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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04.16 08:22수정 2018.04.16 09:38
고모 집은 전주에서 가장 큰 서점이었다. 두 개 층이 서점이었는데, 서울의 대형서점 못지않았다. 건물 맨 위층이 살림집이었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을 그곳에서 보냈다. 밤 12시가 넘어 모두 잠들면 고양이처럼 서점으로 내려갔다. 이 책 저 책 목차를 봤다. 가슴이 뛰었다. 우연하게 한국 단편소설을 읽게 된 이후부터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며 성적 호기심을 충족하던 시절, 김동인 <감자>, 나도향 <물레방아> 같은 소설은 에로티시즘의 극치였다. 단편소설로 시작한 독서(?)는 어느덧 장편소설로 이어졌다. <풀잎처럼 눕다>, <불새> 등 제목만 봐도 내용을 파악할 수 있게 되더니 나중에는 목차만 봐도 어느 대목에 절정이 있는지 직감적으로 알아차리는 경지에 이르렀다.

요즘도 책의 목차를 보기 위해 서점에 자주 간다. 목차를 보면 얻는 게 많다. 목차는 호기심을 유발한다. 최근 흐름을 읽을 수 있다. 목차 안에는 배경 지식도 있다. 목차 한 줄이 영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 한 줄이 내가 써야 할 글의 주제가 된다. 무엇보다 목차는 책 전체를 한눈에 보게 한다. 내용 구성이 어떻게 돼 있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준다. 독자를 끌어당기기 위해서는 구성이 어떠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목차야말로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고 책에서 떠나지 못하도록 치밀하게 짜인 각본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글의 설득력과 논리는 순서에서 나온다. 물론 순서를 세울 내용물이 먼저다. 그러나 순서를 알면 내용물을 채울 수 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다. 순서를 안다는 것은 목차가 나온 것이고, 목차가 있으면 내용물을 하나씩 채워나갈 수 있다. 틀만 있으면 내용은 채워진다. 쇠틀만 있으면 밀가루 반죽이 붕어빵도 되고, 잉어빵도 되고, 국화빵도 된다. 쇠틀에 달렸다.

그런 점에서 형식이 내용을 결정한다고도 할 수 있다. 포맷, 플랫폼, 체계, 양식, 패턴이 중요하다. 과거엔 내용이 먼저이고 형식이 뒤따랐다. '무엇(내용)'이 우선이고 '어떻게(형식)'는 '무엇(내용)'에 종속되게 마련이었다. 이제는 형식이 '무엇'에 해당한다. 내용이 '어떻게'다. 글의 전개 형식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 결정하면 내용은 '어떻게'라도 채울 수 있다. 콘텐츠는 차고 넘친다. 구슬이 서 말이다. 꿰는 게 문제다.

나는 시대를 잘 만났다. 인터넷이 있지 않은가. 내용이 없어 글을 못 쓰진 않는다. 내용은 인터넷에도 있고, 책에도 있고, 내 머릿속에도 있다. 누군가 써놓은 보고서에도 있고, 신문 잡지에도 있고, 상사의 지시 사항에도 있고, 회사의 역사나 최고경영자의 경영 철학에도 있다. 오히려 너무 많아서 탈이다. 무엇을 가져다 쓸지 모르는 게 문제다. 목차가 떠오르지 않아서 못 쓸 뿐이다.

머릿속에 목차가 있는 사람은 자료를 눈으로 죽 보다가 필요한 것을 딱딱 가져와 조립한다. 무엇을 가져와야 하는지 아는 것이다. 이에 반해 목차가 없는 사람은 자료를 모두 출력한다. 냅다 밑줄부터 긋는다. 밑줄 그은 것만 해도 엄청 많다. 하지만 머릿속에 지도가 없어 결국 자료 안에서 길을 잃어버린다.

옷을 사러 동대문 패션타운에 갔다고 해보자. 어떤 사람은 죽 둘러보고 자신이 살 옷을 단박에 선택한다. 또 다른 사람은 주야장천 돌아다니지만 결국 아무것도 고르지 못한다. 혹은 이 옷도 좋은 것 같고 저 옷도 욕심이 나서 충동구매를 하고 만다. 이런 옷은 대부분 금세 질리게 마련이다. 그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첫 번째 부류는 사려고 하는 옷의 스타일, 색상 등이 머릿속에 있는 것이고, 두 번째 부류는 그것이 없는 경우다.

