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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05.11 14:08수정 2018.05.11 14:08
운 좋게도 신입사원 시절 좋은 상사를 만났다. 그분은 늘 내게 질문했다.
"이것 어떻게 해야 해?"
판단은 내가 했다.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은데요?"
"그래? 그럼 그렇게 해봐."
나를 인정해줌으로써 그 일의 주인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한마디 더 물었다.
"꼭 그 방법만 있을까?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만…."
한 번 더 생각하게 했다.

나는 믿고 맡겨주는 상사를 만났을 때 죽으라고 일했다. '뭘 믿고 내게 이런 일을 맡기고, 나를 이렇게 대접해주지?' 생각하게 만드는 상사를 만났을 때다. 그는 보고서를 검토하지 않았다. 내가 보고하면 '수고했다'며 곧장 들고 상사에게 보고하러 갔다. 내가 마지막 보루다. 내가 무너지면 그분이 혼난다. 상사가 혼나면 내가 혼난 것이나 다름없다. 그는 한 일이 없으니까. 그가 혼나지 않도록 한번 볼 것 두 번 세 번 봤다. 그런 상사는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공유한다. 부하의 말을 경청한다. 지시하고 꾸짖기보다는 질문하고 칭찬한다. 피드백을 잘한다. 한마디로 위임을 잘하는 상사다.

나는 또한 일하면서 배우고 있다고 느낄 때, 소모되지 않고 쌓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열과 성을 다했다. 그 상사는 이런 말을 자주 했다. "나는 여러분이 띄워주면 뜨고 가라앉히면 가라앉는 사람입니다." 부하직원 실력이 자기 실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부하직원의 역량을 키우는 데 관심을 가졌다. 일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런 상사를 만나면 신나서 일한다.

결과에 대한 성취감을 맛볼 수 있게 해주는 상사를 만났을 때도 신명 난다. 내 보고서나 기획안으로 회사 안에 작은 변화가 생기고 새로운 제도가 도입됐을 때 보람찼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상사가 공을 독식하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그는 잘못된 결과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책임졌다. 실패와 실수에 관대했고, 재기의 기회를 주려고 노력했다. 구성원 모두 그가 그럴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 상사에게는 누구나 충성하게 돼 있다. 

직장에서 글쓰기로 고통받는 사람이 많다. 강연을 해보면 보고서나 기획안 잘 쓰는 방법을 물어보기도 한다.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답한다. "개인의 역량보다 글 쓰는 환경이 중요하고, 환경 중에서도 상사와의 관계가 더 중요합니다." 상사가 싫으면 되도록 옆에 안 가게 마련이다. 말도 섞기 싫다. 부서 회식 자리에 가면 상사가 앉은 줄 좌우 맨 끝자리가 명당이 된다. 점심때가 됐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일하다가 그 상사와 나만 남아 있다는 사실로 식은땀이 날 때, 승강기에서 그와 함께 있는 10초가 10분 같이 느껴질 때. 이런 관계에서는 좋은 보고서를 쓰기 어렵다.

상사와 관계가 나쁘면 우선 상사가 갖고 있는 정보를 공유할 수 없다. 상사의 보고서 취향과 작성 의도도 알 수 없다. 보고서에 관한 상사의 빠르고 친절한 피드백과 코칭도 기대하기 어렵다. 상사에게 자신의 기획이나 아이디어를 피력할 기회가 없어, 평소 활발하게 소통한 사람에 비해 상사가 보고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은 누구나 익숙하지 않은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결국 상사 마음에 드는 글을 쓸 수 없다.

무엇보다 상사는 보고서만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보고하는 사람을 보고 나서 보고 내용을 평가한다. 나도 임원으로 일할 때 누군가 보고서를 들고 오면, 어떤 경우는 "어서 와" 하면서 가뿐한 느낌이 드는 반면, 어떤 경우는 "저 친구하고 또 얼마나 보고서로 씨름해야 하지?"라는 생각에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처럼 저기압이 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관계가 소원한 직원의 보고서는 좋게 보이지 않는다.


상사 좋아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많은 사람이 관계는 덤이라고 생각한다. 덤이 아니라 실력이다. 나쁜 관계를 회피해선 안 된다. 적극적으로 극복해야 한다. 상사는 누가 자신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귀신같이 알고 있다. 상사는 자신에게 올인 하는 사람, 자신의 의중을 잘 읽는 사람,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 자신이 해야 할 악역을 대신 맡아주는 사람을 좋아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회사에서 글을 잘 쓰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상사를 좋아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일할 때 힘든 줄 모른다. 자신이 일의 주인이 된다. 상사가 잘 되고 못 되고는 나 하기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일에서 보람과 성취감을 느낀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상사를 좋아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라는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상사는 본시 악역을 맡은 사람이다. 지적하고 쪼는 것이 상사 본연의 역할이자 임무다. 조직을 대신해서 나쁜 역할을 맡은 존재다. 내게 아무런 지적도 하지 않고 호의적으로 대하면 누구나 그 상사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런 상사는 직무유기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상사를 좋아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집을 나서면서 배역에 맞는 가면을 쓴 상사가 아니라, 가면 뒤의 그 사람을 보려고 했다. 그랬더니 보였다. 그 사람의 처지와 사정이 보였다. 사이코패스란 소리를 듣는 상사일수록 더 외롭고 불쌍했다. 더 도와줘야 할 사람이 거기 있었다. 상사 집에 가서 보면 사무실에서와 전혀 다른 사람이 그곳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직원이 '저 상사 또 성질낸다'고 쑥덕거릴 때 '저 상황에서 그럴 만하다'고 이해했다. 공감이 되고 예측이 가능했다. 화내기 전에 '혹시 이런 것 필요하지 않느냐'고 물어봤다. 그러면 '니들이 언제 보고하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떻게 알았느냐'며 놀랐다.

