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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05.14 09:39수정 2018.05.14 09:39
고등학교 시절, 수학 선생님이 짚신을 신고 오셨다. 어느 친구가 물었다. "선생님, 누가 돌아가셨어요?" 선생님이 대답했다. "나와!" 따귀를 때리며 "네 아비한테 가서 그래라." 한 대 맞고 일단락될 상황이었다. 그런데 친구가 또 물었다. "왜 우리 아버지 얘기를 하세요?" 나는 그 순간 '오늘 수업은 다했구나' 확신했다. 내 예상대로 그 친구는 한 시간 내내 맞았다. 맞을 때마다 물었다. "왜 때려요?" 질문이 매를 불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짚신과 죽음을 연결한 그 친구는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했다. 관계없는 것을 연결하는 힘이 있었고, 호기심이 왕성했으며, 의문을 제기하던 투지도 놀라웠다. 그러나 선생님은 수업 진도를 나가야 했다. 선생님에게 그 친구는 엉뚱했다. 수업을 방해하는 공적(?)이었다.



나는 창의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런 내가 독창적인 글을 쓰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다행히 창조는 머릿속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내가 다 알지 않아도 상관없다. 이미 있는 것을 잘 활용하면 된다. 있는 글의 뒷부분만 바꿔본다. 혹은 전체 줄거리를 줄인 후, 줄인 내용에 내 생각을 넣어 다시 늘려본다. 시를 산문으로, 산문을 시로 고쳐 써본다. 내가 관점을 만들지는 못해도 다른 사람의 관점을 해석하거나 비판해볼 순 있다. 맨땅에 헤딩은 어렵다. 그러나 이미 있는 것을 바꾸는 것은 누구나 가능하다.

창의성은 글 쓰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핵심 역량이다. 어떻게 창의성을 키울까. 첫 번째가 '융합'이다. '이연현상'이란 게 있다. 서로 관련 없는 두 가지 사실이나 아이디어를 하나의 아이디어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창의적 생각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헝가리 철학자 아서 쾨슬러(Author Koestler)가 주창했다. 이연현상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있어야 한다. ▲답을 찾고자 하는 분명한 주제가 있어야 한다. ▲풍부한 경험과 지식이 있어야 한다. ▲들인 시간이 있어야 한다.

여러 일을 동시에 하는 것도 창의적 사고를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일들 사이에 상호작용이 일어나 생각이 더 잘 나고,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정보가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재전유(再專有, Re-appropriation) 현상도 체험할 수 있다. 나는 산책할 때 팟캐스트를 듣거나, 반신욕을 하면서 독서한다. 이렇게 두 가지 일을 병행하면 아이디어가 잘 떠오른다. 대화와 토론도 좋은 방법이다. 말을 통해 남의 생각과 내 생각이 섞여 새로운 생각을 만든다.

바야흐로 융합의 시대다. 우리 국민은 융합 능력이 뛰어나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데에는 미숙하지만, 있는 것을 섞어 쓰는 것에는 능숙하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문화만 극복하면 된다. 우리 문화에서는 다르면 왕따 되기 십상이다. '우리가 남이가?' 단일성을 강조한다. 그러다 보니 안전하게 묻어가려고 한다.

집단적으로 추종하고 다른 의견에 동조한다. 내가 의견을 냈는데, 부하 직원이 반론을 제기하거나 토를 달면 분통을 터트린다. '너, 내게 감정 있냐? 나한테 왜 그래? 왜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 한번 해보자는 거야?' 다름을 견딜 수 없다. 다르면 적이다. 공존의 상대가 아니다. 타도와 배제의 대상이다. 융합과 통섭의 시대에 동종교배는 공멸이다. 다른 것이 섞일 때 새로운 것이 나온다.

당신이 속한 조직은 어떤 유형인가

두 번째는 '숙고'다. 톨스토이는 지혜를 얻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다. 명상과 모방과 경험이다. 이 가운데 명상이 가장 고상한 방법이라고 했다. 바로 숙고를 말하는 것이다. 숙고는 통상 '사유'라고 말하는 생각의 형태다. 소크라테스도 공자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인류의 스승이 됐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나. 자기 안에서 솟구쳐 나오게 만드는 그 무엇, 즉 사유와 숙고의 힘 덕분이다. 사유와 숙고를 통해 사물의 본질, 원리, 패턴을 찾을 수 있다.

