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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료주기
등록 2018.04.04 09:36수정 2018.04.06 14:32
대학 학력고사 볼 때다. 2교시 수학 시간, 1번부터 5번까지 한 문제도 못 풀었다. 풀긴 풀었는데, 나온 답이 4지선다형 보기에 없으니 답안지에 마킹할 수가 없었다. 식은땀이 나고 가슴만 쿵쾅쿵쾅 뛰었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공식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더 앉아 있어봤자 승산이 없었다. 그냥 나가려고 OMR 답안지를 찍어서 메웠다. 채우고 나니 희한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수험장을 나가지 않고 풀 만한 문제를 찾아봤다.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한 문제씩 풀었다. 오답에 마킹해 놓은 답안지를 하나씩 고칠 때마다 희열이 느껴졌다.


글은 이렇게 써야 한다. 일단 써놓고, 즉 마킹해 놓고 하나씩 고쳐나가야 한다. 100점 맞겠다는 욕심으로 1번부터 푸는 것은, 첫 문장부터 완벽하게 글을 쓰려는 마음과 같다. 그러면 부담만 크고 신이 나지 않는다. 일단 찍어놓고 0점에서 시작해 하나씩 더해나가는 것은 재미가 있다. 천하의 명문을 쓰겠다는 욕심으로 첫 문장부터 비장하게(?) 달려들기보다는 허접하게라도 하나 써놓고, 그것을 고치는 것이 심적 부담이 덜하다. 비록 허름하지만 여차하면 내놓을 수 있는 글이 하나 있으니 마음이 편하다.

글 쓸 때 욕심을 제어하기가 쉽지 않다. 우선 자료에 관한 욕심이다. 읽다 보면 누더기 느낌이 나는 글이 있다. 억지로 꿰맨 흔적이 역력하다. 용접한 부위가 우둘투둘하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원인은 여럿이지만 자료를 이것저것 조합한 데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찾아놓은 자료가 아까워서 꾸역꾸역 쑤셔 넣은 탓이다. 자료를 찾다 보면 더 찾고 싶어진다. 더 찾으면 더 좋은 자료가 나올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끝이 없다. 어느 지점에서 타협해야 한다. 자료뿐만 아니라 머릿속에 생각난 것, 내 경험 모두 그렇다. 취사선택의 분별력과 결단이 필요하다. 어느 것을 쓰고 어느 것은 버릴지 기준이 있어야 한다. 이게 모호하고 경계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이것도 중요하고 저것도 버리기 아깝다. 많은 경우 글의 성패가 여기서 갈린다. 여러 개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한다. 다 넣으려고 하면 망한다. 적절한 지점에서 추가하는 것을 멈추고 버리는 결단을 해야 한다.

아는 것을 표현하는 데도 욕심이 개입한다. 이 글에서는 이것만 써야 하는데, 저것도 안다고 말하고 싶다. 좀 더 멋있게 표현하고 싶은 욕심도 크다. 이런 욕심을 부리다 보면 글쓰기 진도가 나가지 않을뿐더러 글도 나빠진다. 핵심에서 벗어나 중언부언하기 십상이다. 멋있게 쓰려는 욕심에 글이 느끼해진다. 형용사, 부사가 난무한다.

아는 것 중에 하나만 쓰는 절제는 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우라를 느끼게 한다. 글에 여백의 미가 풍긴다. 독자는 필자가 숨겨둔 한두 가지를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다. 소풍 가서 보물 찾았을 때 느끼는 뿌듯함 같은 것이다. 손해 본다 생각하지 말고 아는 것, 쓰고 싶은 말을 남겨두자. 그것이 글 쓰는 사람의 여유다.

쓸 기회는 또 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심도 장애물이다. 평가를 낮게 받을까, 지적당하지 않을까 두렵다. 일종의 주목 공포증이다. 나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강박 장애를 겪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공부하고 있으면 뒤에서 누군가 쳐다보고 있는 것 같다. 뒤를 돌아보면 아무도 없다. 갈수록 이런 증상이 심해졌다. 아무도 없는 줄 알면서도 쳐다보지 않고는 못 배기는 상태가 됐다. 그러다 보니 공부하는 내내 수시로 뒤를 봐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숨이 가빠서 견딜 수가 없다. 문제는 시험 볼 때다. 급기야 정신신경과 치료를 받았다. 남에게 잘 보이려는 욕심에서 비롯된 일이다.