억지로라도 한 달 동안만 상사에게 잘해볼 것을 권한다. 두 가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우리 뇌는 인지부조화 상황을 극복하려고 한다. 상사에게 잘해주는 나의 행동과, 사사건건 꼴 보기 싫은 짓만 하는 상사 사이에서 일어나는 불일치를 해결하기 위해 '상사가 하는 짓 모두가 다 꼴 보기 싫은 건 아니야'라고 생각하게 된다.

다른 하나는, 친한 척하는 나의 행동에 영향을 받아 미워하는 감정이 바뀐다. 우리의 감정은 행동의 지배를 받는다. 뇌는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눈물을 보고 슬퍼진다. 무서워서 떠는 게 아니라, 떠는 손을 보면서 공포감을 느낀다. 상사에게 말을 걸고 친한 척하면 뇌는 상사와 관계가 좋은 것으로 착각한다. 그래서 실제로 상사를 좋아하게 된다.

상사도 부하직원이 자신을 좋아하게 만들 책임이 있다. 부하직원을 믿어야 한다. 부하직원은 상사가 자신을 신뢰하는지 불신하는지 직감적으로 안다. 그리고 상사가 믿는 만큼 움직인다. 기대한 만큼 잘한다. 전혀 기대하지 않은 부하직원이 일을 잘하는 경우는 드물다. 기대해도 잘할까 말까다. 가급적 믿고 맡겨야 한다. 글 쓰는 일은 물건 만드는 일과 달리 당사자의 의욕과 주도성이 필요하기에 그렇다.

부하직원 역시 상사가 믿어주게끔 노력해야 한다. 상사가 나를 믿게 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수시로 상사 생각을 확인해야 한다. 과거에 그랬으니 이럴 것이란 추측은 금물이다. 내비게이션 업데이트하듯 수시로 업데이트해야 한다. 당연히 알겠지 하며 건너뛰는 것도 금물이다. 상사는 의외로 잘 모른다. 체크만이 살 길이다. 무조건 상사 생각이 갑이다. 맞춰주는 게 답이다. 상사가 틀렸다고 생각하면 고치려 들지 말고 소리 없이 보완해줘야 한다. 이런 부하직원을 상사는 신뢰한다. 이렇게 되면, 좋아하면 신뢰하게 되고, 신뢰해주면 좋아하는 과정이 선순환하며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그런 관계에서 좋은 글이 나오지 않으면 그것이 이상하다.

상사에게 필요한 보고서가 무엇인지 생각하라

직장에서 쓰는 글의 독자는 상사다. 독자를 위해 쓰는 것이다. 보고서를 제출한 순간, 회사를 대신하는 상사가 그 주인이다. 그러므로 상사를 배려하는 글을 써야 한다. 첫 번째 배려는 상사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것이다. 그것이 보고서의 본질이다. 상사는 답을 알고 싶다. 문제를 푸는 해법은 무엇인지, 새로운 일을 추진하는 전략과 방안은 무엇인지, 보고서대로 했을 때 이익과 혜택은 무엇인지, 사업의 성공 확률은 얼마나 되는지 알고 싶다. 그리고 자신이 설득당해야 하는 이유와 근거를 알고 싶다.

그러나 상사에게 직접적으로 답을 알려주면 '건방지게 나를 가르치려고 드네?' 상사에게 선택권을 줬을 때도 '나보고 다 알아서 하라고? 자기는 뭐하는 사람인데. 무책임하게 말이야.' 또 이렇게 생각한다. 내 의견을 담으면서도 선택권은 상사에게 줘야 한다. 방법은 사실 설명 안에 의견을 묻어놓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상사가 스스로 깨우쳐 결정하게 해야 한다. 사실 항목은 보고자가 취사선택할 수 있으므로 가능한 일이다.

상사는 또한 이런 것도 알고 싶다. 보고서 작성 배경과 경위, 보고자가 사심이나 저의는 없는지, 내용이 편파적이지 않은지, 보고서에 담긴 정보의 출처는 어디인지, 보고받은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보고 내용을 한마디로 줄이면 무엇인지, 더 좋은 의견을 낼 다른 부하는 없는지, 표현이나 오탈자 등 지적할 데는 없는지. 상사는 이 모든 것이 궁금하다.

