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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05.07 10:48수정 2018.05.07 10:48
그러니까 벌써 8년 전이다. 아내 성화에 못 이겨 종합 검진을 받았다. 검진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내과 전문의가 호출했다. "암인 거 아셨어요?" 그는 마치 '식사는 했느냐'고 묻듯 아무렇지도 않게 물었다. 나는 의사 가운에 눈길이 갔다. 때 끼고 실오라기가 풀려 너덜해진 소매가 에어컨 바람에 파르르 떨고 있었다. 마치 나처럼.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이번 한 번만 봐주세요. 잘 할게요. 정말 잘 할게요.' 살 수만 있다면 못할 게 없어 보였다. 무엇이든 가능했다. 하물며 글 쓰는 일쯤이야.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란 이름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몰입과 긍정심리학의 개척자로 유명하다. 그는 창조적인 사람의 요건으로 세 가지를 들었다. 창의적 사고, 전문지식, 몰입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는 글쓰기에도 필요하다. 글감을 찾는 데는 창의적 사고가, 쓰는 데에는 전문지식과 몰입이 필요하다. 글쓰기야말로 가장 창조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칙센트미하이 교수의 주특기는 몰입이다. 그는 몰입의 조건으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적절한 난이도, 구체적 목표 그리고 피드백이다. 이를 글쓰기에 대입해보면 이렇다. 몰입이 일어나려면 써야 할 글의 난이도가 자기 역량 수준에 맞아야 한다. 그런 상태에서 작은 시도와 작은 성공을 반복한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나의 성취에 의미를 두고 쓴다. 목표를 메시지 전달에 두고, 전하려는 주제에 집중한다. 그러고 나서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는다.

몰입은 글쓰기에 매우 효과적

나도 글을 쓰면서 몰입을 경험한다. 몰입은 글쓰기에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방법은 일곱 가지다.

첫째, 간절할 때다. 간절함이 몰입으로 이끈다. 청와대에서나 기업에서나 늘 간절하고 절실했다. 쓰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쓸거리가 끝나면 다음 쓸거리만 생각했다. 밥 먹을 때도 걸을 때도 그것만 생각했다. 써야 할 글에 관해 몇 날 며칠을 걱정하고 근심해보라. 꿈에 나타난다. 나는 꿈에서 연설문을 완벽하게 세 번 써봤다. 내가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내용이었다.

미치면(狂) 미친다(及)고 하지 않는가. 간절하면 뇌가 안다. 내가 다른 일을 할 때도 뇌는 궁리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답을 준다. 사흘간만 집중적으로 생각해보라. 못 쓸 글이 없다. 반드시 써진다. 에디슨이 수많은 발명을 할 수 있었던 힘도 몰입에서 나왔고, 뉴턴이나 아인슈타인, 빌 게이츠 업적도 몰입의 결과였다.

몰입 전문가인 서울대 황농문 교수에 따르면, 72시간만 한 가지 주제에 관해 절박하게 생각하면 뇌가 응답한다고 말한다. 나는 그의 말을 믿는다. 그가 말하는 몰입의 조건은 이렇다. ① 몰입을 위해선 최선을 다해 도전해야 풀 수 있는 문제가 주어져야 한다. ② 해답을 봐선 안 되며 스스로 풀어야 한다. ③ 자나 깨나 1초도 쉬지 않고 이 문제에만 집중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④ 포기해선 안 된다. ⑤ 반드시 답을 찾게 된다.

이러한 황 교수 생각은 나의 글쓰기 경험과 정확히 일치한다. ① 대통령 연설문 쓰는 일은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가능한 수준의 과제였다. ② 대통령조차 처음부터 답을 갖고 있진 않다. ③ 꿈속에서도 연설문 쓰는 일만 생각했다. ④ 포기는 불가능했고, 죽고 살기의 선택만 있었다. ⑤ 불현듯 쓸 내용이 떠올랐고(serendipity), 선잠을 자다 연설문이 써지기도 했다.

둘째, 위기감 조성이다. 몰입을 일으키려면 공포감이 필요하다. 인간은 위기감을 느끼거나 두려울 때 집중한다. 초인적인 능력을 끌어올린다. 살기 위한 본능이다. 공포감은 어떻게 불러오는가. 글을 못 썼을 때 내가 짊어져야 할 부담과 나쁜 상황을 떠올린다. 못 썼을 때 내게 닥칠 위기 상황을 상정한다. 두려움이 밀려온다. 뇌에 비상이 걸린다. 그런 상태에서는 내게 글 쓸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다. 뇌에서는 세로토닌과 도파민이 나온다. 안정감을 주고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호르몬이다. 그때 집중해서 쓴다.

