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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04.18 08:35수정 2018.04.18 08:35
나는 벙어리였다. 대인기피, 무대 공포증 환자였다. 돌아가며 한마디씩 하라는 소리가 가장 싫었다. 학교 다닐 때는 조별토론이 가장 무서웠다. 토론도 토론이지만 누군가는 대표로 결과를 발표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서기를 자처했다. 회장과 대통령의 글을 쓴 것도 그런 이유가 크다. 말할 필요가 없었다. 숨어서 없는 사람처럼 쓰기만 하면 됐다.

당신은 말하기가 쉬운가, 글쓰기가 쉬운가. 나는 쓰기가 쉽다. 글 뒤에 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얼굴을 안 보여줘도 된다. 나는 얼굴을 보일 자신이 없다. 내 실력을 내가 안다. 말은 즉답해야 한다.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순발력이 필요하다.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 그에 반해 쓰기는 시간이 주어진다. 생각할 시간이 있다. 나는 말하기보다 쓰는 게 편해 줄곧 남의 글을 썼다. 그래서 밥 먹고 살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말했다.

"당신이 뭔데 이렇게 청와대에서 오래 있을 수 있었나? 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으려면 청와대 경험을 공유하는 책을 쓰게. 그렇지 않으면 당신 혼자 특권을 누린 걸세. 소수가 누리던 것을 다수가 누리는 게 역사의 진보네."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청와대에서 일할 때는 물론이고 그곳을 나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쓸 상황도 아니었다. 그저 근근이 살았다. 그러다 이명박 정부 말기에 출판사에 입사했고, 박근혜 정부 초기에 <대통령의 글쓰기>를 썼다. 출판사에 간 것이 책을 쓰게 된 직접적 계기였다. 그러나 결정적 배경은 따로 있었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만나는 사람마다 내게 물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어떤 분이고, 노무현 대통령은 어떠냐고. 대통령 연설문은 어떻게 쓰며 청와대 생활은 어땠냐고. 같은 말을 수십 수백 번 되풀이했다. 이야기가 점점 재밌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반응이 신통치 않으면 다음엔 말하지 않게 되니까. 사람들이 귀를 쫑긋 세우는 솔깃한 이야기만 남았다. 그것을 책으로 썼다. 집필 기간은 두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론 5년 동안 쓴 것이나 진배없다. 말로 썼다.

TV 드라마 대본은 반응을 봐가며 추가하는 방식이 때론 유효하다. 드라마 전체를 미리 촬영해놓는 방식이 더 위험할 수 있다. 시청자와 함께 호흡하는 것은 영합이 아니다. 전설이나 민담은 기존의 이야기에 좀 더 흥미를 불어넣기 위해 추가하면서 완성도를 높여간다. 일종의 집단 창작이다. 설화도 마찬가지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내용을 보태면서 길이가 불어났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이야기는 더 재밌어졌다. 내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뼈대를 써놓고 살을 붙이자. 이 사람 저 사람 만나 얘기해보자. 반응을 봐가면서 말이다.

글쓰기보다는 말하기가 쉽다. 말은 대상을 앞에 두고 한다. 상대 반응을 살펴 가며 말할 수 있다. 상대가 내 말을 잘 알아듣고 있는지, 지루해하진 않는지 즉각적으로 알 수 있다. 그에 따라 말의 내용과 방향을 바꿀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말은 어투, 표정, 손짓의 도움을 받는다.

미국 심리학자 앨버트 메러비안(Albert Mehrabian)은 의사소통에서 상대방에 대한 인상이나 호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청각적 요소 38%, 시각적 요소 55%이고, 말의 내용은 7%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 유명한 '메러비안 법칙'이다. 말의 내용은 고작 7%이고 나머지 93%는 청각적·시각적 요소가 좌우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말의 내용이 정교하지 않아도 표정과 손짓으로 의미 전달이 가능한 것이다.

말하면 생각도 발전한다

글쓰기는 그렇지 않다. 독자가 눈에 보이지 않고, 그 반응을 알 수 없다. 벽에 대고 말하는 것과 같다. 표정이나 손짓의 도움도 받지 못한다. 문자 그 자체만으로 소통해야 한다. 전하고자 하는 내용만 쓰고 내가 왜 그렇게 말하는지를 친절하게 써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게 글이다. 말의 내용인 텍스트(Text)만이 아니라 음색, 억양, 표정, 손짓에 해당하는 콘텍스트(Context), 즉 배경, 맥락까지 충분히 설명해줘야 표정, 손짓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문자 메시지에서 'ㅎㅎ', 'ㅠㅠ'를 쓰는 것도 이런 노력 중 하나다. 나의 상태를 알려줌으로써 소통을 좀 더 원활하게 하려는 시도이다.

