶을 정도로 괜찮은 맛이었다.

일을 마치고 곤드레 밭 지척에 있는 송천떡마을로 갔다. 마을 입구에 아침마다 떡을 만들어 파는 판매장이 있다. 계절이 봄인지라 동네에서 생산한 나물도 판다. 나물 포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각각의 이름이 있다. 나물 이름말고 생산한 사람의 이름이다. 재용이네, 정희네 라고 적혀 있다. 분명 큰 아들이거나 큰 딸일 거다. 혹은 자식 가운데 가장 잘난 자식일 수도 있고.

송천마을이 떡마을이 된 까닭에는 별 관심이 안 갔다. 유명한 음식 유래를 보면 대부분 큰 고개 넘기 전이거나 한양 가는 길목에 있는 것들이다. 송천마을도 한계령 넘기 전 마을이다. 판매대에서 엄나무 순을 하나 사고 시식용 떡을 맛 봤다. 떡이 떡이지 하는 생각으로 맛만 볼 생각이었다가 맛 나서 두 팩을 샀다. 대형화 공장에서 찍어낸 것과 동네에서 만들어 낸 것에는 씹는 맛의 차이가 있다. 이에 들러붙지 않으면서 찰진 질감이 송천마을 떡에 있었다. 씹을수록 돋아나는 단맛도 좋았다.

뚜거리탕? 꾹저구탕? 꺽저기탕? 다른 이름, 같은 음식

섭국과 꾹저구탕(뚜거리탕)은 국거리 차이가 있어 맛은 다르지만, 육수에 고추장을 풀어 끓여낸 모양새는 같았다. ⓒ 김진영


어느덧 점심이다.

한 번은 먹어봐야지 하며 20년 동안 지켜만 본 메뉴가 있었다. '뚜거리탕'(꾹저구탕·꺽저기탕이라고도 부른다)이다. 뚜거리는 다 자라도 어른 손바닥만한 크기의 망둥어과 민물고기로 양양·속초 지역에서는 어탕 식재료로 쓴다. 뚜거리탕을 먹을까 하다가 누가 "막국수" 하면 그리로, 가을에 송이가 나오면 송이덮밥, 여름에는 물회 등 팔랑귀 덕에 뚜거리탕 맛은 못 보고 지켜보기만 했던 메뉴다.

한 그릇을 주문하니 국이 나온다. 어라? 아침에 먹었던 섭국하고 비슷한 모양새다. 물론 섭과 꾹저구(뚜거리는 강원도에서 부르는 별칭이다)는 국거리 차이가 있어 맛은 다르지만, 육수에 고추장을 풀어 끓여낸 모양새는 같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육수에 고추장을 풀어 끓이는 음식이 하나 더 있다. 장칼국수다. 밥 대신 면이 들어가 있을 뿐 끓이는 형식은 같다.

강원도에서 담그는 장을 '막장'이라고 한다. 막장은 간장을 덜 빼 색이 일반 된장에 비해 검다. 섭국이나 뚜거리탕을 끓일 때 막장을 넣으면 색이 칙칙해 고추장을 섞어 색을 냈다. 지금의 섭국이나 뚜거리탕의 국물이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한다.

뚜거리탕에 수제비가 몇 개 들어있다. 수제비와 국물이 잘 어울렸다. 삼청동수제비처럼 얇게 뜬 수제비가 아니라 두툼하게 뜬 수제비다. 수제비 뚜거리탕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오물거리다 삼켰다. 다른 지역의 어죽이나 어탕국수 국물과 달랐다. 마치 잘 끓인 육개장에서 기름기만 쏙 빼 내고 내준 듯 맵고 깔끔한 맛이었다. 굳이 송강 정철의 이야기를 빌려오지 않더라도 민물고기 특유의 단맛이 깔끔하게 도드라졌다. 20년 전부터 먹을 걸 하는 후회가 잠시 들었다.

고성 아야진까지의 일정을 끝내고, 점심나절에 산 쑥개떡을 물고 다시 서울 가는 고속도로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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