'핫스팟의 법칙'이란 게 있다. 리처드 오글이 쓴 <스마트 월드: 세상을 놀라게 한 창조성의 9가지 법칙>에서 설명했다. 창조적인 사람의 머릿속에는 여러 개의 핫스팟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역사와 철학에 관심이 많고 과학을 공부한 학자는 역사 핫스팟, 철학 핫스팟, 과학 핫스팟을 보유할 가능성이 크다. 창의력은 이런 핫스팟이 서로 충돌할 때 이루어진다. 서로 관련이 먼 핫스팟끼리 충돌할수록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

이 책에서 몇 가지 시사점을 얻는다. 자기만의 핫스팟이 필요하다. 핫스팟이 많을수록, 다양한 분야일수록 좋다. 그러나 갖고 있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핫스팟끼리 충돌시켜야 한다. 연상, 추론, 가정, 비교 같은 숙고가 필요하다. 연관이 없는, 관계가 먼 것끼리 부딪칠수록 기발한 생각이 나온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깊이 파고들어 궁리해야 먼 것을 찾을 수 있다. 관련 없는 것끼리 연결 짓는 훈련 방법으로 시를 읽거나 써보면 좋다. 시야말로 관련 없는 것을 연결 짓는 은유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감성'이다. 일명 '두 줄 실험'이라는 게 있다. 밀폐된 공간에 줄 두 개가 매달려 있다. 줄 두 개를 묶는 게 실험자에게 주어진 과제다. 두 줄은 사람 손이 닿을 수 없는 정도의 거리에 있다. 한 사람에게 가위를 주고 이어보라고 했다. 실패했다. 실험실을 나온 그에게 잠시 다트놀이를 하며 놀라고 했다. 그런 다음 이번엔 망치를 주고 이어보라고 했다. 그러자 망치를 한쪽 끈에 묶어 흔든 후, 그 반동으로 되돌아오는 망치를 잡아 끈을 이었다.

이 실험이 일깨워주는 바가 있다. 놀이를 통해 느낌과 정서, 감정이 고양됐을 때, 훨씬 더 창의성이 발휘된다는 점이다. 지성보다는 감성이 창의력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창의력이 필요한 때에는 보고 듣고 느끼는 감각을 자극해보는 게 좋다. 창의력은 이런 정서적 자극에서도 온다.

네 번째는 '연결'이다. 연결을 통해 새로운 것을 연상하는 능력이 창의력이다. 1990년대 초 케빈 던바 심리학과 교수는 실험실 네 곳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나오는 곳을 추적하기 위해서다. 결과는 놀라웠다. 획기적인 발견이 나오는 장소는 실험실 현미경 앞이 아니었다. 실험실 간의 정기적 모임이었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삼삼오오 모여앉아 얘기하는 과정에서 서로가 연결돼 좋은 아이디어가 나왔다.

연결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있는가. 철학자, 문인, 과학자 할 것 없이 연결되지 않고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조직 역시 연결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낸다. 따라서 연결이 잘 되면 정보 유통이 활발할 뿐만 아니라, 새롭고 창의적인 정보가 왕성하게 창출된다.

다음 세 유형의 조직 중에 어느 쪽이 가장 창의적으로 일하겠는가. 첫 번째는 정보가 상층부에 집중돼 있고 권위적인 조직이다. 겉모습이 일사불란하게 보이기 때문에 구성원 간의 관계가 끈끈한 것으로 오판하게도 한다. 우리나라 조직에서 가장 일반적인 유형이다. 두 번째는 각자 정보를 갖고 상호 쿨한 관계에서 각개 약진한다. 이런 조직에서는 좀 더 창의적인 정보를 가진 사람이 성공한다. 정보가 모이거나 공유되지 않는다. 정보의 차별성을 갖고 상호 경쟁할 뿐이다.

세 번째 유형의 조직은 경쟁과 협력을 병행한다. 이런 조직은 정보를 남과 나눴을 때 자신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믿음이 있다. ​정보를 공유하는 사람이 우대받는다. 정서적·비공식적인 연결이 활성화돼 있다. 당신이 속한 조직은 어떤 유형인가.