방법은 쓰기 전에 말해보는 것이다. 말을 하면 생각이 떠오른다. 말은 기억의 우물에서 생각을 길어 올리는 두레박이다. 또한 말은 말을 불러온다. 나는 술자리에서 말하다 보면 '이렇게 좋은 생각이 어디에 있다 이제 나오나' 싶다. 말하면 생각도 발전한다. 점점 살이 붙고 더 좋은 표현이 추가된다. 상대가 내 얘기를 이해하지 못하면 다음에 말할 때는 비유와 예시를 든다. 못 믿는 것 같으면 구체적인 통계와 사례를 제시한다. 말은 생각을 정리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대통령이나 회장은 직접 쓸 시간이 없다. 그래서 구술한다. 처음에는 받아 적지 말라고 한다. 잘 들어주기만 하라고 한다. 그러다 어느 시점이 되면 '지금부턴 잘 받아 적으라'고 한다. 쓸 말이 정리된 것이다. 말한 뒤에 쓰면 알아먹기도 좋다. 친근하고 생생하다. 구어체로 쓰기 때문이다. 대신, 구어체는 투박하다는 단점이 있다. 정제해야 한다. 그러므로 말하듯 쓰고, 쓰듯 말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말할 때는 글 쓰듯 말하고, 쓸 때는 말하듯 쓰는 것이다. 누군가와 대화하듯 쓴다. 이야기하듯 쓰려면 재밌게 쓰려고 할 것이고, 누군가에게 설명하자면 쉽게 쓰려고 할 것이다. 선생님에게 설명하려면 경어일 것이고, 친구에게 하는 이야기는 평어를 쓸 것이다.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않는다면 누구나 쓸 수 있지 않겠는가.

출판사에서 일할 때, 유력 저자에게 책을 써달라고 부탁하면 시간이 없다고 거절한다. 하지만 강연을 해달라고 요청하면 생각해보겠다고 한다. 2시간짜리 다섯 차례 강연을 기획해서 장소를 마련하고 청중을 모집해주면 대부분 거부하지 않는다. 쓰기보다는 말하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10시간 분량의 말이 확보된다. 녹음된 말을 글로 풀어 다듬고 살을 붙여 감수해달라고 하면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진다.

말이 글이 되고 책이 된다. 그때 경험으로 요즘도 자서전 쓰기 강의에 가면 얘기한다. 쓰고 싶은 내용에 관해 누군가에게 말해보라고. 10시간 말할 수 있으면 책이 된다고 얘기한다. 자기소개서를 써야 하는 학생들에게도 말한다. 자신에 관해 친구들에게 말해보라고. 그렇게 말해 본 후 쓰라고 조언한다.

구양수가 말한 다독, 다작, 다상량에 하나 더 추가돼야 한다. 바로 다변이다. 많이 말해야 한다. 말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대화, 논의, 토론, 발표, 면접, 강의, 강연, 연설, 웅변, 이 모두가 말이다.

대화는 공감이 중요하다. 논의는 다양한 관점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토론은 찬반 등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하고, 그러한 이유와 근거, 사례를 대는 게 중요하다. 발표는 잘 설명해서 이해시키는 게 포인트다. 면접은 물어보는 사람의 궁금증을 해소해줘야 한다. 강의는 수강자들을 생각하게 만들어야 한다. 연설은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정서적으로 설득하는 게 중요하다. 말에 담기는 지식, 의견, 감정, 주장의 비중 차이도 있다. 발표보다는 강의가 의견 비중이 높다. 강의보다는 강연에 감정이 더 실린다. 연설보다는 웅변이 더 강한 주장을 담는다.

이 모든 것은 글쓰기에서도 똑같이 중요하다. 글도 종류마다 본질에 해당하는 것이 있다. 자소서는 누구인지 알게 하는 게 중요하다. 홍보문안은 이익과 혜택은 무엇인가, 사과문은 보상과 복구는 어떻게 할 것인가, 경위서는 무엇이 잘못됐나, 공지문은 무엇을 해야 하나이다. 축사는 칭찬이 담겨야 하고, 기념사는 성과와 업적 자랑이 본질이다. 격려사는 선물을 주고 헌신을 요구한다. 이 모든 것은 누군가와 말해보면 깨닫게 된다. 쓰다 막히면 누군가를 찾아가 대화를 나눠보라. 회사 안에서 중요한 문서를 작성할 일이 생기면 모여서 토론해보라.