학교 다닐 때 글의 구성에 관해 배웠다. 서론-본론-결론(3단), 기-승-전-결(4단),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5단) 등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글을 쓸 수 없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구성요소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일기가 오늘 한 일과 느낀 점, 다시 말해 사실과 느낌이라는 구성요소를 중심으로 쓴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기 쓰는 일을 겁내지 않는다. 그리고 일기를 쓰면서 인터넷을 검색하지 않는다. 한 일과 느낀 점은 내 머릿속에 있지 인터넷이나 책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만약 일기를 처음 쓰는 사람이라면, 일기가 한 일과 느낀 점으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다시 말해 머릿속에 목차가 없다면 인터넷을 뒤질 것이다. 글을 쓸 때 인터넷에서 하염없이 허우적대는 것도 목차가 없기 때문이다. 구성요소를 모르는 탓이다. 구성요소를 안다는 것은 무엇을 써야 하는지 안다고 것이고, 그러면 글쓰기가 수월해진다.

교회 기도문에도 구성 틀이 있다

회사에서 쓰는 모든 보고서는 기본 구성요소가 있다. 문제점을 해결하는 보고서는 현황-문제점-해법-기대효과이다. A, B안 혹은 시행 여부를 놓고 의사결정을 하는 데 필요한 보고서는 A, B안 또는 찬반의 비교 기준 제시–장단점 비교 및 쟁점 분석-보고자의 의견 제안–제안대로 했을 때 예상 결과 순이다. 목표 달성을 위한 보고서는 목표 제시-현재 위치 진단-목표와 현재 상태 차이를 줄이기 위한 전략 수립–구체적 일정 계획-어떤 상태에 이르렀을 때 목표를 달성했다고 할 것인지 지표 제시–달성 시 포상 계획 등을 밝혀야 한다. 

연설문도 축사, 격려사, 기념사 등 글의 종류별로 기본 구성요소가 있다. 행사에 참석해서 갑작스럽게 축사를 요청받으면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이때 마치 준비해온 것처럼 술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축사의 구성을 꿰뚫고 있는 것이다.

첫째, 축하한다. 둘째, 행사의 의미를 부여한다. 셋째, 이런 행사가 더 잘됐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표명한다. 넷째, 다시 한번 축하한다. 다섯째, 건승을 빈다며 덕담으로 마무리한다. '축하-의미부여-기대표명-거듭 축하-덕담'이라는 구성이다. 좀 더 나은 축사 구성이 머릿속에 있는 사람도 있다. 의미부여 뒤에 '이처럼 훌륭한 행사를 준비해주신 분들에게 고맙다'며 감사 표시란 구성요소를 추가한다. 기대표명 뒤에도 '저도 있는 힘껏 돕겠다'며 지원 의사 표명을 덧붙인다.

격려사도 마찬가지다. 첫째, 구성원이 이룬 업적이나 성과를 나열한다. 둘째, 고생했다며 치하한다. 셋째, 여기서 안주해선 안 된다고 한다. 넷째,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다섯째, 역할을 당부한다. 여섯째, 자신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며 처우 개선 및 복리 증진을 약속한다. 마지막으로 함께 잘해보자며 마무리한다. 이것이 격려사의 구성이다.

칼럼은 현상-진단-해법이란 구성요소로 쓴다. 부동산 상승에 관한 칼럼을 쓴다고 해보자. 현상(모델하우스가 장사진을 이루고, '떴다방'이 기승을 부리며, 강남 집값이 얼마나 올랐다) - 진단(공급 부족의 문제인가, 투기 세력이 개입했는가) - 해법(공급 확대 정책 혹은 금융 및 세제 조치를 취해야 한다)으로 쓴다. 홍보하는 글은 특징-장점-이익·혜택으로 쓴다. 이 제품은 이런 특징과 장점이 있고, 이 제품을 썼을 때 이러이러한 이익과 혜택이 있다고 한다. 특징 앞에 주목을 끄는 미끼 문안을 넣고, 마지막에 구매 권유를 추가하기도 한다.