외계인처럼 세상을 볼 수 있다면 글 소재는 무궁무진

다섯 번째는 '직관'이다. 한때 "척 보면 압니다"라는 유행어가 있었다. 이런 직관은 노련한 형사가 인상만으로 범인을 알아차리는 것, 야구선수가 쳐야 할 공과 치지 말아야 할 것을 순간적으로 선별해내는 것이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는 발로 뛰는 송강호와 머리가 좋은 김상경 두 형사가 나온다. 머리가 좋고 논리적인 김 형사보다는 송강호가 더 직관력이 있다. 시험 칠 때 처음 생각했던 답이 맞았던 경험도 직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직관은 생각해보지 않고 즉각적이고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이다. 직관에는 이성이 개입되지 않는다. 판단하거나 분석하지 않는다. 그냥 번쩍하고 떠오른다. 튀어나온다. 사유하지 않고 인식하는 것이다. 대신, 설명하기 어렵다. 근거가 없다. 논리적이지도 않다. 직관은 학습이 필요하지 않다. 독서와 경험이 많지 않아도 상관없다.

직관은 무의식적으로 세 단계를 거쳐 만들어진다. 처음 만난 사람과 왠지 악연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해보자. 1단계로 그런 생각이 들기까지 지금까지 만난 여러 유형의 사람이 떠오를 테고, 2단계로 그동안 만나온 사람과 비슷한 유형의 사람을 찾아내 그들의 공통점을 추출해낼 것이며, 마지막 3단계로 이를 일반화하는 과정을 거칠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은 순식간에 이뤄진다.

결국 그 사람과 관계가 나빠지면 자신의 '감'이나 '촉'이 좋았다고 한다. 그러나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본인도 설명하지 못한다. 직관이 작용한 것이다. 이런 직관은 누구나 타고난다. 그래서 직관을 '제6의 감각'이라고도 한다. 영국의 유진 새들러-스미스 (Eugene Sadler-Smith) 교수는 직관을 '인간의 몸에 새겨진 일종의 유전자'라고 말한다. 우리 모두는 직관을 타고났다. 떠오른 직관이 머릿속에서 난상토론을 하면 창의적 생각이 나온다. 누구나 직관의 힘으로 창의적일 수 있다.

창의적 글감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흔한 방법은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여행 등으로 낯선 환경에 자신을 노출시킨다. 일상에서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작가들이 여행을 좋아하고, 어린 시절부터 여행을 많이 해본 사람이 창의적인 이유다.

'어른은 낯선 것을 익숙하게 만들고, 아이는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본다'는 말이 있다. 학자는 낯선 것을 익숙하게 해주고, 예술가는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해준다. 글 쓸 때는 어른의 익숙함과 학자의 노력, 그리고 아이의 낯섦과 예술가의 시선을 겸비해야 한다. 낯선 것을 익숙하게 만들어주려면 친절한 설명이 있어야 하고, 그렇게 하려면 공부가 필요하다.

반대로,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려면 어린아이나 여행자의 시선이 필요하다. 예컨대 내가 한국에 처음 온 사람이라면 교회, 커피숍이 즐비한 것에 놀랄 것이다. 저녁 늦게까지 문을 열고 영업하는 술집, 밥집이 많다는 것도 신기할 수 있다. 지구에 처음 온 외계인처럼 세상을 볼 수 있다면 창의적인 글의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휴식'도 창의적인 글감을 만든다. 아무 생각 없이 쉬는 것이다. 바쁨은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작가들은 그래서 권태를 즐긴다. 보통 사람은 지루함을 못 참는다. 바삐 움직이지 않으면 불안하다. 뭐라도 해야 직성이 풀린다. <날개>를 쓴 이상도,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쓴 마광수도 <권태>라는 작품을 썼다. 이런 권태가 글 쓰는 데는 도움이 된다. 작가들이 작품 활동을 위해 한적한 농촌이나 바닷가 오두막을 찾는 것도 이런 이유일 테다.​

'유쾌함'도 중요하다. 엄숙하지 않아야 한다. 진지하기보다는 유쾌할 때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온다. 증권사에 다닐 때다. 농구단을 창단하면서 구단 이름을 공모했다. 동물 이름만 즐비하게 나왔다. 그런 와중에 누군가 '제우스'를 제안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게 뭐냐고 웃었다. 그런데 웬걸, 그게 채택됐다.