글쓰기는 스스로 묻고 답하는 과정

듣기 역시 말하기의 연장선상에 있다. 또한 쓰기의 토대다. 잘 듣는 사람이 말을 잘하고, 잘 쓴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말을 심하게 더듬는 분이 있다. 병원에 가서 교정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의 장애를 안고 살아왔다. 그런 그가 20년 넘게 보험회사 영업왕을 놓치지 않았다. 비결은 단 하나, 잘 듣는 것이다. 말을 유려하게 못하기 때문에 열심히 듣는다. 잘 들어줌으로써 고객을 주인으로 만들어준 결과다.

혹시 상대가 말할 때 가로막고 끼어든 적이 있는가. 이야기를 듣다가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잘 들으면 생각이 난다. 듣기를 통해 정보를 얻는다. 말만 하면 정보를 잃지만 들으면 얻는다. 수지맞는 장사다. 말하기와 글쓰기 밑천을 챙길 수 있다. 잘 들어야 공감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관계가 좋아진다. 관계가 좋으면 말하기, 글쓰기가 수월하다.

나는 요즘도 글 쓰다 막히면 아내에게 얘기하거나 친구를 찾아가 대화한다. 다음 날까지 마감해야 할 기고 글이 있을 때에도 친구가 만나자고 하면 만난다. 만나서 얘기한다. 물론 친구가 답을 주는 게 아니다. 내가 말하면서 답을 찾는다. 친구의 말을 들으면 답이 떠오른다.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이렇게 쓰면 되겠구나' 하고 졸가리가 타진다.

말할 상대가 없으면 스스로 질문하고 답한다. 우리 모두 어릴 적에는 질문이 많았다. 모든 게 궁금했다. 크면서 질문이 사라졌다. 이와 함께 호기심도, 상상력도 사라졌다. 글쓰기도 힘들어졌다. 글쓰기는 스스로 묻고 답하는 과정이다. 자기와의 대화다. 왜 그랬지? 그래서 어떻게 됐지? 어떻게 하면 되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물어야 한다.

질문은 핵심 질문과 보조 질문으로 구성된다. 예를 들어 '글을 왜 쓰나?'가 핵심 질문이라면, 보조 질문은 '글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나?', '글쓰기는 치유의 힘이 있나?', '글은 독자와 자신 중 누구를 위해 쓰는가?'를 설정한다. 만약 '글을 어떻게 쓰나?'가 핵심 질문이면 '개요를 짜고 써야 하나?', '말하듯이 쓰면 안 되나?', '어떻게 글을 잘 고칠 수 있지?' 물어봐야 한다.

우리 모두는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를 하며 산다. 직장에 가면 상사에게 보고하고, 회의하고, 발표한다. 모두 말하기다. 또한 보고 받고, 민원인이나 고객의 말을 듣고, 문서를 읽고, 문서를 쓴다. 듣고 읽고 쓰는 것이다.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를 잘하는 사람이 유능한 사람이다.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는 별개로 작동하지 않는다. 서로 연결돼 있다.

말과 글과 생각 또한 긴밀한 관계 속에서 영향을 주고받는다. 생각은 말과 글을 통해 표현된다. 생각이 났다는 것은 머릿속에서 말과 글로 표현이 이루어진 것이다. 또한 생각은 말과 글을 통해 만들어진다. 말을 하고 글을 써야 생각이 난다. 말과 글은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일 뿐만 아니라 생각을 만들어내는 수단이기도 하다. 생각이 좋다, 말을 잘한다, 글을 잘 쓴다는 의미는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 뇌에 베르니케와 브로카 영역이 있다. 베르니케 영역은 왼쪽 뇌에 위치하고, 글을 읽거나 말을 들어 이해하는 영역이다. 독일의 신경정신과 의사인 카를 베르니케(Carl Wernicke)가 발견했다. 브로카 영역은 말하기, 글쓰기 등 표현을 담당하는 영역으로서 베르니케 앞쪽에 있다. 프랑스 외과 의사 폴 피에르 브로카(Paul Pierre Broca)에 의해 밝혀졌다. 말하기와 글쓰기는 같은 구역이다. 말 잘하는 사람이 글도 잘 쓰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사랑에 빠졌을 때 실력이 일취월장한다

말을 많이, 잘 해보겠다고 마음먹자. 말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누가 말 잘하는 사람인가. 첫째, 논리적으로 말을 잘하는 사람이다. 설득이나 주장을 잘하는 사람이다. 변호사들이다. 둘째, 감성적으로 말을 잘하는 사람이다. 같은 얘기를 해도 사람의 정서를 건드리는 사람이 있다. 상담직군에 많다. 부하 직원과의 상담도 논리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인 게 좋다. 셋째, 비판적으로 말을 잘하는 사람이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이면과 저의를 파헤친다. 까칠한 느낌이 있지만, 이런 사람의 말을 들으면 후련하다. 언론인이 갖춰야 할 덕목이다.

