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권 정치요? 그건 미국을 제대로 몰라서 하는 얘기에요."

'슈퍼팩 등 규제가 약한 정치자금 제도 탓에 미국 정치가 금권 정치로 흐르는 것 아닌가'란 질문에 김동석 KAGC(Korean American Grassroots Conference, 미주 한인 풀뿌리 컨퍼런스) 상임이사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도 미국 정치라고 하면 마치 자본에 종속돼서 돈 있는 사람들 판이라는 이미지가 있는 것 같은데, 그건 그저 미국 정치를 '겉'으로만 보고 내린 평가가 아닌가 싶어요."

그가 겪은 미국 정치의 '속'은 달랐던 걸까. 25년 넘게 미국 시민사회와 정계를 누비며 미주 한인들의 정치 세력화에 앞장서 온 그의 대답은 분명했다.

"미국 의회가 정말 금권 정치고 자본에 종속됐다면 우리가 어떻게 2007년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미국에서 통과시킬 수 있었겠어요? 저는 그때 일본의 전방위적인 800만 달러 로비를 이겨본 경험을 했습니다.

그땐 아무도 안 될 거라고 했어요. 그렇게 치밀하다는 일본도 방심하고 있었죠. 돈의 힘만 믿고 있던 겁니다. 그 틈을 비집고 저희는 정말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한인들의 목소리를 의회에 전달했고, 역사 앞에 부끄러워하는 의원들이 조금씩 늘어났죠. 결국 성공했습니다. 미국 정치를 그저 금권 정치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있었다. 2007년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미국 의회 통과의 주역이었던 그를 지난 8월 28일 강원연구원에서 만났다.


"오히려 정치자금 한도액을 높이는 게 어떨까요?"



오는 11월 6일 중간선거와 관련 역대 최대의 돈 선거가 될 거란 우려에 대해 묻자 예상과는 다른 답변이 돌아왔다.

"소프트 머니(soft money) 시절까진 금권 정치가 작동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업들이 엄청난 돈을 갖고 선거와 정치에 개입하니 일반 시민이나 서민들은 곁다리로 밀려났죠. 이때 들고 일어났던 게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존 매케인 의원입니다.

2002년 공화당의 매케인과 민주당의 러스 파인골드 의원이 초당적으로 정치자금법을 개정했죠. 소프트 머니를 폐지한 겁니다. 정치에서 시민들의 목소리를 되찾기 위해 자신들의 기득권까지 버린 거죠. 매케인 의원의 죽음에 미국인들이 그토록 애도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정치인에게 직접 주어지고 각종 규제를 받는 '하드 머니(hard money)'와 달리, 정당이나 단체에 기부되는 대신 상한선이나 사용처 제한이 없어 정경 유착의 고리로 여겨졌던 '소프트 머니'. 그 소프트 머니가 금지된 이후론 미국 정치 문화도 긍정적으로 변화해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 상임이사는 또 2010년 이후 등장한 무제한 간접 지원 방식의 '슈퍼팩'의 위험성에 공감하면서도, 다수의 소액 기부자들로부터 직접 걷히는 후원금이 미국 정치를 움직이는 더 강력한 원동력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소액 다수 기부가 활발해질수록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정치가 가능하다고도 피력했다. 이러한 믿음 역시 그의 생생한 경험에 뿌리를 둔 것이었다. 그는 2008년 대선 때 오바마 캠프에서 활동한 바 있다.

"정치인에게 직접 기부하는 경우 200달러(약 23만원)이상이면 누가 돈을 줬는지, 이 사람이 어디서 뭘 하는 사람인지까지 일일이 다 보고를 해야 해요. 간접 기부는 더더욱 제약이 많죠. 반면 개인이 200달러 이하의 돈을 직접 기부하면 따로 보고할 필요도 없고 정치인도 마음대로 쓸 수가 있습니다.

정치인에겐 이게 진짜 강력한 돈 아닙니까. 근데 오바마는 주야장천 그런 돈만 들어오는 거예요. 힐러리나 매케인 같은 주류 경쟁자들이 소수의 유지나 재력가들로부터 대규모의 자금을 한꺼번에 받고 있던 상황과는 크게 대비됐죠. 비주류였던 오바마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건 그런 작은 돈들이 엄청나게 모여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2016년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트럼프 대통령이나 버니 샌더스도 마찬가지였죠."

그는 전국에서 쏟아지던 소액 다수 기부금들을 보면서 2008년 오바마와 2016년 트럼프의 당선을 직감했다고 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저는 반대로 정치인들이 직접 돈을 받을 수 있는 한도(선거주기인 2년간 특정 정치인에 대한 개인 후원 한도액은 2700달러(약300만원))가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요. 다수로부터 깨끗한 돈을 더 많이 받아야 정치인도 훌륭한 사람을 고용할 수 있고 지역 사회를 위해 더 왕성하게 일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돈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구조가 돼야 좋은 사람들이 힘겨운 정치권에 뛰어들 유인도 생깁니다. 그러한 정치의 성과는 곧바로 우리들, 시민들에게 돌아옵니다."


전제는 투명성과 높은 윤리의식... 그리고 노회찬의 교훈



단, 전제를 달았다. 투명성, 그리고 정치인들 스스로의 윤리 의식이었다.

"물론 그에 응당한 책임도 함께 져야죠. 단순히 정치인이 돈을 어느 정도 받느냐 보단, 얼마나 철저하고 투명하게 잘 쓰고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정부는 정치인이 누구로부터 언제, 얼마를 받아 어떻게 썼는지 모두 실시간으로 공개하고 있습니다(미국 연방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https://www.fec.gov 참조).