작은 겨자씨 하나씩은 누구나 갖고 있다

창의성은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유쾌함과 발랄함이 넘쳐나려면 개성을 존중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모난 돌이 정 맞지 않아야 한다. 도리어 대우받는 사회가 돼야 한다. 그런 바탕 위에서 누구나 거리낌 없이 자신의 생각을 개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만 자유롭고 창의적인 개개인이 우리 사회의 창발적인 발전을 이끌 수 있다.

창의는 '양'에서 나오기도 한다. 양질전화(量質轉化)의 법칙이 적용된다. 양의 증가가 질의 변화를 가져온다. 심리학자 딘 키스 사이먼턴(Dean Keith Simonton)은 이를 통계적 방법으로 입증했다. 발표 논문의 수가 많을수록 창의적 아이디어도 많이 나왔다. 양질전화는 일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 사람과 군중은 다르다. 같은 사람이지만, 사람이 모여 군중이 되면 혼자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물 한 방울과 바닷물은 다르다. 실 한 오라기와 옷감은 다르다. 양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질이 바뀐다. 글도 마찬가지다. 많이 쓰다 보면 어느 순간 머릿속에 새로운 패턴이 생긴다. 분명히 그 이전과 다른 무엇이 생긴다. 그런 점에서 창의적인 글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필연적 결과물이다. 결과물은 투입이 있어야 나온다.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이 말했듯 1만 시간이 들어가야 나오는 게 창의성이다.

글 쓰는 '공간'도 창의성에 영향을 미친다. 창의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 방은 지저분한 경우가 많다. 언젠가 본 아인슈타인의 책상 사진도 그랬다. 이런 실험을 했다. 깔끔하게 정리된 방과 너저분한 방에 실험 대상자를 넣어놓고 탁구공의 쓰임새를 써보라고 했다. 지저분한 방에 있던 사람들이 더 창의적으로 사고했다. 정리정돈이 잘된 방은 창의적 사고에 이롭지 않다. 무질서한 방이 자유로운 상상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단, 논리적인 사고에는 정돈된 환경이 좋다고 한다. 답이 나왔다. 창의력이 필요한 글은 무질서한 환경에서, 논리적인 글은 질서정연한 여건에서 쓰는 게 좋다. 천장이 높은 공간과 그렇지 않은 공간도 창의성에 영향을 미친다. 천장이 높아야 창의적 사고를 하는 데 유리하다. 반대로 집중하는 데에는 높은 천장이 방해가 된다. 청와대는 천장이 높았다. 연설문 작업은 창의적이기보다는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내가 쓴 연설문이 좋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창의는 자기 생각을 표현할 줄 아는 것이다. 내 생각과 남의 생각을 섞을 줄 아는 것이다. 남의 생각에 자기 의견을 붙일 줄 아는 것이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란 말이다. 새끼치기만 잘해도 창의적이다. 처음부터 완벽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겨자씨에서 살이 붙는 게 창의성이다.

작은 겨자씨 하나씩은 누구나 갖고 있다. 창의력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말하기와 글쓰기다. 발표하기, 질문하기, 에세이 쓰기다. 거창하지 않고 평범하다. 그러나 우리는 창의성 교육하면 영재교육을 떠올린다. 처음부터 완성된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 것으로 안다. 그래서 겁부터 먹는다. 기발하거나 독창적이지 않아도 된다. 천재가 아니어도 된다. 그저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쓸 수 있으면 된다. 그것이 창의성이다. 처음 한 줄부터 시작하면 된다.

고등학교 수학 시간에 선생님께 혼난 그 친구는 지금 고위관료가 됐다. 그렇게 된 절반은 그 선생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간 이후로 그 친구는 질문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의문을 가지면 위험하다는 깨달았을 것이다. 호기심이 거세된 채 시키는 대로 잘했을 것이다. 씁쓸하지만 그런 친구가 성공하는 사회다.
덧붙이는 글 필자 강원국은 청와대 연설비서관을 역임했으며 2014년 <대통령의 글쓰기> <회장님의 글쓰기>를 출간한 이후 글쓰기 관련 강연과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강원국의 글쓰기'는 3월 26일부터 매주 월·수·금 <오마이뉴스>에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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