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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04.02 09:00수정 2018.04.02 19:26
아들 하람아,
살다 보면 정말 솟아날 구멍이 없을 것 같은 캄캄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처할 때가 한두 번은 있을 것이다. 불이 난 지하철 열차 안에 갇힐 수도 있고, 자동차를 탄 채 물에 빠질 수도 있으며, 비행기 사고로 오지에 추락할 수도 있단다. 그리고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차라리 죽는 편이 나을 것 같이 힘든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발 하람아, 그 순간에 절망하지 마라. 결코 포기하지 마라. 네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라.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 그래서 이젠 포기해야겠다고 마음먹는 그 순간이 밑바닥이다. 바로 그 너머에 살길이 있다. 10초만 더 참아내면 반드시 너를 구해줄 누군가가 온다고 생각해라. 그래도 못 버티겠으면 어떤 경우에도 네 편이 되어 너를 도울 것이라는 아빠의 약속을 믿어라.
-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가 일어났을 때, 중학교 1학년인 아들 녀석에게 보낸 쪽지

작가의 장벽(Writer's Block)이란 게 있다. 글을 쓰다 보면 반드시 슬럼프가 찾아온다. 더 이상 한 줄도 써지지 않는 상황에 내몰린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버지니아 울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가와바타 야스나리, 김소월… 이 밖에도 많은 작가가 창작의 고통에 신음하다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작가의 장벽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글 쓰는 사람이라면 슬럼프를 뛰어넘는 자기만의 방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지속적으로 쓸 수 있다. 쓰다 보면 매일 벽에 부딪치기 때문이다.

내게 글쓰기에 관해 가장 많은 영감을 준 프랑스 평론가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텍스트의 즐거움>에서 글쓰기가 벽에 부딪쳤을 때 대처하는 세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첫째, 다른 장르로 관심을 돌려라. 문학에서 음악이나 미술로 갈 수도 있고, 소설에서 시나 수필로 갈 수도 있을 것이다. 둘째, 정통 글쓰기에서 벗어나 단순 정보 전달로 옮겨가라. 잘 쓰려고 하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셋째, 절필하라. 바르트답다.

나는 벽에 부딪칠 때마다 일시적 고비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술자리에서 토하기 일보 직전인데, '여기 한 병 더요'를 외치는 친구가 꼭 있다. 그때 나는 절망한다. '새로 시킨 술은 도저히 마실 수 없어. 시킨 사람이 오버한 거야.'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 다 마셨다. 늘 그랬다. '한 병 더'를 외치는 순간이 고비였다.

회사에서 누군가 '회의합시다' 한다. 내 생각에 회의한다고 아이디어가 나올 것 같지 않다. 별로 할 말도 없다. 왜 회의는 하자고 하는 것인지 짜증부터 난다. 그런데 이상하다. 회의를 시작하면 할 말이 많다. 30분도 채우지 못할 것 같던 회의가 2시간을 넘겨도 안 끝난다. 좋은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급기야 회의를 안 했으면 어쩔 뻔했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고비에서 당황하지 말아야 한다. 술을 더 시키고, 회의를 하자는 분위기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 글 쓸 때도 마찬가지다. 고비가 왔을 때 주눅 들거나 의기소침하지 말고 의연하게 맞서야 한다. 글이 안 써지는 상황은 토하기 직전 술자리나 회의에 불려 나가는 상황과 같다. 어느새 술병은 빈다. 회의는 성공적으로 끝난다. 글도 언젠가 써진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

군대 훈련소 시절을 생각해봐도 그렇다. 입소 첫날 절망했다. 남은 날수를 헤아려보니 무려 1000일에 가깝다. 단 하루도 버티기 어려운 하루하루를 이 지옥 같은 데서 보내야 한다. 나와 함께 난방용 갈탄 당번을 했던 훈련소 동기 한 명은 탄 창고에 가서 자기 손가락을 삽으로 잘라달라고 부탁했다. 총 쏘는 손가락 하나 없으면 의병 제대가 가능하다고 했다. 부탁을 들어주진 않았지만 그 심정이 이해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만큼 힘들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결정적 착각이 있었다. 훈련소 첫날 같은 하루가 군 생활 30개월 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오해였다. 훈련소 기간은 고작 6주에 불과하다. 6주만 지나면 군 생활도 할 만하다. 6주간의 절망이 30개월 군 생활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글쓰기도 처음 한 줄이 어렵다. 써야 할 원고는 1000자인데, 열 글자도 못 쓰고 있는 상태가 가장 힘들다. 점점 더 쉬워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마침표를 찍게 된다.