두 번째는 상사의 시간에 대한 배려다. 상사는 바쁘다. 보고서는 간결해야 한다. 그렇다고 빠진 게 있어서도 안 된다. 보고서를 쓰고 나면 뺄 것이 없나 먼저 봐야 한다. 뺄 것을 잘 빼야 중언부언, 횡설수설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다음에는 빠진 게 없는지 본다. 과거, 현재가 있으면 미래가 나와야 하고, 단기, 장기 사이에는 중기가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자신만의 의견이 있어야 한다. 남과 다른 관점이나 해석이면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자기 의견이란 게 있어야 한다. 남의 얘기만 잔뜩 늘어놓아선 안 된다.

아울러 치밀하고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있어야 한다. 보고서는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다. 탁상공론은 의미 없다. 모호하거나 여러 가지로 해석이 되면 안 된다. 명료해야 한다. 누가 봐도 같은 의미여야 한다. 결론은 빨리 나올수록 좋다. 제목만 읽고도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있는 보고서가 좋다. 적어도 첫째 문단에서는 확실히 드러나야 한다.

세 번째는 상사를 위해서 쓰는 것이다. 상사가 더 위에 있는 상사에게 꾸중 듣지 않게, 칭찬받을 수 있게, 그래서 승진도 빨리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쓰는 보고서가 최고다. 그런 마음으로 보고서를 쓰는 사람은 한 번 볼 것 두 번 보고, 두 번 생각할 것 세 번 생각해서 아이디어를 짜낸다. 상사가 보고서를 쓰라고 지시하기 전에 상사에게 필요한 보고서가 무엇인지 먼저 생각하고 쓴다. 그런 사람이 쓴 보고서는 글 잘 쓰고 머리 좋은 사람이 쓰는 보고서 보다 열 배 낫다.

누구나 그 자리에 영원히 있지 않는다

상사와의 갈등은 필수다. 보고서를 쓴 후 상사와의 의견 차이는 불가피하다. 많은 직장인이 이 문제로 힘들어한다. 하지만 어찌 보면 간단한 문제다. 갈등할 이유가 없다. 보고서는 공짜로 쓴 것이 아니다. 대가를 지불받았다. 월급을 받고 회사에 판 것이다. 납품받은 고객에게 맞춰주는 게 맞다. 그리고 스트레스는 부당하게 짊어지는 짐이 아니다. 응당 감당해야 할 월급 값이다. 회사에서 주는 급여는 관계 스트레스에 대한 보상도 포함돼 있다.

자존심 상할 문제도 아니다. 보고서를 자신의 인격과 동일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상사가 이것저것 지적한다고 그것을 내 인격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일 필요 없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도 아니다. 단지 생각이 다를 뿐이다. 누구나 자기 생각이 있고, 그것은 나름대로 다 옳다. 상사의 말이 금과옥조는 아니다. 상사의 생각일 뿐이다. 물론 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또 그래야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상사가 설득되지 않거나 상사와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 상사 의견에 따르는 게 맞다. 누군가 바꿔야 한다면 상대가 변하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변해야 한다. 이유는 단 하나다. 그가 상사이므로.  

나는 보고서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알려줘서 고맙다고 생각했다. 병원에서 의사가 '당신 병에 걸렸다'고 알려주는 것과 같다고 여겼다. '나는 보고서를 쓰면서, 그리고 보고서에 대한 상사의 지적을 통해 배우고 있다.' 실제로 이 생각은 맞다. 보고서를 쓰면서 생각하는 훈련을 하고,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는 법을 배운다. 이와 함께 상사의 옳거나 틀린 지적을 통해서도 배운다. '아 이것은 내가 실수했구나.' 혹은 '나는 상사처럼 되지 말아야지.'

또한 상사가 시간을 주지 않고 보고서를 쓰라고 하는 경우에는 급하게 업무 처리하는 법을 배운다. 다른 직원보다 과도하게 많은 일을 맡기는 경우에는 과중한 일을 소화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내 업무가 아닌 일을 하라고 지시한 때에는 다양한 일을 접할 기회를 갖는다. 내 역량으로 처리하기에 버거운 보고서를 쓰라고 하는 경우 역시, 어려운 일에 도전해볼 수 있는 찬스를 얻은 것이다. 이는 조직을 떠나면 실감하게 되는 사실이다.

나는 대통령이나 회장이 꾸짖을 때 세 단계로 생각했다. 약간 혼낼 때는 '이 시간도 가겠지' 생각했고, 심하게 혼내면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겠지' 생각했으며, 더 심하게 혼낼 때는 '이분과도 언젠가는 헤어지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헤어졌다. 누구나 그 자리에 영원히 있지 않는다. 반드시 자리를 떠나고 사람과도 헤어진다. 심지어 이 세상을 떠난 분들도 많다. 헤어지고 떠나고 나면 그 모든 것은 아름답고 그리운 추억이 된다.
덧붙이는 글 필자 강원국은 청와대 연설비서관을 역임했으며 2014년 <대통령의 글쓰기> <회장님의 글쓰기>를 출간한 이후 글쓰기 관련 강연과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강원국의 글쓰기'는 3월 26일부터 매주 월·수·금 <오마이뉴스>에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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