글을 읽는 사람은 내가 얼마나 잘 쓰는지,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는지 관심 없다. 그들이 관심 갖는 것은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얘기가 뭔지, 그 얘기가 내게 무슨 도움이 되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글에서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그것이 독자에게 어떤 효용이 있는지에 집중하는 게 맞다.

욕심은 천성이다. 가만 놔두면 발호한다. 다스려야 한다. 어떻게 욕심을 다스릴 수 있을까. 나는 먼저 '내가 가진 것이 이것뿐인데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다독인다. 내가 쓸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없고, 내 글솜씨가 이 수준인데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다'라고도 생각한다. 실제로 그렇다. 쓸 기회는 또 있다. 얼마든지 있다. 굳이 이번에 다 쏟아부을 이유가 없다. 글을 쓰다 보면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글이 글을 불러온다. 그런데 쓰고자 하는 주제에서 벗어난 내용이다. 과거에는 이것을 버리는 게 아까워서 어떻게든 욱여넣었다. 하지만 이젠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메모해뒀다가 다음에 쓰자고 생각한다. 글 쓰는 과정은 내 머릿속 어느 한 구석에 있을지 모를 쓸거리를 뒤지는 시간이다. 있는 것을 못 찾았다면 나중에 써먹으면 된다. 보여줄 기회는 이번 한 번만 있는 게 아니니까. 그러나 애초 없다면 부질없이 시간만 보낸 것이다.  

'나중에 고치면 된다'고 생각한다. 아는 만큼, 쓸 수 있는 만큼만 쓴다. 토해놓는다는 마음으로 쓰면 금세 쓸 수 있다. 일단 쓰는 것은 고치기 위해서다. 고치기 위해서는 '일단 쓴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단 쓰는 것'의 용도는 그 정도다. 잘 쓰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고칠 것을 마련한다는 생각으로 일단 쓰자. 가장 좋지 않은 것은 독자들을 완전히 감동시켜버리겠다는 욕심과 불퇴전의 각오로 첫 문장을 놓고 썼다 지웠다만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남겨둬야 다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글쓰기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글은 한 번 쓰고 말 일이 아니다. 쓸 수 있다고 다 써버리면 회복 불능 상태가 될 수 있다. 배터리가 방전되면 아예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어느 작가는 가장 왕성하게 생각이 날 때 글쓰기를 중단했다고 한다. 다음 날 또 쓰기 위해서.

욕심나는 지점보다 더 높이 올라가서 보는 것도 방법이다. 상사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심이 들면 그보다 더 윗분의 높이에서 글을 써보라. 내가 사장이라 생각하고 써보라. 그래도 상사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심이 드는지. 바닥까지 내려가 쓰는 것도 욕심을 다스리는 방법이다. 내가 지금 글을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일인가. 내일이라도 이 조직을 떠날 수 있는데, 떠나면서 욕심부린 내가 얼마나 우습겠는가.

글쓰기는 욕심과 실력의 함수관계


글쓰기가 어려운 첫 번째 이유는 자신의 현재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글쓰기 실력이 80인 사람이 마치 100인 것처럼, 아는 것이 70인데 100을 아는 것처럼 보이고 싶은 욕심 때문에 글을 못 쓰고 끙끙 앓는다. 혹은 자기 스스로를 100점이라고 착각하고 있어서다. 머릿속에 든 것만큼, 마음으로 느낀 만큼, 나의 글쓰기 수준만큼 써서 보여준다 생각하면 못 쓸 게 없다. 80 가진 사람이 80을, 70 가진 사람은 70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겠다고 마음먹으면 못 쓸 글이 어디 있겠는가. 글쓰기가 무에 그리 어렵겠는가.