대통령 연설문을 쓸 때다. 아침 7시에는 대통령께 연설문을 보고해야 한다. 새벽 2시가 됐는데 아직 못 쓰고 있다. 7시까지 쓰지 못했을 때의 상황을 상상해본다. 대통령 앞에 가서 "아직 못 썼습니다" 했을 때 대통령의 반응을 머릿속으로 떠올려본다. 공포감이 엄습해온다. 그때 시계를 본다. 아직 5시간이 남았다. 쓸 시간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그리고 몰입해서 쓴다.

사람은 위기에 처하면 없는 힘까지 찾아낸다. 엄마가 차에 깔린 아이를 구하기 위해 차를 번쩍 들어 올리는 것과 같다. 고등학교 때 시험 감독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책상 위에 있는 것 다 치우라고 했을 때, 가방에 필기 노트를 넣기 직전 10여 초 동안 평소 1시간 이상 공부해야 하는 분량을 학습한다. 이게 마지막이라는 위기감이 불러온 몰입 상태다. 스스로를 위험한 생각 속으로 몰아넣으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몰입한다.

셋째, 마감 시한을 정해놓는 것도 방법이다. <회장님의 글쓰기>를 쓸 때 원고지 1300매가량을 써야 하는데, 이 분량을 채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온라인 매체에 기고하기로 했다. 매주 일정 분량을 반드시 써야 하는 상황으로 스스로를 내몰았다.

회사에서 쓰는 글은 마감 시한이 있다. 그 시간에서 앞당겨 스스로 마감을 만들어놓고 써보라. 회사 일이 아니고 내 일이 된다. 글쓰기가 훨씬 수월하다. 쥐어짜듯 쓰지 않게 된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즐겁기까지 하다. 며칠간의 여유가 가져다준 즐거움이다. 또한 마감 시한 내에 썼을 때는 작게나마 자신에게 보상해줘라. 좋아하는 음식을 먹어도 좋고, 친구를 만나도 좋다. 마감 시한 안에 일을 처리한 데 대해 스스로를 칭찬하고 격려해주는 의식이 필요하다.

나는 매주 원고를 마감한 날에는 술을 마셨다. 요즘에도 써야 한다는 부담만 갖고 있다가 초읽기에 몰려 마감 하루 전에 쓰기 시작한다. 피할 수 없는 벼락치기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그날은 무조건 써야 한다. 고등학교 시험 때도 그랬고, 청와대에서 연설문 쓸 때도 그랬다. 그래도 못 쓴 적은 없다. 창의적이거나 임기응변이 필요한 글은 이렇게 쓸 때 더 잘 써지기도 한다.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을 때 몰입한다

넷째, 관심 분야를 갖는다. 우리는 죽고 못 사는 연인이 생기면 앉으나 서나 그 사람만 생각한다. 관심이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이 생기면 우리는 빠져든다. 나는 3년 전부터 글쓰기 하나만 생각한다. 무슨 말을 들어도, 무슨 글을 읽어도 글쓰기와 연관 짓는다. 그러면 모든 것이 글쓰기와 관련이 된다. 사람은 누구나 관심 갖는 게 있고, 그것에 몰입할 때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연애편지를 쓰면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은 없다. 게임 마니아는 게임에 관해 말할 때 가장 신이 난다. 독서 삼매경도 그 한 예다. 관심 분야를 만들어보라. 그리고 거기에 빠져보라. 그것에 관해 쓰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다섯째, 생각이 잘 나는 장소에서 멍 때리는 것도 좋다. 나는 지하철에서 멍 때리는 경험을 자주한다. 멋있는 말로 상념에 잠긴다. 나도 모르게 멍 모드에 들어가면 주변 누구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온전히 생각에 빠져든다. 완벽한 집중과 몰입이 이뤄진다. 내릴 곳을 지나치기도 하지만, 바로 그럴 때 글감을 하나씩 얻는다. 왜 나는 지하철에서 생각이 잘 날까. 지하철의 규칙적인 진동음이 긴장을 풀어주고 뇌를 간질이기 때문이다.

새 소리, 빗소리,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 같은 백색소음은 일정한 주파수를 갖고 있고 귀에 익숙하기 때문에 다른 소음을 덮어주는 작용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생각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도서관같이 조용한 환경보다는 약간의 소음이 있는 장소에서 집중력이 50% 가까이 올라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카페도 그런 장소 중 하나다. 멍 때리기가 잘 되는 자신만의 장소를 찾아보자. 확실히 몰입 효과가 있다.