그들도 처음에는 백지에서 출발했다


돌이켜 보면 많은 글을 썼다. 청와대와 기업에서 천 편 가까운 연설문과 기고 글을 쓰고 다듬었다. 단 한 번도 자신 있게 시작한 적이 없다. 그러나 한 번도 못 쓴 적은 없다. 못 쓰면 안 되니까. 써야 하니까. 쓰다 보면 써진다. 시간이 걸리지만 깜깜하던 방이 훤해지는 순간이 온다. '왜 이제야 이런 순간이 찾아온 거야.' 짜증과 반가움이 교차하면서 써진다. 글이 안 써질 때 나는 이렇게 과거를 돌아본다.

과거를 돌아보는 것과 함께 남도 본다. 나만 어려운 게 아니다. 책이건 칼럼이건 우리가 보는 모든 글은 완성본이다. 최종본을 보니 엄두가 안 나는 것이다. 얼마나 우아하고 완전하게 보이는지. 하지만 미처 못 본 것이 있다. 그것이 완성되기까지 거쳐 온 암중모색의 과정이다. 얼마나 많은 단어와 표현이 생각났다 사라지고, 또 얼마나 많은 불면의 밤을 보냈을까. 그들도 처음에는 백지에서 출발했고 완성본이 어떻게 될지 몰랐다.

앞을 내다보기도 한다. 극장에 가면 처음엔 한 치 앞도 안 보인다.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주변이 보이기 시작하고 곧 전체적인 윤곽이 드러난다. 낯선 동네에 가면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되지 않다가 사나흘 지나면 언제 그랬나 싶게 사방팔방이 익숙해진다. 단체 해외여행을 가면 여행 온 사람끼리 낯설고 서먹서먹하다가 여행에서 돌아올 즈음에는 서로를 속속들이 알게 된다. 오히려 헤어지기 섭섭해 연락처를 주고받는다. 글도 마찬가지다. 쓰다 보면 머릿속이 환해지면서 술술 풀리는 때가 온다. 어둠이 지나면 대명천지가 나타난다, 그것을 믿어야 한다.

믿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적극적으로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방법은 근심하는 것이다. 머릿속에서 잊지 않는 것이다. 손은 놓고 있지만 생각은 붙들고 있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생각하기보다 막연하게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써야 하는데, 언제가 써야 하는데…'. 길을 걸으면서도, 잠들기 전에 문득문득 떠올려야 한다. 내가 글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수시로 상기하면서 뜸을 들여야 한다.

기다리기만 해서도 안 된다. 시도해야 한다. 불가에 돈오점수(頓悟漸修)란 말이 있다. 돈오는 햇빛이 비치는 것처럼 번득 일어나는 깨달음이다. ​점수는 거울을 닦아 서서히 밝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불현듯 찾아오는 깨달음, 즉 '돈오'에 이르기까지는 '점수'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끊임없이 갈고닦으면 주제가 명료해지고 글의 구성이 체계적으로 잡히는 '돈오'의 순간이 온다.

가장 흔하게 하는 시도는 카페에 앉아 끼적거리는 것이다. 아이들이 블록 쌓기 놀이를 하는 것처럼 이런 단어, 저런 표현을 놓고 이것을 써보기도 하고 저것을 빼기도 한다. 어림짐작으로 이런저런 시도를 하다 보면 우연히 성공한다. 그러면 그 방식에서 얻은 감각으로 조금씩 모양을 완성해간다. 시도를 통해 피드백을 얻으면서 더 높은 탑 쌓기에 도전한다.

산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새벽에 쓰려고 일어났다가 글이 안 써질 때에는 일단 걷는다. 시간이 없으면 앞마당이라도 한 바퀴 돈다. 노트북 앞에 백날 앉아 있어도 한번 막힌 곳은 뚫리지 않는다. 오히려 관심을 다른 데로 돌려야 한다. 산책하면 무엇인가를 보고 듣고 느낀다. 그런 자극에 의해 막힌 곳이 뚫린다. 새로운 생각이 나고 돌파구가 생긴다.

누군가와 만나 대화한다. "내가 여기까지 이런 내용을 썼는데 그다음이 생각 안 나"라고 말해보라. 그 얘기를 하면서 스스로 답을 찾는 경우가 많다. 아니면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쓸거리가 생각난다.