글쓰기는 욕심과 실력의 함수관계다. 채우기 아니면 비우기다. 실력을 높이거나 욕심을 줄이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욕심이 많아도 실력이 있으면 상관없다. 또한, 실력이 없어도 욕심부리지 않으면 괜찮다. 욕심은 많은데 실력이 없는 경우가 문제다. 실력이 없으면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내가 이 정도 썼으면 잘한 거야.' 자신을 직시해야 한다. 그래도 욕심이 나면 실력을 쌓아야 한다.

독자와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내 역량이 독자의 기대보다 높은 수준일 때는 문제 없다. 독자가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치부하면 될 일이다. 이런 경우 오히려 투지를 불태우게 된다. 이런 투지는 글쓰기에 약이 된다. 역량은 없는데 독자가 과한 기대를 할 때가 문제다. 내 수준보다 높은 결과물을 기대하는 상황이 난감하다. 실력을 키우면 좋겠지만 이는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톨스토이의 말은 정곡을 찌른다.

"가난의 고통을 없애는 방법은 두 가지다. 자기의 재산을 늘리는 것과 자신의 욕망을 줄이는 것이다. 전자는 우리의 힘으로 해결되지 않지만 후자는 언제나 우리의 마음가짐으로 가능하다."

직장에서 글 쓰는 사람을 많이 만났다. 이들을 자존감과 실력이라는 두 잣대로 분류하면 네 부류로 나뉜다. 첫째는 자존감도 높고 실력도 있는 부류다. 자기 실력을 100% 보여주지 않는다. 잘 보이려고 애쓰지 않는다. 글에 욕심이 들어가지 않는다. 설렁설렁 쓴다. 대부분의 경우 글이 좋다. 그러나 간혹 결정적 실수를 한다. 둘째 부류는 실력은 그저 그런데 자존감이 높은 경우다. 매우 성실하다. 일찌감치 글을 써놓고 계속 수정한다. 실수가 거의 없다. 마감 준수 등 항상 기본은 한다. 그러나 뛰어난 것은 나오지 않는다.

세 번째 부류는 자존감은 낮으나 실력이 괜찮은 경우다. 남이 자신의 글을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민감하다. 인정받고 싶어 한다. 지적당하면 화를 내거나 의기소침해 한다. 상사와 멀어지고 조직과 겉돌게 된다. 행복하지 않다. 끝으로 자존감과 실력 모두 낮은 경우다. 눈치를 심하게 본다. 결과도 안 좋다. 자신도 괴롭다. 글쓰기와 관련 없는 일을 하는 게 좋다.

글쓰기가 어려운 두 번째 이유는 여러 가지를 잘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그래서 글쓰기가 어렵다. 답은 단순화다. 나는 글을 쓸 때 주제에 집중한다. 하고자 하는 말을 어떻게 잘 전달할 것인지에 몰두한다. 감동? 재미? 논리? 이런 모든 것은 그다음 문제다. 여력이 있을 때 신경 쓴다. 오직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만 생각한다. 하나의 주제에 몰입한다. 하나에만 집중하면 욕심이 사라진다. 주제가 실종되는 경우도 욕심이 앞설 때다. 찾아놓은 자료에 멋있는 표현과 좋은 내용이 많아 욱여넣을 때, 모호함을 심오함으로 착각해서 관념적·피상적으로 흐를 때, 잘 써 보려는 욕심에 수사법과 수식어를 과하게 쓸 때 애초 생각했던 길을 잃고 미로를 헤맨다.

글은 한정식이 아니라 일품요리로 써야 한다. 백화점이 아니라 전문점이 돼야 한다. 버리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아야 한다. 주제 혹은 논지와 관련 없는 내용은 가차 없이 버린다. 그러면 단순해진다. 또한, 하나의 생각에서 출발하여 그것과 관련 있는 내용만 덧붙이는 방법도 있다. 곁가지를 뻗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무엇보다 아는 체하고 싶은 욕심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은 단순 반복의 미니멀리즘으로 성공한 경우다. 글쓰기도 미니멀리즘을 지향할 수 있다. ▲단문으로 쓴다. 복문, 포유문, 중문을 지양한다. ▲수사적인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수사법 사용을 절제한다. ▲최대한 짧게 쓴다. 군더더기 없이 해야 할 말만 쓴다. ▲독자에게 잘 보이겠다는 생각을 자제한다. 그것도 소유욕이며 미니멀리즘에 역행하는 일이다.