투명하지 않고 음성화될수록 잔머리를 굴리게 되죠. 공적인 목적의 돈인 만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 미국 정치자금의 기본입니다."

그는 정치인들 개개인의 윤리 의식 수준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에도 그는 직접 겪은 사례를 들려줬다.

"제가 한번은 미국 의원을 모시고 강원도에 간 적이 있어요. 미국 의회 윤리위원회 규정을 보면 의원이 정치자금을 사용해 해외에 나갈 땐 동행하는 보좌관의 이름을 미리 보고하도록 돼 있죠. 그런데 이 의원이 착오를 해 미리 보고된 보좌관과 다른 보좌관을 데리고 간 겁니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안 이 의원은 그 보좌관이 결제했던 것을 다 취소시킨 다음 모두 자비로 다시 결제를 했어요. 윤리위에서 적발된 것도 아닌데 자진해서 말이죠. 그 정도로 엄격합니다."

"미국 제도는 이러니까 한국도 그렇게 하자"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는 정치자금의 투명한 관리와 정치인의 윤리의식 제고를 한국 정치권에 제언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난 7월 한국 국회 원내대표단이 합동으로 방미했을 때 미국 현지에서 만났던 고 노회찬 전 원내대표를 떠올렸다.

"그렇게 만나고 한국으로 돌아간 직후에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본인이 정치자금과 관련해 늘 스트레스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저는 이번 일을 큰 교훈으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투명 공개라는 제도적 개선과 함께 정치인들 스스로도 자기 갱신을 많이 해야 할 겁니다. 동시에, 정치자금을 사용하는 정치인들의 철학이나 자질을 높이는 장기적인 프로그램도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닐까 싶어요."


북미회담 성사 위해 미 의회에 편지 174통 전달한 KAGC

미국 워싱턴 D.C. 14번가에 위치한 미주 한인 풀뿌리 컨퍼런스 (KAGC) 사무실에서 김성 KAGC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맨왼쪽), 장성관 KAGC 프로그램 디렉터(가운데)를 만나 인터뷰했다. ⓒ 오마이뉴스 김성욱

"Money talks(돈은 통한다)."

짧지 않은 인터뷰 내내 김 상임이사는 '참여'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립서비스만으론 안 된다. 단 몇 푼이라도 내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놓는 것이 행동의 시작이자 참여의 기본"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앞서 그가 언급한 소액 다수 기부 또한 '참여'와 직결된다. 소액일지라도 지역 유권자들이 지갑까지 털어내며 목소리를 높인다면 그들의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으로서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는 논리였다. 그가 제시한 '시민 로비'의 요체다.

KAGC(Korean American Grassroots Conference, 미주 한인 풀뿌리 컨퍼런스)는 이러한 '시민 로비'를 포함한 시민들의 풀뿌리 정치참여를 교육하는 시민단체다. 지난 9월 5일, 김 상임이사의 조언에 따라 미국 워싱턴 D.C. 14번가에 있는 KAGC 사무실을 찾았다. KAGC는 올해 초 이곳에 새로 사무실을 열었다.

"정치는 커뮤니티에 사는 모든 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칩니다. 한인들이 왜 정치에 참여해야 하는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하고, 공유합니다." - 장성관 KAGC 프로그램 디렉터

"소수자인 한인들 스스로가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의회에선 계속해서 한인 관련 이슈들이 잊힙니다. 미주 한인들에 대한 기초적인 자료나 통계도 구하기 힘든 상황이니까요." - 김성 KAGC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KAGC는 미주 한인들의 정치 세력화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일례로 북미정상회담 가능성이 회자되기 시작하던 지난 3월엔 174명의 미국 의원들에게 북미회담을 지지해줄 것을 부탁하는 편지를 전달했다. 174명의 의원은 미국 내 5000명 이상의 한인이 속한 지역구 상하원 의원, 외교위원회·군사위원회에 속한 연방상원 의원들로 추렸다.

KAGC는 2014년부터 매년 미주 한인들을 대상으로 전국 단위의 교육 컨퍼런스도 개최하고 있다. 지난 7월 있었던 2018년도 컨퍼런스엔 600여 명의 미주 한인이 참가했고, 버니 샌더스, 에드 마키, 테드 크루즈, 코리 부커 등 유명 정치인들과 면담을 진행하는 성과도 거뒀다.

장성관 KAGC 프로그램 디렉터는 "올해 컨퍼런스엔 고등학생 100명, 대학생 150명 등 젊은 학생들의 참여가 크게 늘었다"라며 "면담자 중에선 특히 버니 샌더스 의원이 한인들로부터 직접 목소리를 듣는 게 처음이라면서 호응이 좋았던 기억"이라고 전했다.

이름이 시사하듯 KAGC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풀뿌리(grassroots)'다. 장 디렉터는 "풀뿌리는 정치 참여의 주요한 방법이다. 정치라고 하면 뭔가 멀게 느껴지고 거창하게 들리지만, 지금, 여기, 그러니까 각자가 속한 지역사회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당장 시작하는 것이 바로 풀뿌리 정치 참여"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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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19-20대 국회의원 총 482명이 6년간 지출한 정치자금 2587억원의 지출내역을 공개합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정보공개를 통해 받은 정치자금 수입·지출보고서 2200여건, 10만 3617매를 전수분석했습니다.
오마이뉴스의 '정치자금 공개 페이지'(http://omn.kr/187rv)에서 의원별로 사용일자, 내역, 금액, 사용처 등 지출내역을 확인할 수 있으며, 원본 PDF파일도 제공합니다. 데이터 저장소(https://github.com/OhmyNews/12-17_KAPF)에서 연도별 지출내역 전체를 데이터파일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습니다.