여섯째, 글과 노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장난감을 갖고 놀 때, 연주자가 악기를 가지고 놀 때 무아지경에 빠진다. 주변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하는 일에 온전히 빠진다. 프랑스 사회학자 로제 카이와(Roger Caillois)는 <놀이와 인간>에서 네 종류의 놀이가 있다고 했다.

'아곤'(Agon)은 바둑, 장기와 같이 경쟁하는 놀이다. 이를 통해 인간은 스스로의 우월성을 나타내고 싶어 한다. '알레아'(Alea)는 윷놀이, 주사위 놀이와 같이 우연과 운이 좌우하는 놀이다. 이를 통해 운명을 시험한다. '미미크리'(Mimicry)는 소꿉장난, 연극놀이와 같은 모방과 재현 놀이다. 이를 통해 역할을 대행해본다. '일링크스'(Ilinx)는 그네타기, 회전목마 등과 같이 아찔함을 즐기는 놀이다. 이를 통해 짜릿함을 경험한다. 글쓰기는 이 모두를 포괄한다. 표현을 통해 유능함을 인정받고, 자신의 창의성과 운을 시험하며, 역할을 대신 해보고, 짜릿함을 체험한다.

글을 갖고 놀아보자. ▲아크로스틱(Acrostic)이란 놀이가 있다. 재미 삼아 하는 삼행시 외국 버전이다. 그리스어로 '맨 앞'을 뜻하는 아크로스(acros)와 '어구'를 의미하는 스티코스(stichos)가 합쳐진 말이다. 글자의 앞머리나 특정 부분을 따서 맞춰보면 의미 있는 단어나 어구가 나오도록 쓴 짧은 시가 아크로스틱이다. 요즘 유행하는 '인구론'도 일종의 아크로스틱이다. 인문계 졸업생+구십 퍼센트가+논(론)다. ▲연상되는 단어 쓰기도 있다. 예를 들어, '가을' 하면 떠오르는 단어 쓰기다. 독서, 귀뚜라미, 여행, 낙엽, 추남, 가을동화, 야구경기 등. ▲끝말잇기는 어렸을 적 많이 해봤다. ▲낱말 퍼즐 맞추기는 신문이나 잡지에 많이 등장한다. ▲운자 쓰기는 처음 글자와 마지막 글자를 정해놓고 그사이를 메우는 놀이다.

이 밖에도 이야기 이어쓰기, 아는 이야기 결론 바꿔 쓰기, 주어진 단어 넣어 글쓰기, 광고 문안 쓰기, 광고 패러디하기, 장면·그림 보고 느낌 쓰기, 반박문 쓰기, 영화 보고 줄거리 이야기하기, 영화·드라마 리뷰 쓰기, 노래 가사 쓰기 등 많다. 이런 놀이를 즐기는 사람에게 글쓰기는 얼마나 축복인가. 그저 놀기만 해도 써지는 게 글이니까. 노는 게 글쓰기니까.

일곱째, 글을 써서 이룰 수 있는 장대한 꿈을 상상한다. 그것이 베스트셀러 작가일 수도 있고, 파워블로거일 수도 있다. 회사 사보에 글을 연재하겠다는 작은 목표에서부터 칼럼니스트가 되거나 소설가, 시인으로 등단하겠다는 꿈을 가져볼 수도 있다. 나는 1년여 전 문인이 되겠다는 꿈을 가진 이후로 글 쓰는 일이 즐거워졌다. '장차 작가가 될 사람이 이까짓 잡문에 쩔쩔매서야 되겠는가' 생각하니 글쓰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을 때 우리는 몰입한다.

19세기 중반 러시아 한 남자가 사형집행을 앞두고 있었다. 형 집행을 5분 앞두고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그는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4년을 보냈다. 5킬로 족쇄를 차고 강제노동에 시달리면서도 글을 썼다. 글 쓰는 게 금지돼 있었지만, 심장의 피를 찍어 머리로 쓰고 외웠다. 모든 순간을 신이 준 선물로 생각하고 쓰고 또 썼다. 그가 바로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다.
덧붙이는 글 필자 강원국은 청와대 연설비서관을 역임했으며 2014년 <대통령의 글쓰기> <회장님의 글쓰기>를 출간한 이후 글쓰기 관련 강연과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강원국의 글쓰기'는 3월 26일부터 매주 월·수·금 <오마이뉴스>에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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