넷째, 말을 재밌게 하는 사람이다. 유머와 위트가 있어 웃음을 자아내는 사람이다. 농담을 잘하는 것과는 다르다. 재치가 있어야 한다(내가 여기에 해당한다). 다섯째, 본질적인 접근을 잘하는 사람이다. 길게 말하지 않는데 정곡을 찌른다. 대개 이런 사람은 말이 어눌하다. 철학자연 하는 자들이다. 여섯째, 지적으로 해박한 사람이다. 상식, 지식이 풍부하다. 뭘 물어도 모르는 게 없고 말이 청산유수다. 주로 정치인이 그런 체한다. 일곱째, 설명을 잘하는 사람이다. 상대방이 잘 알아들을 수 있게 조곤조곤 말하는 사람이다. 교수나 교사가 그렇다.

이런 능력 중에 하나만 갖춰서는 말 잘한다는 소리를 듣지는 못한다. 기본은 사실에 밝고 그것을 알기 쉽게 말하는 역량이다. 역사적·법적·통계적 사실에 정통하고 알고 있는 것을 비유·예시 등을 통해 쉽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토대 위에 세워야 할 세 기둥은 논리적·감성적·비판적 역량이다. 여기에 유머 감각과 촌철살인이 가미되면 금상첨화다.

말 잘하는 사람이 잘 쓰는 것은 당연하다. 논리적으로 말을 잘하는 사람은 논증하는 글을 잘 쓴다. 감성적인 말을 잘하면 감동을 주는 글을 쓸 여지가 많다. 말을 재밌게 하는 사람은 해학적인 글을 쓸 확률이 높다. 본질적인 접근을 잘하는 사람은 해법을 찾는 글에 능하다. 비판적인 말을 잘하는 사람은 문제를 찾아내는 글쓰기에 적합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말은 잘하는데 글쓰기를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 반대로 글은 좀 쓰겠는데, 말하기가 어렵다는 사람도 있다. 성격과 습관 탓이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은 말하기가 쉽다. 그렇지 않으면 글쓰기가 편하다. 성격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더 많이 해봤느냐다. 말하기를 많이 해본 사람은 말하기가 용이하다. 평소 글과 가깝게 지낸 사람은 글쓰기가 편하다. 습관적으로 많이 해본 것이 쉽다. 하기 나름이다. 성격은 고정불변이 아니다. 의도적으로라도 사람들과 만나 대화하는 시간을 늘리면 성격도 변하고 습관도 만들어진다.

물론 차이점도 있다. 순발력 있는 사람은 글보다 말에 능숙하고, 깊이 사고하는 사람은 말하기보다 글쓰기를 잘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차이점보다는 말과 글의 본질과 공통점에 주목하고 싶다. 이를 상호 유기적으로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말을 잘하겠다는 마음을 먹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말을 폄하하는 분위기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말 잘하는 사람은 대접받지 못했다. 말 잘하면 '주둥아리만 살았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말을 잘하면 사기꾼 같다고 한다. 감언이설이 왜 나쁜가. 솔깃하고 꾀는 말을 해야 하지 않는가. 그것이 마음을 움직이는 말 아닌가.

말을 잘하고 싶으면 무엇보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야 한다. 간절하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말하는 시간이 기다려지고 열정적으로 말하게 된다. 말하는 것이 스스로 재미있다. 그러면 듣는 사람도 빠져든다. 하고 싶은 말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이 읽고 듣고 써보면 된다. 또한 말은 관심사가 생겼을 때,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상황이나 지위에 놓였을 때, 사랑에 빠졌을 때 실력이 일취월장한다.

나는 선천적으로 말을 못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책을 쓰고 강연하면서 말을 잘한다는 걸 알았다. 청와대 경험을 책으로 써서 공유하지 않으면 특권을 누린 것이라고 말씀하신 노무현 대통령님. 그분 덕분에 나는 <대통령의 글쓰기>를 썼고, 글쓰기 강연을 하고 있다. 또 다른 특혜를 누리면서 잘 먹고 잘살고 있다.

대통령님, 송구하고 고맙습니다.
덧붙이는 글 필자 강원국은 청와대 연설비서관을 역임했으며 2014년 <대통령의 글쓰기> <회장님의 글쓰기>를 출간한 이후 글쓰기 관련 강연과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강원국의 글쓰기'는 3월 26일부터 매주 월·수·금 <오마이뉴스>에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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