글쓰기라는 바다 위... 뱃놀이의 현기증을 즐기자

그냥 노는 것도 좋다. 좋은 아이디어는 이성보다는 감성에 의해 촉발된다. 포털사이트에 가서 자신이 쓰고자 주제와 관련한 이미지나 사진을 보면서 놀아보라. 온라인 서점에 가서 책의 목차를 보면서 놀아보라. 글쓰기라는 바다 위에 나를 띄워놓고 뱃놀이의 현기증을 즐기자. 글쓰기는 퍼즐 맞추기 게임이다. 빈칸에 맞는 단어나 문장을 찾아 넣는 놀이다. 하지만 실제 글쓰기는 놀이가 아니라 행군에 가깝다. 고난의 행군이다. 나는 글 쓸 때 커피를 옆에 두고 한 문단 쓰고 나서 한 모금씩 마신다. 한 모금 마시기 위해 얼른 한 문단을 쓰고 싶다. 고통스런 글쓰기를 즐거운 놀이로 만드는, 나만의 방법이다.

글 쓰는 시간과 장소를 바꿔보는 것도 좋은 시도다. 아침에 안 써진 글이 저녁에 술술 풀린다. 사무실에서는 안 써지는 글이 회사 앞 카페에서는 잘 써지기도 한다. 집에서 안 써지면 집 앞 도서관에 가보라. 게릴라처럼 출몰하는 시간과 장소를 바꿔보라. 억지로는 안 된다. 잘 써지는 장소에 가서 쓰면 된다. 물이 들어올 때 배 띄우면 된다. 모든 것은 내가 결정한다.

단어를 떠올리는 것도 좋다. 쓰다 막히면 이런 단어를 떠올린다. ▲풀어서 말하면(설명) ▲왜냐하면(이유) ▲이를테면(예시) ▲정리하면(요약) ▲만약(가정) ▲빗대면 (비유) ▲차이점과 공통점은(비교) ▲거듭 말하면(반복) ▲미루어보건대(유추) ▲중요한 것은(강조) ▲구분하면(분류) ▲~에 따르면(인용) ▲정의하면(규정) ▲수치는(통계) ▲기억에는(일화) ▲나열하면(열거). 이런 단어를 책상에 붙여놓고 막힐 때마다 죽 훑어본다.   

빈칸으로 놔두고 건너뛰는 것도 방법이다. 뒷부분을 채워놓고 건너뛴 빈칸을 보면 쉽게 메워지기도 한다. 처음에는 빈칸이 전부이고 커 보였지만, 뒷부분을 채워놓고 빈칸을 보면 조그만 구멍에 불과하다. 가로세로 낱말 퍼즐 맞추듯 아는 단어부터 빈칸을 채우다 보면 모르는 단어 칸도 채워진다. 첫 줄에서 막히면 100% 문제가 생긴 것이지만, 뒷부분을 다 써놓고, 못 쓴 첫 줄로 돌아와서 보면 고작 1%도 안 된다.

이런저런 시도가 모두 안 먹힐 때에는 용쓰지 않는다. 펜을 놓고, 노트북을 덮는다. 다만, 글 쓰는 자리를 일어설 때에는 돌아올 준비를 하고 떠나야 한다. 두 가지를 유념한다. 다음 쓸거리를 남겨두고 끝낸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이어 쓸 수 있다. 일종의 밑밥이고, 종자다. 더 쓸거리가 있을 때 그것을 남겨놓고 그만 쓰는 것이다. 또 하나, 처음 쓸 한 문장을 마련하고 돌아와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돌아오면 처음부터 막히고 김이 샌다. 돌아와서 첫 줄이 풀려야 이어갈 수 있다. 글 쓰러 돌아오기 전에는 반드시 자리에 앉자마자 쓸 거리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길이 열린다는 것을 지난해 말 미국에 가서 다시 한번 확인했다. 뉴욕에서 LA까지 교민들에게 18일간 글쓰기 강의를 했다. 강의는 힘들지 않았다. 차를 타는 일이 걱정이었다. 오랜 고질병인 과민성대장증후군으로 차가 막히면 배가 아프기 때문이다. 샌디에이고에서 LA로 오는 길에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주유소에 차를 세워달라고 했다. 가까스로 도착한 주유소. 그런데 주유소의 인도인 사장 왈, 기름을 넣지 않으면 화장실을 쓸 수 없단다.

아뿔싸! 하늘이 노랬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다. 50년 넘게 참아왔는데 미국까지 와서 그럴 순 없어. 그때 저 멀리 산 중턱에 하얀 오두막 하나가 보였다. 마지막 희망을 걸고 물었더니 마을 도서관이란다. 냅다 뛰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나의 오랜 믿음처럼, 이번에도 역시 하늘은 나를 저버리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필자 강원국은 청와대 연설비서관을 역임했으며 2014년 <대통령의 글쓰기> <회장님의 글쓰기>를 출간한 이후 글쓰기 관련 강연과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강원국의 글쓰기'는 3월 26일부터 매주 월·수·금 <오마이뉴스>에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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