문제는 과대 포장하고 싶은 욕심

글쓰기가 어려운 세 번째 이유는 시간을 주기 때문이다. 말과 글은 한 몸이다. 어휘력과 논리력 등 요구하는 역량이 같다. 결정적 차이는 시간의 문제다. 말은 곧장 하고, 글은 시간이 주어진다. 글을 쓸 때는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에 욕심을 부린다. 잘 쓰려고 한다. 그래서 어렵다.

말은 욕심낼 여지가 없다. 준비 없이 즉각적으로 한다. 그러다 보니 수식이 붙을 틈이 없다. 물에 빠지면 '사람 살려'라고 한다. 도둑이 들어오면 '도둑이야'라고 한다. 군더더기 없이 핵심으로 곧장 들어간다. 그러나 글은 다르다. 자신이 아는 것을 보여주고, 잘 쓴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궁리한다. 그만큼 쓰기는 어려워지고 글은 지저분해진다.

글을 말처럼 쓰는 방법이 있다. 시간을 정해놓고 쓰는 것이다. 일부러 시간을 짧게 잡고 그때까지는 하늘이 두 쪽 나도 마친다는 생각으로 쓴다. 그러면 오히려 글이 좋아지기도 한다. 야구선수가 방망이를 짧게 잡고 출루만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잘 칠 수 있는 것처럼. 시간이 남으면 뱀 다리(蛇足)까지 그리게 된다.

촉박하게 쓰는 것과 함께 분량을 제한하는 것도 방법이다. 분량을 200자 원고지 1매로 한정해놓고 써보라.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발목에 달고 달리는 기분이랄까? 답답하다. 200자가 그렇게 짧은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평소엔 그렇게 부담스러웠던 '만주 벌판 같던 분량'이 그립다. 마음껏 쓸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럴 수만 있다면 훨훨 날 것 같다.

글을 잘 쓰고 싶은 생각은 잘못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런 생각이 없으면 글을 잘 쓸 수 없다.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 그런 욕구는 욕심과 다르다. 사람은 누구나 표현 욕구를 갖고 있다. 인정받고 싶다. 글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욕구도 있다. 그런 욕구는 많을수록 좋다.

문제는 과대 포장하고 싶은 욕심이다. 백 번은 써야 제대로 쓸 수 있는데, 쉰 번만 쓰고도 글을 잘 쓰고 싶어 하는 것, 그것은 욕심이다. 열 번은 고쳐야 제대로 글이 되는데, 다섯 번만 고치고도 제대로 안 고쳐졌다 푸념하는 것도 욕심이다. 시간을 들이지 않고 노력도 하지 않고 잘 쓰고 싶은 것은 글 쓰는 사람을 힘들게 하고 몹쓸 글을 만들어내는 이유가 된다. 심지어 글을 써보지도 않고 글이 안 써진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이 또한 할 일은 다하지 않고 다한 것처럼 보이려는 욕심이다. 욕심낼 자격부터 갖추는 게 먼저다.

참여정부 3년 차 때 힘든 상태가 극에 달했다. 내가 아는 내 수준은 70점도 안 됐다. 하는 일은 90점 이상의 실력이 필요했다. 나는 그렇게 보여야 했다. 언제 들킬지 몰라 전전긍긍했다. 밤샘하며 몸으로 때웠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감이 들었다.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대통령께 사의를 표했다. 결국 그만두진 못했지만, 그 이전과 이후는 달랐다. 청와대를 떠나기로 마음먹었을 때가 바닥이었다. 바닥에 발이 닿는 순간 오를 일밖에 없었다. 내 글에 관한 평이 좋지 않아도 괴롭지 않았다. 잘 보이려고 아등바등하지 않았다. 잘 써서 칭찬받겠다는 욕심도 없었다. 그저 묵묵히 썼다.
덧붙이는 글 필자 강원국은 청와대 연설비서관을 역임했으며 2014년 <대통령의 글쓰기> <회장님의 글쓰기>를 출간한 이후 글쓰기 관련 강연과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강원국의 글쓰기'는 3월 26일부터 매주 월·수·금 <오마이뉴스>에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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