논증하는 글은 주장-이유-근거와 예시-재주장이 기본이다. 주장-반론소개-반박도 가능하다. 마케팅 문서는 주의–흥미–욕구–기억–행동, 연구보고서는 도입-연구방법-결과-쟁점-결론이다. 심지어 교회에서 하는 기도문에도 구성 틀이 있다. 찬양-은혜에 대한 감사-회개-간구-다시 감사–아멘이다.

구성요소는 분화할수록 좋다. 그래야 치밀한 구성이 된다. 궁금한 게 없는 글이 된다. 문제를 해결하는 보고서에서 '문제점'을 분화하여 '문제점의 본질', '문제점의 심각성 정도' 등을 넣어주고, '기대효과'만 쓸 것이 아니라 잘못됐을 때의 '부작용'을 추가하면 더 믿음이 간다.    

일기도 오늘 한 일, 즉 '사실'만 쓰는 경우보다는 '느낌'을 덧붙이면, 나아가 사실과 느낌을 쓴 후 '다짐'으로 마무리하면 더 좋은 구성이 된다. '오늘 놀았다(사실)', '후회된다(느낌)', '내일은 공부해야지(다짐)'. 이 경우는 구성요소가 세 개다. 구성요소가 '사실' 하나뿐인 일기보다는 더 나은 글이 된다. 독후감도 줄거리, 저자 소개, 느낀 점만 쓰기보다는 책에 대한 정보와 함께 같은 분야 책과의 비교, 평가가 들어가면 서평 수준으로 격상한다.

커뮤니케이션 이론 중에 '구성주의'란 게 있다. 예컨대 갑은 '좋다', '나쁘다'고 말하고, 을은 '매우 좋다', '좋다', '보통이다', '나쁘다', '매우 나쁘다'로 말한다면, 갑보다 을이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 사람이다. 이것을 구성주의에서는 '인지적 복잡성', '구성의 분화'라고 말한다. 구성이 복잡해지고 세분화됐다는 것이며, 이에 따라 의사 전달이 좀 더 명확하게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나는 구성주의 이론을 발견하고 무척 기뻤다. 그동안 글쓰기 강의에서 강조했던 '글의 구성 틀'이 바로 여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구성이 섬세할수록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말해왔던 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검증받은 기분이었다.

사실에 자신 있으면 사실을, 느낌이 충만하면 느낌을

구성 틀을 다양하게 갖고 있는 사람이 글을 빨리 잘 쓰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주눅들 필요는 없다. 기본은 사실-느낌이다. 감상문 대부분이 이 틀을 쓴다. 감상문이 자신에게만 머물지 않게 하려면 느낌만 쓰지 않고 의미까지 넣어주면 된다. 나를 우리로 확장한다. 그리고 공동체와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를 추가한다. 논술에서는 '느낌'을 이유와 근거로, 시에서는 비유나 은유로 나타낸다. 느낌을 '주장'으로 바꾸면 사설이나 연설문이 된다. 소설에서 '사실'은 묘사로 표현된다.

이처럼 대부분 글은 사실과 느낌을 기본 틀로 활용한다. 사실과 느낌의 마스터키를 갖추면 글의 문을 열 수 있다. 객관-주관의 구성도 사실-느낌의 연장선상에 있다. 세계와 나, 사회와 개인, 보편과 특수, 이론과 실제, 원칙과 실천 등도 맥락을 같이 한다.

쉽게 얘기하면 '남과 나'다. 나는 이 틀을 자주 쓴다. 앞은 남의 얘기이고, 뒤는 내 얘기다. 앞은 공자 말씀이고, 뒤가 본론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나, 주관, 개인, 특수, 현실, 실제, 실천, 해석이다. 문제는 객관과 주관의 비중이다. 많은 사람이 내 생각, 의견, 주장, 즉 주관이 빈약하다는 이유로 글쓰기를 주저한다. 그러나 굳이 주관을 많이 쓸 필요는 없다. 객관적 사실만 잘 써줘도 독자는 주관까지 읽어낸다. 어떤 사실을 선택했느냐. 여기에 이미 글 쓴 사람의 주관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을 많이 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아는 사실이 많지 않을 때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자의식에 충실하면 된다. 밖에 있는 사실이 아니라 내 안의 소리, 즉 나만의 해석을 존중한다. 그리고 해석의 결과물을 당당하게 내놓는다. 이 세상에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는 없다고 우긴다.

또 다른 방법은 상상력의 동원이다. 나는 군대 생활하는 내내 상상했다. 통닭이 먹고 싶으면 언제라도 닭다리를 뜯었다. 제대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자유로운 몸이 돼 거리를 활보했다. 우리는 하늘에서 눈이 오는 것과 상관없이, 마음속으로는 눈 오는 세상에 살 수 있다. 사실을 재해석하고, 허구를 창조하고, 환상의 세계로 나아가면 된다. 사실에 자신 있으면 사실을 많이 쓰고, 느낌이 충만한 사람은 느낌을 많이 쓰면 된다. 

구성 능력을 키우는 방법 역시 어렵지 않다. 칼럼을 잘 쓰고 싶으면 좋아하는 칼럼니스트의 칼럼 20~30편을 출력하여 구성요소가 무엇인지 파악해보면 된다. 나는 2000년 초 전북대 강준만 교수가 쓴 칼럼을 분석해본 적이 있다. 시작은 어떤 구성요소로 했고, 끝은 무엇으로 맺었으며, 중간은 어떻게 전개했는지 따져봤다. 일화 소개로 시작해서 인용이란 구성요소로 끝맺기도 하고, 누군가의 대화로 출발해서 속담이나 고사성어로 마치기도 했다.

칼럼마다 구성요소를 일일이 적어서 한 장에 정리했다. 그리 많지 않았다. 종이 한 장에 강 교수가 활용하는 구성요소가 망라됐다. 설명하고 논증하는 글은 정의 내리기, 비교와 대조, 구분과 분류, 예시, 인용, 비유하기 등 다양한 구성요소를 쓴다. 마음에 드는 칼럼의 구성요소에 내용만 내 것으로 바꿔서 칼럼을 써보는 것도 좋다. 연설문도 마찬가지다. 국가기록원, 청와대나 총리실 홈페이지에 가면 각종 연설문이 공개돼 있다. 연설의 종류별로 구성 틀을 정리해보자. 축사, 기념사, 격려사 등 그 구성 틀에 맞춰 연설문을 써보자. 어렵지 않다.  

보고서에 들어갈 수 있는 구성요소도 총정리해보라. 많아봤자 50개를 넘지 않는다. 보고서의 중간제목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이것만 있으면 기획안, 제안서, 품의문, 협조전, 회의·행사·출장 보고서 할 것 없이 무엇이든 쓸 수 있다. 구성요소의 조합이 보고문서이기 때문이다. 포털사이트에 가보면 직장에서 쓰는 글의 구성요소를 채집할 수 있다. 보고서나 기획서 관련 책자에 나와 있다. 반나절만 시간 내면 종이 한 장에 정리 가능하다. 책상에 붙여놓고 문서를 써야 할 때 한 번 읽어보자. 그중 몇 개를 조합하는 것이 문서 작성이다. 그것이 기획력이다. 참고로, <대통령 보고서>(위즈덤하우스), <회장님의 글쓰기>(메디치미디어)에도 여러 유형의 보고서 구성요소를 밝혀놓았다. 

대학에 들어가고 첫 여름방학을 맞아 고향 전주에 갔다. 방에서 뒹굴뒹굴하다 책꽂이에 꽂혀 있는 정치경제 교과서를 봤다. 불과 몇 달 전까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끼고 살던 책이었다. 그런데 내용이 궁금했다. 목차를 봤다. 목차를 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아, 이런 내용이었구나!' 처음으로 숲을 본 것이다. 그때 비로소 그 책이 어떤 내용으로 구성됐는지 알게 됐다. 고등학교 학창시절 내내 더듬더듬 나무만 만지고 다닌 것이다. 책의 전체 윤곽을 파악하려면 목차를 봐야 하듯, 글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목차가 떠올라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런 감을 고등학교 시절 '야한 장면' 찾기에서 익혔고, 그런 덕분에 미로를 헤매는 글쓰기는 면하게 됐다.
덧붙이는 글 필자 강원국은 청와대 연설비서관을 역임했으며 2014년 <대통령의 글쓰기> <회장님의 글쓰기>를 출간한 이후 글쓰기 관련 강연과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강원국의 글쓰기'는 3월 26일부터 매주 월·수·금 <오마이뉴스>에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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